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시적으로 살펴보는 들뢰즈 사상의 전모

2023-01-01     이명아 기자

■ 들뢰즈, 유동의 철학: 한 철학자의 지적 초상화 | 우노 구니이치 지음 | 박철은 옮김 | 그린비 | 320쪽

 

이 책은 들뢰즈 사상의 훌륭한 연대기로 들뢰즈의 사상을 명백하게 친절히 설명하고 해설해 주는 책이다. 철학사 연구, 가타리와의 만남 등을 통해 들뢰즈의 사상이 형성되고 변화하는 과정을 뒤따르면서, 핵심적인 문제의식들과 개념들이 주조되는 과정을 생생하게 보여 준다.

저자의 표현에 따르면 수업을 듣는 학생들에게 말하는 것처럼 쓰여, 비교적 편하고 쉽게 들뢰즈의 사상을 읽을 수 있다. 들뢰즈 철학의 주요 개념들에 대해 쉽게 풀어 설명해 주고, “자유간접화법”의 방식으로 들뢰즈 저작의 관련 구절들을 도처에 인용하고 있어, 찬찬히 음미하면 그냥 보아서는 도대체 무슨 말인지 이해하기 어려운 들뢰즈 텍스트가 서서히 이해될 것이다.

좋은 입문서는 해당 분야의 전체상을 간명하고 정확하게 전달해 주어야 한다. 이 책은 “들뢰즈 사상의 전기”로서, 들뢰즈 사상(과 변천)을 시간순으로 잘 정리해 보여 줄 뿐 아니라, 각 시기와 저작의 주요 개념들에 대해서도 그 핵심을 적절하게 설명해 준다. 즉 들뢰즈가 자신과 공명한 사상가들을 독자적으로 읽어 내어(흄, 베르그송, 스피노자, 니체, 프루스트) 연구서들을 집필한 『차이와 반복』 이전 시기의 저작들(1장), 박사학위 논문이자 주저인 『차이와 반복』(2장), 가타리와 공저로 작업을 시작한 『안티-오이디푸스』(3장)와 그 문제의식을 이어받고 발전시킨 『천 개의 고원』, 들뢰즈의 이미지론, 기호론이라 할 수 있는 『시네마 1·2』(5장), 만년의 들뢰즈가 자기 철학의 총본산으로서 집필한 유작과 같은 『철학이란 무엇인가』를 위시한 『푸코』, 『주름: 라이프니츠와 바로크』와 같은 말기의 저작들(6장) 등 통시적으로 들뢰즈 사상의 전모를 살펴볼 수 있도록 구성되어 있다.

들뢰즈 사상의 주요 모티프와 개념들인 차이, 반복, 이념, 강도, 기관 없는 신체, 욕망하는 기계, 분열 분석, 정신분석 비판, 자본주의 분석, 욕망 개념의 개방과 확장, 리좀, 이중분절, 전쟁기계, 이미지와 같은 문제의식 및 개념들이 각 장의 각 시기의 저작들에서 어떻게 연관되고 변주되는지를 선명하게 보여 준다.

 

저자가 책을 쓰면서 가졌던 문제의식은 후기에 잘 드러나 있다. “첫 번째로 들뢰즈가 초기에 경도되었던 몇몇 철학자에게서 대체 무엇을 읽어 냈고, 어떤 식으로 그것을 바꾸어 읽었는가를 파악하는 것과 그것을 단순히 철학사의 문맥에 자리매김하는 것이 아니라 들뢰즈 사상의 근원적 모티프와 결부시키는 것. 두 번째로 『차이와 반복』이라는 괴물 같은 책을 결코 단순화하지 않으면서도 그 복잡함에 휘말리지 않고 들뢰즈 사상의 원리를 제시하는 것으로서 간명하게 해독할 것. 세 번째로 『안티-오이디푸스』를 단순히 1970년 전후 시대의 분위기를 압축적으로 표현하는 책으로서가 아니라 금세기의 자본주의를 비춰내는 ‘욕망의 『자본』’으로 읽을 수 있는 시각을 적절하게 제시할 것. 마지막으로 만년의 들뢰즈가 라이프니츠론을 쓰고 ‘철학이란 무엇인가’라 물으며, 특히 철학이 그리스와 갖는 관계를 질문한 것은 대체 어떤 의미를 가지는가 생각하는 것”이 그것이다.

그 외에도 들뢰즈가 명백하게 영향을 받은 철학자, 작가들에 비해 다소 적은 비중이 할애된 사상가들(칸트, 하이데거, 사르트르)이나 예술가들(자허-마조흐, 카프카)도 본문의 전개와 관계하는 대목에서 적확하게 언급되고 있거나 최소 언급돼 있어(멜빌, 베케트, 미셸 투르니에 등) 그야말로 ‘거의’ 빠짐없이 다루고 있으며 이 책을 읽은 후 독서의 가지를 어떻게 뻗어나갈 것인지 유도해 주는 이정표를 제시하고 있기도 하다. 

들뢰즈 사유의 진동, ‘유동’ 속의 변화를 따라가는 것, 그의 사유의 어떤 점이 자신의 무엇과 공명하고, 무엇을 촉발시키는지 감지하는 것, 그로써 난해하고 이해하기 어려운 들뢰즈의 텍스트가 실은 “비정확한 표현”으로서 “무언가를 정확하게 지시”하고 있다는 것을 감수하는 것이 가능하다면, 이 책이 독자에게 전달하려는 핵심을 간취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