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기와의 격투, 근대 병적학, 그리고 새로운 ‘창조와 광기’론

2022-08-14     이현건 기자

■ 창조와 광기의 역사: 플라톤에서 들뢰즈까지 | 마쓰모토 다쿠야 지음 | 임창석·헤르메스 옮김 | 이학사 | 424쪽

 

서양철학사의 전통에서 창조와 광기는 어떤 관계에 있었을까? 고전적인 방식의 광기는 어떻게 사회 외부로의 탈출을 가능하게 했으며, 현대에 들어와 광기는 어떤 방식으로 창조와 관련을 맺고 예술에 영향을 미치고 있을까? 

서양 사상사를 더듬어보면 창조와 광기의 문제는 일찍이 고대 그리스에서부터 다루어졌음을 알 수 있다. 플라톤은 시인 광인설을 제시한 바 있으며, 멜랑콜리(우울증)를 창조와 명확하게 연결한 아리스토텔레스는 유명한 철학자나 예술가가 모두 멜랑콜리하다는 주장을 개진하기도 했다. 기원전에 이미 광기는 시작(詩作)과 같은 당시의 대표적인 예술과, 나아가 ‘천재’ 일반과 관련이 있다고 여겨졌던 것이다.

창조와 광기를 연결하는 이러한 사고방식은 데카르트, 칸트, 헤겔과 같은 근대의 철학자, 그리고 하이데거, 라캉, 들뢰즈 등의 현대의 철학자 및 사상가에까지 영향을 주면서 이어져왔다. 이 책은 역사의 오래된 주제인 ‘창조와 광기’의 문제가 서양 사상사 속에서 어떤 방식으로 다루어졌는지를 다양한 철학자의 논의를 바탕으로 쫓아가면서 창조와 광기의 관계에 대한 커다란 조감도를 그린다. 그리고 이를 바탕으로 서양철학의 전통에서 지식의 패러다임이 어떻게 성립했는지, 또 어떻게 전복되고 새로운 단계로 이행해왔는지를 분석한다. 

이 책은 ‘창조와 광기’를 둘러싼 현대의 논의를 ‘조현병 중심주의’와 ‘비극주의적 패러다임’이란 개념으로 논점을 세워 분석해나간다. 우선 이 책은 창조와 이어지는 임상적 광기를 ‘병적학(pathography)’이라는 학문을 주축으로 삼아 살핀다. 병적학이란 천재나 예술가 같은 이들에게서 볼 수 있는 정신 질환(광기)과 창조성의 관계를 논하는 학문으로 유명인의 다양한 작품에서 병으로 인한 영향의 흔적을 알아내어 그러한 정신의 흐름을 확인하여 드러내는 것을 목표로 한다. 특히 어떤 정신장애를 앓고 있는 것이 아닐까 생각되는 인물이 쓴 일기나 편지를 참조하여 병의 경과를 세밀하게 추적해보면 그 인물이 창조한 작품과 병의 경과가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다는 것을 알게 되는 경우가 있다. 

지은이는 병적학 담론의 특징이 ‘조현병 중심주의’와 ‘비극주의적 패러다임’이라고 강조한다. 조현병 중심주의는 우울증이나 조울증보다 조현병권의 유명인에 주목하고 조현병자들이 창조성이 뛰어나다고 생각하며 조현병자를 이상화한다. 조현병자는 조현병이 아닌 사람은 도달할 수 없는 진리를 가지고 있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비극주의적 패러다임은 조현병이라는 병에 걸린 사람들이 병과 맞바꾸어, 즉 이성의 해체와 맞바꾸어 인간존재의 진리를 접촉하거나 개시(開示)한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이 책은 창조란 무엇인가, 광기란 무엇인가를 묻는 것이 아니라 서양 사상사에서 창조와 광기가 어떻게 관련되고, 어떤 의미에서 광기가 창조를 가능하게 한다고 간주되어왔는지, 다시 말해 창조의 조건으로서 광기의 변천을 묻는다. 이를 위해 지은이가 주로 참조하는 것이 앞에서 말한 병적학이다.

