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 존엄성의 근거: 자유, 자율, 이성

[열린연단: 문화의 안과 밖]

2022-05-03     고현석 기자

■ 열린연단 〈자유와 이성〉 제2강_ 김상환 서울대 교수의 「인간 존엄성의 근거: 자유, 자율, 이성」


네이버문화재단의 <열린연단: 문화의 안과 밖> 아홉 번째 시리즈 ‘자유와 이성’ 강연이 매주 토요일 서울의 네이버 스퀘어 종로에서 진행되고 있다. 자유는 인간을 인간답게 해주는 자기실현의 원리라고 할 수 있으며, 그간 인류가 걸어온 길은 자유 실현을 위한 투쟁의 역사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또한 합리성의 증대는 자유의 신장과 불가분의 관계에 있다고 할 수 있다. 여섯 섹션 총 44강으로 구성된 이번 시리즈는 고전 시대로부터 근대를 거쳐 현재에 이르기까지의 다양한 자유 담론을 검토함으로써, 자유에 대한 이해의 지평을 확장하고 미래 사회를 위한 새로운 비전을 열어보고자 한다. 자유의 이념과 지향에 관한 동서양의 지적 자산을 통시적으로 고찰하는 첫째 섹션 ‘자유의 이념과 지향’ 제2강 김상환 교수(서울대 철학과) 강연의 서론과 맺음말 부분을 발췌 소개한다.

정리   고현석 기자
사진·자료제공 = 네이버문화재단

 

인간 존엄성의 근거: 자유, 자율, 이성


김상환 교수는 “근대인에게 자유”라는 것이 “인간 존엄성의 근거이자 모든 인간적 가치에 의미를 부여하는 최고의 이념”이라고 할 때 그런 “근대인의 통념에 가장 명료한 정식을 부여한 철학자”가 바로 칸트라 할 수 있고, 요컨대 “칸트 윤리학 전체는 한마디로 자유가 인간 존재를 구성하는 근본 범주임을 밝히려는 시도”라고 이야기한다.그 시도가 『윤리형이상학 정초』(1785)에서 “처음 구체적인 결실”을 맺은바 해당 저작을 따라 세 가지 목적을 의도하고자 한다고 말한다. 
첫째, “칸트를 중심으로 근대인의 윤리관을 구조화하는 몇 가지 기초 개념, 가령 자유와 자율, 이성과 법칙, 인간과 세계 같은 개념들을 되돌아보는 것”으로 근대 윤리학이 “궁극적으로 인간 존엄성에 대한 감각에 기초”하기 때문이라고 그 이유를 밝힌다. 그다음으로는 “칸트의 윤리학에서 어떻게 이런 기초 개념들이 자율 개념으로 수렴하는지”를 살펴보고, 마지막으로 “이런 자율의 윤리학을 역사적 거리를 두고 평가”해야 하는데 이는 결국 “자율의 윤리학이 뿌리내린 서양 특유의 존재-신학적 전제를 들추어내고, 20세기 후반기에 타율의 윤리학이 등장한 이유를 생각”하는 계기가 될 것이라고 언급한다. 

 

지난 4월 9일, 김상환 교수가 <열린연단: 문화의 안과 밖 – 자유와 이성>의 2번째 강연자로 나섰다. 사진제공=네이버문화재단

머리말

“이성적 존재자는 본성상 이미 목적 그 자체다. 그리고 바로 그런 이유에서 목적들의 나라에서 법칙을 수립하는 자로서 (...) 오로지 그 자신이 세운 법칙들에만 복종하도록 정해져 있다. 왜냐하면 이성적 존재자는 법칙이 그에게 정해주는 가치 이외에는 아무런 가치도 갖지 않으니 말이다. 그러나 모든 가치를 규정하는 법칙 수립 자신은 바로 그 까닭에 존엄성을, 다시 말해 무조건적이고 [무엇과도] 비교할 수 없는 가치를 가져야만 한다. 이런 가치에 대해서는 존경이라는 어휘만이 이성적 존재자가 행해야 할 평가에 유일하게 알맞은 표현이다. 그러므로 자율은 인간과 모든 이성적 존재자의 존엄성 근거다.”(정초 4:436, 이하 ‘시작 인용문’으로 지칭)

 

세 가지 문제

이번의 우리 강연은 이 문장에 대한 주석이다. 이 문장은 근대 윤리학을 대변하는 칸트의 저작 『윤리형이상학 정초』(1785)의 절정에 해당한다. 우리는 이 대목을 재해석하면서 대충 세 가지 목적을 의도한다.

