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독한 아이러니, 난처함 속에 던져진 일상

[최승연의 뮤지컬 인사이트] 서사적 음악극, 뮤지컬 '유린타운'

2020-06-08     최승연·청강문화산업대 공연예술스쿨/뮤지컬평론가

갑자기 모든 것에서부터 한 발 물러나 진지하게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를 사유하게 되는 요즘이다. 막연히 생각했던 미래상이 불현듯 일상이 되어 버렸고 시간은 불연속적인 흐름 속에 있는 듯 도드라진다. 특히 일회적인 것의 아우라가 핵심이었던 공연은 극장이 전염병의 온상이 될 수 있다는 공포와 불안감 속에서 규모가 크게 축소되고 있으며, 그 결과 첨예한 반론 속에서도 공연을 영상문법과 융합해야 한다는 전망이 제기되고 있다. 미래를 예측하기도 상상하기도 어려운 시점이다.

브레히트와 쿠르트 바일이 주창했던 ‘서사적 음악극’은 드라마와 음악을 불연속적으로 만들어 현재를 낯설게 하는 방식을 활용했다. 잘 알려져 있듯 브레히트의 서사극 이론을 적용시킨 모델이다. 이 음악극 모델을 적용한 <서푼짜리 오페라>(1928)는 초연 당시(1933) 지적인 작업으로 인정받았으나 흥행에는 실패했고 바일이 뮤지컬 스타 로테 레냐와 결혼하면서 적극적으로 브로드웨이에서 뮤지컬 작업을 이어가자 최초의 통합 뮤지컬로 인정되는 <오클라호마>(1943)의 성립 과정에도 일정 부분 영향을 미쳤다. 그리고 브레히트와 바일의 사후 <서푼짜리 오페라>가 흥행에 성공(1955)하면서 이 음악극 모델은 브레히트의 강력한 지지를 받았던 마크 블리츠스타인의 <요람은 흔들리리라The Cradle Will Rock>(1938)와 함께 ‘서사적 음악극’의 계열을 형성하게 된다.

▲ 뮤지컬 '유린타운'

이 글에서 주목하고 싶은 작품은, 서사적 음악극 계열을 잇고 있는 뮤지컬 <유린타운>(프린지NYC에서 1999년에 공연된 이후 2001년에 오프-브로드웨이 헨리 밀러 극장에서 공연됨)이다. 극작/작사 그렉 커티스와 작곡/작사 마크 홀맨이 시카고의 카디프 자이언트 씨어터 컴퍼니의 앙상블로 함께 작업하면서 아이디어를 발전시킨 작품이다. 이들은 컴퍼니에서 부조리한 극적 상황에 놓인 다양한 인물들이 등장하는 블랙 코미디 스타일을 두드러지게 실험했고, 이 양식을 공유하면서 <유린타운>을 구체화시켰다. 드라마와 음악의 불연속성 아래 <서푼짜리 오페라>의 넘버 ‘The Morning Hymn of Peachum’을 <유린타운>의 페니가 부르는 ‘It's a Privilege to Pee’의 재료로 활용하며 서사적 음악극의 비전을 명확히 했다. 뿐만 아니라, 바일이 그랬듯 음악의 어두운 분위기를 조성하기 위해 재즈 스타일의 넘버를 작품 전체에 적절하게 배치하고, 극적 상황으로부터 거리감을 조성하기 위해 기존의 유명 브로드웨이 뮤지컬들(레너드 번스타인의 <웨스트 사이드 스토리>, 프랭크 로써의 <아가씨와 건달들>, 프랭크 와일드혼의 <시빌 워> 등)의 넘버에서 직접적인 소스를 취하면서 패러디 효과를 활용했다.

