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전히 어마어마한 셰익스피어!

[리베르타스]

2020-12-20     문선영 서평위원/동아대·국문학

글이 잘 써지지 않을 때면 나는 셰익스피어 작품을 소리 내어 읽곤 한다. 특정한 부분이 아니어도, 아무렇게나 그의 책을 펼쳐 들어도 마음이 다독여지고 새록새록 영감을 받는 것 같아서이다. 성서, 코란, 불경과 함께 인류가 꼭 읽어야 할 책으로 셰익스피어의 작품을 꼽는 경우가 그래서 나는 쉬 이해된다. 창조주 다음으로 세상에서 많은 것을 창조한 사람으로 셰익스피어가 언급되는 사실에도 적극 동의한다. 심리학의 대가 프로이트가 셰익스피어의 작품을 늘 침대 머리맡에 두고 잤다던데, 그를 따라 나도 눈에 가장 잘 들어오는 책꽂이 그곳에 셰익스피어의 책들을 두는 것이다.

괴테는 “셰익스피어를 연구하면 그가 인간의 본성 전체를 모든 면에서 그리고 모든 깊이와 모든 높이에서 철저히 연구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고 칭송했다. 이렇듯 셰익스피어는 그의 작품에서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인간상을 두루 창출했다. 그는 모든 작품에서 인간의 심리를 꿰뚫어 보는 통찰력으로 시대를 초월하는 인물상을 만들어냈다. 이러한 작업은 끝없는 모순의 복합체인 인간에 대한 심오한 탐구가 아닌가. 하여, 정체성으로 고뇌할 때에는 “언어의 마술사”라 평가되는 셰익스피어의 작품 세계에 기꺼이 빠져드는 것이다.

이미 ‘신화’의 반열에 오른 셰익스피어 작품 가운데 뭐니 뭐니 해도 으뜸은 4대 비극이다. 『햄릿』, 『리어왕』, 『오셀로』, 『맥베스』가 그것이다. 4대 비극에서는 주인공의 외적인 행동과 내적인 심리 사이의 괴리가 말할 수 없을 정도로 세심하고도 치밀하게 드러난다. 그리고 이러한 이유들로 4대 비극은 어마어마하게 매력적인 작품들로 우뚝 선다.

4대 비극을 읽노라면, 비극 속 인물들이 우리네 모습과 별반 다르지 않다는 사실을 발견하고는 우선은 아, 놀라고 다음으로는 휴, 안심한다. 그들 또한 우리처럼 꿈과 현실의 간극 앞에서 좌절하지만, 그들을 비극으로 몰고 간 가장 큰 원인이 다름 아닌 그들 자신의 욕망과 아집과 열등감이었구나, 나아가 끊임없이 우리를 사로잡는 유혹과 욕망도, 세상에 맞서서 나를 지킬 무기도 결국 내 안에 그리고 우리 안에 있구나…. 이 모든 ‘아’와 ‘휴’는 셰익스피어가 처음부터 끝까지 변하지 않는 평면적인 인물 대신, 변화를 일삼는 입체적이고 사실적인 인물들을 내보인 덕분이다. 비평가 헤럴드 블룸은 셰익스피어가 이 지구상에 존재하는 모든 ‘인간성’을 발명해 냈다고 하는데, 그렇다면 우리는 여전히 셰익스피어가 형상화한 인물들의 카테고리 안에 있는 셈이다.

열정이 이성을 능가하고, 이 때문에 인간의 마음이 혼란과 불안 속에 휩싸인 풍경들이 셰익스피어 비극의 배경으로 놓인다. 그러나 그것은 사랑과 증오, 삶과 죽음, 어쩌면 세상의 모든 가치를 죄다 품고 있기에 인간 세상을 그대로 비추는 거울처럼 여겨진다. 그래서 한없이 친근하고 또 심오하다.

“To be or not to be ; that is the question!”으로 유명한 『햄릿』, 셰익스피어의 작품 가운데 가장 긴 이 작품은 복수 지연을 통해 존재와 무, 삶과 죽음, 실체와 허구, 진리와 거짓, 선과 악들의 문제를 우리에게 던진다. 

“내가 누구라고 말할 수 있는 자, 누구인가” “그건, 당신의 그림자요”, 리어왕과 광대의 대사로 유명한 『리어왕』, 셰익스피어의 비극 가운데 가장 훌륭한 비극이라고 극찬받는 이 작품은 진실의 가치를 조명하고 인간 정체성에 대해 냉혹하게 성찰함으로써 비극이 오히려 인간을 바꿀 수도 있음을 우리에게 설파한다.

“내가 온순한 데스데모나를 사랑만 않는다면/ 걸림 없는 내 자유를 속박하는 일 따위는/ 바닷속 보물을 다 준대도 하지 않을 테니까” “전 오셀로의 얼굴을 그의 마음에서 보았고”라는 상반된 사랑의 견해를 보여 준 대사로 유명한 『오셀로』, 셰익스피어의 작품 가운데 가장 사실적이며 가정비극의 색채가 짙은 이 작품은 ‘오셀로 증후군’이라는 말을 탄생시킬 만큼 사랑과 질투에 대한 오래된 화두를 우리에게 던진다.

