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구직 블라인드 채용 폐지로 얻고자 한 것은? ... 지원자의 ‘출신학교’ 정보!

◆ (재)교육의봄 기획보도 ②: 연구직 블라인드 채용 폐지 후, 무엇이 어떻게 달라지는가?

2023-01-01     고현석 기자

 

지난해 10월 28일 현 정부는 공공기관 블라인드 채용이 “우수 연구자 확보를 가로막는다”며 우선적으로 연구기관에 대해서 블라인드 채용을 전면 폐지하겠다는 계획을 밝혔다. 이러한 정부 방침에 따라 11월 3일 기획재정부 등 관계부처도 공정채용에 관한 정부 지침을 일부 개정했으며, 11월 14일에는 정부 산하 과학기술 출연연구기관들이 내년 1월부터 블라인드 채용 전면 폐지를 결정했다.

(재)교육의봄은 강한 우려를 표하며 문제의 심각성을 시민사회에 바르게 전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판단하고 5연속 보도를 기획했다. 이번 정부의 결정이 향후 가져올 심각한 영향을 우려하기 때문이다. 이번 폐지는 단순히 연구기관에만 국한된 것이 아니다. 정부는 내년 폐지를 기점으로 연구기관 외 다른 공공기관에서도 블라인드 채용을 폐지할 가능성이 있음을 밝혔다. 게다가 정부 지원 하에 자율적으로 블라인드 채용을 시행하고 있던 민간 기업에게도 상당한 여파가 있을 것이다. 실제 이번 폐지 방침 이후 11월 18일 한국무역협회(KITA)와 같은 대형 민간 경제 연합체도 블라인드 채용 폐지 결정을 발표하기도 했다.

두 번째, 언론들의 끊임없는 왜곡 보도 때문이다. 블라인드 채용 폐지 결정 이후 대부분의 언론이 정부의 결정을 환영하며 블라인드 채용의 문제를 지적해오고 있다. 하지만, 거의 예외 없이 잘못된 정보와 왜곡된 내용으로 가득했다. 사실을 바탕으로 한 비판적 목소리가 전무한 현 상황에서 자칫 왜곡된 정보로 시민들의 판단이 흐려질 수 있어 정확한 정보와 사실을 토대로 왜곡을 바로잡을 필요가 있다.

 

❏ 이번 보도는 연구직 블라인드 채용 폐지의 내용이 무엇이고, 앞으로 그로 인해 어떠한 변화가 나타날지에 대해 살펴보았다. 지난해 10월 28일 현 정부가 연구직 블라인드 채용을 폐지하겠다고 발표하고 얼마 되지 않은 11월 3일 ‘공공기관의 혁신에 관한 지침’의 내용이 일부 개정되었다. 이 지침 중 공정채용과 관련된 부분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은 문구가 새롭게 추가되었다: “다만 연구개발목적기관은 우수 연구 인력을 확보하기 위해 불가피하다고 주무기관장의 장이 인정하는 경우, 주무기관의 장이 정보 수집의 범위를 별도로 정할 수 있다”

같은 날(11/3) 기획재정부는 블라인드 채용 폐지와 관련하여 구체적인 내용을 담은 ‘공정채용 가이드북 개정 신구대비표’를 모든 공공기관 인사담당자들에게 배포했다. 

 

                                   ※ 오른쪽 파란색 부분이 개정안에서 새로 추가된 사항

이처럼 연구기관의 경우 기관장의 결정에 따라 출신학교와 같은 정보 수집이 가능해졌고, 또한 평가를 위한 활용도 가능해졌다. 사실상 연구기관 블라인드 채용이 폐지된 것이다. 

❏ 분석 결과, 전공, 학위, 연구실적, 경력 등 실력을 보기 위한 모든 정보는 기존 블라인드 채용에서도 다 확인하고 있었고, 결국 연구기관 블라인드 채용을 폐지함으로써 새로 얻고자 하는 것은 지원자의 ‘출신학교’ 정보임이 드러났다. 

앞서 살펴본 신구대비표에서 새로 추가된 문구에 따르면, 주무기관장이 필요하다고 인정하는 경우 기관장이 별도로 정한 정보를 수집하고 활용할 수 있다. 그렇다면 “별도로 정한 정보”는 무엇을 의미할까? 이를 확인하기 위해 신구대비표를 토대로 현행 공공기관 채용에서 확인이 가능한 정보와 블라인드 채용 폐지로 향후 확인이 가능하게 될 정보를 정리해 보았다.

이 표에서 알 수 있듯이 현행 블라인드 채용에서도 지원자의 실력을 검증하기 위해 필요한 모든 정보를 요구하는 것이 가능하다. 확인 불가능한 것은 지원자의 ‘출신학교’ 정보(와 나이)일 뿐이다. 블라인드 채용 폐기론자들이 주장하듯, 블라인드 채용 때문에 전공, 연구실적, 경력 등을 알 수 없어 실력 있는 인재를 뽑지 못한다는 것은 명백한 거짓인 것이다. 아래의 <신구대비표>에서 알 수 있듯 공공기관은 기존에도 이미 학위, 전공, 연구실적, 경력 등의 정보를 토대로 연구원을 채용하고 있었다. 

