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사노동에 임금을 지급하라…성관계도 가사노동이다

[신간소개]

2020-11-08     이명아 기자

■ 페미니즘의 투쟁: 가사노동에 대한 임금부터 삶의 보호까지 | 마리아로사 달라 코스따 지음 | 이영주·김현지 옮김 | 갈무리 | 560쪽

최근 몇 년간 전 세계적으로 사회적 재생산 이론에 대한 새로운 관심이 급증하고 있으며, 여성의 투쟁과 파업 또한 폭발적으로 증가했다. 이 책은 이탈리아의 페미니스트 작가이자 활동가인 마리아로사 달라 코스따가 1970년대부터 2010년대까지 작성한 글들 가운데 그의 정치사상적 궤적을 분명하게 보여주는 28편의 핵심 텍스트를 모은 것으로 자본주의에서 노동과 삶의 재생산이 어떻게 이루어지는지에 대하여 역사적 분석을 제공할 뿐만 아니라 현대적인 맑스주의 페미니즘 관점에서의 분석을 제공한다.

1972년 이탈리아의 빠도바에서 마리아로사 달라 코스따는 셀마 제임스(런던), 실비아 페데리치(뉴욕), 그리고 브리지트 갈띠에(파리)와 함께 〈국제페미니스트연합〉을 결성하였다. 이들은 재생산 노동에 대한 토론을 장려하였고, 여러 국가들에서 활동을 조직하여 〈가사노동 임금 조직 및 위원회〉라는 국제적인 네트워크를 형성하였다.

여성들은 거리로 나와 “가사노동에 임금을 지급하라” “성관계도 가사노동이다”를 외쳤다. 이들의 주장은 “여성은 문 닫힌 집 안에서, 어떤 보상도 없이, 정해진 노동 시간이나 휴식 시간도 하나 없이, 자기 시간을 전부 할애해야 하는 일”을 무보수로 하고 있다는 것이었다. 그러므로 가정은 통념처럼 소비의 공간, 휴식의 공간이기보다는 생산의 공간이다. 오늘날까지도 전 세계의 많은 여성이 집 안에서 자본을 위한 노동력을 생산하고 재생산하는 무급 노동을 평생에 걸쳐 수행한다.

▲ 페미니즘의 투쟁_마리아로사 달라 코스따

자본이 가사노동을 여성이 전담하게 만든 것은 자본주의 가족 구조의 제도화를 통해서였다. 남성은 임금 노동자로서 자기 노동력을 재생산해줄 여성을 부양할 돈을 버는 대신 집안일이라는 사회 서비스 역할에서 ‘해방’되었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남성이 임금 노예가 된 만큼 여성은 가정에 속박되게 되었다. 자본은 남성을 집 안의 관리자로 앉히고 여성의 무급 노동의 혜택을 공짜로 가져갔다.

노동력은 자본주의에서 가장 중요한 상품이다. 가사노동은 흔히 “여자들이나 하는 일”로 폄하되지만 자본주의 사회에서 가사노동이 담당하는 생산적 측면에 주의를 기울이자마자 그것이 이 사회를 움직이는 데 얼마큼 결정적인지가 보이기 시작한다. 노동자들이 자신들의 요구를 관철하기 위해 파업을 하는 것처럼, 여성 또한 시작 시간도, 퇴근 시간도 없는 가사노동을 거부할 수 있다. 만일 여성들의 집단적인 가사노동 거부를 실현해낼 수 있다면 그것은 ‘사회 전복’이라 불러도 부족함이 없을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여성들의 “가사노동 파업”이 동반되지 않은 어떤 파업도 “총파업”이라 할 수 없다고 달라 코스따는 주장한다. 달라 코스따와 동료들은 이처럼 여성이 자본주의 사회에서 투쟁의 중심인물이라고 보았다.

가사노동 임금이라는 의제는 근래에 주목받고 있는 페미니즘 이슈들에 어떤 통찰을 줄 수 있을까? 특히 이 책 1부 2장에 수록된, 달라 코스따가 1972년에 발표한 「여성과 공동체 전복」은 자본주의에서 핵가족이 하는 기능, 그리고 그 안에서 주부 역할이 여성에게 어떻게 할당되는지에 대한 분석에서 시작한다. 이 글을 비롯하여 책의 여러 곳에서 달라 코스따는 몸, 섹슈얼리티, 동성애 같은 주제들을 하나의 일관된 관점으로 분석할 수 있는 단초들을 제공한다.

▲ 메스트레(베니스)에서 열린 집회에 플래카드를 들고 참석한 마리아로사 달라 코스따. ‘가사노동에 대한 임금’(SALARIO al LAVORO DOMESTICO)이라는 문구가 보인다. (1975년 5월 1일) (사진: 저자 제공)

성폭력과 관련해서 1970년대 페미니스트들이 경험한 현실은 지금과 크게 다르지 않다. 남성이 여성의 몸을 지배하는 상황, 여성의 몸이 남성의 성적 요구를 만족시키는 도구로 기능하는 상황에 대한 자각이 일어나 여성들이 자기 몸과 욕망을 재전유하기 시작하였다. 여성은 또 자본과 남성이 원하는 대로 가사노동을 수행하기를 거부하기 시작했다. 그러자 여성에 대한 폭력이 폭발적으로 증가했다.

달라 코스따는 1980년대부터 토착민 운동, 에코페미니즘과 조우하면서 땅, 식량, 생명, 개발, 농업 같은 의제들로 사상적 관심을 확장하게 된다. 가사노동에 대한 관심은 결국 삶의 재생산의 문제와 직결되는 것이다. 가사노동이 삶을 재생산하는 노동이기 때문이다. 제1세계에 속하는 이탈리아 출신인 달라 코스따는 제3세계의 투쟁들과 만나면서 “땅에 관한 질문은 우리를 압도하여 우리가 재생산 문제를 다시 생각하도록 만들었다”고 고백한다. 1980년대에는 제3세계 국가들을 중심으로 신자유주의 정책들이 집행되면서 토지의 사유화, 착취, 파괴가 대대적으로 일어났다. 그 안에서도 여성들은 땅과 바다를 지키기 위해 앞장서서 싸우고 있었다.

1990년대 이후 농업과 어업, 식량 주권 등의 문제가 달라 코스따의 집필과 연구의 주요 주제가 된다. 1992년에는 전 세계 농업 공동체를 연결하는 거대한 네트워크인 〈비아 깜뻬씨나〉가 발족하였고, 1994년 1월 1일 북미자유무역협정 발효일에 멕시코 치아빠스 정글에서는 사빠띠스따들이 봉기하였다. 달라 코스따는 이 아래로부터의 움직임들과 협력하면서 전 세계의 토착민 저항을 적극적으로 지지하는 활동을 하였다. 오늘날 사회적 관계들이 자본주의적으로 체계화되는 것에 반대하는 투쟁은, 새롭게 땅과 관계 맺을 방법에 초점을 맞추어야 한다고 그는 주장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