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를 슈미트의 정치 투쟁과 사상적 궤적을 사유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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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를 슈미트의 정치 투쟁과 사상적 궤적을 사유하다
  • 임병태 기자
  • 승인 2020.03.29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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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간소개]

■ 정전과 내전: 카를 슈미트의 국제질서사상 | 오오타케 코지 지음 | 윤인로 옮김 | 산지니 | 506쪽
 

최근 슈미트에 대한 관심은 전 세계적으로 하나의 붐이 되었다. 그중에서도 특히 그의 국제질서사상은 크게 각광받아 왔다. 그 직접적 계기가 됐던 것은 9·11 테러 이후의 세계정세이며, 정전론에 대한 그의 비판, 미국제국주의론, 예외상태론 등은 지금도 여전히 유효한 논점으로 주목받고 있다.

그렇다면 우파와 좌파 그리고 시대를 불문하고 정치적 담론에서 항상 되살아나는 슈미트의 사상의 핵심은 무엇이며, 이 사상은 국제질서 사상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가? 세계화와 민주주의의 위기 시대에 카를 슈미트는 어떤 모습으로 되살아날 것인가? 카를 슈미트 생애 모든 문헌을 비평하면서 그의 정치 투쟁과 사상적 궤적을 사유하는 책이다.

세계대전 이전의 바이마르 시기나 나치 시기의 헌법이론 및 정치이론에 관해서는 카를 슈미트의 연구 저작이 축적되어 있지만, 1910년대와 2차 세계대전 이후의 저작에 관해서는 검토가 불충분한 채로 머물러 있었다. 슈미트의 사상 행로에 이목을 집중시키는 정치적 사건으로서 나치 관여는 그의 최종적 귀결이 아니며, 전후에도 신학, 역사철학, 공간이론에 관한 흥미로운 논의가 다수 전개되었다. 이 책은 정치정세에 이끌린 슈미트의 이미지에 휩쓸리지 않고 그의 사상을 내재적으로 연구하고자 한다. 또한, 오늘날의 세계화에 따른 세계통치의 구조전환이나 그 속에서 국가가 갖는 의의라는 좀 넓은 시야를 제시한다. 그것의 이론화를 위해 이 책에서는 예외상태론에 대한 재해석을 단서로 삼고자 했다.

저자는 슈미트의 국제질서론과 전쟁론의 관계를 중심으로, 통시적으로는 슈미트의 규범과 결단, 법치국가논쟁, 국제법론, 광역질서론, 세계내전론, 파르티잔론, 합법적 혁명론을, 공시적으로는 정치신학, 법확정성, 정치신화, 참된 연방, 통치의 정통성·정당성, 정의로운 전쟁, 간접권력, 카테콘, 역사종언론, 파르티잔, 통치기밀 등을 다루고 있다.