1) 하나는 칸트를 중심으로 근대인의 윤리관을 구조화하는 몇 가지 기초 개념, 가령 자유와 자율, 이성과 법칙, 인간과 세계 같은 개념들을 되돌아보는 것이다. 이는 신성 숭배에 기초하던 고대 윤리학과 인간성 숭배에 기초한 근대 윤리학을 비교하기 위함이다. 근대 윤리학은 궁극적으로 인간 존엄성에 대한 감각에 기초한다.

2) 다른 하나는 칸트의 윤리학에서 어떻게 이런 기초 개념들이 자율 개념으로 수렴하는지를 살펴보는 것이다. 사실 칸트 스스로 “자율의 원리만이 도덕의 유일한 원리”(정초, 4:440)라 천명했다. 인간 존엄성의 근거도 위의 시작 인용문이 말하는 것처럼 정확히 자율에서 찾는다. 칸트의 윤리학에서 도덕성 전체는 자율성으로 집약된다.

3) 마지막으로는 이런 자율의 윤리학을 역사적 거리를 두고 평가하는 것이다. 이를 위해서 우리는 자율의 윤리학이 뿌리내린 서양 특유의 존재-신학적 전제를 들추어내고, 20세기 후반기에 타율의 윤리학이 등장한 이유를 생각해볼 것이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자율 개념이 서양의 신성 개념의 역사 안에서 이해되어야 한다는 점이다.

사실 계몽기 이후 근대 문화는 특정한 인간관에 기초한다. 그것은 개인에게 존엄성을 부여하는 윤리적 인간관이다. 이런 인간관은 다시 특정한 자유 개념과 분리할 수 없다. 근대 세계에서 인간이 존엄하다면, 그 존엄성의 근거는 자유에 있다. 이때 자유는 근대의 정치경제학이 전제하거나 요구하는 일상의 자유다. 이런 일상의 자유는 목적 선택과 행위의 자유로 정의될 수 있다.

근대의 정치경제학에서 개인은 저마다 특수한 목적을 추구하고 자신의 행복을 추구할 권리를 지닌 주체로 표상된다. 그런 개인의 권리가 절대적으로 존중받아야 한다는 생각, 그 생각이 자유주의 정치경제학의 초석이다. 인간 존엄성의 이념을 기초로 하는 근대 윤리학, 특히 자율의 윤리학은 이런 초석에 해당하는 생각에 실체적 내용과 정당성을 부여하는 작업이다.

근대인에게 자유는 인간 존엄성의 근거이자 모든 인간적 가치에 의미를 부여하는 최고의 이념이다. 삶에 활력을 가져다주는 원리, 행복을 보장해주는 원리도 결국 자유에 있다. 자유가 없다면 인간이 이룩한 그 어떤 성취도 무의미하다. 자유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라면 그 어떤 행위도 존중할 만한 가치를 지니지 못한다. 근대 사회에서 자유 없는 삶이란 죽은 삶이요 불행한 삶이다.

 

자율과 이성

이런 근대인의 통념에 가장 명료한 정식을 부여한 철학자가 있다면, 그가 바로 칸트다. 칸트 윤리학 전체는 한마디로 자유가 인간 존재를 구성하는 근본 범주임을 밝히려는 시도다. 이런 시도는 『윤리형이상학 정초』(1785)에서 처음 구체적인 결실을 보았다. 이 책은 근대인의 상식에서 출발한다. 당대의 상식에 함축된 도덕적 원리를 추출하여 이상적인 행위자 모델을 구축하는 것이다.

