때로는 지극히 동양적 기원 속에서 서양 르네상스 문화를 바라보아야만 한다!

2021-11-09     이현건 기자

■ 글로벌 르네상스: 동양과 서양 사이의 르네상스 미술 | 리사 자딘·제리 브로턴 지음 | 임병철 옮김 | 길 | 314쪽

 

이 책은 우리 시대의 미술사가나 문화사가들에게 그들의 사고방식에 변화가 필요함을 역설하고 있다. 지금까지 우리는 지극히 ‘유럽중심주의적’ 르네상스관(觀)으로 서양을 바라보았다. 하지만 저자들은 15세기와 16세기에는 동양과 서양이 훨씬 더 동등한 조건에서 만났다는 점을 제시하면서 실제로 1430년대에 가장 지속적인 영향력을 지닌 상징과 이미지들을 유럽에 제공한 곳은 ‘동양’이었음을 지속적으로 강조한다. 뒤이은 세기에 걸쳐 동양은 강하고 건설적인 경쟁 속에서 서양을 만났고, 그로부터 근대의 문화적 통화 내에서 가장 친숙하고 또 아마도 위안을 주는 많은 요인이 파생되었다는 것이다.

사실 우리는 유럽 문명 내지 문화에 있어 고대 그리스와 로마, 그리고 근대 초기의 르네상스에 대해 지극히 높이 평가되는 흐름 속에서 그들을 이해해왔다. 특히나 르네상스에 대한 이해의 폭은 저명한 학자 야코프 부르크하르트(Jacob Burckhardt)나 에른스트 곰브리치(Ernst Gombrich) 등의 영향 아래, 15세기 이탈리아의 인문학자들이 복원한 고전 전통이 이상적이며, 또한 미학적으로도 흠결 없는 순수예술과 추상적인 지적 사고의 체계를 낳았다는 주장에 기대고 있다. 이러한 인식의 토대 위에 서양 문명이 지속적인 승리를 구가해왔고 그것이 유럽 문명의 우수성을 보증해준다는 데에까지 이르렀다. 그것은 동시대 같은 역사 속에 있었던 인근 동양권과는 절연된, 아니 어떻게 보면 뒤떨어진 동양 문화에 비해 더욱 선진적인 문명/문화를 개척해 나갔다는 ‘유럽중심주의적’ 사고의 틀을 형성하기에 이르렀고, 그것이 우리의 뇌리 속에도 그대로 남아 있는 서양 르네상스에 대한 인식의 근본구조이다.

이 책의 저자들은 이러한 르네상스관(觀)에 대해 문제를 제기하면서 르네상스 시대의 예술품들이 본질적으로 동양과의 강력한 연관관계를 함축하고 있었음을 주장한다. 즉 르네상스 예술의 내용과 형식은 모두 인식과 발전이라는 차원에서 두 방향의 전개과정을 반영하고 있었으며, 그 속에서 우리가 동양과 서양이라고 불렀던 세계는 각자의 역할을 담당하고 있었다는 것이다. 역사적으로 15세기 말경의 동양 쪽 오스만 제국이 자신과 동등한 지위를 지니고 있던 서양 쪽 합스부르크 가문과 만났고, 또 각각의 제국이 상대방의 힘을 알고 있었다는 점을 우리가 인식한다면, 당시의 서양 예술은 동쪽에 자리하던 유럽의 교역 파트너들이 생산한 예술품에 대해 사려 깊은 대응을 통해 생겨난 것으로 이해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는 곧 전통적으로 르네상스라고 알려진 시기에 지리적, 이데올로기적 경계를 넘어 두 방향에서 전개된 물질적 교환과 그것이 유럽의 문화 정체성 형성에 끼친 지속적인 영향이 있음을 시사하는 것이다.

                      원서

특히나 이러한 시각은 전통적인 부르크하르트식의 기존의 르네상스관, 즉 순수 예술지상주의적 인식틀에 대해 문제를 제기하면서 역사적으로도 그리고 상업적, 정치적 경쟁이라는 분위기 속에서 유럽인들이 자기 스스로를 미학적 차원에서 확인하기 위해, 달리 말해 스스로를 ‘문명화된’ 존재로 규정하기 위해 어떻게 외부 세계를 바라보았고 또 그에 대해 비(非)유럽인들이 보여준 완고한 시선에 어떤 식으로 대응했는지도 규명해준다. 이는 곧 이 책의 저자들이 예술적 이미지의 전유와 예술품의 유통에 개입하는 정치의 문제에 주목하면서 르네상스 예술품에 대한 역사적 고찰이 단순한 미학적 차원뿐만 아니라 당대의 특화된 사회, 정치적 상황에 대한 해석과 함께 이루어져야 함을 주목하게 한다.

이와 같은 유럽 르네상스에 대한 새로운 인식과 자각은 두 저자의 협업을 통해 당대의 예술품들에 대한 치밀한 분석과 예증으로 입증되고 있다. 16세기 말 에드먼드 스펜서(Edmund Spenser)가 지은 장편 서사시인 『선녀여왕』에 대한 분석에서 ‘붉은 십자’로 확인될 수 있는 한 이름 없는 기사 성(聖) 제오르지오(St. George)가 사실상 15세기 때부터 동양과 서양의 그리스도교 교회 모두에서 숭배의 대상으로 공유되었다는 점, 15세기 당시 유행했던 서양 초상메달들의 직접적인 본보기가 되었던 두 원형이 모두 동양적 기원을 지니고 있었다는 사실, 14세기 말부터 공개적이고 용이하게 동양으로 유통되던 태피스트리들이 점차 훨씬 배타적이고 공격적인 유럽의 ‘문명’(civility) 개념을 지지하기 위해 전유되어가던 과정, 끝으로 그 자체로서 미적 대상으로 인식된 사물로 욕구의 대상이자 교환 가능한 고가의 품목이면서 군주들 사이에 주고받았던 선물이자 신분적 상징으로 기능했던 말(馬) 등 풍부한 역사적 사실 분석과 80컷에 이르는 방대한 도판을 통해 우리는 새로운 르네상스 미술 세계로 진입하게 된다. 이는 우리에게 서양 르네상스를 새로운 관점에서 볼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해 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