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 존재를 그려낸 사마천의 뛰어남을 읽어내다

[신간소개]

2020-08-23     김한나 기자

■ 기록자의 윤리, 역사의 마음을 생각하다: 문학으로서의 『사기』 읽기 | 최경열 지음 | 북드라망 | 464쪽

동양고전학자인 저자가 「항우본기」, 「회음후열전」, 「백이열전」, 「자객열전」 등의 문장과 단락 구성을 세세히 살펴가며, 후대 사서(史書)의 전범이 된 『사기』가 후대의 사서와 갈라져 문학으로 나아간 지점들을 추적한다. 저자는 궁형을 당한 인간 사마천과 기록자 사마천 사이에 흐르는 분노와 갈등 그리고 마음의 뒤엉킴에 주목한다. 그리고 문학이라는 감정에 호소하는 방식과 기록성이라는 이성적 기술 방식이 맞물리는 곳, 이것이 『사기』의 문학성을 형성하고 지탱한다고 말한다. 또 『사기』가 문학에서도 모범이 되는 이유 중 하나로 모순적인 존재인 인간을 관념적으로 그려낸 것이 아니라 그 모순 속에서 갈등하며 타인과 관계를 맺고 비극으로 나아가는 모습까지 폭넓게 인간을 다룬다는 데 있다고 말한다. 이것은 사마천의 인간 이해의 깊이를 나타내며, 저자는 이 책에서 『사기』의 서사적 구성력의 뛰어남과 함께 이런 사마천의 인간에 대한 애정과 통찰력을 함께 읽어내고 있다.

「임소경서」에 남아 있는 개인적인 감회와 「자서」의 공적인 심각함 사이의 갈등과 긴장이 『사기』를 특별한 저술로 만들었다고 생각한다. 「임소경서」는 개인적인 성격이 강해 보이지만 공적인 지향이 담겨 있다. 「자서」는 책임감과 진지한 사명감이 주조를 이루지만 감추지 못하는 억울함이 저변에 흐른다. 복잡하게 맞물린 마음의 뒤엉킴, 그리고 그 극복이 『사기』를 읽는 한 길이기도 하다. 문학이라는 감정에 호소하는 방식과 기록성이라는 이성적 기술 방식이 맞물리는 곳, 이것이 『사기』의 문학성을 형성하고 지탱한다.(1장 『사기』의 주변, 54쪽)

열전의 등장인물은 인간의 어떤 속성인 선/악, 미덕/악덕 등등을 표상하는데 그 다채로움이 독자를 놀라게도 즐겁게도 한다. 인간이란 존재는 헤아릴 수 없는 다면체로, 모순을 필연적으로 안고 간다는 사실을 적시했다는 데 사마천의 뛰어남이 있다. 『사기』가 문학에서도 모범이 되는 이유 중 하나가 이 점이다. 인간은 모순의 존재다. 사마천은 모순적인 존재라는 정태적인 정의 속에 인간을 관념적으로 매몰시키지 않는다. 모순 속에서 갈등하고 자신과 혹은 타인과 긴장 관계에 놓이면서 인간의 드라마가, 심지어 비극까지 생기는 것이다. 사마천 인간학의 요체가 여기에 있다. 『사기』에는 작은 역할은 있어도 작은 인간은 없다.(4장 회의주의자의 위안처―「백이열전」, 242쪽)

▲ 사마천(기원전 145년경-기원전 86년경)

『사기』의 가장 두드러진 특징은 현대사라는 사실이다. 나는 『사기』를 논할 때 이 점을 잊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다. 내가 지금 살고 있는 당대의 일을 기록한다고 상상해야 한다. 중국의 무수한 기록 가운데 현대사를 기록한 글이 있는지 생각해 보라. 모두 일이 완결된 후 사태가 끝나고 사후에 정리한 것이다. (그렇다고 글의 가치가 훼손되지는 않는다. 나는 『사기』가 다를 수밖에 없는 점을 지적하고 있다.) 현대사 『사기』. 기록자가 당대를 기록하는 일은 엄정해야 한다. 쉽지 않은 문제다. 개인의 아픔이라는 휘발성 강한 감정기억이 개입하기에 임무는 더 어려워진다. 자료(data)를 객관화하기 어렵다는 기본 사항에서부터 『사기』의 경우에는 개인의 문제가 정면으로 개입해 있어 겹겹이 난해한 장애물투성이다. 사마천이 장애물을 모두 성공적으로 통과했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하지만 개인과 관련된 문제는 최소화할 줄 알았다? 최소화하려 통제했다고 말할 수 있다. 그의 노력을 기록자의 윤리라고 생각한다. ‘엄정’이라는 말도 윤리라는 맥락에서 쓴 것이었다. 엄격하게 사실을 직시하고 자신의 해석을 다잡는 일. 할 수 없어서가 아니라 할 수 있는데도 말을 아끼고 가리는 일. 발언권이 있는데도 자신을 절제할 줄 아는 능력. 그것을 윤리라고 해야 할 것이다.(6장 지기를 위해 죽다―「자객열전」, 380~381쪽)

흉노 토벌을 다룬 「이장군열전」 속 ‘이릉전’은 「임소경에게 보낸 답장」과 겹치는 부분이 많은데 두 글은 완전히 성격이 다르다. ‘이릉전’은 냉정한 어조를 유지한다. 억눌러 썼다는 느낌이 들 정도인 데 비해 「임소경에게 보낸 답장」은 펄펄 끓어오르는 글로 열기가 상당하다. 같은 일에 대한 두 가지 상반되는 태도가 흥미롭다. 이는 ‘이릉전’, 즉 『사기』 서술이 사신의 경우와 전혀 달랐음을 증명한다. 기록자와 시간·감정의 문제를 명료하게 인식했다는 증거이고 얼마만큼 긴장관계를 유지했는지 가늠할 수 있는 시금석이다. 궁형을 당한 인간 사마천과 기록자 사마천이 갈등하고 긴장하면서 기록자로서의 저자가 두드러지게 인지되는 순간이기도 하다. 사마천이 유지했던 긴장감이 『사기』의 밀도를 만든 바탕으로, 후대의 기록물과 갈라져 문학으로 나아간 지점이다. 사마천의 감정을 경험하게 되는 원천이 여기서 흘러나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