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나 아렌트…정치와 법의 관계를 어떻게 이해할 것인가?

2021-08-01     홍원표 한국외국어대·정치철학

■ 역자에게 듣는다_ 『한나 아렌트, 정치와 법』 (마르코 골도니·크리스토퍼 맥코르킨데일 엮음, 홍원표 옮김, 신서원, 752쪽, 2021.05)

 

우리는 시민으로서 삶을 영위하면서 ‘정치란 무엇인가?’ 또는 ‘법은 무엇인가?’를 끊임없이 생각하고 경험할 기회를 갖는다. 그럼에도 이런 질문에 간명한 답변을 제시하기란 쉽지 않을 것이다. ‘정치의 사법화’와 ‘사법의 정치화’라는 문제가 우리 현실에서 그동안 정치적 쟁점이 되었고 다시 제기될 수 있다는 점을 고려할 때, 우리는 또 다른 질문에 직면하게 된다. 정치와 법은 어떠한 관계에 있는가? 이는 학문적 논쟁의 대상이 되는 질문이다. 정치가 우위에 있는가? 법이 우위에 있는가? 정치와 법은 배타적 관계에 있는가? 아니면 두 영역은 독립적이면서도 상호 밀접하게 연계되어 있는가?

한나 아렌트는 이런 질문을 제기하고 그 해답을 찾고자 했다. 그는 『전체주의의 기원』에서 『정신의 삶』에 이르기까지 수많은 저작에서 정치와 법의 관계를 일관되게 조명하였다. 아렌트의 정치철학은 그동안 독자들에게 많이 소개됐지만, 그의 법철학에 대한 조명은 때늦게 이루어졌다. 이런 점에서 『한나 아렌트, 정치와 법(Hannah Arendt and the Law)』은 아렌트의 정신세계를 더 심도 있게 이해하는 데 기여할 뿐만 아니라 정치의 사법화를 비판적으로 살펴볼 기회를 우리에게 제공한다. 

이 책의 기고자들은 주로 아렌트 연구자들과 법학자들로 구성됐다. 질문은 두 가지로 집약된다. 아렌트 연구자들에게 “아렌트는 법에 관하여 무엇을 언급하고 있는가?”를 답변하라고 요청하고, 법학자들에게 “아렌트의 저작은 법에 대해 무엇을 말하고 있는가?”를 답변하라고 요청한다. 제1부 「아렌트 정치사상과 법 개념」에서는 법의 어원 및 의미를 제시한다. 제2부 「입헌주의와 제도」에서는 헌법 문제, 대법원의 역할, 시민불복종 문제에 대한 아렌트의 입장을 조명하고 있다. 제3부 「한나 아렌트와 국제법」에서는 정치적인 것과 국제법의 관계, 전후 국제형사재판과 아이히만 재판과 관련한 국제형법사상을 폭넓게 밝히고 있다. 제4부 「권리를 가질 권리」에서는 아렌트의 독특한 인권 개념과 인간의 법적 지위 문제를 조명한다. 

역자는 「해제 에세이」에서 정치와 법의 관계에 대한 아렌트의 입장을 다음과 특징화하였다. 즉 “정치와 법은 새로운 시작이다. 변화와 유지는 사물의 속성이고, 동일성과 차이는 함께 있다.” 이 주장은 정치와 법이 독자적인 영역이면서도 상호 균형을 유지할 때 정치공동체의 보존과 발전에 기여할 수 있다는 점을 압축적으로 담고 있다. 이러한 전제 아래 정치와 법의 내재적 상호 관계를 어떻게 규정하고 있는가를 살펴볼 수 있다. 

첫째, ‘정치와 법인가?’, 아니면 ‘법과 정치인가?’ 이 질문은 정치와 법의 관계에 대한 아렌트의 입장을 이해할 수 있는 출발점이다. 여기에서 어순(語順)의 의미와 역설을 확인할 수 있다. ‘경계’로서 법(nomos)과 ‘제휴’로서 법(lex), 그리고 ‘관계’로서 법(rapport)은 정치와 법의 내재적 상호 연관성을 드러내고 있다. 아렌트는 ‘명령’으로서 법을 비판하고 몽테스키외의 ‘관계’로서 법 개념을 수용한다. 