위의 시작 인용문에서 주어 위치에 오는 ‘이성적 존재자’는 계몽기 인간이 공유할 법한 합리적 행위자에 대한 이름이다. 이런 이름은 칸트의 윤리학이 이성과 맺고 있는 긴밀한 관계를 분명히 드러낸다. 칸트의 윤리학이 자율의 윤리학이라면, 자율의 윤리학은 이성의 윤리학이다. 이때 이성은 세 가지 측면에서 칸트의 윤리학을 규정한다.

1) 먼저 이성은 법칙 수립과 목적 설계의 능력이다. 이런 능력을 중심에 두는 윤리학에서 도덕성은 합법칙성 및 합목적성과 동격을 이룬다. 도덕적 질서는 합목적적 법칙 수립과 더불어 비로소 열리고 지탱된다. 이성의 윤리학은 법칙 중심의 윤리학이다.

2) 다른 한편 이성은 추론의 질서에서 더는 소급해 갈 상위 조건(전제)이나 목적이 없는 무제약적(무조건적) 이념과 관계하는 능력이다. 이런 능력이 중심에 놓이는 윤리학에서 도덕적인 것은 무조건적인 것과 동격을 이룬다. 도덕적 삶은 모든 도구적 유용성이나 모든 계산 가능성을 넘어서는 무제약적 가치의 추구다.

3) 이런 이유에서 칸트는 경험적 관찰이나 사례를 통해 윤리적 행위를 설명하려는 모든 시도에 반대한다. 도덕법칙, 자유, 의무 같은 윤리학의 기초 개념은 이성적 사유에 대한 선험적 분석을 통해서만 도출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런 칸트의 윤리학은 그 이후의 서양 사상사를 통해 끊임없이 계승되는가 하면 심각한 도전에 마주친다. 특히 칸트에 의해 대변되는 근대적 자유 개념과 인간 이해가 레비나스와 데리다 같은 철학자에 의해 전도 및 변형되는 방식에 주목하지 않을 수 없다. 역사적 관점에서 칸트 윤리학을 되돌아볼 필요성은 칸트가 윤리 사상사에 불러일으킨 혁명적 변화를 생각할 때 더욱 커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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맺음말: 비판의 논리에서 희망의 서사로

『윤리형이상학 정초』 막바지에서 칸트는 한탄하듯 자유의 증명 불가능성을 외친다. 자율이라는 적극적 의미의 자유를 현실적 인간 일반에 내재한 일반적 속성으로 입증하는 일이 이성의 한계를 넘어선다는 것이다. 이것은 다시 도덕법칙의 명령이 현실적인 삶을 살아가는 우리 의지에 대해 필연적이고 무조건적인 구속력을 지닌다는 사실을 입증할 수 없다는 말과 같다.


이성의 사실과 신앙

그러나 이런 실패는 윤리적 허무주의로 가는 길로 이어지지 않는다. 오히려 정당한 희망의 이정표를 만든다. 왜냐하면 그 한계의 경험과 실패의 사건이 소중한 유산을 남기기 때문이다. 칸트에 따르면 그 유산은 “이성적 신앙을 위해 허용되는 유용한 이념”에 있다. 그렇다면 어떤 이념인가? 무엇보다 “그것은 목적들 그 자체(즉 이성적 존재자들)의 보편적 나라라는 빛나는 이상이다”(정초 4:462).

빛나는 이상 속에 모습을 드러낸 나라, 합리적 행위자라면 누구나 받아들일 보편적인 나라, 그것은 개인의 자유로운 선택과 행위의 자유가 오로지 인간 존엄성의 이념에 의해서만 제한을 받는 나라다. 이런 아름다운 나라의 모습은 어떤 근거 없는 가상이나 덧없는 환상이 아니라 이성적 존재자로서 우리가 정당하게 희망할 수 있는 이상이다. 우리의 실천을 통해 실현 가능한 어떤 것으로 확신할 수 있는 이상인 것이다.

