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직한 지성인이 필요한 시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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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직한 지성인이 필요한 시대다
  • 민경찬 논설고문/연세대 명예특임교수, 과실연 명예대표
  • 승인 2019.12.13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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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경찬 칼럼]

지성인이란 지식을 정리하며 새로운 인식을 낳게 하는 작용을 하며, 자기만의 영혼을 가지고 양심에 따라 시대의 목소리를 내는 사람이라고 정의된다. 한 역사학자에 따르면, 지난 40년간의 변화 중 가장 암시하는 바가 큰 것은 ‘지성인의 실종’이라고 한다. 20세기는 지성인의 세계로서, 이들은 권력과 국가에 맞서 공익과 국민을 지키는 대변자 역할을 떠맡았으며, 모든 영역에서 공적 담론을 형성했다는 것이다.

우리 대학 사회도 마찬가지다. 1990년대 들면서 대학의 수는 급증하며 졸업생의 취업률이 핵심지표의 하나가 되었고, BK21 등 연구재원이 늘어나면서 SCI 게재 논문수를 비롯한 수치적 연구 성과에 교수들은 올 인하게 되었다. 이러한 흐름에서 ‘지성의 상아탑’이란 말 자체가 구시대적으로 치부되고, ‘인물’, ‘학풍‘, ’담론‘이라는 용어는 회자조차 되지 않는다. 취업률, 재정확보 규모, 국내외 대학평가 순위만 주목되어 왔다.
 
요즈음 우리 사회는 더욱 혼란스럽다. 그동안 당연히 상식적이고도 보편적인 가치들조차도 재해석해야 하는 상황으로 변했다. 옳고 그름, 죄송함과 뻔뻔함, 겸손함과 교만함 등 대척적인 개념조차 입장에 따라 전혀 다르게 해석이 되면서, 새로운 갈등들을 만들어낸다. 도덕적 판단, 불편부당성, 정의, 공정성 등에 대한 구분이 애매해졌다. 모든 영역이 ‘정치화’되면서 한국 민주주의 자체에 대한 위기론도 나오고 있다.

그동안 우리 사회는 산업화 과정을 거치며, 지식이라는 수단, 기술을 가진 사람을 양성하는 데만 초점을 맞춰왔다, 4차산업혁명을 외치는 오늘도 마찬가지 모습이다. 지식인과 지성인을 구별조차 못하면서, 지식이 인격과 단절된 기회주의적이거나 위선적인 지식인들을 종종 바라보게 된다. 이는 모두를 어려서부터 독자생존에 매달리는 소시민으로 만들어온 우리 교육의 총체적인 난맥상의 결과이다

그러면 어디에서 미래 희망을 찾을 수 있는 것인가? 그래도 결국 사람에서 찾아야 한다. 이는 그래도 ‘지성’을 논할 수 있는 대학인들에게 걸 수밖에 없다. 스스로 자기 자신과 주위의 사람과 환경의 가치를 ‘타자’의 입장에서 제대로 깊이 이해하고 그 가치를 높이며, 더 나아가 새로운 가치를 창출하는 인재를 키우는 일이다. 매우 빠르게 변하는 AI, 바이오 시대지만, 독일 칼 야스퍼스의 ‘대학의 이념’을 다시 살려야 한다.

“대학의 이념은 생동하는 정신이며, 하나의 이상을 향해 나아가는 것이다. ... 대학의 목적은 근원적인 지적 욕구의 실현에 있다. 즉 진리를 추구하고, 그 진리를 전수하는 것이다. ... 대학은 그 사회와 국가가 필요로 하는 그 시대의 가장 바람직한 의식을 형성한다.” 이는 대학의 역할인 연구, 교육, 사회적 영향력(social impact)에 대해 다시 성찰해보라는 것이다. 시대가 요구하는 상상력 창의력도 여기에서 기대할 수 있다. 

20세기를 떠나며 성찰이 너무 부족했다고 지적한 한 역사학자는 “‘사상의 역할과 지식인의 책임’, ‘최근 역사가 오늘의 시대에 차지하는 위치’는 어떠한가?”라는 과제를 제시한 바 있는데, 시사하는 바가 크다. 우리는 이 과제를 비롯한 시대적 담론들을 새롭게 찾아내야 한다. 정직하게 자신을 가꾸며, 시대의 잘못을 읽을 줄 알고 당당히 비판하며, 인류애를 가지고 보편적 가치들을 지키며 발전시키는 지성인이 요구된다.

<대학지성 In & Out>의 출발에 대한 기대가 바로 여기에서 나온다. 한국 대학을 깨우며 정체성을 바로 세우고, 정직한 지성인을 키우며, 시대를 견인하는 주체로서의 방향을 세워나가는 역동적인 공론의 장이 되기 바란다. 대학, 학문 공동체, 지식인 사회를 잇는 가교로서, 우리 사회 지성이 가야할 길을 밝히고 지키는 시대의 파수꾼이 되기를 기원한다. 모두에게 희망과 행복을 주는 더 좋은 세상을 만드는 일이다.
 

민경찬 논설고문/연세대 명예특임교수, 과실연 명예대표

연세대 수학과 명예특임교수로 대한수학회 회장, 교육과학기술부 정책자문위원장, 국가과학기술자문위원회 과학기술분과 의장, 국무총리 소속 인사혁신추진위원회 민간위원장 등을 역임했다. 현재 국가인재경영연구원 이사장, 기초과학연구원(IBS) 과학자문위원회(SAB) 위원장 등으로 활동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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