저자에 의하면, 슈미트는 보편주의를 ‘장소확정(Ortung)’을 파괴하는 것 혹은 ‘장소상실(Entortung)’을 야기하는 것이라고 공격한다. 그런 보편주의는 슈미트에게 매번 여러 모습들로 변주되어간다, 즉 추상적 규범주의, 법실증주의, 경제, 기술, 인도주의, 아메리카니즘, 코뮤니즘(러시아), 정전正戰, 유대인, 바다, 세계내전, 절대적인 적(절대적 적대), 종말론적 진보사관, 세계의 통일, 세계혁명적 파르티잔 등으로. 그에게 문제였던 것은 그러한 장소상실에 대항하여 보편화할 수 없는 구체적 장소의 질서로서 (국제)법질서를 회복하는 일이었다. 그 어떤 법질서이든, 나아가 일반적으로 그 어떤 말이나 개념이든 그것이 본래 뿌리내렸던 일회적 장소로, 그것에 의미를 부여하는 고유의 장소로 되돌려놓지 않으면 안 되는 것이다. 그리하여 슈미트는 회복되어야만 할 역사적 일회성을 여러 형태들 - 구체적 질서, 노모스, 광역, 정치적인 것, 취득(Nahme), 선線, 땅, 상황, 비밀(Arcanum), 카테콘, 현실적인 적(현실적 적대), 토지적 파르티잔 – 로 추구하게 된다. 그의 사상 행로는 일관되게 보편성(장소상실)과 일회성(장소확정)의 상극을 통해 전개되는 것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슈미트의 정치사상은 결코 단순한 ‘현실주의’로는 환원될 수 없다. 그에게 결정적인 것은 국제정치를 포함해 일반적인 모든 정치에서 사실적 힘의 관계 이상의 것이 작용하고 있음을 발견하는 일이었다. 그러므로 슈미트는 권력정치의 입장을 단호히 물리친다. 책은 1910년대부터 1980년대 중반까지 시대에 따라 카를 슈미트의 정치투쟁과 사상적 궤적을 분석하고 사유한다. 1장에서는 1910년대인 초기 슈미트에게 보이는 두 가지 입장, 곧 ‘결단주의’와 ‘픽션주의’를 다루면서, 특히 1930년대에 그가 주장하는 말이나 법 개념을 둘러싼 정치투쟁으로 어떻게 이어지고 있는지를 밝힌다. 2장에서는 슈미트의 연방 구상과 그것이 점차 포기되어가는 1930년대의 경위를 뒤쫓으며 규명한다. 3장에서는 2차 세계대전 시기 슈미트의 광역이론을 규명함과 동시에, 그것과 거의 같은 시기 그가 관심을 기울였고 전후 『대지의 노모스』로 결실을 맺게 되는 주제, 곧 장소상실 과정으로서의 유럽 국제법의 역사에 대해서도 검토한다.

4장에서는 동서 대립이나 선진국들에서의 산업사회의 도래라는 상황을 두고 ‘세계 내전’이라고 진단한 전후 슈미트의 사상 전개와 이에 대한 역사 철학적이고 신학적인 이론 배경을 밝힌다. 5장에서는 1960년대의 파르티잔 이론과 그것이 직면했던 곤란에 대해 검토한다. 6장에서는 ‘아르카눔’의 모티프를 단서로 슈미트가 이른바 영속적인 예외상태의 가능성까지도 이론화하고 있었던 사정을 해명하고, 또 예외상태의 그런 영속화와 일상화가 1960, 70년대 독일의 현실정치에서도 커다란 토픽으로 떠올랐던 것을 드러낸다.

이 책에서 다룬 흥미로운 논점 중 하나는 슈미트와 한스 J. 모겐소와의 사상 분석이다. 슈미트가 ‘현실주의’의 국제정치학자로 자주 간주된다면, 그것은 주권국가를 상대화하는 보편주의적 국제법제에 대한 회의 때문일 것이다. 그런 이유로 주권국가의 힘의 관계로 포착되는 현실주의학파를 2차 세계대전 이후 미국에서 확립한 한스 J. 모겐소와 슈미트의 친연성은 자주 나타난다. 그러나 초기 모겐소의 사상이 변화면서 슈미트와 사상적 지표를 달리한다. 슈미트는 보편주의 국제법제를 비판하면서 권력이론가가 된 모겐소와 대비되는 새로운 국제법 질서의 탐구를 보여준다.

또 하나 흥미로운 논점은 글로벌화 시대 공공장소의 창출의 가능성이다. 슈미트는, 정치는 국제적인가 국내적인가를 불문하고, 룰의 장악에 의해 헤게모니를 획득하기 위한 투쟁기를 멈췄던 적이 없다고 말한다. 따라서 국가는 시장과 경제의 룰을 둘러싼 싸움의 주요 전장이 되어왔다고 한다. 힘의 논리로 좌우되고, 헤게모니 투쟁 속에 새로운 정치적 공공공간이 창출할 수 있는지에 대한 내기를 걸고 있는 슈미트의 사유는 흥미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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