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대가리’는 비속어가 되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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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대가리’는 비속어가 되었을까?
  • 연호탁 가톨릭관동대·영어학
  • 승인 2019.12.13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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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로 푸는 역사기행(1)_ 하늘(텡그리)의 추락 ― ‘대가리’

연재를 시작하며

내가 우리말의 기원과 갈래에 극적인 관심을 갖게 된 건 세종이 반포한 <訓民正音> 창제 서문의 일절 “나랏〮말〯ᄊᆞ미〮 中듀ᇰ國귁〮에〮달아〮 文문字ᄍᆞᆼ〮와〮로〮서르ᄉᆞᄆᆞᆺ디〮아니〮ᄒᆞᆯᄊᆡ〮” 때문이었다. 내가 또 우리 민족의 族屬 문제를 포함한 역사적 사실에 단순한 호기심을 넘어서는 끈덕진 관심이 생긴 건 『三國史記』의 편찬자 김부식이 언급한 고구려의 건국주 朱蒙의 이름이 夫餘語이며 그 뜻이 ‘善射者’ 즉 ‘名弓’이라는 대목 때문이었다. 그로부터 이름의 소리와 의미를 추정하는 일에 즐겁게 매달려 왔다. 역사 서적을 들여다보며 ‘溫故而知新’의 묘미 내지 인간사를 배웠다.

학문적으로 역사의 이해에는 언어학적 지식[접근]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고고학과 相補的이면서 對蹠 관계에 놓여 있는 文獻史學의 입장에서 특히 그러하다. 문헌 기록에 의존해 역사를 해석하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학자 간 이견이나 오류의 상당 부분이 언어학적 분석을 통해 해결이 가능하다고 나는 믿는다.

명색이 학문을 하는 사람으로서 실증 가능한 객관성의 바탕 위에 서 있어야 하나, 과거를 현재에 재구하는 일은 지난한 일이다. 따라서 과학자에게 상상력이 필요하듯 역사를 들여다보는 일에도 구름 위의 산책 같은 상상이 도움이 된다고 본다. 어떤 학문 분야라 하더라도 새벽녘 댓잎 위의 이슬처럼 신선하고 빛나는(明徵한) 추리는 理智의 멋진 보조자라고 믿는다. 나는 오늘도 역사의 미스터리를 언어학자의 관점에서 흥미진진하게 풀어가고 있다. <말로 푸는 역사 기행>은 엄정함이나 심오함보다는 개연성으로 독자들에게 어필하려 한다.
 



나는 어려서부터 비리비리했다. 그런 나를 어머니는 “비루먹은 강아지 같다”고 하셨다. ‘비루’가 뭔지 ‘비리비리’는 왜 비리비리인지 궁금했다. ‘비리비리’라는 말이 티아민(thiamine, 비타민 B1) 결핍으로 생기는 ‘각기병(脚氣病)’을 가리키는 고대 인도어 ‘beriberi’와 닮아있음을 알아낸 건 대학 선생이 되고서도 한 십여 년은 지난 후였다. 그리고 삼십 년이 더 흘러서야 이 말이 스리랑카의 주요 종족인 싱할리즈족의 말(Sinhalese)이란 걸 새롭게 알았다. 말은 소리도 뜻도 변화는 법. 병명이던 배리(baeri)가 중첩(重疊)되고 모음이 開母音 /ae/에서 閉母音 /e/로 바뀌었다. බැරි බැරි (bæri bæri)는 “약골이라 아무 힘도 못 쓰는 사람”을 지칭하게 되었다. 그런데 싱할리즈족의 baeri도 기실은 고대 범어 abhārya의 변이형인 abhāriya에서 파생된 것이다.

어느 날 친구에게 물었다. “누가 ‘댁은 대가리가 참 나쁘다’라고 말하면 어떤 기분이겠냐?” 씩 웃으며 그가 대답했다. “웃고 마는 거지. 내가 그렇게 생각하지 않으니까 괜찮아.” 과연 그럴까? 나는 그 말이 선뜻 믿기지 않았다. 여러분의 대가리는 어떠십니까?

‘대가리’, ‘머리’, ‘박’은 지시 대상이 같다. 즉 지시적 의미가 동일하다. 그런데 차이가 있다. 요즘 박은 거의 쓰이지 않고(‘동무’라는 말이 소실 직전이듯), 머리는 중립적 의미를 지니는데, 대가리는 함부로 써서는 안 되는 어휘다. 그래서 누가 나더러 “너는 대가리가 참 나쁘다”라고 하면 기분이 참 나쁘다 못해 화가 난다. 왜 이렇듯 대가리는 비속어가 되었을까?

