담박(淡泊)하고 자연스런 시풍의 도잠 … ‘진순’(眞淳)

[역자가 말하다]

2020-02-23     장세후 경북대학교 퇴계연구소·중국문학(시전공)

■ 역자가 말하다_ 『도잠 평전』 (리진취엔 지음, 장세후 옮김, 연암서가, 2020.01)
 

도잠(陶潛, 淵明)은 우리나라의 문인들도 좋아한 중국의 대표적인 문인이다. 우리나라 문인들에게 절대적인 영향을 끼친 시문선집인 『고문진보』에 그의 시문이 적지 않게 수록되었을 만큼 유수의 문인들이 그의 영향을 받았고, 나아가 적지 않은 그의 시에 차운하기도 했다. 다만 전반적으로 보면 도잠에 대한 이런 좋아하는 감정을 그렇게 드러내지는 않았다. 이는 우리나라의 문인들이 도잠을 주자 같은 유가의 종사(宗師)로 인식한 것이 아니었으며, 또한 그의 대표작이랄 수 있는 「도화원기(桃花源記)」나 「음주시(飮酒詩)」 같은 시문을 보면 전반적으로 도가적 사상이 감지되기 때문일 것이다.

『도잠 평전』은 난징대학출판사의 『중국사상가평전총서』의 하나이다. 저자인 리진취엔(李錦全)의 전공도 문학이 아닌 철학이며 광저우 중산대학 철학과 교수이다. 우리는 통상 도잠을 문학가로 인식하고 있었으며, 그의 전기도 주로 그 방면에서 이루어졌다. 이것이야말로 이 책이 기존의 도잠 전기와는 다른 차별성이 있는 가장 주된 관점이라고 할 수 있다.

이 책은 맺는말을 제외한 여섯 장에서 그가 산 시대 및 가세와 생애, 시대사조와 학술 환경, 그의 자연관과 인생철학, 시문의 사상 함축, 시문의 예술 풍격 등으로 나누어 세세히 분석하여 심도 있게 서술하고 있다. 이 책이 사상가 평전의 일환으로 집필된 것이니만큼 그의 사상과 철학에 대하여 집중적으로 분석한 제4장 「도잠의 자연관과 인생철학」이 가장 핵심적인 부분이라고 하겠다.

이 책에 의하면 도연명의 집안은 원래 한족이 아닌 소수민족인 계족(溪族) 출신으로 그의 증조부 도간(陶侃)이 동진에서 장군으로 큰 공로를 세워 가문을 진작시켰다고 하며, 그 이래 이 집안은 대대로 도교의 일파인 천사도(天師道)를 숭상하여 왔다고 한다. 그 당시의 지식인들은 일반적으로 유가 외에도 도교나, 불교 쪽으로 많이 기울어져 있었다고 한다.

도연명도 신흥 명문세족의 후손으로 인륜의 명분을 밝히는 교훈[名敎]을 중시하는 유교적인 전통에 따라 젊었을 때는 벼슬길에 나아가서 큰 공업을 성취할 것을 희망하기도 하였으나, 시국이 이미 수습하기 힘들 정도로 어수선해진 것을 보고 진작 발길을 거두어 고향 땅으로 돌아가서 은거를 시작하였다고 한다. 이런 배경에 의해 그의 정신 속에는 도가와 유가의 정신이 어느 정도 혼합되어 있었으며, 표면적으로는 유가를 표방하였으나 심적으로는 도가 쪽으로 기울게 되었을 것이다.

당시의 천사도를 포함한 일반 도교신자들은 흔히 자연을 숭상한다고 하면서 자연에 어울려 오래 살기 위하여 신선이 되어 생명을 연장하여 보려는 신선술에 집착하는 경향이 있었다. 그러나 도잠은 이런 방면에는 전혀 관심이 없었을 뿐만 아니라, 오히려 후한 시대의 유물론자이며, 무신론자였던 왕충(王充) 같은 사람을 추종하였다. 따라서 그는 종교로서의 도교가 아닌 선진시대의 노자, 장자 같은 도가 사상가들의 “자연의 운행 변화로 복귀”하려는 경향을 더 좋아하게 되었다고 한다. 이 책에서는 그 당시 일반 도교신자들의 자연에 대한 태도를 “구자연설”이라고 부르고, 도연명 같은 사람들의 자연에 대한 태도를 “신자연설”이라고 구분하여 부르고 있다. 따라서 그는 조물주가 생명을 창조하고 주관한다든가 불교도들이 말하는 육체가 사라진 뒤에도 정신은 남는다거나 죽은 뒤에도 생명이 다시 윤회한다든가 하는 것은 믿지 않았다. 이러한 점에서 그는 소박한 유물주의자이며, 무신론자라고 할 수 있다고 한다.

그의 이런 사상은 연작시인 몸[形], 그림자[影], 정신[神]의 관계에 관하여서 쓴 「몸이 그림자에게 보냄(形贈影)」, 「그림자가 몸에 답함(影答形)」, 「정신의 풀이(神釋)」에 잘 표현되고 있다. 이 책에서는 이 세 편의 시를 통하여 그의 자연관, 무신론, 운명론 및 유교와 도교, 불교에 대한 태도 등에 대하여 해석을 가하고 있다. 곧 첫째 시에서는 신선도교의 구자연설을 반박하였고, 둘째 시에서는 생명이 세간에 영원히 존재하는 것은 불가능하기 때문에 세상에 살아 있을 때 좋은 일을 하여 이름을 남겨야 한다는 명교설을 다루었으며, 셋째 시에서는 몸과 그림자, 정신이 분리될 수 없는 의존관계임을 천명하였다. 그의 이러한 신자연설의 요지는 특히 당시 여산에 머물던 고승 혜원(慧遠) 같은 스님이 주장하는 불교의 정신불멸론을 비판하면서, 우리 일신을 운명과 변화에 맡겨야 하며 운명과 변화 또한 자연이라고 보고 있다.

이상으로 간단하게나마 이 책에서 다루고 있는 도잠의 “사상”을 요약하여보았다. 그는 모든 면에서 참으로 복잡한 시대에 태어나 복잡한 인생을 산 사람이다. 그런 그의 굴곡진 인생을 보다 깊이 있게 이해하는 데 이 책이 일조하였으면 하는 바람이다.


장세후 경북대학교 퇴계연구소·중국문학(시전공)

영남대학교 중어중문학과를 졸업하고, 동 대학원에서 석사학위와 박사학위(『주희 시 연구』)를 취득했다. 영남대학교 겸임교수와 경북대학교 연구초빙교수를 거쳐 지금은 경북대학교 퇴계연구소의 전임연구원으로 재직하고 있다. 저서로는 『이미지로 읽는 한자 1·2』가 있고, 주요 역서로는 『한학 연구의 길잡이(古籍導讀)』, 『초당시(初唐詩, The Poetry of the Early T’ang)』, 『고문진보·전집』, 『퇴계 시 풀이·1∼9』(공역), 『퇴계잡영』(공역), 『唐宋八大家文抄-蘇洵』(공역), 『춘추좌전(상/중/하)』, 『도산잡영』(공역), 『주자시 100선』, 『사마천과 사기』, 『사기열전·1∼3』, 『주희 시 역주·1~5』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