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본주의와 경쟁 프레임의 본질을 꿰뚫어 보다

[신간소개]

2020-09-06     김한나 기자

■ 경쟁 공화국: 믿을 건 나 하나뿐인 각자도생 시대, 잘 살기 경쟁만이 답일까? | 강수돌 지음 | 세창미디어 | 268쪽

오늘날 세상을 움직이는 힘은 무엇인가? 명백하게 ‘자본주의’일 것이다. 저자에 따르면 이 자본주의는 성과주의, 가부장주의, 인종주의, 기술주의의 네 바퀴로 질주한다. 목적지는 바로 ‘무한 이윤’이다. 이 과정에서 자본은 ‘경쟁’을 무기로 쓴다. 교묘한 경쟁의 논리는 어느새 삶 속에 스며들어, 마치 원래부터 우리에게 작동해 온 힘처럼 느껴진다. 그러나 현실은 어떤가? 학교에서, 직장에서 맹렬하게 경쟁하지만 잘 살게 되기는커녕 관계의 소외, 인간성 소외에 빠진다. 따라서 우리가 오늘날 자연스럽게 수용하는 경쟁의 가치와 이념이 정말 자유로운 선택의 결과인지, ‘선착순 달리기’에서 1등만 하면 잘 살 수 있는 것인지에 대해 비판적 성찰이 필요하다.

이 책에서는 지금껏 우리가 당연시해 온 경쟁의 원인과 이것이 야기하는 사회 전반의 문제를 살펴보고, 경쟁 논리에서 벗어나기 위한 구체적 실천 방안을 제시한다. 어두운 현실의 문제를 직면하는 것은 불편한 일이지만 결코 피해서는 안 된다. 자본주의의 그늘에서 벗어나 삶의 주체성을 회복해야만 경쟁 공화국을 치유할 수 있기 때문이다. 다음 세대를 위한 지속 가능한 삶을 꾸려야 한다. 이것은 이상적인 동시에 가장 현실적인 해답이다.

한국 사회에서 각자도생의 삶이 본격화한 것은 1997년 IMF 경제위기 때부터다. 그나마 존재했던 인간적 유대감이 지워지고 뼛속 깊은 ‘IMF 트라우마’가 남았다. 국가와 노조, 공동체와 연대는 세계자본의 잠식에서 노동자를 보호하지 못했고 노동자들은 그대로 실업과 자살에 내몰렸다. 이러한 사회적 트라우마는 강자 동일시 심리를 강화하고 각자도생의 삶을 전면화했다. 전 세계적으로는 어떤가? 제1, 2차 세계대전과 2008년 미국발 세계금융위기는 수많은 사람을 피폐한 삶으로 몰아넣었고 모두가 경쟁과 이윤에 더욱 집착하게 만들었다. 결국 자본의 강제력이 나날이 강화되어 지금의 무한경쟁 사회에 이르렀다.

▲ 저자 강수돌 교수

경쟁과 이윤 시스템 속에선 온갖 인간적 수모가 발생한다. ‘나’ 하나만, 아니 ‘내 아이까지만’이라도 상층부로 올라서려는 피라미드 사회에서는 모두가 스트레스와 불안감에 시달린다. 아이들은 ‘다 너희 장래를 위한 것’이라는 말을 거역하기 힘들다. 삶의 질, 참된 행복 같은 것은 먼 이야기다. 그러니 경쟁 질서 자체를 바꾸지 않고서는 아무런 희망이 없다. 구체적으로 자본의 세계화 물결을 민주적으로 통제하기 위한 사회 시스템적 노력이 필요하고, 동시에 사람들이 노동, 화폐, 상품 가치에 갇혀 개발 중독증에 빠지지 않도록 우애의 인간관계를 복원해야 한다. 자본에 대한 근본 성찰, 자본의 민주적 통제, 그리고 자본의 지양이라는 세 가지 단계를 통해 ‘연대와 선물의 생명 시스템’, ‘자율적이고 자치적인 생태 공동체’를 실현할 수 있다.

‘우분투(UBUNTU)’는 아프리카의 수백 개 부족이 쓰는 말로, 한마디로 공동체 정신을 가리킨다. ‘당신이 있어 우리가 있다’는 뜻. 맨 먼저 도착한 사람이 바구니 속 사탕을 모두 가질 수 있는 게임에서, 다같이 손을 잡고 바구니를 향해 달리는 아프리카 아이들은 이 정신을 깊이 품고 있다. 지혜와 용기가 없이는 실천이 불가능한 원리다. 각자도생의 사회, ‘나만 잘 살면 된다’는 생각을 과감히 버려야 공생 사회로 나아갈 수 있다.

인류가 지금과 같은 경쟁 사회에서 살아온 기간은 길게 보아도 500년 내외이다. 지금도 세계 곳곳의 원주민 내지 선주민, 혹은 우리의 농어촌 공동체에서 비경쟁 사회의 모습을 확인할 수 있다. 경쟁하지 않아도 얼마든지 잘 살 수 있다. 물론 천 리 길도 한 걸음부터 가야 하는 법. 저자가 제안하는 구체적 실천 방안은 다음과 같다. ‘진정 잘 산다는 것이 무엇인지 성찰하고 토론하기’, ‘경쟁이 없으면 발전이 없다는 논리를 반박해 보기’, ‘나나 내 자녀가 진정 자율적 인간으로 살도록 실천하기’, ‘내 안의 두려움을 느껴 보면서 그 정체나 뿌리가 무엇인지 이웃들과 이야기 나누기’ 등…. 이처럼 자본, 상품, 화폐, 노동을 넘어 새로운 삶의 방식을 시도할 때, 경쟁으로 피폐해진 우리 사회를 치유하고 자율적인 삶, 연대와 우애의 삶을 회복할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