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비극은 인간은 선하다는 착각에서 시작되었다”

2022-12-21     이명아 기자

■ 인간 이하: 타인을 인간 이하로 보는 비인간화에 대한 거의 모든 역사 | 데이비드 리빙스턴 스미스 지음 | 김재경·장영재 옮김 | 웨일북 | 440쪽

 

우리가 인간을 개나 닭처럼 짐승으로 표현하거나 벌레로 취급하는 것은 유구한 과거에서부터 내려온 인간 본성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홀로코스트, 식민지 전쟁, 노예제도 같은 잔혹 행위를 저질러온 인간의 역사는 반박할 수 없는 근거를 제시하며 이를 뒷받침한다. 

이 책은 인류애를 부르짖음에도 여전히 차별과 혐오를 거리낌 없이 저지르는 인간 본성에 대한 냉철한 분석을 담았다. 또한 역사, 진화심리학, 생물학, 인류학과 철학을 넘나들며 비인간화가 만연한 이유와 인간이 같은 인간을 비인간화하는 데에 그토록 집착하는 이유를 탐구하고 본성의 그림자를 드러내 인간을 온전히 직면할 수 있도록 돕는다.

지금까지 지체된 담론을 펼쳐야 할 때라고 주장하는 저자는 인간의 이런 행동이 생물학적 본성에 뿌리박혀 있지만 고정불변하지 않기에 충분히 바뀔 수 있다고 말한다. 어떤 인간이 더 우월한가를 놓고 다투기보다는 함께 인간의 민낯을 마주하고, 과거보다 덜 끔찍한 미래를 맞이하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는 것이다. 

인류 역사를 통틀어 인간이 다른 사람들을 ‘인간보다 못한 존재’로 생각하는 믿음은 전쟁과 대량 학살 같은 공포를 불러일으켰다. 나치는 유대인을 지구상에 박멸해야 하는 기생충으로 취급했고, 제국주의 국가들은 아프리카 부족민들을 인간 동물원에 전시시켰다. 때로는 이들은 동물보다 더 낮은 지위에 놓여 도구화되기도 했다. 이러한 잔인한 잔상은 과거의 유물이 아니다. “국민은 개돼지다”, “맘충 벌레 취급받는 모성애” 등 뉴스 헤드라인과 대화를 보더라도 비인간화는 일상과 언어 곳곳에 널리 퍼져 있는 것이다. 이를 통해 우리는 누구나 ‘인간 이하’로 취급될 수 있다는 불편한 진실을 마주해야만 한다.

저자 스미스는 “우리 모두가 비인간화의 표적이 될 수 있는 것은 물론 비인간화의 주체가 될 수도 있다”라고 경고하며, 비인간화의 거의 모든 역사와 자료가 담긴 이 책을 통해 인간 본성을 이해하는 마지막 조각을 건네고자 한다.

전쟁과 폭력, 피와 전쟁이 자연스러운 건 영화에서나 가능할 뿐, 우리는 타인에게 잔혹하게 대하는 행위가 본능적으로 매우 어렵다는 것을 안다. 저자는 이러한 심리적 거부감을 억제하는 방법을 바로 타자를 인간이 아닌 다른 종으로 바라보는, 비인간화로 꼽았다. 이는 전쟁과 대학살에서 인간들이 보여준 잔혹성에 대한 근거를 뒷받침해 준다.

이 책은 다른 사람을 인간이 아닌 존재, 즉 비인간화하는 이유와 방법을 정묘하게 파고들어 인간 본성의 이면을 드러낸다. 1만 년 전부터 내려온 인류 역사를 탐구하며 인간의 잔혹성은 어디서 오는지 파헤치며 우리가 외면해 왔던 인간 본성의 실체를 밝힌다.

총 9장으로 구성된 이 책은 제2차 세계대전 사례를 짚으며 비인간화를 탐구하는 것이 왜 가치 있은 일인지를 살펴본다. 중세와 계몽주의 시대의 철학자들을 통해 개념의 역사를 알아보고 대표적인 여섯 건의 집단 학살에 비인간화가 미친 영향을 확인해 본다. 또한 인종주의와 비인간화 사이의 연관성을 엿보고 동물들 간의 동족 살해 행위를 인간의 전쟁과 같은 것으로 규정할 수 있는지를 파악한다. 마지막으로 인간의 이중적인 태도에 초점을 맞춰 인간이 타자를 비인간화하는 능력을 어떻게 얻었는지를 탐구하고 비인간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우리가 무엇을 해야 할지를 이야기한다.

저자는 비인간화의 논의야말로 여전히 혐오와 차별, 폭력이 만연한 이 시대에 가장 시의적절하다고 강조한다. 비인간화가 우리 모두의 문제라고 인식하는 것이야말로 사회적 비극을 해결하는 첫 번째 길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