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년의 세월을 머금은 왜곡된 기록…일본의 모순된 인식, 그 근원을 살펴보다

2022-01-17     이현건 기자

■ 일본의 각성 | 오카쿠라 텐신 지음 | 정천구 옮김 | 산지니 | 320쪽

 

메이지시대에 학자, 미술비평가로서 활동했던 일본의 대표적인 지식인 오카쿠라 텐신이 동양 문명, 특히 일본을 서구에 알리기 위해 집필한 저서다. 텐신의 저서 『동양의 이상』은 1903년에, 『일본의 각성』은 1904년에, 『차의 책』은 1906년에 각각 출판되어 긴밀한 연결성을 가지고 있다. 세 저서는 서세동점의 상황 속에서 우세를 점하려던 일본이 서구인에게 자신들의 문명을 알리기 위해 영어로 저술되었다. 오카쿠라 텐신은 이 책을 통해 서구인들에게 일본의 역사와 문화를 알렸을 뿐만 아니라 일본이 우월하고 독창적이라는 인식을 서구에 심어주었다. 백여 년 전에 발간된 이 책에서 우리는 당시 서양인들을 매료시킨 근대 일본 사회의 문화와 사상 등을 엿볼 수 있으며, 오늘날에도 이어지는 일본인들의 왜곡된 역사 인식과 그 배경에 대해서도 살펴볼 수 있다.

텐신은 서양의 미술과 양식을 무차별적으로 도입하는 일에 반대한 사람들 가운데 하나였다. 텐신은 이 책을 통해 당시 일본 예술의 찬미자들이 품고 있던 “근대 일본의 성공이 예부터 전해온 그 독특한 예술을 상실하게 만들지 않을까?”에 관한 질문에 답한다. 이를 위해 그는 일본이라는 나라의 전 역사를 개략적으로 서술하고, 특히 외교의 문을 연 페리 제독, 미카도[천황]의 복권, 새로운 체제, 1904년의 전쟁 등에 대해 지면을 할애하였다.

일본은 메이지 시대에 갑작스런 발전을 이룩했다. 일본을 중시하지 않았던 서양 세계에서 일종의 위협으로 느낄 정도의 수준에 이르렀던 것이다. 반면 다른 나라들, 오래도록 일본보다 앞섰던 인도는 영국의 식민지로 전락했고, 중국도 과거의 낡은 족쇄에 묶인 채 서구 열강의 압박에 무너지고 있었다. 아시아에 일본과 견줄 만한 나라나 민족이 없어졌다고 판단한 텐신은 ‘아시아’의 각성이 아닌 ‘일본’의 각성을 집필하게 된다.

텐신은 구체적이고 생생하게 표현된 미술들을 통해서 고대부터 근대까지 일본의 역사를 이해했던 마술사가다. 때문에 그는 일본의 역사와 함께 시대의 그림에 대한 설명을 덧붙여 그 시대상을 짐작하게 한다. 이 책은 텐신의 다른 저서들과 함께 일본과 일본인에 대한 서구인들의 인식을 결정지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다이묘오, 사무라이, 계급 체계 등 일본이라는 섬나라의 독특한 문화를 매력적으로 설명하고, 자국에 대한 애국심을 바탕으로 일본의 역사와 문화를 상세히 서술한다. 동양의 문화를 처음 접해보는 서양에게 갑작스레 비약적인 발전을 이룬 미지의 국가 일본은 더욱 매력적으로 비추어졌을 것이다.

이 책에 내재해 있는 모순된 인식, 특히 왜곡된 역사 인식은 저자인 텐신의 것이기도 하지만, 텐신을 낳은 일본의 역사와 문화에서 비롯된 것이기도 하다. 따라서 일본인들이 대체로 공유하는 인식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런 인식은 중세의 통치자들과 지배층이 구성하기 시작했고, 지식인들 특히 에도 시대의 사상가들이 그 근거를 마련하여 뒷받침했다. 또한 메이지 시대를 전후해서 ‘일본의 각성’을 외친 사상가들과 혁명가들을 통해 일본 사회 내에 확고하게 뿌리를 내렸다. 서구 문명에 이렇게 역사적으로 꾸준히 구축되어온 인식이었으므로 그 모순을 간파하기란 매우 어렵다. 하여 근대의 미몽에서 벗어나지 못한 일본의 모순된 인식의 틀은 현재까지도 이어져 오고 있다.

전범국가인 일본이 자신들의 침략은 망각한 채 당당하게 서구인들을 향해 일침을 가한다. 이에 대한 성찰과 반성 없이 일본의 우월주의를 내세워 ‘일본의 각성’이라는 선전포고만 날린다면, 역사는 되풀이될 것이다. 오늘날 한국과 일본은 서로 부정적인 국가 감정을 지니고 있다. 

그렇기에 일본의 왜곡된 역사 인식과 모순의 근원을 살펴보는 일은 더욱 중요하다. 일제강점기를 지나온 한국에게 이 책은 일본에 의해 세뇌되어 왔던 역사와 뒤틀린 인식에 대한 근거가 되어줄 것이다. 역사는 과거를 돌아볼 수 있는 기록이다. 그러나 모든 기록이 진실은 아니다. 2021년의 한국이 1904년 발간된 『일본의 각성』을 읽어야 하는 이유는 일본의 잘못된 기록을 숫돌삼아 우리의 기록을 온전히 바라보고 올바르게 다듬어 나가기 위함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