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벽’에 숨어있는 차별과 배제의 논리를 파헤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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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벽’에 숨어있는 차별과 배제의 논리를 파헤치다!
  • 김한나 기자
  • 승인 2020.03.29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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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깊이 읽기]

■ 깊이 읽기_ 『장벽의 시대: 초연결의 시대, 장벽이 세상을 바꾸고 있다』 (팀 마샬 지음, 이병철 옮김, 바다출판사, 2020.03)
 

트럼프 장벽에서 영국의 브렉시트, 중국의 인터넷 검열까지 지금 세계 곳곳에서 새로운 장벽이 세워지고 있다. 연결된 이 세계에 지금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가? 분리는 개인적, 지역적, 국가적, 국제적 수준에서 정치를 만들어낸다. 모든 이야기는 양면성을 띠며, 모든 장벽도 그러하다. 오늘날 세계에서 어떤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를 이해하려면 무엇이 우리를 나누었고, 무엇이 계속해서 그렇게 하는지를 깨달아야 한다.

이 책은 세계 곳곳의 물리적 장벽의 역사와 현재뿐 아니라 국가와 도시, 사회와 공동체 내부의 심리적 장벽을 추적한다. ‘장벽’을 키워드로 인류의 역사 양상과 국제 사회의 역학 관계, 현대인의 사회심리학적 현상을 풀어낸다.

이 책에서 우리는 중국의 만리장성부터 이스라엘-팔레스타인 장벽, 북아일랜드-아일랜드공화국 장벽, 미국-멕시코 장벽까지 세계 곳곳의 물리적 장벽을 만날 수 있다. 또한 종교, 언어, 민족, 국가, 소득, 세대 등 다양한 기준에 따른 눈에 보이지 않는 장벽과도 맞닥뜨린다. 저자는 분리와 배제, 고립과 차별의 정치학이 낳은 산물인 장벽을 넘어 타협과 공존으로 향하는 길을 모색한다.

▲ 만리장성. 제공=바다출판사
▲ 만리장성은 중국 중부와 네이멍구를 가르는 국경선을 따라 뻗어 있고, 길이는 2만 킬로미터가 넘는다. 만리장성은 과거 중국을 통합하는 데 물리적이고도 상징적인 역할을 했다. 제공=바다출판사

장벽, 나누고 가르고 가두다

냉전 시대 철의 장막이 걷히고 베를린 장벽이 무너진 뒤 세계는 통합의 길로 다가가리라 생각했다. 미국과 멕시코 국경을 비롯해 유럽 곳곳에 냉전기보다 더 많은 장벽이 세워졌다. 유럽 여러 나라는 이웃한 나라에서 넘어오는 이주민과 난민을 막기 위해 장벽, 담장, 철조망을 세웠다. 중동에서도 이웃한 나라와 가르는 장벽을 세웠다. 아시아에서도 장벽의 목록은 길게 이어진다. 많은 경우 장벽은 실질적인 목적보다는 상징적인 목적을 가진다. 장벽은 의심과 거부, 두려움과 기만, 오해와 착각이 세운 것이다.

언어, 민족, 국가, 소득, 세대 등 다양한 기준에 따른 눈에 보이지 않는 장벽도 있다. 봉건사회가 무너지고 시민 사회가 형성되면서 계급이 무너지고 관용의 시대에 접어든 듯했으나 차별과 혐오는 수그러들지 않았다. 인도의 카스트 제도는 여전히 인도 시민의 가능성을 옥죄고, 중국과 중동, 아프리카에선 여전히 민족이 주요한 갈등 요소이다. 미국과 유럽에선 인종주의와 국가주의에 따른 정체성 정치가 부활하고 있다.

장벽은 발걸음을, 이동과 통행을, 말과 소리를, 생각과 사상을 나누고, 가르고, 가둔다. 나와 타자를 구분하는 물리적 경계선이 폭력적 형태로 드러난 결과물이다. 벽돌과 콘크리트, 철조망으로 이루어진 장벽에는 그만큼의 차별과 배제의 논리가 숨어 있다.

