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축가 왕수가 들려주는 ‘나의 작품, 나의 건축관’

[신간소개]

2020-07-26     김한나 기자

■ 집을 짓다: 건축을 마주하는 태도 | 왕수 지음, 김영문 옮김 | 아트북스 | 368쪽

건축수필집을 표방하고 있는 이 책은 집을 짓는 행위에 대한 일종의 도도한 잡설집이다. 수필, 회고록, 논문, 인터뷰, 사진, 산수화 등 다양한 읽을거리와 볼거리로 구성되어 있지만, 왕수 자신의 대표적인 건축물을 짓는 과정에서 부딪히는 각종 에피소드를 펼치면서 그의 기저를 이루는 사색의 깊이와 자연에 대한 사랑도 드러내 보인다. 마치 주변의 원림에 발을 들여놓았다가 점점 그윽하고 깊숙한 산속의 비경으로 빠져드는 느낌이랄까? 아니면 심오한 철학 세계를 거쳐 현실 세계로 비로소 빠져나온 듯한 느낌이랄까? 이 책은 마치 풍부한 차이를 모아 살아 숨 쉬는 집을 지으려는 그의 건축 유형학과 닮아 있다.

왕수는 도서관 사서인 어머니와 극단 연기자인 아버지를 둔 덕에 문학과 예술로 기본기를 다질 수 있었다. 자연스레 어릴 때부터 문인기풍을 몸에 익혔고, 그것을 건축에 연결할 수 있었다. 왕수는 ‘건축’ 대신 ‘영조’라는 용어를, ‘설계’ 대신 ‘흥조’라는 용어를 내세운다. 또 ‘건축가’ 대신에 기술적인 측면을 강조하는 ‘건축사’를 사용한다. 일반적인 건축이라 함은 ‘창조력’이 필요한 활동이다. 여기에는 건축사의 자아가 표현되어야 하고, 시대의 흐름도 놓쳐서는 안 되며 전통과 역사도 계승해야 한다. 하지만 ‘건축’이라는 용어에는 ‘집짓기’만을 중요하게 취급하는 경향이 숨어 있다. 따라서 왕수가 내세우는 ‘영조’와 ‘흥조’라는 말에는 건축사 개인의 경험과 태도를 중시하고 건축활동이 언제나 순수한 흥미에서 시작됨을 의미한다. ‘영조’와 ‘흥조’ 모두 중국의 건축 전통에서 가져왔지만 왕수는 여기에 내포된 능동적이고 주체적인 의미를 되살려 근대 건축의 차갑고 형식적인 성격을 넘어서고자 한다.

▲ '건축계 노벨상’ 프리츠커상 받은 중국 건축가 왕수

샹산캠퍼스는 왕수 스스로 만족하는 작품으로, 단기간에 저렴한 공사비로 완공했다. 약 50미터 높이의 작은 항저우 샹산(象山)에 자리할 중국미술대학교 샹산캠퍼스를 설계하면서 왕수는 방대한 캠퍼스가 그 작은 샹산과 공존할 수 있을까를 먼저 고민했다고 한다. 캠퍼스가 주변 산세와 자연스럽게 어우러질 수 있게 하는 게 최대 목표였다. 그 고민을 중국 전통식 건축 구조인 대문에서 행랑채, 안채, 뒤채로 이어지는 대합원 형식에서 답을 찾았다고 한다. 재료를 선택하는 데 있어서도 남달랐다. 그 땅에 뿌리내리고 있는 재료를 사용한다면 자연환경에 미치는 장기적 영향이 적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일종의 본토 인문의식의 출발점이라고 할 수 있겠다. 철거지의 전통가옥에서 나온 폐기된 기와를 재활용하고, 연결고리와 빗장은 시골의 대장장이가 직접 만들어준 것을 사용했다. 주류 건축관과는 차이가 두드러지는 왕수만이 새로이 구현한 작업이라고 할 만하다.

왕수는 생활과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는 건축, 즉 중국 원림(園林)에 관심을 두고 자신의 건축물은 모두 원림이라고 이름한다. 원나라 4대 화가로 꼽히는 예찬(倪瓚, 1301~74)의 산수화 「용슬재도」에서 전형적인 중국 원림의 구도를 발견하고 인간의 ‘태도’를 강조하면서 중국 원림 건축학을 정의한다. 겉보기에 원림과 비슷하거나 혹은 전혀 그렇지 않거나와는 상관없이 원림은 다양한 형태로 왕수의 건축 속에 진입해 있다. 왕수는 또한 중국 원림의 일상성과 지속성을 강조한다. 예를 들어 “건물이 완공됨으로써 건축 행위가 끝나는 것이 아니다. 이는 결코 원림이 지향하는 바가 아니다. 원림의 주인은 끊임없이 시공간을 ‘경영하고(營)’ 경관을 ‘지음(造)’으로써 원림을 완성해 나가고 일상적인 삶을 이루어나가는 것이 목표”가 되어야 한다고 역설한다.

왕수는 “집은 하나의 우주이다. 그런고로 집을 짓는 행위를 하나의 작은 세계를 창조하는 일”이라고 말한다. 그는 책 제목에도 건축 대신 ‘집을 짓다(造房子)’라는 용어를 사용한다. 이에 따르면 그가 지은 집은 크든 작든 모두 원림인 셈이다. 예로부터 정취를 아는 문인이야말로 진실로 정원을 만들 만한 능력이 있으니, 오늘날에도 문인과 건축 활동을 결합하는 대학교육이 필요하다고 주장하고 있다. 원림과 건축은 사물을 관조하는 일종의 정취이며, 뜻밖의 장소에서 자연의 이치를 바라보는 경쾌한 시선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