 

                                  ※ 오른쪽 파란색 부분이 개정안에서 새로 추가된 사항

결국, 이번 연구기관 블라인드 채용 폐지를 공식화함으로써 새로 얻고자 하는 것은 ‘출신학교’ 정보인 것이다.

❏ 2020년 고용노동부가 공공기관을 전수 조사하여 발표한 보고서를 토대로 정부출연 연구기관 총 56곳의 합격자의 출신학교 비율의 변화를 분석한 결과, 블라인드 채용이 도입되고 나서 SKY 출신과 해외 대학 출신들의 합격자 비율이 26.7%에서 19.1%로 크게 감소 ... 그러나 앞으로는 2016년 때의 명문대의 합격자 비율(26.7%)로 회귀할 것. 

이번 정부의 연구기관 블라인드 채용 폐지로 다시 학벌의 영향력이 강해질 가능성이 커졌다. 교육의봄은 2020년 고용노동부가 공공기관을 전수 조사하여 발표한 보고서를 토대로 정부출연 연구기관 총 56곳의 합격자의 출신학교 비율의 변화를 분석해 보았다. 분석 결과 블라인드 채용이 도입되고 나서 SKY 출신과 해외 대학 출신들의 합격자 비율이 26.7%에서 19.1%로 크게 감소했다. 블라인드 채용이 도입되기 전인 2016년 SKY 출신 입사자는 18.9%에서 도입 후인 2019년 14.6%로 떨어졌고, 해외 대학 출신은 같은 기간 7.8%에서 4.5%로 떨어진 것이다. 즉, ‘출신학교’ 정보를 제외하고 실력을 검증에 필요한 모든 정보를 포함하여 평가했을 때 위와 같은 결과가 나온 것이다. 

사실 블라인드 채용 도입 후 SKY비율이 14.6%로 떨어지긴 했지만, 국내 4년제 대학이 약 200개라고 할 때 3개 대학이 14.6%를 차지했다는 것도 결코 적은 수치는 아닐 것이다. 그러나 블라인드 채용이 폐지되면 학교명이 갖는 프리미엄으로 과거 2016년처럼 다시 명문대의 합격자 비율이 올라가게 될 것이다. 동시에 충분한 실력을 갖추었지만 학벌이 약하다는 이유로 채용에서 떨어지는 인재들도 늘어날 수 있다.

 

 출처: 이병훈 외 7인(2020), 「[별첨] 공정채용정책 현장실태 조사 보고서」 고용노동부/ (재)교육의봄 재구성)

❏ 블라인드 채용 폐지 후 서류단계 변화: 박사급 연구자의 ‘학사 출신대학 정보’까지 다 확인할 수 있게 됨. 35세 전후 입사하는 연구원의 19세 수능점수가 중요한지 의문.

연구기관 블라인드 채용 폐지로 나타날 가장 큰 변화는 지원자의 출신학교 정보를 확인할 수 있게 된다는 점이다. 그런데, 여기에서 출신학교라는 것은 단지 최종 학위를 받은 기관(주로 박사 학위 대학원)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지원자의 ‘학사 출신학교’까지 모든 학교명을 확인할 수 있다는 의미이다. 

일부 블라인드 채용 폐기론자들은 “연구자는 논문을 확인하면 어느 학교, 어느 교수와 학업을 했는지 다 알 수 있어 출신학교 정보를 가리는 것이 의미가 없다”라고 주장한다. 하지만, 연구논문을 통해 알 수 있는 것은 그 연구자가 현재 소속된 기관이지 ‘출신대학’이 아니다. 물론 박사생의 논문이라면 현재 소속된 학교를 알 수 있겠지만 그 논문을 통해 그 사람이 졸업한 학사 대학의 이름까지 알 수는 없다. 

연구원들이 정부 출연연구기관에 입사하는 나이는 보통 35세 전후이다. 19살에 수능을 보고 대학에 진학한다 할 때 약 15년의 갭이 있는 셈이다. 채용과정에서 연구자의 전공, 다양한 연구실적, 그리고 졸업 이후 경력 등 실력 검증을 위한 정보를 모두 확인하고 있음에도 15년 전 고등학교 학업 성취도를 의미하는 학사 출신 대학 이름까지 확인해야 하는지 의문이다. 

❏ 블라인드 채용 폐지 후 면접단계 변화: 모든 출신학교 정보를 면접관에게 제공하여 평가할 수 있음. ‘후광효과’나 ‘학연’ 등의 편견이 개입될 여지가 있음. 
 