자유의 증명은 이성의 한계를 넘어선다. 세속적 인간의 자율적 존재 방식이 필연적이고 보편적인 존재 방식임을 증명하는 일은 실패할 수밖에 없다. 그러나 그 실패 지점에 이르는 무모한 도전이 있었기에 우리가 미래에 이루어나가야 할 이상적 공동체의 모습을 구체적으로 그려낼 수 있게 되었다. 이렇게 회고하면서 칸트는 다음과 같이 맺는다. 그 아름다운 이념의 나라가 우리 마음속에 살아 있는 한 도덕법칙은 그 어떤 자연적 충동보다 커다란 관심을 우리 안에 불러일으킬 것이다. 그런 한에서 우리의 의지는 이성과 일체를 이루는 가운데 자율적 주체로 거듭날 것이다.

칸트는 『윤리형이상학 정초』 이후 『실천이성비판』에서 도덕법칙을 “순수이성의 유일한 사실”(실천이성 5:31)로 무조건 받아들일 수밖에 없다고 선언한다. 그러나 그것은 밑도 끝도 없이 맹목적으로 받아들여야 하는 사실이 아니다. 그것은 오히려 이성이 자신의 한계에 이르기까지 모든 계산과 추론의 끝에서 정당하게 희망할 수 있는 사실이며, ‘이성적 신앙’을 반석 위에 올려놓는 사실이다. 그러므로 윤리적 담론은 자유의 증명이 실패하는 지점에서 끝나지 않는다. 오히려 그 실패의 지점에서 재차 날개를 편다. 그 새로운 날개는 논증의 언어를 대신하는 신앙의 언어, 비판의 논리를 대신하는 희망의 서사다.

 

『실천이성비판』의 변증론에서 제시된 최고선의 이념과 요청 이론은 정확히 그런 ‘이성적 신앙’을 위한 희망의 서사에 해당한다. 그 희망의 서사는 이 책의 맺음말에서 사명의 서사와 하나가 된다. 그것이 “내 위의 별이 빛나는 하늘과 내 안의 도덕법칙”이라는 유명한 공식으로 시작되는 문장이다. 즉 무한한 외경심을 일으키는 우주의 숭고한 크기 앞에서 우리 인간의 존재는 먼지보다 작아지고 무의미해진다. 그러나 우리 안의 도덕법칙은 예지적 존재자로서 우리가 지닌 자유를 개시하면서 우리를 광대무변한 우주에 맞설 수 있는 용기를 준다. 그것은 인류 전체와 함께 이룰 이상적 공동체에 대한 꿈에서 오는 용기이자 그 꿈을 위해 헌신해야 한다는 사명감에서 오는 용기다.

이런 희망 및 사명의 서사는 그 이후에도 계속된다. 세계시민주의와 영구 평화론을 향해가는 칸트의 역사철학을 비롯하여 이후의 모든 실천철학적 담론은 미래의 역사로 이성의 신앙을 투사하는 사명의 서사다. 그러나 칸트의 사명 서사가 절정에 이르는 것은 역시 『판단력비판』(1790)11)에서다. 이 저작 1부에서 숭고의 미학을 다루는 대목, 특히 그 마무리 부분을 보자. 칸트는 여기서 우리가 자연의 숭고를 체험할 조건을 도덕적 소명 의식에서 찾는다.

