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운 전환점에 선 한중 관계, 공진공생의 해법 찾기

2022-12-24     이명아 기자

■ 한중 수교 30년, 평가와 전망: 갈등과 협력의 한중 관계, 상생의 길을 묻다 | 정종호 엮음 | 서울대학교 국제학연구소 기획 | 21세기북스 | 492쪽

 

수교 30년을 맞은 한중 관계는 우호 협력기, 갈등 표출기, 새로운 관계 모색기를 거치며 새로운 30년을 향해 나아가고 있다. 미래지향적 한중 관계를 수립하기 위한 지혜가 절실한 시점이다. 이 책은 한중 수교 30년을 평가하면서 미래 한중 관계의 주요 변수를 점검하고 한중 관계의 미래를 위한 방안을 제언한다.

한반도 평화와 번영에 한중 관계가 끼치는 영향이 크다는 것은 누구도 부인할 수 없다. 그러나 현재 한중 관계의 미래는 여러 면에서 우려를 낳고 있다. 사드 사태는 한중 관계 30년사를 가르는 분수령으로 작용했다. 안타깝게도 그 후과는 현재진행형이다. 미중 전략 경쟁의 격화로 한국의 입지는 날로 난처해지고 있다. 북핵은 여전한 난제다. 또한, 양국 간 국력 격차와 비대칭성이 확대되었고 여러 영역에서 규범과 가치관 충돌이 증가해왔다. 그 결과 양국 국민의 상호 인식은 더 나빠지는 흐름이다. 이러한 험난한 여건을 극복하고 양국 간 새로운 협력과 진전된 미래를 만들어낼 방법은 무엇인가? 곳곳에 터져 나오는 갈등을 해결할 묘안은 없는가? 원칙과 유연성을 어떻게 지혜롭게 발휘할 것인가?

한중 관계를 발전적으로 가꾸어가기 위해서는 여러 위험과 어려움을 관리해야 한다. 첫째는 미중 전략적 경쟁의 심화이다. 1992년 한중 수교는 냉전 체제의 종식이라는 국제질서의 대변화 속에 이루어졌으나, 이제 미중 간 극심한 경쟁이라는 새로운 국제질서가 한중 관계의 근간을 흔들고 있다. 선택의 압박에 처한 한국 정부는 기존 ‘전략적 모호성’에서 탈피하여 미중 사이의 주요 현안에 대한 ‘전략적 명확성’을 점차 늘려나갈 것으로 예상되며, 그 과정에서 한국과 중국 간의 갈등과 대립도 증가하게 될 것으로 보인다.

둘째는 중국의 급속한 성장에 따른 한중 간 비대칭성 확대이다. 이는 중국의 전략적 선택에 대한 한국의 취약성을 증가시키는 요인이 된다. 현재 기술경쟁력과 산업경쟁력에서 한중 간 경쟁이 치열해지고 있는데, 일부 첨단 기술 분야에서의 경쟁에서 중국이 한국을 조만간 앞설 것이라는 전망이다. 한국이 우세한 위치를 점하고 있는 문화 콘텐츠 영역 또한, 한중 간 심각한 갈등과 치열한 경쟁의 장이 펼쳐질 것이다. 따라서 반도체 등 첨단 분야에서 중국과의 기술경쟁력 및 산업경쟁력의 격차를 유지하려는 한국의 노력과 역량에 한중 관계 양상의 미래가 달려 있다고 할 수 있다.

셋째는 북한 및 북핵 문제이다. 한중 수교 이래 지난 30년간 북한 및 북핵 문제는 한중 협력을 어렵게 만드는 절대적 요인으로 작용해왔다. 특히 미중 전략적 경쟁이 고조될수록 북핵 문제와 관련된 한중 양자 사이의 협력 공간이 줄어들 것으로 보인다. 이에 따라 북핵 문제는 한중 관계에서 더욱 해결하기 어려운 도전이 되어가고 있다. 앞으로 중국은 전략적 자산으로서의 북한의 필요성을 더욱 절감하고 북핵 문제를 북한 체제의 안정이라는 전제에서 접근하며 미중 경쟁 및 갈등에 대비할 것으로 보인다. 그러므로 북한 및 북핵 문제에 대해 중국이 우리가 기대하는 역할을 해낼 수 있는 공간을 만들어줄 정책의 모색이 시급하다.