우리말 어휘에 동의어가 존재한다는 것은 우리 민족의 구성이 단일 종족이 아니라는 증거다. 사실 어느 언어고 순수 혈통은 없다. 여러 가지 사정으로 사람들이 섞이고, 따라서 언어의 혼합이 이뤄지게 마련이다. 영어에도 다수의 언어가 유입되어 있다. 달리 말해 한 언어 속에는 수많은 차용어가 존재한다는 말이다.

우리말도 예외일 수 없다. 이 땅 한반도에 선주민의 언어가 존재했고, 어느 시점엔가 북방 유목민의 언어가 유입되었다. 개국조의 이름이 ‘태양’을 뜻하는 ‘수로(首露)’라고 전한 『三國遺事』 「가락국기(駕洛國記)」의 내용이 사실이라는 전제하에, 인도 등의 남방언어도 사람의 이동을 따라 한반도에 상륙했을 것이다. 머리는 남방에서 들어온 말로 보인다.

세계의 최고봉 에베레스트산을 위시해 고산준봉을 품고 있는 히말라야(The Himalayas)는 어떻게 해서 그런 이름이 붙여졌을까? 히말라야의 어원을 고대 인도어인 범어(Sanskrit)  हिम ‎(himá, “frost, snow”)와 आलय ‎(ā-laya, “house, abode, dwelling”)가 합쳐진 हिमालय ‎(himā-laya, “abode of snow”)로 보는 것이 정설이다. 그러나 인도 현지인들은 이 설산을 ‘히마리’라고 부른다. 그리고 ‘머리(꼭대기)가 흰 (산)’이라는 의미로 받아들인다. 충분히 설득력 있다. 알프스의 명산 몽블랑도 ‘흰 산’이라는 의미의 프랑스어요, 우리 민족의 성산 백두산도 ‘머리 즉 꼭대기 부분이 사철 흰 눈이 덮여 있는 산’이라서 그런 이름이 붙여진 것이 아닌가?

▲ 한국 고지대 속의 백두산. 사진출처 = 네이버
▲ 한국 고지대 속의 백두산. 사진출처 = 네이버

백두산 정상의 天池도 그 이름이 산머리가 하늘과 가장 가깝다는 인식에서 명명된 것이 아니겠는가? 중국 신장성 위구르 자치주의 省都 우루무치 인근에도 천산산맥 중심부에 속하는 天山天池(해발고도 1,980m)라는 이름의 호수가 자리 잡고 있다. 중국 명칭 天山을 돌궐어로는 텡기리 타그(Tengri Tagh) 혹은 텡기르 투(Tengir-Too)라고 하는데, 이들 모두 사서에 기록된 ‘하늘’이라는 뜻의 흉노어 ‘기련(祁連)’(Qilan)에서 파생된 것으로 간주된다. 중앙아시아 키르기스스탄 이식쿨 호수 주변에서 조망할 수 있는 ‘칸 텡그리 봉(汗騰格里峰, Khan Tengri: “King Heaven”)’을 한어로는 ‘天王峯’으로 표기한다.

투바공화국에 위치한 ‘탄누-울라(Tannu-Ola) 산맥’이라는 이름도 ‘하늘 산’ 즉 ‘천산’이라는 의미를 지니고 있다. 예로부터 사람들은 이렇게 자신들의 언어로 주변의 설산을 천산이나 백(두)산 등의 의미를 담아 묘사해왔다.

▲ 고대 돌궐문자로 쓰인 tengri.
▲ 고대 돌궐문자로 쓰인 tengri.

우리말 ‘대가리’는 어디서 온 말일까? 흉노를 위시한 북방 초원의 유목민들은 하늘을 ‘텡그리’라 불러왔다. 이 말의 한자 음차어가 단군(檀君: 박달나무 단, 임금 군)이다. 등격리(等格里)라고도 표기한다. 우리 민족의 선조 단군은 칭호이며 왕검이 이름이었다. 檀君이라 해서 박달나무 임금은 더더욱 아니다. 고대 어느 지역이고 왕은 태양이나 하늘과 동일시되었다. 이집트의 파라오가 그랬고, 잉카제국의 왕들도 다 태양왕(sun king)이었다. 인도에서도 왕은 곧 태양이었다. 그래서 왕의 집안이 태양 즉 수리야 방시(Surya vansh: 태양 가문)였다.

나는 하늘(天)을 지시하던 텡그리라는 말이 우리말에 유입되어 ᄃᆞㅣ골을 거쳐 대갈~대가리에 이르는 음운변화를 보이고, 의미 영역은 ‘높다’, ‘머리통’, ‘꼭대기’까지 확장된 것으로 본다. 남광우 편 『고어사전』을 보면, “이런 ᄃᆞ로 낫나치 머리 하ᄂᆞᆯᄒᆞᆯ ᄀᆞᄅᆞ치고”(所以...頭指天)(金三2:11)라 했으니, 하늘이라는 용어 또한 머리를 가리키는데 쓰일 수 있음을 짐작할 수 있다. ‘정수리’에는 태양을 뜻하는 ‘수리’가 사용되었다. 아래 용례는 ᄃᆞㅣ골의 原意와 머리의 그것이 어떻게 다른지를 알려준다. 오늘말로 대가리는 뇌(腦)를, 머리는 두(頭)를 가리키는 데 사용되었다.