“자연이 숭고하다고 일컬어지는 이유는 순전히 자연이 상상력을 고양하여 마음이 자기 사명의 고유한 숭고성이 자연보다 위에 있음을 스스로 느낄 수 있는 그런 경우들을 현시하도록 만들기 때문이다.”(판단력, §28)

우리가 자연의 숭고를 체험할 수 있는 이유는 태풍보다 무서운 힘, 분노하는 화산보다 더 가공할 힘이 우리 안에 있다는 사실을 일깨워주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자연의 숭고가 일으키는 전율은 우리 내면에 숨어 있는 무시무시한 힘을 체험하는 계기에 불과하다. 그 힘은 도덕법칙에 대한 존경과 인류 전체와 더불어 목적의 나라를 만들어가야 한다는 도덕적 소명 의식에서 온다. 상상력의 포착을 거부하는 우주의 숭고한 크기는 도덕적 이념들의 세계로 가는 징검다리에 불과하다. 따라서 진정한 의미의 숭고는 도덕법칙이 자리한 우리 안의 숭고뿐이다.

“자연의 숭고함은 단지 비본래적으로만 그렇게 불리는 것이며, 숭고함은 본래적으로는 오로지 인간의 자연 본성에서의 사유 방식에만 부여되어야 한다.”(판단력, §30)

 

인간의 존재 이유: 자율적 인간과 기투적 인간

칸트가 이렇게 결론을 내릴 때 우리는 그의 윤리학을 떠받치는 희망의 차원을 다시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그것은 무한한 크기의 소명 의식으로 강화되는 희망이다. 이성의 정당화된 신앙을 미래에 투사하는 이런 소명의 서사는 『판단력비판』 2부에서도 계속된다. 어떤 가정법(als ob)의 논리에 따라 자연 전체를 하나의 조화로운 유기체로 생각할 수 있다면, 인간은 자연에서 어떤 위치에 놓일까? 이런 물음에 답하는 대목에서 칸트는 인간 존엄성의 이념에 서사적 맥락을 부여한다.

유기체란 특정 목적을 실현하기 위한 조직이다. 자연은 저마다 특수한 목적을 위해 조직된 수많은 유기체로 구성되어 있다. 그런데 자연 자체가 어떤 궁극의 목적을 위해 조직된 상위의 유기체라면, 이 상위의 유기체는 질서 정연한 목적의 체계를 이룰 것이다. 그렇다면 자연이라는 목적의 체계가 봉사하는 최후의 목적은 어디에 있는가? 자연이 어떤 이상적 설계자에 의한 계획의 산물이라면, 그 계획의 마지막 목적은 어디에 있는가?

칸트는 인간을 가리킨다. 인간이 자연 전체가 존재하는 ‘최종 목적(letzte Zweck)’이자 ‘궁극 목적(Endzweck)’이라는 것이다. 이 두 가지 목적은 곧 인간이 자연의 주인이 될 만한 이유나 자격을 설명하는 개념이다. 칸트는 그 이유와 자격을 인간의 문화적 역량과 윤리적 사명감에서 찾는다. 그리고 문화적 존재자로서의 인간을 창조의 최종 목적으로, 도덕적 존재자로서의 인간을 창조의 궁극 목적으로 정의한다. 신이 인간을 창조한 것은 그를 통해 자연 저편에 문화의 세계를 건설하고 마침내 이상적인 윤리의 세계를 수립하기 위해서라는 것이다.

그렇다면 문화적 인간의 본성은 어디에 있는가? 그것은 상위의 목적을 세우고 실행하는 능력, 계획을 수립하고 적절한 수단을 찾아 의도된 목표를 실현하는 능력에 있다. 칸트는 이런 능력을 ‘유능함(Tauglichkeit)’이라 불렀다. 요즘 식으로 옮기자면 그것은 계획(planing)이나 설계(design)의 능력이라 할 수 있다. 물론 그것은 자연에 없는 목표를 계획하고 자연의 질서를 넘어서는 차원을 설계하는 능력이다. 문화는 이런 목적-수단의 문맥을 이해하고 설계하는 인간 고유의 능력에서 비롯한다(『판단력비판』 §83).

문화가 발전하여 인간이 자연 상태에서 시민사회로 나아가고 마침내 평화로운 세계 시민사회가 도래하는 과정, 인간의 심미적 감수성이 세련을 더해가며 과학이 진보를 거듭하게 되는 과정은 모두 인간이 이런 계획 및 설계의 능력을 발휘해가는 과정과 궤적을 같이 한다.

