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생 백돌이 만세!

[김영명의 생활에세이]

2022-04-30     김영명 한림대학교 명예교수·정치학

요즘 코로나 사태를 맞이하여 골프 열풍이 뜨겁다. 해외여행을 못 가니 여유 되는 사람들이 명품 소비에 탐닉하거나 골프에 눈을 돌린다. 특히 젊은 층 골프 인구가 많아졌다. 이들은 골프라는 운동 자체보다는 그것을 둘러싼 여러 가지 고급진 분위기를 더 즐긴다. 좋은 옷 차려입고 맛있는 것 먹으면서 사진, 동영상 찍어 SNS에 올리는 것을 낙으로 삼는다. 그러다 보니 정작 운동 자체는 뒷전으로 밀리는 경우도 많은 것 같다. 젊은이들의 이런 취향을 나무랄 것은 없다. 단지 골프장에서 예의를 지키고 다른 골퍼들에게 피해만 안 주면 된다.

그런데 골프라는 운동은 참으로 오묘해서 사람들의 심금을 울리기도 하고 웃기기도 한다. 인간이 하는 짓거리 중에 이것만큼 이상한 짓이 또 있을까 싶기도 하다. 그 넓은 벌판에, 또는 한국의 경우 산과 계곡에 조그만 구멍들을 뜷어놓고 몰려다니면서 쬐끄만 공을 집어넣는데, 이것이 쉽지가 않다. 화성인들이 미래에 지구에 와서 저것들이 무슨 짓을 하는고 하고 매우 신기해 할 것이다. 그 조그만 구멍에 쬐끄만 공을 집어넣은 것이 쉽지가 않아, 그 어려움이 사람들을 빠져나가지 못하게 한다. 그래서 이렇게 치면 잘 맞고 저렇게 치면 안 맞고 하면서 온갖 선생들이 나타나서 온갖 매체에서 온갖 소리들을 다 하면서 돈을 벌고, 또 온갖 제자들이 그것에 목 매달고 오늘도 내일도 헛스윙도 해보고 참스윙도 해보고 하면서 돈과 시간을 소비한다. 그래서 골프는 거대한 자본 시장이 되었다.

내가 골프채를 처음 잡아본 시기는 뚜렷이 생각나지만 언제부터 본격적으로 하기 시작했는지는 어렴풋이밖에 생각나지 않는다. 아니 본격적인 시작은 아직도 안 했는지 모른다. 연습장도 나가고 코스도 나가고 스크린 골프도 하지만, 하다 말다 그만두었다가 다시 시작하고 하기를 몇 번인지 모르겠다.  확실히 아는 건 내가 아직도 백돌이라는 사실이다. 한때 나는 스스로 ‘십 년 지진아'라고 불렀는데, 이제 그 시기도 지나갔다. 안 하려고 공도 친구 줘버리고 한 10 년 쉬었다가 최근에 다시 시작하였다. 한때는 80대 타수를 꿈꾸기도 하였으나 이제는 '평생 백돌이'로 자처하기로 했다. 

골프를 잘 하려면 무엇보다도 돈과 시간과 노력을 들여야 한다. 그것도 집중적으로 들여야 한다. 나처럼 드문드문 해서는 절대로 잘 할 수 없다. 아는 친구가 60대 후반에 골프를 시작하였는데, 2년 만에 이미 나보다 잘 친다. 지난달에 만나서 물어보니 지난해에만 70회 가량을 코스에 나갔다고 한다. 그야말로 후덜덜이다. 그러니 늘 수밖에. 나는 코스 나간 거 한 20년 잡고 총 150회 정도 나갔으려나. 이만 하면 그만둘 만도 한데, 또 그래서 그만두기도 하였는데, 나이 먹어 할 놀이가 달리 별로 없는 것 같아 다시 시작하였다.

내가 열심히 못한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같이 나갈 동반자가 주위에 별로 없었던 것이 가장 큰 이유였다. 친한 친구와 가족들이 골프를 안 하기 때문이다. 물론 너무 비싼 비용이 부담도 되고 가치도 덜 느껴져서이기도 했다. 아직도 나는 한국의 골프 비용은 터무니없어 돈 아깝다는 생각이 떠나지 않는다. 이러니 평생 백돌이일 수밖에.

테니스를 10년 쉬다 다시 시작한 지 어언 또 10년. 이제 더 이상 늘 것도 없고 이론도 알만큼 알았고, 젊은 놈들한테 힘이 밀리고 하다 보니 이제 덜 치게 되었다. 그래서 다시 골프를 하기로 하였는데 역시 문제는 위와 같다. 그래서 마누라를 부추겼다. 골프 배워라. 비용은 내가 댄다하고 등을 떠밀어 동네 연습장 1년 회원권을 막무가내 끊고 (왜 끊지? 그냥 등록하면 안 되나?), 싸구려 중고채도 들이안겼다. 마누라는 반신반의하면서 등 떠밀려 시작하였고, 이제 파3 연습장이나 9홀 대중 골프장에 같이 다니기 시작했다. 100돌이 할배와 120순이 할매가 찰레찰레, 손은 절대로 안 잡고, 다니기 시작했다. 아직은 마누라가 창피하다고 해서 캐디 없는 노캐디 라운드만 찾아서 한다. 곧 캐디에게 신고할 날이 오겠지.

골프는 어려운 운동이다. 하지만 남녀노소가 다 할 수 있는 운동이고, 그 점에서는 쉬운 운동이다. 더 정확하게 말하면 문턱이 낮은 운동이다. 경제적인 것을 빼면 말이다. 테니스는 문턱이 더 높다. 어느 정도의 체력과 힘이 있어야 가능하다. 테니스도 나이 들어서 할 수 있지만, 그래도 골프가 노인들에게는 좀 더 적합하다. 물론 몸이 안 되거나 운전을 못해서 그만두는 경우도 많다. 나는 아직은 그런 단계가 아니니 그때까지 백돌이 인생을 즐기려고 한다. 혹시 아나? 어느 순간 90돌이가 되어 있을지. 쯔쯔, 아직도 헛된 희망에 미련을 못 버리는 불쌍한 중생이여!


김영명 한림대학교 명예교수·정치학

서울대학교 외교학과를 졸업하고 뉴욕주립대학교에서 정치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현재 한림대학교 정치행정학과 명예교수로 한국정치외교사학회 회장, 도쿄대학교 동양문화연구소 객원연구원, 한글문화연대 대표 등을 지냈으며, 한국정치학회 학술상, 외솔상 등을 받았다. 저서로 『담론에서 실천으로: 한국적 정치학의 모색』, 『단일 사회 한국: 그 빛과 그림자』, 『이게 도무지 뭣하자는 소린지 모르겠고: 한국 불교, 이것이 문제다』, 『대한민국 정치사』, 『한국 정치의 성격』, 『정치란 무엇인가: 김영명 교수가 들려주는 정치 이야기』 등 다수가 있다. 최근 수필집 『봄날은 간다』를 출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