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인을 위해 싸울 때 나는 자유라고 외친 순수한 영혼

2023-01-01     이명아 기자

■ 김남주 평전: 그대는 타오르는 불길에 영혼을 던져보았는가 | 김형수 지음 | 다산책방 | 564쪽

 

온 생애를 민중의 자유와 평등을 위해 헌신하였고 자기 시대를 누구보다도 사랑했던 순수한 시인 김남주(1945~1994)의 생애를 올올이 살려낸 평전이다. 스스로를 ‘전사’라고 칭했던 시인 김남주. 유신 말기 최대 공안 사건으로 기록된 ‘남민전 사건’으로 10년에 가까운 옥고를 치르면서도 평생에 남긴 시 510편 중 360편을 옥중에서 탄생시킨 그는 대한민국 문학사와 민주화 역사에 뜨거운 상징으로 서 있다. 이 책은 그런 그의 생의 궤적을 생생하게 되살려 내어 의미를 되짚어 본다.

시인이자 소설가인 저자 김형수는 김남주 시인의 고향 해남 땅끝에서부터 학생운동의 도시였던 광주를 거쳐 서울에 이르기까지 시간적 지리적 변화를 따라가며 김남주를 지탱했던 정신적 원형이 무엇이었는지 밝힌다. 또한 최초의 반유신 지하신문 ‘함성’을 발간하는 내밀한 과정과 옥중에서 우유갑과 은박지에 꾹꾹 눌러 쓴 시를 비밀리에 내어 옥중시집으로 출간한 일 등 자신의 안위 대신 오직 국가와 민중을 위해 헌신하고자 했던 순수한 영혼 김남주의 족적을 선명하게 펼쳐낸다.

저자는 “그의 시에 빚을 진 한 사람으로서” “미천해 보이는 지상에 김남주라는 영혼이 다녀간 사실을 증언”하고자 김남주의 생애를 복원하는 데 오랜 시간 열정을 쏟았다. 군사독재가 사라지고 30년이 흐른 세월에도 우리가 지금 김남주의 불꽃같은 삶과 문학사적 자취를 다시 살펴보아야 하는 까닭을, 저자는 여전히 대한민국에 ‘촛불’ 같은 영혼들이 필요하기 때문이라고 보았다.

시인의 곁에서 경험한 일화들과 출간되었던 산문, 가까운 지인들의 취재를 망라해 완성된 이 평전은 김남주 문학의 토대가 된 생애 전반부는 물론이고 삶의 치열한 현장에서 자유의 깃발을 위해 민중 문학으로 투쟁하였던 후반부까지 생생하게 그려낸다. 편편이 흩어진 문학사적·역사적 사건의 조각들을 그러모아 김남주의 삶과 문학, 민주화 투쟁이 어떻게 하나일 수밖에 없었는지를 유기적으로 연결해 낸 이번 작업은 지금까지 시인의 생애 경로와 유산을 정리한 결과물 중 가장 결정체라 평할 만하다.

김남주의 삶을 논하는 데 빼놓을 수 없는 것이 바로 그의 시인 만큼, 저자는 김남주가 남긴 작품들 중 한국시사에 커다란 족적으로 남은 시들을 중심으로 서사를 펼친다. 《창작과비평》에 투고하여 문단에 등단함과 동시에 지식인 사회는 물론 민주화운동권에서도 화제가 된 「잿더미」를 비롯해 김남주의 자기 기반이었던 농촌 사회와 해결 과제로서의 계급 감정이 드러나는 「종과 주인」, 대학 재학 중에 반(反)유신 지하신문 《함성》을 만들었던 김남주의 독보적 정체성을 드러내면서 1980년대 민주화운동 현장에서 불린 명곡 〈죽창가〉의 노랫말이 된 「노래」 등을 통해 한국 현대사와 시인의 생애 전반에 제기되는 문학적 정치적 주제들을 빠짐없이 살핀다.

1974년 시인으로 이름을 알리기 시작하면서부터 1994년 세상을 떠날 때까지 김남주의 시는 세상에 스스로 던져져 거대한 힘을 만들어 낸 혁명의 산물이었다. 저자는 다중이면서도 하나의 목소리로 민중의 함성이 되었던 그의 시세계가 태동할 수 있었던 경로를 밝히는 한편, 김남주의 생애가 시대의 위대한 유산으로서 후대에 온전히 전해지길 바라는 마음으로 당대 민주화 운동의 구심점이었던 시인의 업적을 현재 시점에서 새롭게 정의하고자 하였다.

인간에 대한 폭력에 저항하며 시와 혁명을 하나로 이룩하고자 했던 시인의 순결한 고투는 여전히 힘을 잃지 않고 더 나은 세상을 꿈꾸게 만든다. 그리고 스스로를 불태워 민주 정신의 빛을 밝히려 했던 시인의 양심이 이 평전으로 되살아나 지금의 촛불 세대에 귀감이 되어줄 것이다. 김남주의 시와 삶이 하나의 역사로 박제되지 않고, 여전히 우리 가슴속에 살아 노래로 불릴 수 있을 때 우리가 찾는 진정한 자유와 평등의 길을 밝히어 나갈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