넷째, 한중 양국의 젊은 세대를 중심으로 확산되고 있는 반중·반한 정서도 중요한 변수가 된다. 젊은 세대의 서로에 대한 반감은 미래 한중 관계에 있어서 갈등의 확대 및 심화를 의미하기 때문이다. 불행 중 다행은 중국 젊은 세대의 반한 정서는 상대적으로 아직은 개선의 여지가 크다는 점이다. 미래 한중 관계의 발전을 모색하는 과정에서 이를 중요한 기회로 삼아야 할 것이다.

미래 한중 관계는 ‘경쟁’과 ‘갈등’의 양상으로 전개될 소지가 다분하다. 이런 여건에서 한중 관계가 ‘협력’과 ‘상생’의 미래지향적인 관계로 발전하기 위해서는 다음과 같은 점이 중요하다. 첫째, 한국의 가치, 정체성, 국익을 명확히 정의하고 명시하며 대중국 정책에서의 원칙을 확립해야 한다. 그동안 정권의 선택에 따라 전략적 선택이 달랐던 비일관적이고 비지속적인 대중국·대북한 정책은 한국의 대중국 외교에 심각한 장애물이 되어왔다. 확고한 원칙을 바탕으로 일관되고 지속적인 정책을 추진해야 한다. 인권과 민주주의, 자유시장 경제체제, 다자간 개방적인 자유무역주의, 규칙 기반의 질서 등의 원칙하에 포용적이며 규범에 기반한 호혜적 협력 관계를 수립하여야 한다. 또한, 이분법적으로 미국과 중국과의 관계에 접근하려는 기존의 경향에서 탈피하여 스스로 확립한 원칙에 의해 주체적으로 한미 관계와 한중 관계를 관리하는 것이 필요하다.

둘째, 다자 협력 및 다자 외교를 적극적으로 구축하고 활용해야 한다. 미중 전략적 경쟁 구도 하에서 갈등이 예상되는 주요 현안별로 대중국 ‘제한적 손상’ 외교를 염두에 둔 다자 협력·다자 외교의 선제적인 구축 및 활용이 필요하다. 이는 경제·문화·군사 등 다양한 영역에서 적용될 수 있다. 경제적인 측면에서는 한중 FTA, 한중일 FTA, CPTPP를 연계하여 기존 체제에 다자 체제를 추가하는 것이 효과적이다. 문화적인 측면에서는 ‘아시아적 공동 가치’에 기반한 문화 콘텐츠 창출의 다자 협력 체제 구축을 계획할 수 있다. 군사적인 측면에서도 동아시아 국가들의 국방장관이 참여하는 장관급 대화체의 창설을 생각해볼 수 있다.

셋째, 전략적인 대화 및 교류 채널을 복구하고 강화해야 한다. 과거 한중 관계를 회고해보면 양국 간에 갈등이 발생한 경우 이를 해결하기 위한 전략적인 대화·교류 채널이 제대로 작동하지 못하였다. 시급한 과제는 사드 갈등 이후에 중단된 양국 간 대화 및 교류 채널을 복구하는 것이다. 안보와 관련된 한중 고위급 전략대화(strategic dialogue), 경제 분야의 대표적 협의체 한중경제장관회의 등이 재개되어야 한다. 더 나아가 다양한 대화·교류 채널을 새롭게 구축해야 한다. ‘Young Global Leaders Forum’ 또는 아시아판 ‘Salzburg Global Seminar’ 등을 새롭게 구축하여 양국의 미래를 이끌어갈 청년 세대 리더들에게 진솔한 소통의 장을 제공하는 것도 고려해볼 만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