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등사회가 자랑스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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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등사회가 자랑스럽다
  • 조동일 서울대학교 명예교수
  • 승인 2020.03.29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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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니어 칼럼] 대등사회론 1

사회의 유형을 나누고 사회발전의 단계를 말하는 이론에서 민주사회나 복지사회가 가장 선진된 형태라고 한다. 민주사회 만들기는 서유럽이 선도하고, 복지사회를 이룩하는 데서는 북유럽이 앞선 것을 평가한다. 뒤떨어진 모든 곳은 이런 모범을 배우고 따라야 한다고 한다.

선진의 우월성을 입증할 수 있는 좋은 계기가 생겼다.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이 유행하는 대재앙에 서유럽이나 북유럽이 모범적으로 대처할 것을 기대했다. 그런데 결과가 사뭇 달라 실망을 자아낸다. 양쪽 다 대재앙에 대처하는 방안을 찾지 못하고 파탄을 보이고 있다. 배신의 충격을 준다고 해도 지나친 말이 아니다.

그 이유가 무엇인가? 서유럽의 민주사회에서는 누구나 평등을 위한 경쟁에 몰두하고, 협동하면서 경쟁하지는 않는다. 재앙이 닥치자 자기의 이익을 확보하려고 사재기를 서두른다. 북유럽의 복지사회에서는 평등을 위한 협동이 제도화되어 있어, 새삼스럽게 경쟁하면서 협동할 필요가 없다고 여긴다. 재앙이 닥쳐도 국가가 잘 막아 주리라고 믿고 기대하다가 낭패를 보고 있다. 경쟁과 협동이 별개가 된 것이 공통된 결함이다.
 
한국은 민주사회나 복지사회를 이룩하는 세계사적 과업 수행에서 뒤떨어져 있다고 자책해왔다. 그런데 코로나바이러스의 대재앙이 되어 닥치자 어느 선진국보다 더 잘 대처하고 있어 온 세계가 놀라는, 예상하지 않던 사태가 벌어졌다. 이것이 무슨 까닭인가? 여러 가지 이유를 열거하는 것은 마땅하지 않다. 핵심을 지적해야 한다.

핵심은 대등론의 사고방식을 마음속 깊이 지니고 실행하는 것이다. 대등론의 사고방식은 모든 사람이 공유한 인류의 자산인데, 다른 곳에서는 힘을 잃고 있다. 차등론이 드센 곳에서는 대등론을 억압해 무력하게 한다. 차등론을 평등론으로 극복하자는 주장은 진보적이라는 찬사를 모으지만, 평등론의 우위를 입증하려고 경쟁이 되는 대등론을 부정하는 역기능을 수행한다.

한국은 평등론의 침해를 받아 대등론이 타격을 입지 않고 살아 있다. 그 덕분에 경쟁이 협동이고 협동이 경쟁이어서, 경쟁과 협동이 따로 놀아 생겨나는 파탄이 없다. 경쟁으로 협동을 바람직하게 하려고 한다. 협동이 바람직한 경쟁이게 한다. 이것이 민주사회니 복지사회니 하는 곳들과 아주 다른 점이다.

아무리 모자라는 사람이라도 자기 나름대로의 창조 주권을 발현하는 경쟁에 참여해 협동을 더 잘 하도록 하는 데 기여하고자 한다. 미력이라도 합쳐 협동을 바람직하게 이룩해 거만을 떠는 이웃 나라들과의 경쟁에서 보란 듯이 앞서서, 세상에 널리 도움이 되는 충격을 주는 데까지 이르렀다. 이런 사실을 미처 모르고 있다가 알아차리고, 남들이 말하니까 새삼스럽게 되돌아보니 어안이 벙벙하다.

우리가 살면서 만들어온 이런 사회가 어떤 사회인가? 민주사회나 복지사회와는 다른 또 하나의 사회 형태인데, 인식이 없어 지칭하는 말도 없다. 막연한 상태로 둘 수 없어, 대등사회라고 명명하자고 제안한다. 장성한 어른을 신생아라고 여기고 이제 이름을 짓는 기이한 사태가 벌어졌다.

남들의 책을 읽은 것을 공부라고 여겨온 학자들은 사회의 유형을 나누고 사회발전의 단계를 말하는 이론을 우리가 새롭게 만들 수 있다고 여기지 않을 수 있다. 그러나 우리는 책에 없는 사실을 체험을 통해 분명하게 알았다. 대등사회는 민주사회나 복지사회보다 훌륭하다고 자신 있게 말한다. 이것이 사회이론을 혁신하는 지침이 된다. 우리가 분발해 세계를 깨우쳐주어야 한다.

한국에는 사재기가 없다고 감탄하는 것은 표피적인 인식이다. 역병에 대처하는 한국의 비방을 세계 도처에서 배워가겠다고 하는 것은 얄팍한 생각이다. 남다른 비방이 어떻게 해서 생겼는지 근원을 알아야 한다. 근원은 배워 갈 것이 아니다. 어떤 나라 어느 누구도 깊이 간직하고 있는 공통된 능력인 대등론을 스스로 발견하고 실현하면 된다.

민주사회나 복지사회를 이루었다고 자랑하는 곳들은 평등론의 환상을 버리고, 오래 방치해 무력하게 만든 대등론을 살려 대등사회를 이룩하는 쪽으로 방향을 선회해야 한다. 아직까지 차등론에 시달리는 곳들은 펑등론의 수입으로 해결책으로 삼으려고 하는 실수에서 깨어나, 차등론 때문에 억눌려 있는 대등론을 일으켜 세우면 되는 쉬운 길이 있는 것을 알아야 한다.

민주사회와 복지사회를 이룩하면서 역사가 종말에 이르렀다고 하는 것은 착각이다. 착각을 고착화하는 책동에 말려들지 말고 대등사회를 만드는 세계사적 과업이 아직 남아 있는 것을 알고 실행해야 한다. 후진이 선진이고 선진이 후진인 것이 당연하다. 역사는 역전을 통해 발전한다.

민주사회나 복지사회를 이룩했다고 선진임을 자랑하는 곳은 전환이 어려워 후진으로 밀려난다. 자본이나 기술이 뒤떨어져 후진이라고 하는 곳은 대등론이 침해를 덜 받아 선진을 이룩하는 비약을 하기 쉽다. 지금까지의 선진을 부러워하지 말고 후진인 것을 다행으로 여기고 앞서서 분발하면 된다. 역사는 역전을 통해 발전한다.

너무나도 작은 코로나바이러스가 초대형 괴물이 되어, 엄청난 힘으로 모든 곳을 휩쓸고 지나간다. 그 덕분에 세계 전역에서 허상이 무너지고 실상이 드러난다. 엄청난 불행이 놀라운 행운으로 판명되어, 역사 진행의 방향을 바로잡을 수 있게 되는 기적이 눈앞에 나타난다.


조동일 서울대학교 명예교수·국문학

서울대학교 불어불문학과와 국어국문학과를 졸업했으며 같은 대학 대학원 국어국문학과에서 문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계명대학교, 영남대학교, 한국학대학원 교수를 거쳐 서울대학교 교수를 지냈다. 서울대 명예교수이자 학술원 회원으로 계명대학교 석좌교수를 역임했으며 현재 중국 연변대학 명예교수이기도 하다. 주요 저서로 <서사민요연구>, <한국문학통사>(전6권), <우리 학문의 길>, <인문학문의 사명>, <소설의 사회사 비교론>(전3권), <대등한 화합: 동아시아문명의 심층> 등 다수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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