엘리트주의를 극복한 시민의 정치를 위하여
상태바
엘리트주의를 극복한 시민의 정치를 위하여
  • 임병태 기자
  • 승인 2020.03.29 00:0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신간소개]

■ 시민권의 이론: 동시대 민주정들에서 다원성을 조직하기 | 헤르만 R. 판 휜스테런 지음 | 장진범 옮김 | 그린비 | 312쪽
 

시민권과 민주주의에 대한 해부를 기반으로 시민의 정치를 위해 시민권 개념을 새로이 정립하고자 하는 책이다. 이를 위해 저자는 아리스토텔레스, 루소, T. H. 마셜, 벤저민 바버, 아렌트, 메리 더글러스, 하버마스, 푸코, 비트겐슈타인 등의 다양한 이론들을 활용해 현대 사회를 지배하는 정치적 개념들, 즉 시민권, 민주주의, 정치 등의 기원을 탐구한다.

이 책이 배경으로 삼고 있는 사건은 ‘1989년 혁명’으로 상징되는 정치적 지각변동, 아렌트적 의미의 ‘사건’이다. 이 사건은 그로부터 20여 년이 흐른 오늘의 정세 역시 규정하고 있다. 1989년 이후 국민국가와 동서 진영을 축으로 삼은 정치 질서는 끝났지만, 안정된 모습의 새 질서는 아직껏 오지 않았기 때문이다.

시민들의 불만과 좌절이 높아지면서 기성 정치 일반에 대한 거부감을 비민주적·반민주적 경로로 표출하는 양상은 여전하다. 극우파의 극단주의, 이방인들과 여타 ‘잉여’인들의 주변화, 정치에 대한 혐오, 새로운 빈곤에 대한 무관심으로 말미암은 불법적이고 폭력적인 행동들은 정확히 동시대적 문제들이다.

이 같은 현 상황에 적절한 시민권 관념은 무엇이며, 계속되는 헌정 교체에 관해 시민들이 제시할 수 있는 지향은 무엇인가를 살펴보고자 하는 이 책의 주된 초점은 시민권의 실천적 행사가 시민권의 생명력을 유지하는 방식에 있다. 1부는 시기별로 시민권의 의미와 정치를 개괄한다. 2부에서는 특히 포스트1989 시대의 민주정들에서 동시대의 시민들이 차이들을 조직하기 위해 실지로 할 수 있는 일을 조사한다. 1부와 2부 모두 본질적으로 자유의 실천에 초점을 맞춘다. 3부에서는 해방의 과정 곧 자유로운 시민이 되는 데 필요한 일부 조건에 집중하며, 여기에는 교육, 이주, 사회화 관련 제도들이 포함된다. 전체적으로는 시민을 다원주의 정체의 조직가로 보는 일관된 관점을 제시하고, 동시대 민주정을 위한 시민권 이론을 제시한다.

이 책에서 저자가 제시하는 입장은 신공화주의이다. 우선 그가 상속하는 공화주의 전통의 원천은 고대 그리스 민주정, 그리고 그리스 민주정 이론을 대표하는 아리스토텔레스다. 이 원천에서 그가 취하는 것은 민주주의 정치 개념으로, 그 핵심 원리는 평등이고 으뜸가는 직책(office)은 시민이다. 말하자면, 평등의 원리에 따라 기존의 비대칭적이고 일방적인 지배관계를 재조직한 결과, 또는 시민이라는 직책에 무제한적인 권한을 부여하거나 최소한 권력관계가 지배관계로 변질되는 것에 대항할 수 있는 권한을 부여한 결과 탄생한 것이 정치이고, 따라서 정치의 뿌리에는 민주주의가 있다는 통찰이다. 이렇게 볼 때 공화주의 전통을 상속하는 신공화주의 기획은 차라리 급진적이고 발본적이라는 이중적 의미에서 ‘래디컬’ 민주주의 사조에 속한다고 할 수 있다.