넘어설 수 없는 신분과 가난의 장벽

국가나 공동체 내부의 눈에 보이지 않는 벽이야말로 사람을 나누고 가르고 가두는 가장 커다란 장벽이다. 인도의 카스트 제도는 3000년 전 힌두교 경전인 『마누법전』에 근거하여, 지금까지도 ‘사회의 질서와 규칙성의 토대’로 인정받는다. 물론 도시 생활의 압력에 시들해지고, 불가촉천민으로 1997년부터 2002년까지 대통령을 역임한 코체릴 라만 나라야난의 경우도 있지만, 여전히 카스트 제도는 살아 있다. 카스트 제도는 사람의 재능과 가능성을 신분에 가두는 장벽이다.

▲ 제공=바다출판사
▲ 제공=바다출판사

중국의 18억 인구는 사실상 세대, 계급, 수입, 민족, 종교에 따라 분열되어 있다. 도시와 시골의 경제적 격차도 심하며, 도시 내부의 빈부격차도 한계치를 넘어선 지 오래다. 중국 정부가 가장 우려하는 것은 외부에서 새로운 생각이 들어와 국가의 모순이 드러나고 시민의 의식이 깨어나는 것이다. 그 결과 중국에는 세계에서 가장 철저한 인터넷 장벽이 세워졌다. 중국 정부가 ‘황금 방패’라 부르는 이 보안 시스템은 민주주의, 자유 언론, 언플러그드 문화와 같은 유해한 관념들로부터 중국인을 ‘보호’한다.

경제적 상황 역시 커다란 장벽이다. 아프리카 대륙 전체적으로 최저빈곤선 미만의 사람이 전체 인구의 40퍼센트 이상을 차지하고 있다. 소득 수준이 낮은 나라의 주민들은 남아프리카공화국이나 나이지리아 등 잘사는 나라로 넘어가려 한다. 아프리카의 빈곤은 범죄의 원인이자 결과이다. 남아프리카의 폐쇄 주택지는 이를 잘 보여주는 하나의 사례가 되고 있다.

1세계에 속하는 독일에서도 빈부격차의 장벽은 높다. 베를린 장벽이 무너졌으나 동서독의 분열은 여전하다. 2017년 동부 독일의 실업률은 서부의 두 배였고, 독일의 잘사는 도시 20개에서 동부의 도시는 예나가 유일했다. 교육과 취업, 승진 등에서 동독 출신은 차별을 받고 있다.

▲ 제공=바다출판사
▲ 제공=바다출판사

난민을 차단하라!

미국과 유럽의 여러 나라는 밀려오는 이민자와 현지 주민들 사이에 심각한 장벽이 있다. 3억 2400만 명 정도의 미국인 중 히스패닉을 포함해 비백인은 현재 약 40퍼센트를 차지하고, 2050년에는 53퍼센트까지 상승할 것으로 예측된다. 이들은 교육과 취업 등 사회적 차별을 받는 상황에 놓여 있고, 늘어나는 비백인 인구에 백인 미국인들은 ‘인종주의적 투표’로 화답했다.

미국의 이상 중 하나는 모든 미국 시민이 인종, 종교, 민족적 배경이 아니라 공유된 가치로 묶이는 하나의 국민으로 규정되는 것이다. 장벽을 찬성하는 사람은 외부인의 타자성이 미국적 문화와 가치를 해칠까 두려워한다. 반면 장벽을 반대하는 사람은 자유, 평등, 해방이라는 미국의 가치를 우선에 둔다. ‘미국적’이라는 것은 무엇을 의미할까?

유럽의 새로운 고민거리는 이주민과 난민이다. 동유럽 국가들이 EU에 편입되면서 수백만 명의 동유럽 사람들이 일자리를 찾아 서유럽으로 건너갔다. 결국 서유럽 국가들은 사회 지출을 줄이기 시작했다. 영국은 다문화 사회가 되는 것을 두려워했고, 결국 동유럽 이민자, 중동 이민자에 대한 두려움 탓에 고립의 길을 택했다. 유럽 사회에서 반무슬림 정서가 늘어남에 따라 여러 나라에서 극우주의 정당이 등장했다. 새로운 위기 앞에서 ‘하나의 유럽’이라는 꿈은 한 발 멀어졌다.