이 책은 이런 착상의 원천을 서양 사상사를 거슬러 올라가 신적 광기에서 창조성을 보는 플라톤(제2장)과 멜랑콜리(우울증)를 천재적인 창조와 연결시킨 아리스토텔레스(제3장)에서부터 시작하여 광기에 홀린 데카르트의 주체(제5장), 광기를 격리하는 칸트(제6장), 광기를 자기의식에 대한 부정성으로서 변증법적으로 극복하는 헤겔(제7장)로 이어지는 광기의 변천을 분석한다. 특히 주목해야 할 제8장에서 지은이는 정신병리학에 대한 자신의 지식을 바탕으로 야스퍼스의 논의를 참조하면서 독일 시인 횔덜린을 인류 최초의 조현병 사례로 제시한다. 동급생인 헤겔, 그리고 시작(詩作)의 스승이자 ‘아버지’인 실러와의 관계로부터 횔덜린의 병적을 검토하고, 세상과 어울리지 못하고 실러의 위치로 스스로의 이상을 선취한 흐름이 조현병의 흐름과 같다고 분석하며 조현병과 작품 창조가 특권적으로 관련되는 그의 사례를 조현병 중심주의의 출발로 간주하는 것이다.

이 책은 플라톤 이후로 시인에게 창작의 핵심은 신의 영감이었으나 횔덜린을 기점으로 신의 부재와 나의 무근거함이 새로운 문제로 부상하게 되었다고 해석하며, 이 해석은 횔덜린의 시작(詩作)을 토대로 조현병의 정신병리학에 육박하는 철학을 정립하고 그것으로부터 시의 부정신학을 이끌어낸 하이데거의 논의로 이어진다(제9장). 이러한 하이데거의 논의가 프랑스 현대사상에서의 부정신학적 논의(라캉, 푸코) 및 이에 대항하는 논의(데리다)를 준비하게 된다(제10-12장).

그러나 이 책은 제13장에서 들뢰즈를 집중적으로 논하면서 지금까지 논의의 중심이었던 조현병 중심주의, 비극주의적 패러다임, 부정신학을 비판한다. 지은이는 “현대의 ‘창조와 광기’를 생각하기 위해서는 조현병적이지도 않고 부정신학적이지도 않은 광기, ‘형이상학적 심연’에 의거하지 않고, ‘은폐되지 않음’과도 무관한 진리와 관련되는 광기가 존재하는지 어떤지”를 물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지은이는 조현병 중심주의, 비극주의적 패러다임, 부정신학을 대신하는 것이 바로 들뢰즈의 “우연이나 도박을 중시하는 ‘창조와 광기’론”이라고 주장한다. 들뢰즈는 광기를 심층에 자리매김하는 횔덜린, 아르토의 조현병을 단념하고, 캐롤, 루셀, 울프슨과 같은 아스페르거증후군 내지 자폐증 스펙트럼(ASD)으로 진단되는 다른 광기에 끌렸다는 것이다.

이것은 단순히 들뢰즈가 선호한 문제가 아니며 최근 조현병이 경증화하고, 경계성 인격장애, 조울증, 자폐증 스펙트럼, 그리고 발달장애와 같은 또 다른 광기가 창조와 더 관련이 있다는 데이터 등을 볼 때 ASD자의 우연성에 대한 내기야말로 지금까지의 병적학으로부터의 해방을 가능하게 하여 현대에 ‘창조와 광기’에 대한 새로운 생각을 이끌어낸다고 지은이는 보는 것이다.

다시 말하면 플라톤의 시인 광인설, 아리스토텔레스의 멜랑콜리=천재설, 피치노와 뒤러에 의한 ‘우울’의 가치 전도를 거쳐 문제화된 다이몬=광기는 데카르트, 칸트, 헤겔에 의해 배제되었으나 횔덜린에 의해 균열 속에서 재출현했고, 프랑스 현대사상은 횔덜린의 시작과 그 영향을 받은 하이데거의 사색의 강력한 자장 속에서 ‘창조와 광기’에 대해 사고하게 되었으며, 거기에서 조현병 중심주의와 비극적주의적 패러다임이 생겨나고 나아가서는 그것들에 대한 저항이 시도되어 결국에는 들뢰즈에 의해 그 패러다임과는 무관한 우연이나 도박을 중시하는 새로운 ‘창조와 광기’론이 생겨났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