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학상담소

[리베르타스]

2020-07-13     정영기 서평위원/호서대·과학철학

20년 전만해도 상담은 심리학에서 전담하는 것으로 알고 있었다. 그러나 요즘은 철학상담이나 철학치료라는 말이 낯설지 않은 정도가 되었다. 2007년 우리나라에도 철학상담학회가 결성되어 철학상담치료학회로 활동하고 있으며 『철학실천과 상담』이라는 학술지를 간행하고 있다. 루 매리노프의 저서 『철학상담소』(북로드, 2006)를 소개한다.    

『철학상담소』는 전체 12장으로 구성되어 있다. 매리노프는 1장 ”누가 나를 미치게 하는가?”에서 먼저 질병과 불편함에 대해서 언급하면서 질병은 신체에 영향을 미쳐 정상적인 기능을 해치거나 방해하는 것이라고 정의한다. 매리노프는 우리가 인생에서 중요한 사건에 대해 갖는 걱정이나 불편함은 우리의 관점을 조정하면 편안함으로 바뀔 수 있으므로 질병으로 악화되기 전에 불편함을 철학적으로 해소시키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주장한다. 이 책의 목적은 불편함(dis-ease)을 편안함(ease)으로 전환시켜 생활을 변화시키는 과정에서 철학이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인지를 보여주는 것이다.

2장은 “올바름을 보는 열한 개의 시선”이다. 사실 우리가 경험하는 갈등과 싸움의 배경에는 올바름, 옮음이 무엇인가에 대한 서로 다른 견해 때문인 경우가 많다. 의무론, 목적론, 덕윤리학, 종교윤리학, 실존주의, 객관주의 윤리학, 프리마파시 의무론(조건적 의무론), 사회생물학, 타자중심 윤리학, 불교윤리학, 법적 도덕론이 그 열한 개 시선이다. 이렇게 열한 개의 올바름이 있다는 것을 아는 것만으로도 자신의 견해를 고집할 이유는 많이 줄어든다. 저자는 열한 개의 올바름을 소개하면서 우리가 잘 알고 있는 로빈 후드의 전설을 적용해서 과연 로빈 후드의 도둑질은 올바른 것인가에 대해 살펴본다.

철학상담소의 장점은 다양한 사례를 수집해서 철학상담의 실천적 노력을 제시하는 것이다. 저자는 재택근무자인 에드가 윗층의 아이들이 소란스럽게 구는 문제로 진행된 상담사례를 소개한다. 즉 시끄러운 이웃에 대처하는 법이다. 많은 사람들이 경험했을 법한 일이다. 대처방안으로 방어, 우호, 공격, 보복, 도피, 전화위복을 제시한다. 이 경우 에드는 훨씬 더 조용한 곳으로 이사하면서 전화위복을 꾀했다. 물론 에드가 왜 이사를 가야 하느냐라는 반론이 있을 수 있지만 평화는 전쟁보다 항상 낫고, 더 좋은 곳에서 살 수 있도록 만들어준 이웃에 감사하는 마음을 갖는다면 평온한 생활을 누릴 수 있을 것이라는 것을 에드가 공감하면서 해결되었다.    

저자는 3장 “머리와 가슴 사이의 거리”(부제, 이성과 열정)를 다루면서 불교의 교리 십계(十界)를 소개한다. 십계는 지옥계(Hell), 아귀계(Hunger), 축생계(Instinct), 수라계(Anger), 인간계(Tranquility), 천상계(Rapture), 성문계(Learning), 연각계(Realization), 보살계(Helping), 불계(Awakening)이다. 십계의 가르침에 따르면 본능적인 마음의 상태는 그 자체로서 좋은 것도 아니고 나쁜 것도 아니다. 중요한 것은 그 상태에서 당신이 무엇을 하느냐이다. 우리는 지옥계가 나쁜 곳이라고 알고 있다. 그러면 거기에서 무슨 좋은 일이 생길 수 있단 말인가? 하나만 지적하면 위대한 예술작품이 탄생할 수 있다. 아귀계 역시 나쁜 곳이라고 알고 있지만 위대한 사회적 정치적 개혁은 정의에 목마른 지도자들에 의해서 이루어진다.  

7장 “너는 내 지옥”은 자아와 타자의 갈등 문제를 다루고 있다. 사르트르의 말 “타인은 지옥이다”라는 말이 떠오르는 장이다. 프로테스탄티즘을 신봉하는 제인은 아들 릭이 아비가일이라는 유대교 여성과 결혼하고 딸 켈리가 이브라힘이라는 이슬람교도와 결혼하는 문제로 저자와 철학상담을 진행하였다. 한 가족 내에 종교 분쟁의 불씨가 도사리고 있는 형국이다. 제인은 신앙보다는 로맨틱한 사랑이 우선이라고 생각하고 자식들의 결혼에 반대하지 않았다. 여러 가지 갈등이 있었지만 바비큐 파티를 하면서 통제불능의 상태가 되었다. 아비가일은 유대인의 율법에 맞는 음식을 고집하지 않았으나 햄이나 돼지고기를 먹지 않았다. 아브라힘은 오직 닭고기나 쇠고기만을 먹으려고 하였다. 릭과 켈리는 중동의 정치에 관해 끊임없이 논쟁했고, 아비가일과 이브라힘은 서로 농담하면서 날카로운 시선을 주고받았다,