이번 연구직 블라인드 채용 폐지로 향후 나타나게 될 또 하나의 큰 변화는 면접단계에서 모든 출신학교 정보(학사부터 박사까지)가 면접관에게 제공될 수 있다는 점이다. 즉, 편견을 일으키는 정보를 가리고 실력을 검증하려던 블라인드 면접이 폐지되면서 ‘후광효과’나 ‘학연’ 등 편견이 개입될 여지가 생긴 것이다.

 

                               ※ 오른쪽 파란색 부분이 개정안에서 새롭게 추가된 부분

보통 공공기관 연구직 면접단계는 두 차례로 진행된다. 1차 면접은 기관 내외의 연구전문가들이 면접관으로 참여하여 지원자의 연구 능력을 평가한다. 지원자가 자신의 주요 논문을 발표하고 그 분야 전문가들이 질의하여 연구실력을 검증하는 방식으로 대부분 진행된다. 그리고 2차 면접은 임원면접으로 그 사람의 인성, 태도 등을 종합적으로 평가하게 된다. 

지금까지 연구기관을 포함한 모든 공공기관은 지원자의 출신학교 정보를 면접관에게 제공하지 않는 ‘블라인드 면접’을 시행해 왔다. 면접 시에 지원자의 출신학교 정보를 미리 알게 될 때 발생할 수 있는 ‘후광효과’를 막기 위함이다. 실제 이러한 후광효과의 문제는 기업(기관) 채용에서 지속적으로 제기되어 왔다. 한 예로 2018년 사람인 조사 결과 인사담당자 71.3%는 채용 시에 출신기업, 출신학교 등으로 인한 후광효과를 느낀다고 응답했을 정도이다.

❏ 2020년 공정채용 가이드를 개정하여 이미 ‘추천서’를 받고 있었음. 추천서에서도 출신학교와 같은 지원자의 정보를 기재하는 것이 가능해짐. 공공기관 공정채용의 취지상 추천서에 추천 대상인의 출신학교를 쓰는 것은 곤란하지만, 현재 추천서도 받지 못하고 있다는 대통령실의 주장은 사실과 다름. 

연구직 블라인드 채용 폐지를 주장하는 사람들은 해외에서 일반화되어 있는 추천서조차 받지 못하게 하고 있다고 문제를 제기해 왔다. 하지만 교육의봄이 확인해본 결과, 기획재정부가 이미 2020년 공정채용 가이드 지침을 개정하여 아래와 같이 연구직의 경우 추천서를 받을 수 있도록 변경했다. 즉, 정부는 사실관계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이번에 개정안에서 달라진 점은 추천자가 추천받는 사람의 모든 출신학교와 같은 인적 정보를 쓸 수 있게 되었다는 점이다. 물론 추천서를 쓸 때 추천 대상자의 출신학교 등의 정보를 쓰도록 허용한 개정안보다는 학교명을 쓰지 못하도록 한 이전 지침이 블라인드 공정채용 취지에 비춰볼 때 옳다. 그러나 그것과는 별도로 ‘추천서도 받지 못하게 했다’는 대통령실의 주장은 사실과 다르다. 

 

                               ※ 오른쪽 파란색 부분이 개정안에서 새롭게 추가된 부분

해외의 경우 연구직 혹은 교수 채용을 위해 추천서는 매우 중요한 것이 사실이다. 보통 해외에서 교수들이 누군가를 추천할 때는 그 사람에 대한 정확한 사실을 제공하기 때문에 추천이 어렵다고 판단되면 추천서를 거절하거나, 그 사람에게 불리할 정보도 가감 없이 써주는 경우가 많다. 누군가를 추천하기 위해 자신의 서명을 하는 것은 곧 자신의 명예를 거는 행위이고 학계(업계)에서 자신의 평판과도 관계가 있어 매우 신중할 수밖에 없다. 

우리의 경우도 성실한 교수·연구자들이 누군가의 추천서를 정직하게 쓰고 있다고 의심하지 않는다. 하지만, 현실에서는 다른 목소리들이 들리는 것도 사실이다. 예컨대, 누군가 추천서를 부탁하면 본인이 직접 써오도록 하는 경우가 매우 빈번하다는 것이다. 해외에서 추천서를 중요하게 여기고 있으니 우리도 적용해야 한다고 단순 주장하기에 앞서 좋은 추천 문화가 먼저 정착될 필요가 있어 보인다.
 
(재)교육의봄은 현행 공공기관 블라인드 채용이 ‘완벽한 답’이라고 주장하지는 않는다. 채용과정에 실제 참여하신 분들이 느끼는 여러 문제점이 분명 있을 것이다. 이러한 현장의 목소리를 잘 반영해 현행 블라인드 채용을 더 고도화시킬 필요가 있다. 하지만, 그러한 문제들이 곧 블라인드 채용을 폐기할 이유는 될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