둘째, 아렌트의 헌법사상에 드러난 특징은 무엇인가? 답변은 다음 세 질문으로 집약된다. ⑴ 헌법은 자연법이나 ‘절대자’(신의 의지, 일반의지, 초월적 국민)와 같이 상위법을 필요로 하는가? 그 근원은 ‘세계’ 내재적이다. ⑵ 법과 권력은 동일한 근원에 기원을 두고 있는가? 아렌트에 따르면, 법은 헌법에 기반을 두고 있지만 권력의 근원은 인민이다. 이렇듯 그는 법과 권력을 동일한 근원에서 도출하려는 시도를 수용하지 않는다. ⑶ 권력과 권위는 동일한 제도에 존재하는가? 아렌트는 권력을 입법부와, 권위를 대법원의 헌법적 위상과 연계시킨다. 정책결정은 입법부에서 이루어지지만, 헌법 정신의 해석은 사법심사를 통해서 이루어진다. 이러한 해석은 정치의 사법화에 대한 논의의 이론적 기반을 제공한다.

셋째, 국민국가와 전체주의 국가의 실정법은 어떤 특성을 지니는가? 근대 이후 “국민국가와 입헌정부는 자의적 행정과 전제정의 지배에 저항하여 법치를 대변하고 법치에 기반을 두었다.” 법의 지배는 정치공동체의 안정에 기여하기에, 입헌주의의 세 축은 정치·법·질서이다. 그러나 전체주의는 ‘자연의 법칙’과 ‘역사의 법칙’을 작동시키는 총체적 테러를 고안해 냈다. 전체주의에서 ‘초월적’ 운동의 법은 정치의 변화와 실정법의 안정을 근본적으로 부정한다. 

넷째, 전체주의의 부정적 유산, 즉 정치적 악(근본적 악이든 평범한 악이든)을 어떻게 청산할 것인가? 아렌트는 자신의 저작에서 ‘조직화된’ 대량학살과 책임 문제를 조명하고 있다. 책임 문제는 개인적(법적, 도덕적) 책임과 정치적(집단적) 책임으로 구분된다. 정치적 책임은 가해자들의 후손들이 맡는 비자발적 행위로서 새로운 시작을 가능케 하는 행위로 집단적 책임이다. 반면에 개인의 범법 행위는 법적 책임과 관련된다. 아렌트는 아이히만의 악행에 대한 법적 책임을 강조하고 인류에 반하는 범죄를 관할하는 국제형사재판소의 필요성을 강조한다. 아렌트는 아이히만 재판을 계기로 규정적(법적) 판단과 반성적 또는 정치적 판단의 차이를 밝혔다. 

마지막으로, 인류의 공존을 어떻게 보장할 것인가? 아렌트는 인류를 추상적 개념이 아닌 구체적인 실재로 규정하고 “한 사람의 문제는 모든 사람의 문제다”라는 전제 아래 국제정치와 국제법의 관계를 밝혔다. 이러한 입장은 유대인 문제, 소수민족 문제, 권리를 가질 권리 그리고 인류에 반하는 범죄 문제에 관한 분석에 잘 드러나고 있다. ‘유대인 문제’에 대한 나치의 해결책은 유럽의 재앙으로 이어졌으며, 특정한 역사적 시기에 소수민족 문제는 국민국가의 쇠퇴와 연관되었다. 인류에 반하는 범죄는 전체주의 등장 이후 법적인 범주가 되었으며 국제형사법정의 관할권에 속하게 됐다. 이렇듯 그는 인류의 인간다움 삶을 보장하는 방법으로서 국제법의 제도화를 강조했다. 

이 책의 기고자들은 각기 다양한 입장에서 ‘정치와 법의 내재적 상호 연관성’을 밝히고 있다. 이들의 비판적 해석은 아렌트 연구에 새로운 계기를 제공할 값진 결실이다. 물론 정치철학과 법철학의 구획화로 발생하는 해석의 불충분성은 부분적으로 드러나고 있다. 그럼에도 이 책은 법과 정치가 현재의 우리 삶뿐만 아니라 미래의 삶을 보장한다는 아렌트의 정치적-법적 통찰의 중요성을 성찰하는 기회를 제공할 것이다.  


홍원표 한국외국어대·정치철학

한국외국어대학교 정치외교학과를 졸업하고 동 대학원에서 정치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이후 현재까지 한나 아렌트 정치철학 연구에 전념하고 있다. 한국외국어대학교 LD학부 교수, 한나 아렌트학회 회장을 역임했다. 현재는 한국외국어대학교 명예교수로 있다. 저서로는 『아렌트: 정치의 존재이유는 자유다』, 『한나 아렌트 정치철학: 행위, 전통, 인물』, 『비극의 서사: 근현대 한국 지성의 삶과 사상』 등이 있고, 공저로는 『한나 아렌트와 세계사랑』, 『언어와 정치』 등이 있다. 역서로는 『정신의 삶: 사유와 의지』, 『한나 아렌트 전기: 세계사랑을 위하여』, 『어두운 시대의 사람들』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