합과(合夥): 전통 중국 상공업의 기업 관행

2022-04-24     정지호 경희대·사학

■ 나의 책, 나의 테제_ 『합과: 전통 중국 상공업의 기업 관행』 (정지호 지음, 세창출판사, 364쪽, 2022. 02)

 

이 책은 합과를 키워드로 해서 전통 중국 상공업의 기업 관행을 정합적으로 분석한 것이다.  근래 한국 학계에서도 합과에 대한 연구 성과가 나오기 시작했지만, 우리에게는 여전히 익숙하지 않은 개념이다. 

합과는 전통 중국 사회에서 적어도 명나라 말기부터 청나라를 거쳐 중화민국 시기 중엽에 이르기까지 민간 경제활동의 중심적 기능을 담당해 왔다고 할 수 있다. 그뿐만 아니라 개혁과 개방 이후 중국의 농촌경제를 활성화하기 위해 도입된 향진기업(鄕鎭企業)의 자본 조달 방식으로도 채택되어 합과는 역사적 과제일 뿐만 아니라 현재적 문제로서도 중요한 의미를 지니고 있다고 하겠다.

이 책은 필자가 도쿄대학 대학원에 제출한 박사학위 논문을 기반으로 해서 그동안 학술 잡지에 발표한 문장을 수정 보완한 것으로 전체 8장으로 구성되어 있다. 각 장의 내용을 간략히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제1장에서는 합과의 개념을 사료에 입각해서 검토했으며, 나아가 합과의 형태를 몇 가지 유형으로 분류해서 그 특징을 살펴보고 있다. 합과는 두 사람 이상이 의기투합해서 공동의 이익을 위해 사업을 경영하기 위한 조직으로, 합과를 결성할 때에는 맹서 공동체와 같이 피를 나누어 마시는 의식을 치르기도 한다. 즉, 합과는 경제적 목적을 위한 결합이지만, 이념적으로는 그것을 초월한 ‘동지적 결합’이라는 의식이 흐르고 있는 것이다. 합과는 자본 출자자의 수에 따라 합자 영업형과 독자 영업형으로 구분되며, 자본출자자가 직접 업무를 담당하는 영세한 것에서부터 자본과 업무가 분리되어 있는 거대한 기업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규모를 확인할 수 있다. 특히 제1장에서는 보론으로 북경의 저명한 약포 만전당(萬全堂)의 경영 문제를 장시기에 걸쳐 살펴봄으로써 합과 기업의 경영이 장기적으로 어떻게 변동되어 나갔는지를 보는 데에 유익하다.

제2장에서는 농업을 비롯한 토지 경영에서의 합과 관행을 살펴보고 있다. 이 책의 부제에서도 알 수 있듯이 합과는 주로 상공업에서 나타나는 기업 관행이지만, 토지 경영에서도 중요한 기능을 담당해 왔다. 여기에서는 농지를 비롯해 산림, 과수, 탄광 등을 대상으로 해서 지주와 농민, 또는 농민 간의 공동 경영의 제 양태를 살펴보고 있다. 

제3장에서는 합과 기업의 자본 구성과 변동 문제를 살펴보고 있다. 합과 기업의 자본을 자기 자본과 차입 자본으로 분류해서 그 특징을 분석하고 있는데, 합과 기업은 대체로 자기 자본의 비율이 낮고 차입 자본에 의해 운영되고 있었다는 것을 밝히고 있다. 그런데, 합과 기업은 자기 자본의 비율은 낮지만, 이것이 합과 구성원인 고동(股東, 자본 출자자)의 손익 분담의 기준이 된다는 점에서 중요한 의미를 지니고 있다. 이러한 점에서 고분을 타인에게 양도한다는 것은 기업의 운영 면에서 커다란 영향을 미칠 수 있기 때문에 주식회사의 경우와 달리 자유롭지는 못 했다. 또한 기업의 확대 재생산을 위해 중요한 부분인 공적금의 경우에서도 그 비중이 크지 않았다는 점을 밝히고 있는데, 이는 결국 합과 기업의 자본 축적을 어렵게 만들었으며, 중국이 근대 산업화를 추진하는데 장애 요인으로 작용했던 것이다.

