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국 사태의 심층을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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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국 사태의 심층을 생각한다
  • 고성빈 제주대학교·정치학
  • 승인 2020.04.05 19: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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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카데미쿠스]

지난 몇 개월 동안 우리는 사회의 심층에 내면화되어 누구나 의식하면서도 누구도 어쩔 수 없는 문제가 극도로 ‘개인화’되어 분출하는 것을 목격했다. 더구나 이를 ‘정치화’시키려는 세력은 본질보다 껍질만을 들춰내어 모두를 편 가르기 악감정으로 유도하면서 문제를 순수하게 ‘사회화’시켜 성찰하는 기회가 없어져 버렸다.

사회적 이슈의 과도한 개인화가 얼마나 기만적인가. 우리는 화장실에서 뒤를 닦고 나오지만, 한 사람만을 공개하여 망신을 주는 게 과연 정당한 것일까. 이처럼 과도하게 정치화된 ‘개인사를 재사회화’시켜 문제의 심층으로 들어가 보자.

이 사태의 근본 원인은 우리 사회의 제도권 교육이 거의 모든 기회를 장악하고 있는데 비해, 진정한 사교육인 ‘나 홀로 공부’에 의한 입신의 길은 너무나 천대받고 있기 때문이다. 봉준호의 말대로, ‘가장 개인적인 게 가장 창조적이다.’ 그런데 한국에선 홀로 배움을 통한 창조의 길은 너무나 험준하다.

따라서 한국사회의 공교육 궤도의 설국열차 일반석과 특등석에는 언제나 승객이 넘치고 있다. 물론 특등석에 앉았다 해서 죄인은 아니며, 그래서 화장실 뒤태를 일반석 승객들에게 조리돌림 당할 이유도 없다. 많은 이들은 혼잡한 일반석을 뛰쳐나올 용기가 없어 그냥 목적지까지 견딜 수밖에 없다. 종착역에서 특등석 손님들은 스카이캐슬 스위트룸으로, 일반석 손님들은 지친 몸으로 지하철역으로 향한다.

만일 숨 쉴 틈도 주지 않는 저 공교육 열차가 싫다면, 한적한 기찻길 경치를 보면서 여유 있게 걸어서 목적지를 향하는 자신만의 길도 있다. 그 길에는 나만의 인생 공부로 이름을 얻은 조지 오웰과 앙드레 말로 같은 진정한 진보의 영웅들이 앞서고 있다. 단지, 길 중간에 홈리스가 되어 폐병을 얻거나 심지어 전쟁을 만날 수도 있다는 게 열차 안 인생들이 상상도 못 할 도전이다. 그러나 답답한 일반석에 앉아 특등석을 원망하면서, 또는 특등석에서 인생의 자유스러운 선택이 무슨 의미인지도 모르면서 가는 것보다 자신만의 길을 간다는 영웅다운 매력이 있지 않을까.

그런데 우리 사회는 여유 있게 기찻길을 홀로 걸으며 입신을 할 수 있는 공간이 너무 척박하다 못해 차별과 천대마저 받는다. 그래서 거의 모두 열차를 타려는 처절한 경쟁에 뛰어들지만, 누구는 이미 특등석에 앉아 있으며, 일반석마저 너무 붐벼 자괴감마저 드는 걸 감수하지 않을 수 없다.

몇 년 전, 로봇 소년의 극단선택은 가장 개인적일 수 있는 창조의 비전이 어떻게 공교육에 의해 살해당했는지를 증언한다. 한국 사회는 천재 소년에게 실업계 고교출신의 명문대 특례입학이라는 공교육 훈장을 수여하려고 했다. 결국, 혼자서도 발명 잘하는 어린 에디슨에게 한국어로 강의를 수강해서 스카이 졸업장을 받으라는 제도권 교육 지상주의가 그를 죽음으로 내몬 것이다. 우리는 가장 개인적인 길에서 위대한 업적을 이룰 수도 있는 고독한 천재를 공교육 열차 안에 강제로 투옥하는 사회에서 살고 있다.

한 모범가족의 열차사고는 한국 사회에서 문화적 계급욕망이야말로 이념적 계급갈등보다 더 치열한 본능이란 현실을 각인시킨다. 좌우이념 논리보다 더 높은 지위를 차지한 엘리트 학벌 욕망은 사회적 전통의 산물이며 따라서 자연스러운 것이다. 그러나 그것을 이룰 수 있는 제도권 교육이 자신만의 기찻길을 걷고 싶은 고집쟁이들과 출세공간을 균형 있게 나누지 않으면 공교육 열차의 좌석 경쟁은 언제나 비인간적인 투쟁의 장이 될 수밖에 없다. 이 일로 또 한 가지 놓칠 수 없는 교훈이 있다. 진정한 진보란 자신이 물려받거나 혹은 얼마든지 가질 수 있는 특등석 표를 스스로 던져버리고 일반석에 앉거나 차라리 철길을 홀로 걷겠다는 의지를 실천하는 사람이다.


고성빈 제주대학교·정치학

런던대학(SOAS)에서 정치학 박사를 취득했으며, 제주대학교 정치학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동아시아 사상과 역사논쟁에 흥미를 가지고 현재 동아시아의 사상사적 문제에 관해 연구하고 있다. 저서로는 『한국 근현대사 역사의 현장』(공저), 『동아시아 담론의 논리와 지향: 비판이론의 탐색』이 있으며, 그 외 동아시아담론, 중국, 일본, 티베트에 관한 다수의 논문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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