여기서 매리노프는 해결책으로 주역의 14번째 괘(卦)인 대유(大有)를 내놓는다. 대유괘는 “태양이 중천에 높이 떠서 강한 빛과 열을 골고루 비춰주는 형상이며, 귀중한 지위에 있는 음효(⚋)가 온화한 포용력을 가지고 주위의 양효(⚊)를 이끌고 있는 형상이다.” 괘사를 풀이하면 “태양은 선과 악을 모두 가져온다. 악은 싸워서 물리치고 선은 받아들여 키워야 한다.” 여기서 선은 가족의 화합과 지속을 의미하고, 악은 가족을 분열시키는 정치적, 종교적 갈등을 의미한다. 제인을 나타내는 음효가 갈등 당사자를 나타내는 다수의 양효를 어우르고 있다. 즉 제인이 넓고 너그러운 마음으로 아량과 관용을 베풀어서 가족이 각자 하고 싶은 일을 하도록 허용하라는 제안을 하고 있는 것이다.

8장은 “남과 여, 그 끝없는 평행선”이며 남녀 간의 사랑과 성, 결혼 문제를 다루고 있다. 매리노프는 남녀는 항상 서로에게서 편안함을 얻고자 하지만 결국에는 불편함을 자초하는 경우가 다반사라고 말하며, 남녀 사이의 편안함을 회복하려면 무엇보다도 우리 각자와 상대방에 대해 정직하게 들여다보아야 한다고 말한다. 매리노프는 남녀의 차이를 다음과 같이 말한다. “남자는 자신을 세계 속에 홀로 서 있는 독립적 개체로 간주하는 경향이 있다. 반면에 여자는 자신을 주체로 간주하고 다른 주체들과 정서적으로 관계 맺기를 좋아한다. 일반적으로 남자는 명함으로 자신을 규정하고 업적에 근거해서 자신을 평가하는 반면에, 여자는 대인관계로 자신을 규정하고 그 관계의 성패에 근거해서 자신을 평가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저자는 찾아오는 의뢰인 중에 직장생활의 고충을 호소하는 사람들이 많은데 근본적인 문제는 직장을 바라보는 남자와 여자의 차이에서 비롯된 경우가 많다고 지적한다. “남자는 직장을 사냥터로 간주한다. 큰 사냥감을 포획하는 대신 봉급을 받는다는 점에서 사냥은 상징적인 것이 되긴 했지만 남자들 사이에서는 경쟁, 동맹, 위계구조 같은 것들이 여전히 맹위를 떨치고 있다.” “여성 또한 최고의 약탈자이다. 하지만 남성 자체를 주된 표적으로 삼고 있다는 점에서 남성약탈자와 구분된다. 전술적으로는 남성의 성적 사냥감으로 위장하고 있지만 궁극적으로는 결혼을 통해 남성을 정복하는 데 그 전략적 목표를 두고 있다”고 말한다.

남녀 간의 갈등 문제에 대한 저자의 처방을 들어보자. 오늘날 남자와 여자는 함께 사냥을 한다. 그러나 둘 다 딜레마에 직면해 있으니 본능은 항상 에로스를 원하고 직장은 필로스를 요구하기 때문이다. 성차별은 더 이상 가능하지 않지만 성적 갈등은 용납될 수 없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일어난다. 어쩌면 좋은가? 초월하라. 이것이 최선의 방책이다. 여기서 말하는 초월은 의식의 초월을 의미한다. 즉 나 자신과 상대방 모두를 분명하게 자각함으로써 그 둘 사이의 갈등을 뛰어넘는 것을 말한다. 그렇다면 어떻게 상대방을 파악한다는 말인가? 매리노프는 내면에 숨어있는 상대방을 발견하라고 권한다. 많은 남자들은 나이가 들면서 덜 공격적이 되는 대신 더 교육적이 되고, 여러 가지 관계를 소중히 여긴다. 반면에 많은 여자들은 나이가 들면서 추상적인 원칙들을 더 순순히 받아들이며, 강력한 지도자가 되기도 하고 현명한 의논 상대가 되기도 한다.  

우리는 인생의 여정에서 수많은 종류의 질병과 불편함을 만난다. 우리에게 괴로움을 주는 것이 질병과 불편함이라는 것을 알았다면 다음 단계는 그것들이 구체적으로 어떤 괴로움을 주는지를 아는 것이다. 질병은 신체적 통증을 주고 불편함은 마음의 괴로움을 준다. 마음의 괴로움은 질병에 기인할 수도 있고 불편함에 기인할 수도 있다. 매리노프는 괴로움을 일으키는 신념, 선입견, 습관이 무엇인지를 잘 파악해서 바꿀 것은 바꾸고 버릴 것은 버림으로써 궁극적으로 괴로움을 줄이거나 해소시키는 것이 우리가 해야 할 과제라고 지적하며, 철학상담이 필요한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고 주장한다.


정영기 서평위원/호서대·과학철학

고려대학교 철학과를 졸업하고 동대학원에서 철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서양철학(과학철학) 전공으로 호서대학교 창의교양학부 교수로 재직 중이다. KAIST 대우교수, 충남대 초빙교수, 국회 입법고시출제위원을 역임했으며, 한국동서철학회 차기회장이다. 저서로는 <과학적 설명과 비단조논리>, <귀납논리와 과학철학>, <철학과 영상문화>, <논리와 사고>, <논리적 사고와 표현>, <인문학 독서토론 20선>이 있으며, 역서로는 <근대철학사-데카르트에서 칸트까지>, <현대경험주의와 분석철학>, <공학철학>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