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위기시대, 에너지 문제 해결을 위한 전문가 역할

[시사 에세이]

2022-11-06     최기련 아주대학교 명예교수·에너지경제학

 

세계가 실질적인 경제위기에 접어들고 있다는 의견이 많다. 우크라이나 전쟁, 미·중 관계 악화, 인플레이션, ‘포퓰리즘’ 등에 따른 것이란다. 신중한 UN 등 국제기구들도 우려 의견을 내고 있다. 사실 세계 각국의 중앙은행과 정책 당국은 최근 2년여 인플레이션 억제를 통한 경기침체 방지를 위해 금리인상을 적극 시행하고 있다. 이를 통해 2023년 하반기 세계경기 회복이 시작되고 2024년에는 경제성장을 가속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 이에 반해 공격적인 금리인상은 결국 경기침체와 고금리가 병행하는 ‘스태그플레이션’의 장기화를 초래할 것이라 우려하는 의견도 있다. 우리나라의 대표적 경제학자인 서울대 이근 교수는 최근 미국중앙은행(FRB)의 과도한 금리인상은 자국 인플레 억제에는 도움이 되겠지만 외국자본의 미국 유입 증가로 결국 개발도상국들에 불필요한 부담과 희생을 줄 수 있다고 주장하였다(PS저널, 202.10.19일자).  

되돌아보면 이번 경제위기는 2020년 초 세계보건기구(WHO)가 ‘코로나’ 질환을 팬데믹’(pandemic)으로 규정한 이후의 일이다. 이에 따라 인간과 물자의 지역이동 통제에다 국경봉쇄까지 단행되었다. 이는 바로 글로벌 차원의 공급체계 장애 현상이다. 2차 대전 이후 인류공영의 기반인 개방형 자유무역체제의 종말을 보는 듯하다. 여기에다 금년 초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으로 인해 유럽을 중심으로 에너지 공급 장애가 심화되었다. 이에 대응한 유럽연합(EU)과 미국 등 서방세계의 러시아 규제조치 강화로 동-서 냉전체제 복원 우려마저 커진다. 지난 50년 이상 인류복지 증진의 밑바탕인 ‘호혜적 경제협력체제’가 에너지 발(發) 경제위기로 붕괴되는 양상이다. 여기서 강조할 사항은 세계위기가 현존 문명의 기반인 에너지 부문에서 유발되었다는 점이다. 에너지는 생존의 기반으로 공공 필수재(財)이지만, 현실에서는 시장의 힘이 작용하는 경쟁대상 재화이다, 여기다 필요시 정부의 힘이 시장을 압도하는 시장왜곡이 빈번하고 국제 정치·경제 질서 형성의 주요 요소이기도 하다. 그래서 그 해결은 어렵고 오래 걸린다.

사실 2021년 초부터 석유, 석탄. 가스 등 주요 에너지-자원 가격급등과 구조적 취약성이 증대되어 왔다. 여기에다 미국 등 서방세계와 사우디-러시아를 주축으로 하는 확대석유수출국기구(OPEC+) 간의 국제질서 주도권 다툼이 재연되고 있다. ‘시진핑’ 체제가 확립된 중국도 슬그머니 개입을 확대하고 있다. 자칫하면 자원보유국들의 영향력만 더 커질 수 있다. 이에 미국 ‘바이든’ 정부는 반도체, 인공지능(AI) 등 새로운 핵심 공급체계와 금융규제 등을 통한 전반적 핵심 생산요소 공급 조절 전략을 추진하고 있다. 중간 선거를 앞둔 미국정부의 물가안정 우선전략이 ‘사우디아라비아’와의 석유공급량 조정협상, 에너지기업 거대 이윤에 대한 추가 과세 등 전례 없이 다급한 시장개입 정책을 쏟아내고 있다. 게다가 에너지 이외 철광석 등 주요자원과 신재생에너지 확대에 필수적인 발트 등 희유금속들의 공급부족도 예상된다. 따라서 공급‘체인’ 장애의 조기회복은 더욱 어려워지는 것 같다. 

우리나라의 경우 수출의존-개방형 시장경제체제에서 에너지 수입의존도가 97%에 달하고 있다. 이에 최근 2년여 동안 물가, 국제수지, 경제성장 등에 미치는 에너지 문제의 영향은 더욱 커지는 것 같다. 이에 세계 차원의 전문성과 사명의식으로 무장한 에너지 전문가들의 역할이 더욱 중요할 것이다. 그렇다면 지금 우리 에너지 부문 전문가 사정은 어떠한가? 한마디로 외화내빈(外華內貧)이다. 가장 큰 이유는 에너지 문제가 다양한 전문 분야가 융합하는 특성을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학제적(學際的: Inter-Disciplinary) 특성으로 요약할 수 있을 것이다. ‘학제적 특성’은 매력적인 단어이다. 그런데 현실에서는 이런 소양과 자질을 겸비한 사람을 찾기 힘들다. 한마디로 정작 쓸 만한 사람은 찾기 힘들다. 더욱이 현실에서는 자칭(?) 에너지 전문가군(群)이 너무 많다, 새로운 문제의 핵심이다. 자칭(?) 전문가들이 진짜 전문가를 밀어내는 현상이 가중되고 있다. 일종의 구축(Crowding-Out) 효과가 발생하고 있다. 

