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양한 개인을 포용하는 집단지성을 통하여 만들어지는 민주주의

2021-10-04     이현건 기자

■ 더 많은 민주주의를 향하여 | 윤비·이상원·황옥자·김현주·안효성 외 13명 지음 | 시공사 | 392쪽

 

이 책은 현재 한국 대의민주주의의 현실과 한계를 짚어보고 시민이 일상 속에서 자기 삶과 직결되는 문제에 목소리를 내며, 다양한 집단지성을 통해 만들어지는 더 많은 민주주의의 가능성을 모색하고자 한다.

권위주의 통치를 거쳐 온 우리에게 민주주의는 지향점이자 이상향이었다. 그리고 제도적인 측면에서 민주주의 형성에 상당한 성과를 거두었다. 그러나 한국 민주주의 발전이 형식적인 측면에 머물러 있음은 부인할 수 없는 현실이다. 민주주의는 개인의 자유와 사회적 평등을 지향하는데, 이는 정치적 거대 담론이나 정치 공간의 장식품에 그칠 수 없다. 또한, 선거를 통해 공직자를 선출하는 제도로 한정되어서도 안 된다. 민주주의는 시민들의 일상의 삶으로서 구체적 실천의 현장에 있어야 한다. 이러한 맥락에서 시민들이 자기 삶의 문제와 관련된 정책에 관해 적극적으로 의사를 표시하고 간여할 수 있는 틀이 마련되어야 민주주의의 본질적 의미에 다가설 수 있다.

그런데 우리 사회에는 시민의 목소리가 강력한 힘을 얻는 데 대한 거부감이 존재한다. 이른바 ‘포퓰리즘’에 대한 경계심이 그것이다. 하지만 포퓰리즘은 ‘대중영합주의’ 혹은 ‘대중선동’이라는 부정적 의미로 공격하고 배제해야만 할 대상은 아니다. 포퓰리즘 현상 속에서 민주주의의 현실을 깊이 성찰하고 한계를 극복할 대안을 모색해야 할 것이다. 포퓰리즘은 민주주의의 역행이라 단정할 만큼 단순한 현상이 아니다. 민주주의는 근본적으로 ‘인민주권’을 주장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민주주의 국가 혹은 사회에서 인민이 진정한 주권자로서 주권을 행사하지 못하는 불평등과 불공정이 여전히 남아 있고, 그에 대한 인민의 불만, 그리고 불평등과 불공정을 해소하기 위한 주장이 포퓰리즘과 만나기 때문이다.

이 책은 포퓰리즘을 정의하고 분석하지 않는다. 그 의미를 긍정적 또는 부정적으로 해석하거나 평가하는 시도도 하지 않는다. 그 대신 정치사상 측면에서 인민(민중)의 본질적 의미가 무엇인지, 그리고 포퓰리즘이 유럽, 미국, 라틴아메리카에서 어떻게 전개되어왔는지, 민주주의를 상징해온 대의민주주의의 한계가 무엇인지, 지속가능한 민주주의를 위해 무엇이 필요한지를 살펴본다. 즉, 현재의 민주주의를 재검토하며 ‘민’을 중심으로 만들어지는 근본적 민주주의를 성찰하는 데 목적을 둔다.

 

이제 정치 공간은 일반 시민들이 일상에서 자유와 평등을 체감하고 실천할 수 있는 공간이 되어야 한다. 그리고 정치지도자는 시민들의 일상을 지켜주고 그들이 자유와 평등을 가꿔나갈 수 있도록 정책을 설계하고 실행해야 한다. 개인의 자유와 사회적 평등을 거대 정치 담론으로만 장식하는 것이 아니라, 시민의 일상 속에서 자유와 평등이 실천될 수 있도록 일상의 실천적 정치 공간을 만들기 위한 더 큰 걸음이 필요하다. 이러한 민주주의의 실천과 지속은 결국 ‘민(民)’을 중심으로, 동일한 하나의 집단지성이 아닌 다양한 개인을 포용하는 포괄적인 집단지성을 통하여 만들어져야 한다. 그것이 더 많은 민주주의를 얻는 길이다.

