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지의 덫

[학술·시사 에세이]

2020-09-06     신정현 서울대 명예교수·영문학

역사에 대한 가정은 터무니없는 일이지만, 불행했던 역사들에 대해 어떤 가정을 해보는 것은 때로는 한 민족이나 한 개인의 생존에 꼭 필요한 준엄한 교훈을 준다. 티베리스 강변의 작은 도시국가로 시작해 이탈리아를 통일하고, 동-서 지중해와 갈리아를 차례로 정복하면서 역사상 유일무이한 지중해 대제국을 건설해 천여 년의 유복함을 누렸던 로마제국, 그들이 게르만족과 같은 야만 민족들을 용병으로 고용해 그들의 안위를 맡기지 않았더라면, 로마제국은 그처럼 비루하게 무너지지 않았을지 모른다. 신라가 당나라의 손을 빌어 삼국을 통일하지 않았더라면, 지금 우리는 중국의 영토에 버금갈 만큼 큰 영토를 누리며 살고 있지 않을까? 미국 땅에 토착해서 살아왔던 아메리카 원주민들이 백인 침략자들의 책략에 속아 인디언 보호구역(Indian Reservation)에 들어가 구차한 생존을 구하지 않았더라면, 아니 인디언 보호구역 밖에서 백인 침략자들과 부대끼며 살아가기를 선택했다면, 그들은 어쩌면 인디언 보호구역 안에서의 옹색한 삶을 선택했던 지금의 인디언들처럼 알코올이나 마약 중독자가 되거나, 심심치 않게 살인이나 강간을 저지르는 흉악범들이 되지는 않았을지 모른다. 개인이나 부족, 민족이나 국가 할 것 없이, 자신의 안위에 관련되는 중요한 삶을 외주(outsourcing)를 주고, 자신의 생존을 타자의 손에 맡기고 살아가는 것은 - 그 외주가 용병이든, 군대든, 구차한 생존을 보장하는 어떤 형태의 보호 장치이든 - 위험천만한 것임에 틀림없다.

“왔노라! 보았노라! 이겼노라!”(Veni. Vidi. Vici. / I came. I saw. I conquered.) 기원전 47년 줄리우스 시저가 파르나스의 군대를 무찌르고 원로원에 보낸 편지의 전문이라고 전해지는 이 말은 로마가 정복에 정복을 거듭해 역사상 유일무이한 지중해 대제국을 건설했던 과정을 한 마디로 요약한다. 전쟁을 국가가 해야 할 가장 중요한 사업이라고 생각했던 로마의 군대가 휩쓸고 간 자리에는 애통함과 절망만이 남아 있을 뿐, 그 어떤 인간적인 것도 남아있지 않았다. 전쟁에서 패한 부족이나 국가의 사람들은 여자들이나 어린 아이들까지 모두 노예가 되었고, 그들의 재산이나 귀중품들은 예외 없이 몰수되었다. 그리고 로마 제국의 귀족들이나 부호들은 전리품들을 배급받아 국방과 같은 생존에 필수적인 일들까지 평민과 노예들에게 맡기고, 호머의 시를 읽고 호화 정원을 가꾸며 지극한 호사를 누렸다.

▲ 토마스 콜레, ‘로마 제국의 멸망’ 캔버스에 유화(100×161㎝), 1836년, New York Gallery of Fine Arts 소장.