인도와 방글라데시 국경에는 세계에서 가장 긴 4000킬로미터의 울타리가 있다. 방글라데시의 불법 이주민을 막기 위한 것이다. 인도행을 택한 방글라데시의 사람들은 대부분 가난을 피해 왔다. 또 이슬람 국가인 방글라데시에서 차별받는 힌두교도도 있다. 기후변화의 이유로도 인도행을 택한다. 방글라데시 국토의 대부분은 갠지스 삼각주 해수면에 있고, 국토의 약 80퍼센트가 해수면보다 조금 위에 있다. 기후 난민은 방글라데시뿐 아니라 21세기 중 가장 많은 난민의 이유가 될 것이다.

갈등과 배척의 오랜 테마, 종교와 민족

중동에서 벌어지는 분열의 큰 축은 수니파와 시아파의 종교적 갈등이다. 수니파와 시아파의 갈등은 7세기 이후부터 시작되었다. 무슬림의 약 85퍼센트는 수니파이며, 레바논, 예멘, 쿠웨이트, 사우디아라비아에서 다수이다. 시아파는 이란, 이라크, 바레인에서 다수이다. 중동은 또한 쿠르드족, 드루즈족, 야지디족, 칼데아족 같은 소수 민족과 더불어 수많은 종교, 분파, 언어로 갈려져 있다.
아프리카에는 다양한 언어, 종교, 문화를 아우르는 민족 집단이 적어도 3000개 정도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 아프리카에서 일어나는 수많은 갈등의 원인에는 이 부족주의와 그것이 국민국가로 형성된 방식에 있다. 유럽인들은 제멋대로 수백 개의 국가, 즉 부족을 하나로 묶었다. 아프리카의 많은 나라는 여전히 식민주의가 만들어 놓은 제도적 모순들과 싸우고 있다.

이스라엘의 분열 양상도 복잡하다. 이스라엘 유대인 인구의 49퍼센트는 세속적이고, 29퍼센트는 전통을 따르며, 13퍼센트는 신앙심이 깊고, 9퍼센트는 초정통파이다. 이들은 같은 국가에서 같은 언어를 쓰지만 거의 소통하지 않는다. 두 집단끼리는 결혼도 하지 않고, 분리된 교육기관에서 교육받는다. 팔레스타인 역시 서안지구를 통치하는 세속적인 파타와 가자지구를 장악한 근본주의적인 하마스로 나뉘어 있다.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각각의 내부 분열이 해결되지 않는 한 중동의 평화는 요원해 보인다.

장벽 넘어, 열린 국경은 가능할 것인가?

인간은 최선을 희망하고 최악을 두려워한다. 그리고 그 두려움 때문에 장벽을 세운다. 수많은 외부인이 장벽을 넘어 넘어올 때, 현지 주민들은 기존의 질서와 가치관이 무너질까 두려워한다. 세계적으로 이민법이 강화되고 인종주의가 다시 떠오르고 있다. 사람들은 전쟁과 가난, 급변하는 기후 때문에 장벽을 넘어 타지로 간다. 세계의 인구는 더 증가할 것이고, 집단 이주는 단기간에 멈추지 않을 것이다. 부자 나라들은 장벽을 계속 세울 것이다. 저자는 이런 문제를 해결할 방책 중 하나로 개발도상국 세계가 전 지구적인 부의 재분배를 통해 G20 국가 집단의 부를 이용하도록 하는 21세기 마셜 플랜이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많은 사람이 인도주의적 관점이나 경제적 관점 모두에서 이주민의 필요성을 인정한다. 서구 국가들의 경제가 지탱하기 위해선 이주민이 필요하다. 어떻게 하면 이들이 현지 주민들과 문제를 일으키지 않고 통합할 수 있을까? 현지 주민들은 자신들의 기본적인 문화적 가치를 보존하고, 공동체에 대한 감각을 유지하길 바란다. 새로 온 사람들이 기존 공동체의 가치를 훼손하지 않으면서 공동체에 합류할 방법을 찾아야 한다. 그 길을 찾게 된다면 언젠가 역사의 궤적은 다시 통합을 향해 구부러질 것이다.

당분간 장벽은 안전과 유익함을 보장하기 수단으로서 피할 수 없는 선택지로 남을 것이다. 세계의 수많은 장벽을 이해함으로써 우리는 장벽을 극복하는 방법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차이와 분리의 문제를 해결할 방책은 언제나 타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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