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용운은 어떻게 근대와 만나고 있는가

[나의 책, 나의 테제]

2020-10-25     이선이 경희대·한국현대문학/시인

■ 나의 책, 나의 테제_ 『근대 문화지형과 만해 한용운: 한용운 다시 읽기』 (이선이 지음, 소명출판, 415쪽, 2020.09)

이 책은 두 가지 문제의식을 갖고 만해 한용운의 삶과 글쓰기를 새롭게 읽어내고자 시도한 연구서이다. 우선, 기존 연구들이 보이는 한용운에 대한 과도한 우상화의 시각에서 벗어나 그의 인간적인 면모를 충실하게 읽어내는 연구를 진행하자 했다. 기존 연구들은 비타협민족주의라는 프레임 안에 그의 삶을 묶어 두고 저항의 아이콘으로만 한용운을 인식해 왔다. 하지만 이러한 시각에서 벗어나지 않고는 그가 자기 시대를 어떻게 인식했으며 그 과정에서 무엇을 모색했는가를 제대로 읽어낼 수가 없다는 판단이 들었다. 실제로 한용운의 삶과 그의 글쓰기가 담고 있는 풍요로운 의미를 읽어내는 데에는 기존의 이런 시각이 시야를 가리는 면이 적지 않았다.

또 다른 문제의식은 시인 한용운과 시집 『님의 침묵』에 대한 기존의 이해방식에 대한 불만에서 촉발되었다. 그동안 한용운은 근대시사(近代詩史)에서 돌출한 지점에 위치한 시인으로 인식되어 왔다. 이렇게 인식된 것은 그가 스스로 시인임을 자처한 바가 없었고, 당시 시단과도 별반 교류가 없었기 때문이다. 그 결과 시인 한용운과 시집 『님의 침묵』에 대한 평가에는 예외성과 독특성이 중요한 인식 틀로 자리 잡았다. 물론 이러한 관점에는 세속을 떠나 출가한 승려라는 그의 신분도 중요한 원인이 되었다. 하지만 그에 관한 자료들을 하나씩 살피면서 점점 기존 평가에 대해 동의하기가 어려웠다. 그의 시적 성취를 시사적 예외성으로만 파악하기에는 그의 삶은 시종일관 문학적 열정으로 충만했으며, 무엇보다 당시 문화공간 안에서 여러 문화인과의 교류를 통해 이러한 열정이 심화되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는 한시창작단의 일원으로 활동했고, 시조와 소설 창작을 거치며 자유시 창작에 도전했다. 또한 잡지를 발행하기도 하고 잡지와 신문 등에 시, 소설, 잡문을 발표하고 인터뷰와 대담에 응하며 매체와 친밀한 관계를 유지하는 등, 그는 언제나 문화계 안에서 활동했다.

이처럼 민족대표로 3·1운동에 참가한 일이나 불교근대화 운동을 주도한 개혁 승으로서의 족적 이외에도 그의 행적에는 당대의 문화지형 안에서 사회적 명사(名士)로서 활동한 이력이 적지 않았다. 이런 점들에 주목하면서 그의 삶과 글쓰기를 당대 문화지형 안에 위치시키면서 역사적으로 읽어내는 작업이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런 문제의식을 가지고 근대에 발행된 신문과 잡지를 읽어나가며 그의 생애와 사상을 되짚어보기 시작했다. 한용운을 근대의 문화지형 안으로 소환하여 그가 시대적 변화를 어떻게 수용했으며, 그의 글쓰기가 당대 사회 담론들과 어떻게 만나고 있는지를 읽어낼 수 있었던 것은 이러한 문제의식의 소산이었다.

▲ 한용운의 친필 서명(『중앙일보』, 1931년 11월 27일자)

이 책은 한용운을 근대의 문화지형 안에 위치시키고, 그가 어떤 모색의 과정을 거쳐 자신이 발 딛고 서 있는 시대와 호흡하며 자신의 길을 찾아 나갔는가를 추적한 기록이라고 요약할 수 있다. 또한  이 과정에서 오늘날 우리가 갖고 있는 한용운에 대한 인식이 어떻게 형성되었는가를 살펴볼 필요가 있다는 판단이 들어 이를 규명하는 작업도 함께 진행하였다.

책은 3부로 구성하였다. 1부에는 식민지 근대공간이라는 특수한 시공간을 살아내면서 한용운이 자기 시대를 어떻게 인식했는가를 해명한 글을 모았다. 문명, 사회진화론, 자유, 평등, 자존, 평화, 사랑, 정의, 불교 등을 키워드로 삼은 여섯 편의 글을 통해, 한용운의 근대인식 방법을 면밀하게 추적하고자 하였다.