ᄃᆞㅣ골이 알ᄑᆞ고 머리 어즐ᄒᆞ고(腦痛頭眩)(老解下36)

그러나 시간의 경과와 더불어 ᄃᆞㅣ골은 머리와 함께 쓰여 ‘해골’, ‘대가리’, ‘대갈통(머리통)’이라는 의미의 중첩어로 사용되기에 이르고 마침내 머리와 대가리는 이음동의어가 된다.

머릿ᄃᆞㅣ골 루(髏: 해골 루, 두개골 루)

그런데 왜 이 멋진 말이 비속어가 되었을까? 텡그리를 사용하는 집단의 세력이 막강했을 때는 결코 나쁜 의미로 사용되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다른 집단과의 세력다툼에서 밀려 언더독이 되는 순간 이 말의 의미는 타락하게 된다. ‘머리’를 쓰는 집단에게 원래 ‘텡그리’가 지닌 ‘하늘 같은 인체의 우두머리’로서의 의미역을 넘기고 어둡거나 경멸적인 음지의 세계로 들어갔다. 그래서 사람에게는 사용할 수 없고, 하등의 동물 등에게나 적용시켜야 했다. 사정이 이렇게 되니 이 말을 사람에게 사용하는 것은 당사자를 동물에 진배없는 존재로 비하하는 것이었다. 결국 말대가리, 닭대가리, 새대가리, 돌대가리는 말머리, 소머리, 돌머리에 비해 품격이 떨어져도 한참 떨어진다. 언어의 의미는 이렇듯 사용에 의해 결정된다. 지시적 의미가 아닌 사용에 의한 의미로 누군가 내 아름다운 머리를 대가리라고 말하는 순간 인간인 나는 동물이 되고 싶지 않아 상대의 대가리를 한 대 쳐주고 싶어진다.

▲ 중국 천산(天山)의 위치. 사진출처=네이버
▲ 중국 천산(天山)의 위치. 사진출처=네이버

한편 대가리만이 아니라 머리도 일부 명사 뒤에 붙어 접미사로 사용될 때 비하의 의미를 나타낸다. 인정머리, 주변머리, 싹수머리, 맛대가리, 멋대가리 등이 다 부정적 뉘앙스를 지닌다.

‘박’은 왜 ‘박’일까? 호박, 수박 등에 쓰인 ‘박’을 볼 때 이 말은 본디 둥근 물체를 지시하는 것이었다. 사람 머리도 둥글게 생겼으니 유유상종 ‘박’이라 지칭했을 것이다. 그래서 ‘heading(머리 받기)’을 박치기로 옮긴다. 문제는 이 말의 기원이다. 어디서 온 말인가? 이 땅의 선주민들이 사용하던 말이 아닐까? 그런데 만약 이 말이 시베리아 어딘가에서 들어온 것이라면? 더 조사해 볼 일이다. 말을 통해 종족 이동의 역사와 과정을 더듬어 보는 일은 무척 흥미롭다. 역사를 새롭게 해석할 수 있는 단서를 제공하기 때문이다. 우리말의 혈관에는 유목민의 피가 흐르고 있다.

참고로 원시 돌궐어로 ‘머리(head)’는 *baĺč다. IPA으로는 [bɑʃ]라 표기한다. [beʃ]라고도 한다. 그래서 ‘beshbalik’은 ’首都‘가 된다. 아제르바이잔, 크리미언 타타르, 쿠르드, 터키, 투르크메니스탄 등지에서 사용되는 말이다. 남인도에서 사용되는 드라비드어에 속하는 따밀(Tamil)과 말라얄람(Malayalam)어로는 각각 talai와 tala라고 한다.
 

연호탁 가톨릭관동대·영어학

한국외대에서 영어학 전공으로 박사학위를 받았으며, 명지대에서 중앙아시아사 전공으로 두 번째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현재 가톨릭관동대 관광경영학과 교수로 그동안 『중앙일보』에 ‘차의 고향’, 『동아일보』, 『중앙일보』, 『문화일보』 등에 칼럼 ‘문명의 뒤안, 오지 사람들’, 『교수신문』에 ‘욕망의 음식: 음식문화사’를 연재했다. 저서로는 『문명의 뒤안 오지의 사람들』, 『차의 고향을 찾아서』, 『궁즉통 영어회화』, 『중앙아시아 인문학 기행: 몽골 초원에서 흑해까지』, 『문화를 여행하다: Travel, Culture&People』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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