제4장에서는 합과 기업의 독특한 노동 형태인 신고(身股)에 대해 살펴보고 있다. 신고란 자본 출자자에 대해 노동력을 출자해서 합과 기업 내에서 고분을 소유해서 정해진 액수의 임금을 받는 임금노동과는 달리 이익배분을 받는 시스템이다. 이 신고는 중국의 독특한 노동 형태로 민국시기 이후 중국에 진출하는 외국 기업이 직면하는 커다란 문제 중의 하나이기도 했다. 이 책에서는 신고의 유래에서부터 운영 방식 등에 이르기 까지 그 특징을 상세하게 분석하고 있어 전통 중국의 노동 형태를 이해하는 데 유용한 실마리를 제공해 주고 있다.

제5장에서는 합과 기업의 대외 채무 부담 관행 문제를 근대적 법률과 대비해서 분석하고 있다. 기업을 운영하는 데 대외 채무에 책임 문제는 매우 중요한 문제 중의 하나일 것이다. 합과 기업은 전통적으로 ‘안고분담(按股分擔)’ 즉, 출자자가 소유하는 고분의 액수에 비례해서 책임을 분담하는 방식을 고수해 왔다. 그런데 중화민국 시기 이후 근대 민법의 적용을 받게 되면서 합과 기업은 연대 책임을 지게 되었다. 이에 대해 상해총상회를 비롯한 상인 단체는 연대 책임제도가 합과 기업의 운영에 커다란 장애가 된다는 점을 들어 종래의 안고분담 원칙을 적용해 줄 것을 주창했다. 이 책에서는 채무 책임을 둘러싼 전통적 관행과 근대 법률과의 충돌 문제를 상세히 분석하고 민국 시기 각 지역의 채무 부담 관행 실태를 살펴봄으로써 채무 책임을 둘러싼 관행과 근대 법률과의 제 문제를 상세히 검토하고 있다.

제6장에서는 앞장에서 살펴본 대외 채무 책임 문제를 둘러싼 관행과 법률과의 충돌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방편으로 제안된 합과 개량안 문제를 살펴보고 있다. 우선, 근대 중국 회계의 아버지로 일컬어지는 반서륜(潘序倫)은 합과 개량안으로 합과 기업을 ‘분담무한공사’로 전환할 것을 제안했다. 분담무한공사는 합과 기업의 관행대로 안고분담 책임을 원칙으로 하되 반드시 각 출자자의 분담 책임 비율을 등기해서 공개한다는 것을 주요 내용으로 한다. 이는 대외적으로 비밀주의를 원칙으로 하는 합과 기업의 재정 관련 사항을 공개함으로써 채권자가 안심하고 투자할 수 있다는 긍정적 평가를 받기도 했으나 전통적 상업 관행을 무시했다는 측면에서 많은 비판을 받아 실현되지는 못 했다. 다음으로 합과 기업이 정식으로 등기를 마친 뒤에는 안고분담 원칙을 고수할 수 있다는 ‘상업등기제도’안이 제안되기도 했으나 역시 합과 기업의 관행을 무시하는 처사라 해서 커다란 반발에 직면해 실현되지는 않았다. 이 책에서는 합과 개량안의 구체적 내용과 문제점 등을 당시 다양한 시각에 의거해 상세한 분석을 진행하고 있다.

제7장에서는 사천성 정염업(井鹽業)의 합과 경영 문제를 분석했다. 정염업이란 우물을 파고 염수를 끌어올려 가공하는 공정을 통해 소금을 채취하는 산업으로 사천성이 유명하다. 정염업은 우물을 파서 소금을 생산하기 까지 오랜 시간 동안 막대한 금액을 투자해야 하는 업종이기 때문에 단독 경영보다는 합과 경영이 주류를 이루고 있다. 이 책에서는 정염업과 관련해서 현재 남아 있는 다수의 계약문서 자료를 이용해서 염업 자본의 구성과 운용, 그리고 문제점 등 다방면에 걸쳐 세세한 분석을 진행해서 사천성의 정염업 경영을 이해하는 데 유익함을 주고 있다.

