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쟁하는 철학: 논쟁 없이 진리를 탐구할 수 없다.

■ 책을 말하다

2021-01-03     이상명 숭실대학교 베어드교양대학·철학

■ 책을 말하다_ 『신인간지성론 1 & 2』 (고트프리트 빌헬름 라이프니츠 지음, 이상명 옮김, 아카넷, 각 388/472쪽, 2020.11)

진리 탐구, 오랜 서양 철학의 역사에서 철학자들이 가졌던 거창하고 직접적인 학문의 목적이다. 세상의 모든 학문들이 궁극적으로 진리 탐구를 목적으로 하겠지만 이런 거창한 목적을 직접적으로 내세우는 것은 철학이다. 17세기 유럽에는 진리 탐구라는 같은 목적을 가지고 있음에도 서로 다른 두 가지 철학적 경향이 등장하는데, 보통 서양 철학사에서 영국 경험론, 대륙 합리론이라고 불리는 것이 그것이다. 

근대 철학자들은 ‘인간은 어떻게 지식을 얻는가?’, ‘우리가 가지고 있는 지식은 확실한가?’, ‘지식의 확실성은 무엇으로 확보할 수 있는가?’와 같은 공통의 질문에 서로 다른 견해를 밝힌다. 경험론자들의 답변은 감각과 경험이고, 합리론자들은 거기에 이성, 즉 이성적 추론을 더하고 인간 정신에 본유 원리가 있다고 주장한다. 경험론을 대표하는 로크는 우리의 영혼이 빈 서판(tabula rasa)과 같고 영혼에 있는 모든 것은 오직 감각과 경험에서 나온다고 주장하고, 이 주장은 “감각으로부터 나오지 않은 것은 어떤 것도 영혼에 있을 수 없다.”는 것으로 대표된다. 합리론자들은 이것에 대해 “감각으로부터 나오지 않은 것은 어떤 것도 지성에 있을 수 없다. 다만 지성 자신은 제외하고.”라고 반론을 제기한다. 합리론자인 라이프니츠는 영혼이 근원적으로 많은 개념들과 학설들의 원리를 포함하고 있고 경험은 단지 그것을 일깨우는 기회를 제공할 뿐 결코 원인이 아니라고 주장한다. 그래서 모든 참된 인식의 근원은 경험이라는 경험론자들의 주장에 대해 라이프니츠는 경험은 단지 우연적이고 개별적인 진리들만 제공할 수 있을 뿐이고 수학, 논리학, 형이상학, 도덕학에서 필연적 진리로 그리고 일반적 진리로 인정되는 것들은 오직 본유 원리에 의해서만 증명될 수 있다고 주장한다. 즉 우리가 경험할 수 없는 것들에 대해 어떤 인식론적 지위를 부여하는가에 대해서 이 두 철학적 경향은 다른 견해를 갖는 것이다.

『신인간지성론』은 로크의 대표 저작인 『인간지성론』에 대한 비판서로 알려져 있지만 사실 정확하게 말하면, 라이프니츠가 로크의 견해를 조목조목 비판했기보다는 로크의 경험론적 견해와는 다른 라이프니츠의 합리론적 견해를 밝힌 책이라고 보아야 한다. 비판이라기보다는 논쟁이라고 보는 것이 더 적합하다. 라이프니츠는 로크 저작의 탁월함을 인정했고 학계의 높은 평가도 알고 있었다. 그래서 그는 『인간지성론』의 탁월함과 평판을 이용해 그것과 같은 차례와 구성으로 자신의 견해를 대중적으로 알리기 위해서 『신인간지성론』이라는 제목으로 책을 쓴 것이다. 이 책에서 라이프니츠는 필연적 진리와 동일률 같은 본유 원리의 존재 외에도 많이 알려져 있는 미세 지각론, 연속성의 법칙, 물질의 현실적 무한 분할, 논리적 추론과 증명의 중요성 등을 피력한다. 

『신인간지성론』에는 경험론과 합리론의 대비가 체계적이고 친절하게 비교되어 있지는 않지만 이 책을 읽다보면 여러 군데에서 흥미로운 간극을 발견할 수 있고 그것을 통해 근대 유럽의 두 철학적 경향이 갖는 지적 분위기와 사고방식을 엿볼 수 있다. 로크는 인간의 지식과 진리, 관념, 언어에서 문제가 되는 것을 상식의 눈으로 점검하고 비판하면서 우리가 경험을 통해서 확실한 것으로 확인할 수 있는 것과 그렇지 않은 것, 이해할 수 있는 것과 이해할 수 없는 것을 구별하려고 하는 반면, 라이프니츠는 계속해서 체계, 조화, 질서, 일치를 강조하고, 학문의 조화, 자연의 질서, 정의와 증명에 대한 믿음을 드러내고, 정확하고 엄밀한 이성적 추론의 필요성과 중요성을 언급한다. 이것은 언제나 어디에서나 보편적으로 적용될 수 있는 자연의 원리를 찾으려는 라이프니츠 철학의 근본 목적에 따른 것이다. 이 두 철학자의 사고를 경향적으로 파악하면, 로크는 인간의 지성과 지식에서 불필요한 것과 불가능한 것을 제거하고 우리 능력을 검토한 후 그 범위를 제한하려는 경향의 사고이고 라이프니츠는 가능한 것, 잠재적인 것, 논리적인 것에 의미를 부여하며 포괄하려는 경향의 사고를 보여준다. 