2부는 근대의 문화지형 안에서 한용운이 어떻게 활동했는가를 그의 문학적 글쓰기를 중심으로 살핀 글들이다. 시집 『님의 침묵』이 당대 시단과 갖는 연관성, 한용운이 한글체를 습득하는 과정, 최남선이나 정인보와의 정신적 연관성 등을 살피면서 문화인으로서 한용운의 면모를 확인해 나갔다.

3부는 해방 이후 한용운과 그의 작품에 대한 인식이 어떻게 형성되어 왔는가를 실증적으로 들여다보았다. 평전을 통해 신화적 인간상의 구축과정과 작품이 정전화되는 과정을 살핀 글들이다. 이를 통해 오늘날 우리가 한용운을 이해하는 방식이 역사적으로 어떻게 형성되었는가를 확인해 볼 수 있었다. 또한 여러 자료들과의 비교·대조를 거쳐 『증보한용운전집』(1979)이 갖는 오류를 밝혔다. 아호(雅號)인 만해(萬海)가 법호(法號)로 오인되었다는 점, 전집에 수록된 연보(年譜)의 문제점들, 한용운이 필자가 아닌 글이 전집에 수록된 예 등을 찾아 오류의 근거를 낱낱이 제시하였다. 

이 책은 크게 세 가지 점에서 의미를 갖는다. 우선, 문학적인 측면에서 『님의 침묵』이 탄생하기까지 한용운이 어떤 시적 열망을 품고 활동했는가를 면밀하게 들여다봄으로써 그의 삶과 시를 예외성으로만 인식하는 데에서 벗어날 여지를 마련하였다. 이 논의 과정에서 한용운은 1910년대에 대표적인 한시 창작단체인 ‘신해음사(辛亥唫社)’의 회원으로 활동하였고, 이때부터 만해(萬海)라는 호를 사용했음을 『신해음사』 작품집을 통해 확인하였다.

만해 한용운

둘째, 이 책은 한용운에 대한 새로운 인식의 가능성을 제시하였다. 여기서는 일제 말기인 1941년 8월에 대동아전쟁의 지지 여론을 조성하기 위해 김동환이 주도한 ‘임전대책협의회’에 참석한 행적에 주목하였다. 한용운은 『삼천리』나 『별건곤』 같은 대중적인 잡지에 지속적으로 글을 발표하거나 인터뷰에 응했는데, 잡지 『삼천리』는 친일행적으로 비판의 대상이 된 김동환이 주도한 잡지였고 한용운은 이 잡지에 자주 글을 발표했다. 하지만 김동환과의 관계나 임전대책협의회에 참석한 일은, 저항이라는 프레임으로 한용운을 바라본 기존연구에서는 간과해 온 부분이다.

한편, 이 책에서는 재일조선인 소설가로 널리 알려진 김석범의 선학원 관련 증언과 이 증언을 소설로 쓴 『1945년 여름』을 통해 한용운을 둘러싼 여러 맥락들을 다르게 상상해 볼 가능성도 열어두었다. 선학원은 한용운이 오랜 기간 기거했고 마지막까지 깊이 관여한 기관인데 중일전쟁 이후 일제에 협력했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이 책에서는 재일조선인 작가 김석범의 증언과 소설을 통해 일제 말기에 이곳이 독립운동과 연관되어 있었으며 건국동맹의 아지트였다는 사실을 밝혔다. 김석범의 이런 주장이 향후 여러 사료를 통해 소상하게 밝혀진다면, 한용운의 항일 독립운동에 대한 그간의 추측들이 사실로 밝혀질 수 있을 것이다. 이 책에서 밝힌 이러한 내용들은 앞으로 한용운에 대한 인식의 지평을 넓히는 계기가 되지 않을까 싶다.   
 
마지막으로, 이 책에서는 한용운 연구의 기본 텍스트가 되고 있는 증보한용운전집이 갖는 오류를 바로잡는 한편, 지금까지 작성된 여러 연보가 갖는 오류들을 확인하여 새롭게 작가 연보와 작품 연보를 작성하여 부록으로 추가하였다. 이번에 작성한 연보는 향후 한용운연구가 엄밀성을 더하는 데 기여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
    

이선이 경희대·한국현대문학/시인

경희대학교 국어국문학과를 졸업하고 동 대학원에서 한국현대문학을 전공하였다. 1991년 『문학사상』을 통해 시인으로 등단했으며, 1996년 문학의 해 기념 불교문학현상공모를 통해 평론가로 등단했다. ‘만해 한용운 문학연구’로 박사학위를 취득하였으며, 현재 경희대학교 한국어학과에 재직 중이다. 주요 저서로는 『만해시의 생명사상 연구』, 『생명과 서정』, 『상상의 열림과 떨림』, 『근대문화지형과 만해 한용운』, 『근대 한국인의 탄생』(공저), 『동아시아 근대 한국인론의 지형』(공저), 『월경하는 한국문학사』(공저), 『외국인을 위한 한국문학사』(공저)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