마지막으로 제8장에서는 합과 관행이 현대 중국 경제 사회에 있어 어떤 역사적 의의를 지니고 있는지에 대해, 나아가 합과의 현대적 과제로 향진기업 및 대만의 대남방(臺南幇) 기업 경영을 살펴보고 있다. 

일찍이 로이드 E.이스트만은 중국의 근대 산업화롤 방해했던 몇 가지 요인 중에 “사적(私的)인 재산이나 사업에 대한 투자가 정부의 수탈 때문에 불안정했다”라는 점을 들고 있다. 즉, 중국은 전통적으로 국가와 사회, 공과 사의 경계가 그다지 명확하지 않았으며, 사적재산에 대한 법적인 보호가 대단히 미약해 그 결과 생산에 대한 투자와 부의 축적을 위한 불가결한 조건이라고 하는 재산권의 보장이 극히 취약하였다고 하는 것이다.

근대 산업화는 반드시 추진해야만 하는 것인가? 라는 문제는 별개로 치더라도 사적재산에 대한 법적 보호의 취약성 등으로 인해 야기되는 불안정함 속에서 중국인은 항상 인적 네트워크를 통해서 이를 극복하고자 하였다. 인적 네트워크란 혈연, 지연 등의 연고를 통해 형성된 종족이나 길드, 촌락 등의 사회단체를 말하며 합과 역시도 이와 동일선상에서 이해할 수 있는 것이다. 다시 말하면 합과는 불안정한 투자환경을 극복하기 위해 개개인이 혈연, 지연 등의 인적 네트워크를 기반으로 해서 결합한 사회경제 단체인 것이다.

그런데 합과는 이미 언급하였듯이 개성인 강한 인격적 결합을 근간으로 하고 있다. 따라서 그 구성원간의 관계는 대단히 상호 협력적이지만, 반면에 서로 경쟁적인 조직으로서의 불안정함을 드러내고 있었다. 합과 조직이 집단으로서 영구성을 띄지 못 하고, 일시적인 이합집산에 머물러 있는 것은 바로 구성원 개개인의 개성이 강하기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 즉, 집단으로서의 영구적 경영보다는 개개 성원의 이익을 우선시하기 때문에 합과 이익의 대부분은 각 성원을 향한 이익배당으로 지출해 버리는 것이다. 이는 곧 합과 기업의 자본축적을 곤란하게 하는 원인 중의 하나가 되었다. 합과 기업 대부분이 소규모 자본구성을 띠고 있었던 중요한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는 것이다.

이와 같이 합과는 바로 중국사회의 불안정한 사회경제적 환경 속에서 태어나 구성원 간의 상호협력과 경쟁이라고 하는 양면성을 내포하면서 중국인의 경제활동에 깊게 뿌리를 내릴 수 있었다. 그렇다면 사적 재산권이 어느 정도 법적으로 보호받고 있는 오늘날에도 여전히 합과의 원리가 빛을 발하고 있는 것은 왜 일까? 그에 대한 대답은 반드시 간단하지만은 않지만, 중국인들에게 있어 중국사회가 여전히 불안정한 모습으로 비추어지고 있기 때문은 아닐까 조심스럽게 추측해 본다. 이러한 점에서 이 책은 합과를 키워드로 해서 중국 경제를 이해하는 것뿐만 아니라 중국 사회 전반을 이해하는 데에도 유용한 역할을 할 것으로 기대한다.


정지호 경희대·사학

도쿄대학 대학원 인문사회계 연구과에서 박사학위를 취득하고 현재 경희대학교 사학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주요 연구로 중국의 전통적 상업 관행인 합과(合夥) 경영 및 량치차오(梁啓超)의 국민국가론에 대해 다수의 논문을 발표했으며 현재는 귀주(貴州) 소수민족 사회에 대한 연구를 진행하고 있다. 저서로는 『키워드로 읽는 중국의 역사』, 『진수의 《삼국지》 나관중의 《삼국연의》 읽기』, 『한중 역사인식의 공유』(공저)가 있으며, 역서로는 『애국주의의 형성』, 『중국근현대사 1: 청조와 근대 세계』, 『동북사강』, 『해국도지(一~三)』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