라이프니츠의 『신인간지성론』이 서양 철학사에서 갖는 중대한 의미 중 하나는 이 책이 진리 탐구의 과정에서 만들어진 두 철학자 간의 논쟁이라는 점이다. 다른 학자들과 서신을 통해 논쟁하는 것을 좋아했던 라이프니츠는 무려 1,100여 명의 수신인에게 1만 5,000여 통의 서신을 썼고 그 원고는 20만 장에 달한다. 역사상 유례없이 많은 서신을 남긴 이 철학자의 서신은 현재 세계기록유산으로 지정되어 있을 정도이다. 그가 이렇게 많은 서신을 쓴 것은 진리에 대한 철학적 탐구는 혼자서 자신의 사유만을 기록하는 것이라기보다는 다른 학자들과 토론하고 논쟁하는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었고 그런 그의 성향이 만들어낸 결과물이 이 『신인간지성론』이다. 실제로 라이프니츠는 로크의 책을 읽고 그와 서신 논쟁을 시도했지만 로크의 거부로 논쟁은 성사되지 않았다. 하지만 이 『신인간지성론』을 쓴 것이 그가 하고자 했던 진리에 대한 철학적 탐구를 완성한 것이라 할 수 있다. 이 책이 로크의 견해를 대변하는 ‘필라레테스’라는 인물과 라이프니츠의 견해를 대변하는 ‘테오필루스’라는 인물의 대화 형식으로 구성된 것도 논쟁을 통해 진리 탐구의 과정을 보여주기 위한 것일 것이다.

논쟁 없이 진리를 탐구할 수 없다. 논쟁을 하기 위해서는 주장이 있어야 하고 또 그에 대한 반론이 있어야 한다. 각자의 주장과 반론은 자신의 견해를 정당화하기 위한 근거와 함께 제시되어야 한다. 이렇게 구성된 주장과 근거, 즉 논증을 평가하면서 논쟁이 진행되고, 이런 논쟁 과정에서 문제점이 드러나고, 무엇이 잘못되었는지, 무엇을 수정해야 하는지 알게 된다. 진리 탐구는 이런 방식과 과정에 내용을 채우고 반복하는 것이다. 이런 논쟁의 과정을 거치지 않고 진리를 탐구할 수 없다. 논쟁이 진리 탐구라는 거대한 목적에만 유효한 것은 아니다. 일상생활 속에서도 사람들 간의 다양한 견해와 의견은 항상 서로 부딪히고 갈등을 빚어낸다. 현명한 해결책은 대화하고 토론하고 논쟁하는 것이다. 논쟁을 하지 않으려고 하는 것은 반대를 두려워하는 것이고, 그래서 자신의 견해를 강요하는 것은 진실을 가리는 것, 즉 진리 탐구의 목적에 반하는 것이다. 진리를 알기 위해서는 반대 견해. 다른 견해를 알아야 하는 것이 마땅하다. 인간의 지식이 어디까지 이를 수 있는지에 대해서 로크와 라이프니츠는 다른 견해를 가지고 있지만 다른 의견에 대해서 어떤 태도를 가져야 하는지에 대해서 이들은 같은 견해를 보이고 있는 것이 이들의 진리 탐구를 주목해볼 필요가 있는 이유이다. 

“필라레테스(로크): 인간이 판단할 때 오류에 노출되는 것과 사물들을 같은 쪽에서 볼 수 없을 때, 다양한 견해를 갖는 것을 피할 수 없습니다. ...... 그리고 자신들의 견해에 굴복할 것을 강제하려는 사람들은 거의 대부분 사안을 제대로 검토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의심에서 벗어나기 위해서 논쟁에 충분히 깊이 들어갔던 사람들은 그 수가 매우 적기 때문입니다. ......
테오필루스(라이프니츠) : 사실 사람에 대해서 가장 비난할 만한 것은 사람의 의견이 아니라 다른 사람들의 의견을 비난하는 경솔한 판단입니다. 마치 그들과 다르게 판단하는 것이 어리석고 나쁜 것임에 틀림없는 것처럼 말입니다. 이 열정과 증오를 가지고 이것을 공공연하게 퍼트리는 장본인의 태도는 지배하기를 좋아하고 반론을 견딜 수 없는, 거만하고 공정성이 부족한 정신의 결과입니다.”(『신인간지성론』 2권 4부, 16장, 324~325쪽)

『신인간지성론』이 읽기 힘든 난해한 철학 서적이지만 서양 근대의 두 철학자 간의 논쟁이라는 관점에서 접근하면, 좀 더 흥미를 가질 수 있을 것이다.


이상명 숭실대학교 베어드교양대학·철학

독일 뮌스터 대학교에서 철학, 라틴어, 프랑스어를 공부하고 베를린 자유대학(FU-Berlin)과 공학대학(TU-Berlin)에서 철학을 공부한 후 베를린 공학대학교에서 『라이프니츠의 물체의 형이상학(Die Metaphysik des Korpers bei G. W. Leibniz)』으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현재 숭실대학교 베어드교양대학 교수로 재직하고 있다. 서양근대철학회에서 활동하며 『서양근대 윤리학』과 『서양근대 종교철학』을 함께 집필했고, 『자유와 운명에 관한 대화 외』, 『라이프니츠와 아르노의 서신』을 우리말로 옮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