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 포장된 속임수, 개방이사

[고영남 칼럼]_ 대학직설

2021-01-10     고영남 논설위원/인제대·법학

내가 재직하고 있는 대학을 운영하는 학교법인 이사회의 이사 정수가 몇인지, 그들은 구체적으로 어떤 사람인지, 설립자와 친족인 이사는 누구인지 등 자신의 대학을 운영하는 학교법인 이사회의 이사들이 어떤 인사들로 구성되었는지에 관한 해당 교수들의 인식수준은 그 대학에 대한 학교법인의 책무성 수행지표와 오히려 반비례한다. 학교법인 이사회의 민주성과 공공성에 문제가 짙을수록 교수들의 인식 수준 또한 깊어지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질문들에 대하여 정확한 답을 내리는 교수라 할지라도, 현재 이사회를 구성하고 있는 개방이사들이 어떤 추천과정을 거쳐 선임되었는지를 인지하기에는 큰 어려움이 있다. 포장만 잘 되어있을 뿐, 실제로 그 알맹이는 ‘개방이사제도’의 취지와는 전혀 어울리지 않은 가상(假象)이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개방이사의 본질을 전혀 가지고 있지 않은 기만적 현상이기 때문이다.

학교법인은 이사장을 포함하여 임원으로서의 이사를 7명 이상 두어야 하며, 반드시 이사 정수의 4분의 1(소수점 이하는 올림으로 처리)에 해당하는 개방이사를 둬야 한다. 물론, 다른 이사와 마찬가지로 개방이사 역시 학교법인 이사회가 스스로 선임함이 원칙이다. 문제는 그 후보를 추천하는 절차에 있다. 다른 이사들의 후보를 어떻게 준비할지는 사립학교법 제20조가 위임했듯이, 해당 학교법인의 정관과 이사회의 의결에 맡겨져 있으나 개방이사의 후보만큼은 이사회 밖에서 이루어진다. 이처럼 개방이사제도는 사외이사처럼 법인의 지배구조를 개방적으로 바꿀 수 있는 매우 혁신적인 방안인 동시에 가장 기만적인 장치로 전락할 수 있는 계기를 안고 있다.

‘사립학교 운영의 민주성, 투명성 및 공공성을 제고’하고자 했던 2005년 12월 말의 사립학교법 개정은 학교법인 이사회 구성의 순혈주의를 타파할 수 있는 개방이사제도를 도입하였었다. 하지만 이사회가 개방이사 후보의 추천과정을 사실상 장악할 수 있도록 허용하면서 채 두 해도 지나기 전에 명목상 제도로 전락해 버렸다. 8명의 이사를 정수로 하는 이사회의 경우 대학구성원들은 2명의 개방이사를 배출할 수 있지만, 이것이 현실에 반영되기란 드문 일이다. 개방이사 후보추천 절차를 이사회가 실질적으로 주도함으로써 이사회가 원하는 인사 모두를 개방이사의 자리에 앉힐 수 있기 때문이다.

현행 사립학교법과 그 시행령에 따르면, 대학평의원회(초·중등학교의 경우 학교운영위원회)의 기구로서 개방이사추천위원회를 두도록 하고, 이 개방이사 추천위원회의 위원 정수를 5명 이상의 홀수로 구성하되 그 위원은 대학평의원회에서 2분의 1을 추천하도록 하였다. 나머지 절반의 위원 구성은 종교지도자 양성 목적의 대학 등을 제외하면 해당 학교법인의 정관에 맡겨져 있지만 대체로 ‘학교법인에서 추천하는 자’로 채워진다. 여기까지만 해도 개방이사제도는 그 가상을 잘 드러내지 않지만, ‘개방이사추천위원회가 개방이사의 후보를 반드시 2배수를 이사회에 추천하여야’ 한다는 사립학교법 제14조 제3항의 자비로운 규정을 보는 순간 이 모든 것이 속임수임을 뒤늦게 알아차리게 된다. 수레 소리만 요란할 뿐, 개방이사의 특수성을 전혀 반영할 수 없는 구조를 태생적으로 안고 있는 셈이다.

물론, 학교법인의 지배구조, 즉 이사회의 권한을 민주적으로 통제할 수 있는 안정적이고 영구적 규범을 마련하는 게 급선무이나, 지금으로서는 개방이사제도만이라도 최초의 모습 또는 그 이상으로 되돌려야 한다고 본다. 먼저, 대학평의원회의 구성 자체가 민주적으로 이루어진다는 전제 아래 개방이사추천위원회를 별도로 두지 않고, 개방이사 후보의 추천 권한 자체를 대학평의원회의 고유한 업무로 처리하면 된다. 물론 대학에 따라서는 개방이사의 후보를 직접 선출하는 절차를 마련할 수도 있을 것이다. 또한 대학평의원회가 개방이사후보를 이사회에 단수로 추천할지 아니면 2배수로 추천할지는 오로지 대학평의원회에 맡겨야 한다. 그다음으로, 개방이사로 선임된 사람은 언제든지 대학평의원회에 의하여 소환될 수 있어야 하고, 이사회의 현안을 대학구성원을 포함한 대학평의원회에 정기적으로 보고하여야 한다. 개방이사의 책무성은 오로지 대학구성원들의 대학 자치에서 나오기 때문이다. 따라서 개방이사가 대학평의원회에 의하여 탄핵될 경우, 그는 당연히 개방이사에서 물러나야 한다. 이처럼 개방이사는 대학구성원의 이해와 형편을 지속적으로 반영하며 대학자치의 정신을 구현하는 기구가 되어야 할 것이다.


고영남 논설위원/인제대·법학

인제대학교 공공인재학부 교수로 <교수평의회> 의장을 맡고 있다. <민주법학> 편집위원이며, 전공은 계약법으로 교육법, 인권법, 주택법, 법여성학 등에도 관심이 많다. 저서로 『여성과 몸』(공저, 2019), 『대학정책, 어떻게 바꿀 것인가』(공저, 2017), 『민법사례연습』(2016)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