“고운 건 더럽고 더러운 건 고웁다/ 탁한 대기, 안개 뚫고 날아가자”는 1막 1장 세 마녀들이 퇴장하며 내뱉는 말로 유명한 『맥베스』, 셰익스피어 4대 비극 가운데 가장 마지막에 창작된 이 작품은 비교적 짧은 작품이지만 절대 선이나 절대 악은 존재하지 않으며 다들 적절히 이중적이라는 모순성을, 결코 사그라지지 않는 욕망의 문제를 우리에게 제시한다.

셰익스피어 4대 비극의 크나큰 묘미는 카타르시스를 우리에게 선사한다는 것이다. 모든 것이 파괴되어 가는 비극적인 상황 속에 깊은 카타르시스를 숨겨 놓고서, 삶의 의미를 찾도록 이끄는 역설을 품고 있다는 사실이 여간 흥미롭지 않다. 비극적인 결말이 안겨주는 공포와 혼돈은 이후 다시 회복되어야 할 도덕적 질서를 전제로 하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비극적인 결말은 비극적이지 않은 세계의 시작, 곧, 비극적인 상황이 언제까지고 비극으로 남아 있지 않을 것이라는 기대감을 주기 때문이다. 셰익스피어가 품은 헤겔의 변증법적인 전개 과정이 우리를 안도감으로 이끈다.

많은 찬사들을 헤아리더라도 무엇보다 셰익스피어가 ‘여전히, 어마어마하게 매력적인’ 것은 그 누구도 판단하지 않고 ‘그저 제시했다’는 사실이다. 이는 입장과 상황에 따라 인간은 다채롭게 변한다는 사실을 직시한 그의 예리하고도 품 넓은 시선 덕분이다. 이런 점에서 그를 프로이트를 능가하는(그리고 그 이후 모든 심리학자들을 능가하는) 대단한 심리학자라 불러도 좋으리라. 그래서 그가 만들어낸 수많은 입체적인 인물들은 끊임없이 재해석됨으로써 시간과 공간을 초월해 언제까지고 공감을 받고 있는 것이다. 그러니까, 그의 비극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시대를 초월해서 우리 곁에 존재하는 ‘너무나 인간적인’ 사람들인 셈이다. 곧, 셰익스피어를 읽는(때로는 관람하는) ‘나’는 햄릿이기도 하고, 리어왕이기도 하고, 오셀로이기도 하고, 맥베스이기도 한 것이다. 하여, 그가 담고 있는 보편성이 예술성과 조화를 이루면서 그의 작품을 고전의 선두에 둘 수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셰익스피어의 4대 비극은 우리 삶을 성찰하는 교과서로도 손색이 없겠다. 나를 헤아리고 너를 헤아리고 세상을 헤아리는 데 4대 비극만 한 텍스트도 없겠다. 그의 작품은 한 번도 안 읽을 수는 있지만, 한 번만 읽고 만족하기는 어렵다는 세간의 평가도 이를 입증하는 발언이다.

셰익스피어가 타계한 지도 400주년이 훌쩍 넘었는데, 그의 명성은 여전하고 찬란하다. 우스갯소리로, 익숙한 제목이지만 대부분 그 내용을 읽지 않은 것이 고전이라 했던가. 그렇다면, 셰익스피어의 4대 비극을 찬찬히 읽어 보자. 읽어 본 사람도 다시 읽어 보자. 이때 소리 내어 읽기를 권한다. 희곡이라서 그렇기도 하지만, 그의 비극작품 대부분의 대사가 시로 되어 있어서 눈으로 읽는 것보다 소리 내어 낭송해야 제맛이니까.

“내 유골을 움직이는 자에게 저주 있으리.” 셰익스피어의 묘비명에 적힌 글이다. 이는 마치 셰익스피어의 4대 비극에 이은 5대 비극의 시작을 알리는 글처럼 여겨져서, 그 저주가 두렵기도 하고 흥미롭기도 하다. 몇 년 전에, 해외 토픽에서 셰익스피어 유골이 도난당했다는 기사를 본 적이 있다. 그렇다면, 그의 다섯 번째 비극의 1막 1장이 이미 시작되었는지도 모르겠다. 다섯 번째 비극의 제목은 4대 비극을 품에 안은 여러분들이 정해보시길, 2020년이 얼마 남지 않은 심란한 12월 어느 날에, 문득.


문선영 서평위원/동아대·국문학

동아대학교 기초교양대학 교수. 시인·문학비평가. 부산대 국어국문학과를 졸업하고, 동 대학원에서 국문학(현대시)을 전공하였다. 1990년 『문학예술』 제1회 신인상 시 부문 당선, 1991년 『심상』에 평론으로 등단했다. 지은 책으로는 『익숙한 소리』(시집), 『현대시와 문화의식』, 『한국전쟁과 시』 등이 있으며, 그 외 공저로 『한국 현대시와 패러디』, 『한국 서술시의 시학』, 『한국 현대문학의 성과 매춘』, 『몸의 역사와 문학』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