그렇다면, 지중해 연안의 모든 땅을 정복해 그 엄청난 부귀와 영화를 누렸던 로마제국은 왜 그처럼 비루하게 무너지고 말았을까? 12년여의 심혈을 기울여 쓴 책 『로마제국의 쇠퇴와 몰락』 (The History of the Decline and Fall of the Roman Empire, 1776-1788)에서 에드워드 기본(Edward Gibbon)은 로마제국의 처절한 몰락을 이렇게 기술한다. 거대 문명의 로마제국이 몰락하게 되는 것은 야만족들의 공격을 막아내지 못했기 때문인데, 로마가 야만족들의 공격에 취약하게 된 것은, 일차적으로는 황권의 약화, 정치적 부패, 물질주의의 만연, 쾌락주의, 기독교 정신의 타락 등으로 시민의식이 무너져 그들의 문명을 갈무리할 능력을 상실했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보다 중요한 것은 로마의 귀족과 부호들이 복지의 잉여에 빠져 허우적거리면서, 국가사회의 힘의 원천이 되는 “노블레스 오블리주”(noblesse oblige) - 지도층들에게 요구되는 사회적 책임과 의무 - 를 다하지 않고, 국가 방위와 같은 중요한 책무들을 평민과 용병들에게 맡겼기 때문이다. 특히, 로마의 귀족들이 복지의 잉여에 눈과 귀가 멀어, 국가의 방위를 변방의 야만족들에게 ‘하청’(outsourcing)을 주었기 때문에 로마의 군마와 병기로 무장을 한 야만족들이 반란을 일으켜 로마를 전복시켰다는 것이다. 로마가 천 년이 넘는 제국의 경영으로 변방의 모든 부족들을 복속시켜 정신적이거나 물질적인 모든 분야에서 엄청난 복지의 잉여를 누리게 되었고, 그 잉여로 정신이 혼미해져 삶의 모든 필요 - 농사일, 일상의 생활, 공장일 등의 잡일은 물론, 나라를 지키는 일까지도 - 를 변방의 소수 야만 민족들에게 외주를 주어 해결하려 했기 때문에, 그렇지 않았더라면 결코 일어날 수 없는 일이 역사 속에서 일어나게 되었다는 것이다.

▲ Cherokee Indian Reservation

로마의 몰락이 복지의 잉여가 어떻게 공동체 구성원들의 정신을 유린하는가를 보여주는 하나의 예라면, 인디언 보호구역에 들어간 아메리카 인디언들의 피폐해진 삶은 무상복지의 유혹에 빠져 자신의 삶을 외주에 맡기면 개인이나 공동체의 삶이 어떻게 무너질 수 있는가를 보여주는 또 하나의 극명한 예이다. “인디언 보호구역(Reservation)”이라는 용어는 당초에는 “원주민들이 독립된 주권을 행사할 수 있도록 유보된 땅”이라는 의미를 지녔었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차츰 “연방정부의 인디언 보호국(BIA)이 아메리카 원주민들에게 얼마간의 토지를 할당하고 일정한 자치권과 생활보조금을 주어 그들이 생활의 안정을 찾을 수 있도록 필요한 도움을 주는 공간”이라는 뜻으로 변해갔다. 현재 미국 전역에는 326개의 원주민 보호구역이 존재하며, 100만 명에 가까운 아메리카 원주민들이 그 안에 살고 있다. 1887년 “도스 법”(Dowes Act)이 제정된 이래 이 구역 안에서의 거주를 수용하는 원주민 부족들은 일인당 160 에이커 정도의 땅과 법이 정하는 바에 따른 생활 보조금을 받을 수 있다. 그렇다면, 연방정부가 내건 보편 복지의 허울을 보고 보호구역으로 이주한 아메리카 원주민들은 그곳에서 안정되고 평화로운 생활을 누릴 수 있었을까?

▲ ‘The Trail of Tears’ painted by Robert Lindneux. The ethnic cleansing of the Cherokee nation by the U.S. Army, 1838.