동시에 저자는 공화주의 전통을 비판하거나 정정한다. 이는 특히 공화주의 전통이 중시하는 ‘덕목’(virtue) 개념에 집약된다. 그가 보기에 고전 공화주의가 중시하는 덕목은 군사적이고 남성적이라는 문제가 있다. 게다가 덕목의 어원은 고대 그리스의 ‘아레테’(arete)로, 이는 모든 종류의 ‘수월성’(秀越性/excellence)을 뜻하는 용어인바, 덕목을 강조하면 능력주의나 엘리트주의로 흐를 위험이 극히 높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덕목, 현대적인 용어를 쓰자면 ‘능력’ 개념 자체를 멀리 해야 하는가? 그렇지는 않은데, 다만 그 전제는 “최고한도의 능력”이 아니라 “최저한도의 능력”을 추구하는 것, 달리 말하면 능력 개념을 수월성이나 완벽성(perfection)의 문제 설정에서 떼어내는 것이다.

이에 상응하는 것은 정치를 ‘탈영웅화’하려는 시도인데, 저자에게 있어 정치란 위인과 영웅이 자신의 수월성을 뽐내어 불멸의 전당에 입장하는 숭고한 행위가 아니라, 시민들이 불완전한 능력을 발휘하여 다원성을 공화정으로 조직하는 세속적 실천/관행이 된다.

이 책의 가장 큰 특징 중 하나는, 아렌트에게서 연원한 다원성 개념을 가공·정교화한다는 점이다. 저자는 다원성을 “운명공동체를 공유하는 사람들 사이의 차이들”로 재정의하는데, 여기서 운명공동체란 “개인들이 각자 일하고 살아가는 방식을 포기하지 않는 한 서로 맞닥뜨리지 않을 수 없고,” “개인들이 서로의 차이를 어떻든 상대해야만” 하는 처지에 놓여 있다는 뜻이다. 운명공동체는 사람들의 존재 여건이고, 따라서 운명공동체와 별개의 개인이란 개인주의의 신화일 뿐이다. 하지만 이 운명공동체를 지배하는 것은 초월적 규범이나 단일한 정체성, 합의가 아니라 차이와 갈등이며, 그런 점에서 이 공동체는 차라리 ‘공동체 없는 공동체’다.

즉 운명공동체 개념의 의의 중 하나는 개인주의와 달리 공동체라는 물질적이고 상징적인 현실을 인정하면서도, 공동체주의와 다른(심지어 정반대의) 방식으로, 가령 ‘합의에 맞서’ ‘갈등의 꾸준한 섭취’를 옹호하는 방식으로 공동체 문제에 접근한다는 점이다.

저자는 이 운명공동체 또는 다원성이 네 축으로 구조화되어 있다고 말한다. 다원성은 (상대적으로 주관적인) 개인적 정체성들과 감정들, (상대적으로 객관적인) 능력과 제도들로 이루어져 있다. 이런 접근에는 크게 두 가지 의미가 있다. 우선 정치의 대상이자 수단을 더 세밀하게 파악하고, 이로써 다소 추상적인 수준에 머물렀던 아렌트의 다원성 개념을 정교하게 발전시킨다는 것이다.

이와 함께 다원성의 구체화와 상관적으로 그를 다루는 정치도 구체화한다. 이제 정치, 따라서 다원성의 조직화는 이 네 축에 개입하는 과정, 정체성들의 형세를 재편하고, 어떤 감정은 북돋고 어떤 감정은 중화하며, 특정한 사회적 능력을 요청·조장하고, 새로운 제도들을 구축하는 과정으로 재정의되는 것이다. 저자의 이러한 분석은 소수자의 정체성을 은폐하고 갈등을 악마화하는 정치문화를 극복하기 위해 무엇이 필요한지, 다양한 능력을 포괄할 수 있는 제도란 무엇인지 다시 한번 고민하게 만든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주요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