 

그런데 이런 문화의 세계가 자연이 존재하는 마지막 목적이라면, 그리고 그런 문화적 세계를 여는 인간이 창조의 최종 목적이라면, 우리는 다시 이렇게 물을 수 있다. 문화적 세계는 궁극적으로 어디에서 완성되는가? 문화적 주체로서 인간이 향하는 최상의 목적은 어디에 있는가? 칸트에 의하면 그 궁극 목적은 인간이 도덕적 주체로 거듭나고 지상에 이상적인 윤리가 펼쳐지는 데 있다. 그런데 이때 우리가 주목해야 할 점은 문화적 인간과 윤리적 인간의 유사성이다. 그 유사성은 설계 및 기투의 능력에 있다.

우리가 이제까지 살펴본 바와 같이 칸트에게 도덕적 인간의 본질은 자율에 있다. 스스로 자기 자신이 수립한 법칙에 따라 행동할 때 우리는 도덕적 주체가 된다. 이때 중요한 것은 이 법칙이 무조건적이라는 데 있다. 문화적 인간은 특정 목적을 계획하고 그것에 적합한 수단을 찾아 실현한다. 반면 도덕적 인간은 모든 목적-수단 관계를 벗어난, 그래서 어떠한 다른 목적에 의해서도 제약되지 않는 법칙을 제정한다. 도덕적 인간이 창조의 궁극 목적인 이유가 여기에 있다. 무제약적인 입법의 주체인 도덕적 인간은 문화적 인간이 설계하는 목적론적 질서의 정점에 해당한다. 도덕적 인간은 이 세상에 있는 목적들의 연쇄 전체가 완벽하게 정초되는 최고의 목적이며, 그런 의미에서 자연의 궁극 목적이다.

“이제 도덕적 존재자로서 인간에 대해서는 ‘무엇을 위해(무슨 목적을 위해) 그것이 실존하는가’를 물을 수 없다. (...) [도덕적] 인간이야말로 창조의 궁극 목적이다. 왜냐하면 인간이 없으면 서로서로 종속적인 목적들의 연쇄가 완벽하게 정초되지 못할 것이니 말이다. 오로지 도덕성의 주체인 인간에서만 목적들에 관한 무조건적인 법칙 수립을 찾을 수 있으며, 그러므로 이 무조건적인 법칙 수립만이 인간으로 하여금 전체 자연이 목적론적으로 그에 종속하는 궁극 목적일 수 있게 하는 것이다.”(『판단력비판』 §84)

이런 문장은 인간의 존엄성에 바칠 수 있는 최상의 철학적 기도문에 해당한다. 인간의 존엄성은 칸트 윤리학만이 아니라 그의 실천철학 전체를 향도하는 동시에 모든 실천의 원리를 제약하는 궁극의 이념이다. 이 문장에서 인간 존엄성의 근거는 꿈꾸고 희망하는 능력, 희망의 내용을 미래에 투사하고 실현하기 위해 목적을 설계하는 법칙을 수립하는 문화적 능력에서 처음 비롯된다.

인간은 그런 문화적 능력 덕분에, 그리고 그런 문화적 능력의 연장선에서 특수한 목적들의 연쇄 저편에 무제약적인 질서를 희망하고 설계한다. 그것이 윤리적 설계로서 모든 인간이 자유로운 목적 선택과 행동의 권리를 향유하는 나라, 그 권리가 오로지 목적 자체인 인간의 존엄성에 의해서만 규제되는 이상적 공동체다. 칸트의 윤리학과 실천철학 전체는 그런 이상적 공동체의 실현 가능성에 받쳐진 ‘이성적 신앙’이다. 그 이성적 신앙 속에서 신성의 숭배는 인간성의 숭배로 대체된다. 자율성은 인간성으로 녹아내린 신성의 빛이다.

 

☞ 강연 바로보기: [열린연단 강연] 인간 존엄성의 근거: 자유, 자율, 이성 (김상환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