1830년 미국정부는 형식적인 조약을 통해 미시시피 강 동쪽에 살던 인디언 부족들을 미시시피 강 서쪽의 정해진 땅으로 이주시키는 인디언 이주법(Indian Removal Act)을 제정해 유럽계 주민들이 거주하는 지역에서 원주민들을 강제로 내쫓는 정책을 폈다. 강제 이주의 길은 고달프고 처참했다. ‘눈물의 길’(the Cherokee Trail of Tears)이라고 불리는 이 길 위에서 수 십 만 명의 인디언들이 피눈물을 쏟았고, 수 만 명의 인디언들이 죽음을 맞았다. 미시시피 서쪽에서의 삶도 고난과 절망의 삶이기는 마찬가지였다. 불모로 버려진 땅에서의 삶에 어떤 기쁨이 있었겠는가? 1851년 미국 연방의회는 원주민들과 유럽계 개척민들 사이의 긴장을 완화하기 위해 “인디언 세출법”(Indian Appropriations Act)을 제정해 오클라호마 지역에서의 인디언 보호구역 할당을 공식적으로 인정했고, 1887년에는 “도스 법”(Dowes Act) - 인디언 보호구역 내의 인디언 부족들에게 토지를 할당하고 연방정부의 재정지원을 의무화하는 법 - 을 통과시켜, 인디언들의 생활을 안정시키고자 하였다. 그럼에도, 아메리카 인디언들의 삶에 평화와 안정은 없었다. 새로이 발견된 자원을 찾아 서부로 몰려든 유럽계 개척민들과 그들의 행로를 도왔던 연방군의 위협이 상존했기 때문이다. 1890년 12월 29일 인디언 보호구역 안이었던 “피멍이 든 언덕”(Wounded Knee)에서 벌어진 인디언 대학살을 살을 저미는 아픔으로 지켜보았던 수 족(Lakota Sioux)의 족장 디 브라운(Dee Brown)은 에세이 『피멍이 든 이 언덕에 내 심장을 묻는다』(Bury My Heart at Wounded Knee)에서 이때의 참혹한 심정을 이렇게 적어 놓았다. “그들은 기억할 수조차 없을 만큼의 수많은 약속을 했었지만, 지킨 것은 오직 한 가지뿐이었다. 그들은 우리들의 땅을 빼앗겠다고 약속을 했고, 그 약속을 지켰다.”

인디언 보호구역 안에서의 아메리카 원주민들의 삶은 처음부터 궁핍과 불안이 혼재하는 아슬아슬한 삶이었다. 도스 법과 그 후의 연이은 수정입법으로 인디언들에게 할당된 토지는 형편없이 줄어들었다. 게다가, 인디언 보호구역에 할당된 토지들은 처음부터 불모에 가까운 땅들이었다. 그러나 인디언 보호구역으로 내몰린 아메리카 인디언들의 황폐해진 삶이 그들이 내몰린 열악한 생활환경이나 강제이주의 불가피성 때문만이었을까? 백인들의 무력에 대항할 힘이 없었던 그들에게 인디언 보호구역 안으로의 이주는 어쩔 수 없는 일이었을지 모른다. 그렇지만, 그들의 삶이 무너진 것에 대한 보다 큰 원인은, 어쩌면, 그들이 무상으로 할당된 토지와 보조금이라는 무상복지의 함정에 걸려들어 그들의 생존의식이 망가졌기 때문일지 모른다. 현재 미국 전역에는 2백 50만 정도의 인디언들이 산다. 그 가운데에서 2/3 정도는 생존의식을 다잡아 얼마간의 토지와 보조금이 약속된 땅 인디언 보호구역에서 뛰쳐나와 평범한 미국 시민들과 부대끼며 살아간다. 그렇지만, 약 백만 명 정도의 인디언들은 아직도 보편복지의 미몽을 꾸며 보호구역 안에서 살아간다. 2012년의 통계에 의하면, 보호구역 내에서 일없이 빈둥거리며 놀고먹는 부랑자 비율은 60%에 가깝고, 고등학교 이상 교육을 받은 사람들의 비율은 30~40% 정도에 머물고 있으며, 강간·절도·살인 등의 흉악범 비율은 20%가 넘는다. 그리고 보호구역 안의 상당수 인디언들은 그들의 생활을 보전하기 위해서 인디언 보호구역 안에 허가된 카지노에서 대부분의 시간을 보낸다. 현재 인디언 보호구역 밖에 살고 있는 인디언 인구 전체의 고등학교 이상 학력 소지자의 비율이 78%에 이른다는 사실을 감안하면, 인디언 보호구역 내 인디언들의 삶이 황폐해진 것에 대한 가장 큰 원인이 바로 무상복지라는 것은 너무나 자명하다.