 

따라서 ‘외화내빈’ 에너지 전문가 문제를 타개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학제적 에너지 전문가의 정체성(Identity)을 분명히 하는 것이 급선무이다. 현재 전문가 부족 사태의 원천은 ‘에너지 전문가’의 정의(定義)와 범주(範疇) 구획이 없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따라서 누구나, 무슨 전공을 했든 에너지 산업과 정부의 관련 부서에 오래만 있으면 모두들 전문가 행세를 하게 되었다. 심지어 각 분야의 속칭 ‘원로’급들은 자신의 고유 전문성 퇴화 시점에 에너지 분야로의 영역 확대를 기도하기도 한다. 그리고 금방 에너지 원로 반열에 오른다. 결국 에너지 전문가 시장의 진입이 너무 쉽다. 한 번 진입하면 ‘철 밥그릇’이 확실하게 보장되기 때문에 퇴출은 거의 없다. 더구나 신규인력 확충도 기존인력들의 기득권 보호 수준에서 이루어져 시장수요와의 괴리는 더욱 벌어진다. 

정부 관료들의 잦은 인사이동과 이에 따른 전문성 부족 문제는 또 다른 큰 문제이다. 에너지 시장은 공공재 거래 특성에 따라 반(反)시장적 요소가 많다. 특히 우리나라는 압축적 고도성장 과정에서 공급안보를 위한 정부의 시장개입이 당연시되어왔다. 공기업 위주 전력, 가스 등 에너지 네트워크 등에서 정부의 영향력은 어느 부문보다 강력하다. 이에 따라 민간 전문가들의 기여 수준도 정부 선택에 의해 결정된다. 속칭 ‘관변’이 아니면 연구비 확보, 의사결정 참여 차원에서 제약이 많다. 심지어 취업에도 영향을 미친다. 그렇지만 각종 NGO 종사자들은 쉽게 에너지 전문가 그룹에 진입하여 양심적 전문가로 행세하여 왔다. 그 보완에 많은 비용(2040년까지 최소 50조원 수준)이 소요되는 탈(脫)원전 정책 추진과정이 대표적 사례이다. 전임 정부 정책결정자들과 환경운동 등 각종 NGO 종사자들의 이념 일치가 그 추진 동력이었다. 

주지하는 바와 같이 지금은 윤석열 정부 출범과 함께 탈-원전 정책 폐기가 진행되고 있다. 10월 25일 2023년도 예산안 관련 국회 시정연설에서 윤 대통령은 무너진 원자력 생태계 복원이 시급하다고 확인하였다. 그리고 원전 수출을 적극 지원하고, 소형모듈원자로(SMR)와 원전 해체기술 개발 등 차세대 기술의 연구개발 적극 지원도 강조하였다. 물론 탈핵정책에 대한 찬·반 의견은 나름 이유가 있지만 과학적 의사결정 체계 적용이 부족한 점은 분명하다. 분석대상의 객관적 관찰과 평가, 의사결정 요소들 간의 상관성 분석, 그리고 예측의 단계를 적정 이행하지 않았다는 점은 여러 관련 연구에서 입증되고 있다. 예컨대 2017년 이래 국가 에너지 수급, 장기 전원개발 등 각종 국가계획 발표 과정에서 기본 자료와 최종 정책 선택 논리를 공표하지 않았다. 이에 이념 목표 달성을 위해 객관적이고 중립적인 의사결정 과정을 이행하지 않았다는 비판을 자초하였다.

과학적 의사결정 결함이 많은 분야에는 학제적 문제 해결을 위해 필수적인 우수 전문가들의 유입이 감소할 수밖에 없다. 과거 에너지 부문에 관심을 가졌던 유수한 공학자와 경제학자들이 이제는 점차 회피하는 것 같다. 전문가를 제대로 대우하지 않고 ‘Yes Man’만을 찾는 부문에는 진정한 전문가 유입은 줄게 마련이다. 오죽했으면 정부가 우리나라에서 가장 부족한 전문 인력이 에너지 전문가라고 발표하고, 대학원 특성화사업(BK: Brain Korea Project)의 우선지원 분야로 지정했겠는가. 그런데 각 대학에서는 유사학과 명칭에 에너지를 덧붙여 지원만 받았다. 교육과 연구 내용은 바뀐 게 거의 없었다. 대학교수 명함만 바꾸었을 뿐이다. 정부지원이 주춤한 것은 당연한 일이다. 4차 산업혁명 시대에 ‘가장 실직하기 좋은 사람은 평범한 전문가’라는 말이 있다. 인공지능(AI)이 대체할 수 없는 창조적이면서 통찰력 있는 전문가라야 대접을 받는다.  

이제부터라도 에너지 부문 전문가 시장에서 진입과 퇴출 제도를 명확히 해야 한다. 에너지 전문가 인증체계(호적)를 만들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코로나19 여파와 우크라이나 전쟁으로 인한 에너지 대란, 공급망 불안정 등에 대처하는 시대적 소명을 다할 수 없다. 돈만으로 해결할 수 없다. 권력으로도 해결 안 된다.


최기련 아주대학교 명예교수·에너지경제학

아주대 에너지학과 명예교수로 서울대학교 자원공학과를 졸업하고 프랑스 Grenoble 대학원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에너지자원기술개발지원센터 소장, 과학기술정책관리연구소 단장, 고등기술연구원장, 한국 에너지공학회 회장, 차세대 성장 동력 포럼 회장, 국가과학기술위원회 종합조정 실무위원회 위원장 등을 역임했다. 저서로는 <에너지와 기후변화>, <파워 플레이>, <에너지경제학>, <지속가능한 미래를 여는 에너지와 환경>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