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 얄미운 건 알고 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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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 얄미운 건 알고 있어!”
  • 김영명 한림대학교 명예교수·정치학
  • 승인 2020.03.29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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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활 에세이]

지지난해에 다니던 대학에서 명예퇴직을 하였다. 그전부터 그곳에서 정년을 맞지는 않을 것이라는 막연한 생각을 하고 있었지만, 과연 어떤 방식으로 그곳에서 정년을 맞지 않을 것인지에 대해서는 아무런 생각도 없었다. 그냥 막연한 예감이었다. 그러던 것이 결국 내가 조기 퇴직하는 것으로 낙착된 것이었다. 누가 뭐래도 내 예감이 틀리지는 않은 것이었지만 참 우스운 방식으로 틀리지 않은 셈이었다.

나는 내 인생에서 꼭 뭐가 되겠다고 하여 무엇이 된 적은 없는 것 같다. 젊은이여 꿈을 가지라고 어제도 오늘도 듣고 있지만 왜 꼭 그래야 하는지 모르겠다. 나는 한 번도 이렇다 할 ‘그런’ 꿈을 가진 적은 없고 뭐가 되기 싫다는 생각만 있었을 뿐이다. 왜 젊은이들은 꼭 꿈을 가져야 할까? 보이즈 비 엠비셔스? 왜 야망을 가져야 하지? 왜 성실하고 착하고 부모님 말씀 잘 들으면서 소박하게 살면 안 되지? 그런 사람도 있고 안 그런 사람도 있는 법이다. 중학교 시절부터 대통령이 되겠다고 책상 앞에 대통령이라고 크게 써 붙였다가 결국 대통령이 된 김영삼도 있지만, 그렇게 써 붙이고 대통령 꿈을 꾸다가 곧 현실을 깨닫고 회개한 수많은 사람과 끝까지 정신 못 차려서 처자식 굶기고 쪽박 찬 또 다른 수많은 사람이 대부분이다. 로저 페더러가 여러분들도 야망을 품고 열심히 운동하면 나같이 훌륭한 테니스 선수가 될 수 있습니다 하고 부추기면 십중팔구 욕먹을 것이다. 야망을 가지는 사람도 있고 나처럼 뭐가 될지 모르다가 이리저리 살다보니 이것저것 되는 사람도 있는 법이다. 어떤 쪽이든 남에게 해안 끼치고 성실하게 살면 된다.

교수 짓 30여 년 동안 재미있고 보람 있는 적도 있었지만 따분하고 심심할 때가 더 많았다. 언제나 시간이 남는 느낌이었다. 사람들이 교수님 바쁘시지요 하고 물어보면 내 딴에는 정직 떠느라고 아니 별로 안 바빠요 하고 대답하다가 너무 그러면 안 될 것 같아 그냥 얼버무리고는 했다. 요새는 아무도 그렇게 안 물어보니 아주 좋다.

여기저기 기웃거리면서 줄 서는 데는 영 소질이 없고 그래도 따분함은 지워야겠고, 그래서 나 나름대로 한글문화연대도 만들고 운동도 이것저것 하고 술 마시고 좀 놀기도 하고, 남는 시간에 책을 좀 쓰기도 하였다. 이렇게 쓰고 보니 좀 건방을 떤 것 같아 조금 정정한다. 책 쓰고 논문 쓰는 데 내 나름대로 심혈을 기울이기도 했다. 그래서 제법 성과도 있었다. 내 생각에는 말이다. 

나이 50대에는 ‘한국적 정치학’을 주창하면서 책도 쓰고 논문도 쓰고 모임도 만들었다. 동조하는 학자들도 제법 있었지만 언제나 그뿐, 학계의 변방이다 보니 실천의 한계가 명백하였다. 내 나름대로의 독창적인 업적이 제대로 평가받지 못한다는 생각에 약이 오르기도 하고 미국 정치학만 줄곧 따라 하는 인사들이 유명해지는 것을 보고 아니다 싶기도 했지만, 지나고 보니 모두가 도토리 키재기요 굼벵이 뜀뛰기라... 헛되고 헛되도다 까지는 아니지만 부질없는 안달이었음을 깨닫는다. 그래도 정치학은 흘러가고 세상은 돌아간다. 안 그래도 흘러가고 돌아가는 것 또한 사실이다.

한글 운동을 제법 잘하여 한글문화연대를 반석 위에 올려놓고 보니 딴 짓이 슬슬 또 나를 유혹한다. 몇 년 전에 그림을 시작하여 이젠 제법 화가로 행세한다. 딸에게 물었다. “화가가 뭐지? 그림 그리면 화간가?” 딸의 명답. “그림을 팔아야 화가지!” 똑똑하네. 개인전도 몇 번 열었다. 그림을 팔긴 팔았는데 대부분이 지인에게였다. 딸아, 이것도 쳐주니? 내가 화가니? 화가면 어떻고 아니면 어떠랴. 내가 그림 그리는 데는 아무 상관이 없다. 그래서 새 명함에는 애매모호하라고 ‘작가’라고 새겼다.

2007년에 패키지여행을 처음으로 갔는데 이태리에선지 프랑스에선지 동행 아저씨 한 분이 “작품 활동 하세요?” 하고 물어보는 것이었다. 너무나 뜻밖의 질문에 놀랐지만 안 놀란 척 “아니 그냥 교수인데요,”하고 대답했다. 그냥 평범하게 점퍼 아닌 잠바 차림에 버버리 아닌 바바리 목도리를 매고 있었는데 작품 활동 인간으로 보였나 보다. 나라도 이태리, 프랑스면 딱 어울리지 않은가? 그때부터 나의 화가 생활은 예정되어 있었다? 흠,,, 

은퇴하고 소일거리가 마땅치 않아 마누라에게 삼식이니, 이식이니 소리 듣는 남정네들이 수두룩한데, 난 현역일 때부터 반 은퇴 생활의 집돌이였던지라 충격이 훨씬 덜하다. 아내도 그동안 충분히 단련되었을 것이다. 오히려 지금이 현역일 때보다 덜 심심하다. 그 전에 없던 스마트폰에 유튜브에 인스타그램이 버티고 있는 데다 테니스를 열심히 해서 만날 피곤하다. 몸이 피로하면 심심하지 않은 만고의 진리를 몸소 실천 중이다. 현역 때보다 오히려 덜 심심한 퇴역이라니 참 남이 들으면 부러워할지 욕을 할지... 아무래도 좋다. 이렇든 저렇든 세상은 돌아가고 나는 피곤하고 덜 심심하다.

오늘도 내 자랑은 끝을 모르는구나. 이때 마누라의 적시타 한 방. “당신 얄미운 건 알고 있어!” 


김영명 한림대학교 명예교수·정치학

서울대학교 외교학과를 졸업하고 뉴욕주립대학교에서 정치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현재 한림대학교 정치행정학과 명예교수로 한국정치외교사학회 회장, 도쿄대학교 동양문화연구소 객원연구원, 한글문화연대 대표 등을 지냈으며, 한국정치학회 학술상, 외솔상 등을 받았다. 저서로  『담론에서 실천으로: 한국적 정치학의 모색』, 『단일 사회 한국: 그 빛과 그림자』, 『이게 도무지 뭣하자는 소린지 모르겠고: 한국 불교, 이것이 문제다』, 『대한민국 정치사』, 『한국 정치의 성격』, 『정치란 무엇인가: 김영명 교수가 들려주는 정치 이야기』 등 다수가 있다. 최근 수필집 『봄날은 간다』를 출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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