로마의 몰락이나 아메리카 인디언들의 비극적 역사에서 보듯이, 역사의 몰락 가운데에서 가장 처참하고 가장 참혹한 몰락은 어쩌면 때로는 복지의 잉여로, 때로는 무상복지의 유혹을 못 이기고 빠져드는 생존의식의 결여 때문에 맞는 역사의 파산이다. 지금 우리는 복지의 잉여나 무상복지의 유혹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생각하지 않은 채, 복지 논쟁에 빠져들고 있다. 학자들은 이구동성으로 의료, 보육, 교육에서의 보편적 복지가 복지정책의 기본 방향이 되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야당의 대표들은 ‘기본 소득’이라는 무상복지 공약을 쏟아내면서 그 공약에 정당의 명운을 걸고 있다. 그리고 여당과 정부부처에서는 보편복지와 선별복지의 문제를 놓고 뜨거운 설전을 벌이며 ‘재난 지원금’ 타령을 하고 있다. 그러나 그들 중 어느 누구도 무분별한 복지가 우리의 역사를 어디로 끌고 갈 것인가에 대해 말하는 사람은 없다. 복지의 잉여가 국민들의 사회적 책무를 망각하게 하고, 무상복지의 유혹이 저소득층 사람들이 생존의식을 떨어뜨릴 수 있다는 사실을 이야기 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조선일보의 양상훈 칼럼니스트는 “국민 뜻만 추종하면 함께 망하고, 국민 뜻을 거스르면 그들 손에 망한다”에서 지금 우리 사회가 처한 복지의 실태를 이렇게 전했다. “시골 동네 노인들은 이런저런 명목으로 한 달에 50만원 안팎을 정부에서 받는다. 각 지방자치단체에서 주는 각종 현금복지 제도가 무려 2000종에 달한다. 2024년 국가 채무 비율이 GDP의 60%에 근접할 것이다. 상황이 이런 데도, 국민이나 위정자들은 어떤 위기감도 없다.”

국가와 국민이 건강해지기 위해서 가장 이상적인 복지는 스스로의 힘만으로는 자신의 필요를 충족시키기 위해 어떤 일도 할 수 없는 사람들의 생활을 안정시키는 것과 공동체 구성원들의 생존의식을 고취시켜 건강하고 유쾌한 삶을 향한 필요의 충족을 위해 열심히 일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것이다. 그리고 복지의 혜택을 받은 사람들이 국가의 존재에 대해 고마움을 느끼고, 복지의 혜택에 따르는 사회적 책무를 다하도록 하는 것이다. 만약 어떤 복지가 자신의 삶을 자신이 아닌 다른 무엇에 맡기고 살아가게 하는 것이라면, 그것은 개인과 국가를 함께 망하게 하는 길이 될 것이다.


신정현 서울대 명예교수·영문학

서울대학교 영어영문학과를 졸업하고, 동 대학원에서 영문학 석사 학위를, 미국 오클라호마주 털사대학교(The University of Tulsa)에서 영문학 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영남대학교 영어영문학과 전임강사를 거쳐 1987년부터 2015년까지 서울대학교 영어영문학과 교수로 재직했으며 현재 명예교수로 있다. 주요 논문으로는 “The Stylistics of Survival in the Poetry of Robert Lowell”, 「포스트모더니즘과 포스트모던 문학」, 「서구문학에 있어서의 포스트모더니즘」, 「포스트모더니즘과 현대미국시」, 「스페인어권 문학과 미국문학의 충돌과 상호작용」 등이 있고, 주요 저서로는 『The Trap of History: Understanding Korean Short Stories』, 『현대 미국문학론』(공저), 『포스트모던 시대의 정신』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