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의 르네상스를 예비한 왕, 숙종과 그의 시대

2022-12-05     이명아 기자

■ 숙종과 그의 시대 | 한국학중앙연구원 장서각 지음 | 한국학중앙연구원 | 360쪽

 

이 책은 유교 경전 『대학(大學)』에서 강조한 ‘수신제가치국평천하(修身齊家治國平天下)’를 빌려, 왕조 국가의 정점에 위치한 조선의 제19대 국왕 숙종을 개인, 가정, 왕실, 조정, 국가로 확장하여 살펴보았다. 일원(一員)·왕손(王孫)·군사(君師)·군주(君主)로서 다르게 부여되는 숙종의 역할과 위치를 고려하여 궁극적으로 그의 활동과 업적이 투영된 시대상을 담은 것이다.

 

숙종은 현종과 명성왕후의 외아들로, 14세의 어린 나이에 즉위하여 정통군주로서 친정(親政)을 시작한 이래 비교적 안정된 왕권을 유지했다. 그러나 숙종이 재위한 46년(1674~1720)은 ‘시대적 전환점’이라 할 만큼 정치·사회적으로 많은 변화가 있었다. 숙종 치세 전반기의 환국(換局) 정치는 폐단이 적지 않았지만, 현종 대 예송(禮訟) 논쟁으로 약화된 왕실의 권위를 회복하기 위해 국왕이 주도한 정국 운영 방식이기도 했다. 정국의 불안정 속에서도 왕권은 강화되었고 이는 양란 이후 국가체제 전반을 정비하는 동력이 되었다. 

숙종은 왕조의 위엄을 세우고 왕실의 유구함을 기념하기 위해 선조(先朝)의 대업을 높이 평가하고, 단종과 소현세자 등을 신원하여 왕실의 권위를 회복하고자 했다. 숙종은 이에 그치지 않고 1704년 창덕궁 후원에 대보단을 건립하여 춘추의 대의를 밝힘으로써 ‘군사(君師)’로서 지위를 굳건히 했다. 한편 국가 재건 과정의 핵심으로 국방력 강화를 추진했다. 강화도의 돈대를 비롯하여 북한산성과 남한산성을 축조하여 수도 방위 체제를 정비했다. 대외적으로는 1678년 왜관의 이전과 울릉도 해역의 귀속을 둘러싼 협상을 통해 대일 외교를 안정적으로 이끌어갔으며, 1712년 청과의 경계를 정함으로써 북방 변경 문제를 일단락 지었다.

그동안 숙종은 영조와 정조에게 가려져 상대적으로 역사적 조명을 받지 못했다. 하지만 숙종과 그의 시대는 양란의 상흔을 치유하고 조선 후기 르네상스라고 일컬어지는 영·정조 시대를 계도한 시작점이었다. 이 책은 한 군주와 그가 이룬 시대가 당대인에게 어떻게 인식되었고, 역사서에 어떻게 기록되었으며, 역사 발전에 어떻게 기여했는지 살펴보는 기획이기도 하다.

총 4부로 구성하여, 1부에서는 일가의 일원으로서 개인 숙종에게 초점을 맞추어, 그가 부모, 비빈, 자제들에게 어떤 자식, 남편, 부친이었고 어떤 생애를 보냈는지 알 수 있는 사료를 가려 모았다. 주목할 만한 수록 문헌으로는 숙종의 왕세자 시절 창경궁 시민당에서 진행된 관례 순서를 문자로 기록한 반차도와 의식에 참여한 관원들의 성명이 기록되어 있어 사료로서 의미가 있는 『시민당도(時敏堂圖)』(1670), 숙종의 후궁이자 세자의 생모이나 죄인으로 사망한 희빈 장씨의 상장(喪葬), 천장(遷葬), 추보(追報) 의례와 관련된 문서를 정리한 『장희빈상장등록(張禧嬪喪葬謄錄)』(1723) 등이 있다. 

2부는 왕가의 왕손인 숙종이 왕실 인물에 대하여 추상·가상·복위 작업을 단행하고 왕실의 계통을 정비하여 양란 이후 크게 격하된 왕실의 위엄을 회복하는 과정을 확인할 수 있다. 왕실 족보로서 왕실의 권위를 강화하는 역할을 한 『선원계보기략(璿源系譜紀略)』(1679) 등이 대표적이다. 

3부는 조정의 군사로서 숙종 대에 있었던 환국과 붕당 그리고 탕평을 군신 각자의 시각과 기억을 바탕으로 남겨진 사료로 구성했다. 아울러 전란의 피해에서 사회·경제·사상적으로 회복의 과도기에 있던 숙종 대를 조명했다. 희빈 장씨가 인현왕후를 저주하여 죽음에 이르게 했다는 신사옥사(辛巳獄事)에 연루되어 사사된 이항(李杭, 1660~1701)이 옥중에서 삼베에 쓴 유서(1701) 등이 인상적이다. 

마지막으로 4부는 국가의 군주로서 조선 영토의 확정과 수도권 방어정책을 통해 국가를 수호하고, 을병대기근 속에 애민위정(愛民爲政)을 실천하고자 고군분투한 숙종의 면모에 주목했다. 숙종~영조 대 북한산성을 관리하던 관청인 경리청(經理廳)·총융청(摠戎廳)의 운영과 도성 방어체계를 살필 수 있는 『북한지(北漢誌)』(1745) 등이 주목할 만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