포퓰리즘이 민주주의적인가, 반민주주의적인가를 논하기에 앞서, 포퓰리즘 혹은 포퓰리즘적 현상이라고 일컬어지는 일련의 과정들이 역사적으로 어떻게 전개되어 왔는지를 살펴보면서 편견과 선입견을 배제하고 보다 객관적으로 포퓰리즘을 이해하는 데 큰 도움이 될 것이다.

민주주의는 그 진정한 주체인 ‘민(인민, 민중, 시민 등)’이 일상에서의 민주주의를 어느 정도 실천하고 있는가에 따라 평가받는다. 일상에서 민주주의가 실천된다는 것은 더 많은 ‘민(인민, 민중, 시민 등)’들의 개인적 자유와 사회적 평등이 실현된다는 의미로 볼 수 있다. 이것은 더 많은 ‘민’들이 자신들의 일상의 삶과 직결된 문제에 강한 목소리를 낼 수 있다는 것이며, 동시에 그들의 목소리가 정책으로 반영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결국 포퓰리즘이 제기하는 문제 역시 일상의 민주주의로의 확대, 즉 개인의 자유와 사회적 평등의 실천이라고 볼 수 있다.

우리의 편견 속에 존재하는 포퓰리즘은 민중의 참여에 대한 기득권의 반작용이 만들어낸 가상의 개념이라고 볼 수 있다. 포퓰리즘은 포퓰리즘으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포퓰리즘들’로 존재하며 포퓰리즘들을 가로지르는 하나의 개념은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정치사상의 맥락에서 살펴볼 때 포퓰리즘은 다양한 형태로 존재해왔으며, 현재도 존재하고 있다. 

포퓰리즘을 이해할 때 민주적이면서도 반민주적인 양가성을 전제로 삼는 것이 합리적이다. 포퓰리즘은 민주주의와 인민이라는 몸통을 공유한다. 그러나 인민에 대한 독특한 해석 때문에 민주주의와 다른 존재로 갈라져 나간다. 우파 포퓰리즘이 확산되며 병리적 현상으로 전락한 사례는 이런 맥락에서 이해하는 게 합리적이다.

포스트 민주주의로 일컬어지는 현대 사회에서 다양한 포퓰리즘 현상은 대의민주주의로 상징되는 민주주의의 한계를 인식한 바탕에서 새로운 정치 문법, 정치 방식, 다른 민주주의의 가능성을 제기하는 방식으로 해석될 수 있다. 즉, 정책에 영향을 받는 인민, 국민, 평범한 사람들, 보통 사람들, 노동자, 농민, 빈민, 불리한 위치에 있는 사람들을 사회적 자원분배 결정 과정에 적극적으로 포함되는 새로운 민주주의 방식으로 존재하고 있다는 의미이다. 또한, 포퓰리즘은 정치적 선동이 아닌, 사회경제적 불평등과 미래에 대한 불확실 등에 관한 ‘불안’과 위기에 대한 대응이며 기존 민주주의 한계를 극복하고자 하는 민주주의에 대한 강한 열망으로 볼 수도 있다.

이러한 포퓰리즘 현상이 우파나 권위주의로 빠지지 않고, 민주주의 발전으로 이어지기 위해서는 포퓰리즘을 민주적으로 재구성하고 시민 주도 정치를 재활성화해야 한다. 다양한 개인으로서의 시민이 의견을 자유롭게 제시하고 그들의 목소리가 제약 없이 들리며 정책적으로 반영될 때, 더 민주적인 민주주의의 지속이 가능하다.

배타적 연대와 포퓰리즘의 결합으로 등장한 복지 쇼비니즘이 아닌 사회 구성원의 다양성을 기반으로 한 포퓰리즘적 동원과 포용적 연대의 구축으로부터 시민이 주체가 되는 아래로부터의 복지정치가 한국 복지국가에 필요하다. 그리고 일상의 민주주의로의 확대를 통해 민주주의를 재구성하고 더욱 강화시켜 나가야 한다는 점에서 새로운 정치로서 ‘피플-이즘’으로의 의미 확장이 시도되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