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악의 경계에 선 예술가들, 인간성의 심연을 들추다

2021-02-07     이명아 기자

■ 예술가는 인간을 어떻게 이해해 왔는가: 서양미술을 통해 본 악의 이미지 | 채효영 지음 | 가나출판사 | 316쪽  

미술 작품은 그냥 보는 사람 마음대로 해석해서 보면 끝일까? 이 책의 저자는 예술가가 속한 사회의 역사와 문화적 맥락에 대한 이해 없이 미술 작품을 정확하게 해석할 수 없다는 예술 사회학적인 입장을 견지한다. 특히 서양의 집단 무의식이 예술가들의 작품에 어떻게 녹아 있는지 설명하면서 위대한 예술가들이 의식적 무의식적으로 드러낸 서양 정신의 민낯을 우리에게 펼쳐놓으며 서양 미술을 새롭게 바라보는 시각을 제시한다. 

저자는 선과 악으로 나누는 이분법적인 세계관과 이성과 합리성을 추구하는 서양의 휴머니즘 전통이, 예술가들이 인간을 이해하는 데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 다섯 개의 주제를 중심으로 살펴보고 있다. 작가는 이를 통해 인간성의 어두운 심연으로 우리를 이끈다. 

죽음, 자연, 여성, 광기, 전쟁 같은 주제들은 인간을 신에 버금가는 존재라고 여기는 서양에서 근본적인 공포이자 악으로 여기는 것들이다. 먼저 ‘죽음’에서는 공포, 지옥, 전염병 등을 표현한 미술 작품을 통해 죽음의 공포가 왜 인간의 근원적인 공포이자 악이 되었는지 알아본다. 다음으로 바다, 폭풍, 밤 등을 표현한 그림을 통해 자연이 왜 죽음을 떠올리는 공포의 대상이 되었는지를 살펴보고, 팜 파탈, 〈성서〉의 이브, 그리스 신화의 메데이아, 마녀 등을 표현한 그림을 통해 서양 문화를 관통하는 여성혐오의 가장 밑바닥을 들여다본다. 그리고 예술가들이 인간 깊숙한 곳에 자리한 욕망과 광기를 어떻게 이해하고 표현했는지 따라가 본다. 마지막으로 정의를 실현하는 도구였던 전쟁이 살육과 파괴의 절대 악임을 예술가들이 깨달아 가는 과정을 그들의 그림과 함께 통찰해 본다. 

1장에서는 뭉크, 터너, 만테냐, 파올로, 조토, 반다이크 등이 그린 ‘죽음’, ‘지옥’, ‘전염병’ 등을 통해 예술가들에게 죽음이 왜 공포의 원천이 되었는가를 알아본다. 이들의 작품에는 낯설고 이해할 수 없는 죽음과 죽음에 대한 공포, 그리고 죽음으로 인한 고통과 상실감이 생생하게 표현되어 있다. 

2장에서는 루벤스, 모사, 반 고흐, 프리드리히, 랜시어가 그린 ‘폭풍우 치는 바다’, ‘거센 파도’, ‘돌풍’, ‘캄캄한 밤’, ‘초승달’, ‘차디찬 겨울’, ‘북극’을 통해 예술가들이 엄혹한 자연을 어떻게 바라보았는지 알아본다. 이를 통해 서양문화에서는 자연이 왜 근원적인 공포가 되었는지, 그리하여 자연을 악으로 규정하고 자연을 배척과 정복의 대상으로 여기게 된 까닭도 함께 살펴본다. 

3장에서는 여성을 낯설고 두려운 자연과 동일시하고, 남성을 파멸로 이끄는 존재로 인식하는 서양 문화의 전통이 예술가들의 작품에서는 어떻게 나타나는지 살펴본다. 마네, 티치아노, 크노프, 클림트, 미켈란젤로, 들라크루아, 뒤러, 레오나르도 다빈치, 뒤샹, 루벤스 등의 작품을 통해 서양의 뿌리 깊은 여성혐오의 모습을 직면해 볼 수 있을 것이다. 

4장에서는 예술가들이 내 안에 있는 타자이자 악인 ‘욕망과 광기’를 어떻게 보았는지 살펴본다. 보티첼리, 로댕, 카르포, 도레, 제리코, 밀레이, 고야, 워터하우스 등이 그린 ‘광인’의 다양한 모습을 통해 인간 본성의 어두운 그림에 대해 생각해 본다. 서양 문화의 전통에서 사멸해야 할 것이었지만 결코 사멸되지 않는 ‘광기’를 어떻게 보았고, 이해해 왔는지 알아본다. 

5장에서는 ‘정의의 실현’이었던 전쟁이 어떤 인식 과정을 거쳐 살육과 파괴의 절대 악이 되었는지 다비드, 고야, 펜턴, 오설리번, 세베리니, 딕스, 누스바움 등을 작품을 통해 알아본다. 전쟁을 바라보는 예술가들의 고뇌를 통해 ‘정의란 무엇인가?’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해 보는 계기가 될 것이다. 

이 책은 인간성의 어두운 심연을 직관하는 예술가들의 작품을 보여 준다. 이를 통해 저자는 선과 악의 경계에 서 있는 우리에게 묻는다. “우리는 과연 어떠한 존재인가?”하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