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냉전 리버럴 바이든과 뉴 노멀의 미국

■ 나의 책, 나의 테제

2021-07-25     안병진 경희대 미래문명원·정치학

■ 나의 책, 나의 테제_ 『미국은 그 미국이 아니다: 미국을 놓고 싸우는 세 정치 세력들』 (안병진 지음, 메디치미디어, 268쪽, 2021.05)

이 책의 집필은 미국 대통령제를 전공하는 학자로서 그간 필자가 항시 사용해온 교과서들에 대한 회의감에서 출발했다. 필자는 미국에서 시간강사 시절 미국 정치 101 수업의 대부분을 토크빌의 <미국의 민주주의>를 사용했었다. 하지만 지금까지도 미국을 이해하는 가장 탁월한 교과서였던 토크빌의 프리즘이 이제 트럼프 이후의 시대 미국에도 적실성이 있을까 하는 의문이 고개를 든다. 즉 토크빌이 격찬했던 미국의 자유주의적 가치와 시민덕성들이 과연 현재 제대로 작동하는가에 대해 필자는 매우 비판적이다. 그 회의감은 필자로 하여금 혜안에 빛나는 미국 건국 시조들의 <The Federalist Papers>나 대통령제에 대한 고전적 이론을 정립한 스커러닉(Stephen Skowronek) 예일대 교수의 <The Politics Presidents Make> 등 다양한 교과서의 오늘날 적실성에 대한 의문으로 이어졌다. 

스커러닉은 그간 다양하게 등장한 역대 대통령들을 ‘재구축(reconstruction), 구체화(articulation), 선제적 대응(preemption), 질서 이탈(disjunction)’의 4가지 유형의 등장으로 정교한 이론과 사례연구를 구축한 바 있다. 하지만 오늘날 오바마, 트럼프 등 포스트모던 시기에 등장한 대통령들은 이 4가지 유형이 하나의 대통령 속에서 매우 혼돈스럽게 등장한다. 왜냐하면 그간 미국의 대통령들이 근대 이후 움직여온 그 플랫폼 자체가 내부의 필연적 바이러스와 새로운 국내외 환경의 결합으로 혼돈을 거쳐 이행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필자는 이 책에서 "우리가 알던 미국은 이제 없다. 미국은 그 원형모델이었던 자유주의와 민주주의, 그리고 자본주의 질서가 송두리째 흔들리고 있다. 그동안 우리가 당연시해 온 질서 자체가 흔들리고 있다"고 규정했다. 이에 따라 1장에서는 스커러닉의 대통령제 이론이 더 이상 오늘날과 미래의 대통령 리더십 유형들을 이해하는 유용한 프리즘이 될 수 없는 이유에 대해 논쟁적 주장을 전개하였다. 

만약 토크빌 등이 파악한 미국이 더 이상 아니라면 오늘날 미국을 움직이는 세력들을 어떻게 새롭게 파악할 것인가가 필자의 이어지는 관심이었다. 이에 대해 필자는 "이러한 혼돈과 무질서의 이행기에 세 정치세력이 미국을 새롭게 규정했다. 기존의 미국적 가치와 경계선을 지키려는 토크빌주의, 그 경계를 넘어 문명충돌적 시각에서 미국과 세계를 변화시키려는 헌팅턴주의, 민중의 힘에 기반해 사회민주주의나 더 나아가 사회주의로 나아가려는 데브스(Debs)주의"라고 주장한다. 

기존에는 미국 정치의 주류 움직임은 무난히 토크빌주의의 가치와 아젠다 경계선 속에서 주로 가능했는데 이제 공화당 주류 등은 그 경계를 훨씬 넘어버렸다. 오늘날 샌더스와 AOC로 상징되는 데브스주의도 그간 사회주의가 성공하기 힘든 미국 예외주의 관념을 흔들면서 토크빌주의로 수용하기 어려운 경계를 넘어서고 있다. 필자는 이 새로운 현실을 보다 생생히 전달하기 위해 단지 이론적 논지만이 아니라 구체적 인물의 사례를 통해 이 책을 이론서와 대중서의 중간으로 만들고자 했다. 이들 세 세력들은 토크빌주의를 대표하는 정치가와 이론가로는 바이든 대통령과 존 아이켄베리 프린스턴 대 교수, 헌팅턴주의는 도날드 트럼프와 스티브 배넌 전략가, 데브스주의는 알렉산드리아 오카시오-코르테즈(AOC)하원의원과 엘리자베스 워런 상원의원을 꼽았다.  

