"10년간 중산층 늘었지만 '노력하면 계층 상향' 기대는 줄어"

[KDI 포커스] - KDI ‘우리나라 중산층의 현주소와 정책과제’ 보고서 - 자녀세대 중산층 진입 기대·소득이동성은 감소…"양질 일자리 필요“ - "'나는 중산층' 인식 꾸준히 상승…계층이동성은 갈수록 부정적“

2023-02-11     고현석 기자
사진=KDI

우리나라 중산층 비중과 경제력이 최근 10여 년간 꾸준히 유지·증가했지만, 계층이동 가능성에 대해서는 부정적 인식이 커진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노력해도 개인의 사회경제적 지위가 높아질 것이라는 기대가 줄었고, 다음 세대가 중산층으로 진입할 수 있다는 기대도 점차 낮아지고 있다. 

이에 한국개발연구원(KDI)은 당장의 소득분배 개선보다 동태적인 계층이동 가능성 제고에 정책의 초점을 맞추는 것이 바람직하며, 이를 위해서는 좋은 일자리 창출, 고용 확대, 실용적 교육 등이 등이 중요하다고 제언했다.

지난달 31일 이영욱 KDI 재정·사회정책연구부장은 이러한 내용의 '우리나라 중산층의 현주소와 정책과제' KDI 포커스 보고서를 발표했다. 사회경제적 '허리'인 중산층의 축소 우려는 전 세계적 현상이다. 디지털 전환, 기후변화 등 새로운 위협이 대두하면서 양극화 문제가 불거진 것이다. 하지만 보고서에 따르면 디지털 전환과 일자리 감소 등으로 중산층 축소 우려가 커지고 있지만, 실제 국내 중산층 비중은 최근 10년간 늘거나 유지되고 있어 안정적 추이를 보이는 것으로 분석됐다.


◇ 정부 복지혜택으로 최근 10년간 중산층 비중 60%대까지 확대

통계청에서 주로 활용하는 중산층 개념인 '중위소득 50∼150%' 비중은 처분가능소득 기준으로 2011년 54.9%에서 61.1%로 높아졌다. 다만 시장소득 기준으로는 10년간 50% 안팎을 유지 중이다. 시장소득은 근로·사업소득 등 '일해서 번 돈'이고, 처분가능소득은 시장소득은 연금·지원금 등 정부의 이전지출까지 포함한 소득이다.

시장소득 기준 중산층이 50%대를 유지하고 있으나 처분가능소득 기준 중산층은 60% 이상으로 늘었다는 것은 최근 10년간 정부의 복지혜택이 중산층 확대에 영향을 줬다는 의미로 풀이된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가 쓰는 중산층 기준인 '중위소득 75∼200%'로 보면 우리나라 중산층 비중은 2021년 61.1%로 OECD 평균 61.5%와 유사한 수준이다. 다만 중위소득 50% 아래인 빈곤층이 15.1%로 OECD 평균 11.4%보다 높은데, 이는 특히 심각한 노인 빈곤 문제가 반영된 결과로 보인다고 보고서는 판단했다.

 

소득·소비 잣대를 들이대도 큰 차이는 없었다. 중산층 경제력을 보여주는 중위 60%의 소득점유율은 최근 10년간 50~60% 수준에서 소폭 증가하는 양상을 보였다. 생애 소득이 잘 반영되는 소비 측면에서도 중산층 비율은 크게 변화가 없거나 늘어나는 모양새다.

이영욱 부장은 "2000년대 중반 이후로 중산층 비중이 유지·증가하는 추이가 뚜렷하다. 이는 대·중소기업 등 노동시장 내 임금 격차가 크게 벌어지지 않고, 정부의 이전지출(실업수당·보조금 등 대가 없는 현금성 지원)도 이전보다 확대된 영향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국민이 자신을 중산층으로 인식하는 비중도 꾸준히 상승하고 있다. 사회경제적 지위가 '상·중·하' 중에서 중간에 속한다고 응답한 비율(통계청 사회조사)은 2013년 51.4%에서 2021년 58.8%로 올랐다. 주관적 인식과 통계 수치 간에 큰 차이가 없는 셈이다.

 

KDI 이영욱 재정·사회정책연구부장이 31일 정부세종청사에서 '우리나라 중산층의 현주소와 정책과제' 보고서를 브리핑하고 있다. 연합뉴스

◇ '노력하면 계층 상향' 인식 줄어…KDI, 일자리 필요성 강조

반면 '계층 이동 사다리'에 대한 믿음은 줄어드는 모습이다. 개인의 노력으로 더 높은 계층으로 올라갈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가 줄어들고 있다는 것이다.

'우리 사회에서 노력한다면 개인의 사회경제적 지위가 높아질 가능성'에 대한 질문에 '매우 높다'와 '비교적 높다'로 응답한 비율은 2011년 28.8%에서 2021년 25.2%로 감소했다. 자녀 세대의 사회경제적 지위가 높아질 가능성이 높다는 비율도 2011년 41.7%에서 2021년 30.3%로 떨어졌다. 

 

실제로 한국 사회의 소득 이동성은 지속적으로 감소하고 있다. 기준연도 대비 1년 뒤에 가구소득(시장소득)이 얼마나 변화했는지를 토대로 ‘소득 이동성 지표’를 살펴본 결과, 2011~2015년 소득의 절대적 변화는 축소됐다. 2011년에는 기준연도 대비 30.4%의 소득이 변화했다면, 2015년에는 26.2%의 소득만 변화했다. 통계 단절이 생긴 이후인 2016년부터 2019년 사이에도 소득 이동성은 꾸준히 감소했다. 2년 뒤 가구소득을 기준으로 지표를 살펴봐도 계층 이동이 활발하게 작동하지 못하고 있는 것으로 관찰됐다. 여기에 부동산 자산을 중심으로 자산 불평등이 심화되고 있다. 소득 이동성 감소와 자산 불평등 확대는 세대 간 계층 대물림, 교육격차 확대로 이어지는 분위기다.

이 부장은 "정부의 이전지출 확대 같은 정책 방향이 중산층의 생산성 향상, 향후 상향 이동에 대한 기대 증가로는 연결되지 못했다"라고 밝혔다.

보고서에 따르면 빈곤층이 중산층으로 올라설 땐 가구 내 취업자 수 증가, 경제활동에 참여하는 가구주의 소득 증가가 함께 이뤄지는 경향이 나타났다. 이를 근거로 상향 이동 가능성을 끌어올리는 중산층 강화 방안이 필요하다고 짚었다. 

보고서는 구체적으로 양질의 일자리 창출, 은퇴 중·고령층의 고용 기간 연장 유도, 여성 배우자 취업 장애요인 해소와 일 가정 양립 지원 내실화 등을 제언했다. 이 연구위원은 "양질의 일자리를 많이 만드는 게 특히 중요하다. 저소득 가구 내 추가적인 취업자 확보도 소득 상향 이동의 주요 통로"라고 말했다.

또한 보고서는 교육의 역할 재건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사교육비 부담 경감과 함께 계층 대물림 통로가 아닌 계층 이동의 사다리가 되기 위한 개혁이 이뤄져야 한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