<유린타운>은 그 제목(Urinetown)이 지시하는 대로 ‘오줌마을’에서 벌어지는 일을 다룬다. 작품의 모든 것은 독특한 설정에서 비롯된다. 20년 이상 지독한 가뭄에 시달리고 있는 유린타운에서는, 절대적인 물 부족 현상을 조절하기 위해 ‘유린 굿 컴퍼니(Urine Good Company)’라는 회사가 모든 화장실을 독점한다. 개인 화장실은 소유할 수 없으며 심지어 모든 공용 화장실은 ‘유료’로 운영된다는 법률이 마을을 지배한다. 사람들은 모두 너무나 가난하고, 독점적인 대기업의 횡포 아래 날이 갈수록 오르는 화장실 사용료 때문에 고통 받는다. 만약 누군가 용변을 참지 못해 아무 데서나 해결하는 날에는 회장 클로드웰의 수족인 경찰들에 의해 ‘유린타운’이라는 곳으로 바로 끌려간다. 정경유착에 공권력마저 땅에 떨어진 상황인 것이다.

▲ 뮤지컬 '유린타운'

작품의 아이러니는 크게 두 가지 측면에서 발생한다. 사람들은 유린타운으로 끌려갈까봐 용변을 참으며 클로드웰에게 돈을 바치지만 유린타운의 실체란 없을 뿐더러 그저 죽음만이 있다는 점이다. 또한 클로드웰이 정한 법률이 실체가 없는 거짓임을 깨달은 주인공 바비가 연인 호프(클로드웰의 딸이다)의 응원에 힘입어 민중봉기를 일으키지만 허무하게 죽음을 맞고, 이후 그 뒤를 이은 호프가 아버지를 죽이고 모든 화장실을 무료로 전환하지만 더 심해진 가뭄 앞에서 결국 아버지를 능가하는 횡포를 부리는 동시에 민중들은 다시 원래의 질서로 돌아가기를 원한다는 점이다. 작품은 해설자를 통해 이 지독한 아이러니를 장면으로 ‘보여주기’에 앞서 ‘이야기로 전달’하는 방식을 취한다. 클로드웰의 수족인 부패한 경찰 록스탁은 해설자를 겸하면서 객석에 유린타운의 실체를 말로 ‘환기’시키고 ‘후일담’으로 봉기 이후를 ‘전달’한다. 또 다른 해설자 리틀 샐리는 아이의 눈으로 은폐된 것들에 대한 결정적인 질문을 이어가며 록스탁의 간담을 서늘하게 만든다. 드라마와 음악 사이의 불연속은 극의 안팎을 넘나드는 이들의 존재로 인해 유기적으로 강조된다.

드라마의 앞뒤 맥락이 유려하게 흐르지 않는 <유린타운>의 분절적인 속성은 다음과 같은 질문을 내포하며 그 자체로 극의 전략이 된다. 작품의 시그니처와 같은 가스펠 넘버 ‘Run, Freedom, Run’이 끝난 후 사람들은 왜 다시 바비의 계획을 의심하는가? <유린타운>의 민중봉기는 왜 실패했는가? 호프는 아버지를 죽이고 세운 ‘바비 스트롱 기념 화장실 협회’를 내버려두고 왜 악독한 기업가로 변모하는가? 이 모든 질문에 대해 <유린타운>은 정답을 내려주지 않는다. 다만 강자와 약자에 대한 유토피아적 전망을 배반하는 극의 흐름을 낯설게 응시하며 질문을 이어갈 뿐이다. 대책 없는 순수함과 강력한 통제는 선도 악도 아닌 개인의 선택이라는 것. <유린타운>은 이 난처함 속에 던져진 인간들의 모습을 표상한다. 공포와 불안감 속에 놓인 지금/여기의 모습은 <유린타운>의 세상이 환기하는 그것과 매우 닮아 있다.


최승연·청강문화산업대 공연예술스쿨/뮤지컬평론가

런던대학교(로열 할러웨이)에서 연극학 석사를, 고려대에서 국어국문학 박사를 했다. 고려대 민족문화연구원 국제한국학센터 연구교수, 워싱턴 대학교(시애틀) 동아시아학과 객원연구원 등을 역임했으며, 현재 청강문화산업대학교 공연예술스쿨 교수로 있다. 주요 논저로는 “한국 창작뮤지컬에서 재현된 서울의 양상”, “여성국극의 혼종적 특징에 대한 연구”, “한국적인 것’의 구상과 재현의 방식”, “번역된 문화와 한국적 디코딩”, “‘근대적 지식인 되기’를 향한 욕망의 서사”, 『제국의 수도, 모더니티를 만나다』(공역)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