 

이 책의 또 다른 동기는 단지 미국 정치학 학자로서가 아니라 한반도를 살아가는 공적 지식인이자 시민으로서의 실천적 관심이다. 미국은 우리 대통령제의 원형이다. 이 원형이 오늘날 오작동을 일으키고 있다. 미국의 주류 학자들이 근대문명 시절 설계되고 작동하던 미국의 자유주의 제도가 오늘날 오작동을 일으키는 근본 원인에 대해 치밀하고 발본적인 화두를 던지고 있는지 여부에 대해 필자는 비판적이다. 한 가지 예를 들자면 지금 미국의 상원은 기후위기와 불평등, 그리고 미래를 대비한 기관으로서의 역할, 미래의 인간, 비인간 주체들을 충분히 정치적 주체로서 반영해나가는 기관으로서의 상원이 아니다. 금권선거, 기득권들이 너무 큰 영향을 가지는 상원이다. 그런 점에서 상원은 원래 건국의 시조들이 상정한 깊은 심의기관으로서 작동하지 않는다. 반면에 하원은 아래로부터 다양한 시민들의 역동적 에너지를 수렴하기에는 너무 현상유지적이다. 필자는 이 책에서 단지 미국의 자유주의 제도가 21세기에 잘 적응하지 못한 것이 아니라 애초에 디자인 자체가 필연적으로 오작동을 일으킬 한계를 가지고 있다고 지적한다.       

필자가 이 책에 대한 7월 19일자 <프레시안> 인터뷰에서도 밝혔듯이 이 미국 자유주의 제도의 오작동과 한계를 살펴보는 것은 빠르면 이 대선 정국 및 나아가 내년 봄 대선 직후부터 벌어질 수 있는 개헌 정국에 굉장히 중요한 시사점을 주는 것이기 때문에 의미가 있다. 필자가 이 책에서 던지는 질문은 다음과 같다. 개헌에 대해 내각제, 대통령 중임제 등 단순한 통치제도 문제를 넘어서 기후위기와 양극화라는 뉴 노멀이자 티핑 포인트가 얼마 남지 않은 상황에서 우리는 기존 자유주의·민주주의 제도를 어떻게 더 강화하고 또 어떻게 그 한계를 넘어설 수 있는가? 

아울러 세 정치세력의 오늘날 국제 현실에 대한 새로운 문제의식을 이해하는 건 바로 한반도 위기 및 기회와도 밀접히 관련된다. 예를 들어 이 책에서 필자는 토크빌주의자인 바이든을 국제 외교안보관과 관련하여 ‘신냉전’ 리버럴이라 규정했다. 이들 신냉전 리버럴들이 중국과의 전략적 경쟁을 어떻게 이해하며 미국의 토크빌주의 가치를 어떻게 지키려하는지 아는 것은 우리 한반도 미래 전략에 큰 함의를 가진다. 

필자의 부족함으로 이 미국의 새로운 정치세력과 질서에 대한 이 책의 문제제기는 아직 정교한 대안적인 새 정치질서 이론으로 나아가지는 못했다. 변명하자면 아직 이 세 세력의 이행기 투쟁은 이제 시작에 불과하기 때문이기도 하다. 필자는 향후에 새 정치질서의 이론화를 이번 시론에 불과한 책에 이어 본격적으로 모색하고자 한다. 아무쪼록 이 책이 미국의 신질서와 한반도의 미래에 대해 이론적, 실천적 관심을 가지는 지식인들과 시민들에게 하나의 전채요리 정도의 역할이라도 수행한다면 더 이상 바랄 것이 없다.    


안병진 경희대 미래문명원·정치학

뉴스쿨 대학원(New School for Social Research)에서 정치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로널드 레이건과 빌 클린턴 전 대통령을 비교한 박사 논문으로 한나아렌트상을 받았다. 경희대학교 미래문명원장을 역임했고, 현재 미래문명원 교수로 재직 중이다. 최근에는 생태 문명의 전환을 추구하는 지구와사람 NGO에서 학술위원장을 맡고 있다. 저서로는 《미국의 주인이 바뀐다》, 《트럼프, 붕괴를 완성하다》, 《예정된 위기: 북한은 제2의 쿠바가 될 것인가》 등 다수의 단행본과 논문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