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양인 선교사들이 기록한 19세기 한국의 민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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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양인 선교사들이 기록한 19세기 한국의 민낯
  • 김한나 기자
  • 승인 2020.03.29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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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간소개]

■ 문명과 야만(개정판)(책세상문고ㆍ우리시대) | 조현범 지음 | 책세상 | 208쪽
 

19세기 이후 서구의 물리적, 정신적 침략에 저항하거나 순응하면서 근대 세계로 진입할 수 있었던 우리는 자신을 비춰볼 수 있는 타자의 존재를 갖지 못했다. 서구 열강은 우리가 따라가야 할 모델이자 목표였지, 자신의 정체성을 형성하는 데 필요한 타자적 인식의 대상은 아니었다. 하지만 우리는 그들에 의해 타자의 위치로 전락했고, 나아가 그들의 인식을 그대로 수용함으로써 우리 스스로를 타자화시켰다.

이 책은 19세기 중엽부터 개항기에 이르는 동안 조선에 들어와 활동했던 서양인 선교사들의 시선과 그 움직임을 분석하고, 타자화되어간 우리 역사의 초기 과정을 추적했다. 문명이라는 이름 아래 시선의 권력을 휘둘렀던 서양의 모습을 통해 우리의 오늘을 반성하는 계기도 마련했다. 또 우리가 현재 가지고 있는 인식태도 중 암묵적으로 숨어있는 특정 요소들을 분별하는 데 좋은 안내서가 되어줄 것이다. 무엇보다 타자를 대화의 한 축으로 정당하게 인식하기 위해 배제하거나 또는 수용해야 하는 관점이 무엇인지를 제시해준다.

그렇다면 서양인 선교사들은 어떤 역사적 배경 하에 조선과 아시아 지역으로 진출했을까? 저자는 「제1장」에서 서양인 선교사들이 조선과 아시아 지역으로 진출하던 19세기에 서양 사회의 토대를 이루던 사회적, 종교적, 사상적 기저, 즉 19세기 서양의 시대정신이 어떤 것이었는지를 개괄한다. 또 그들이 공통적으로 보유하고 있던 사고방식은 어떠했는지 식민주의와 제국주의의 팽창, 기독교 해외 운동의 붐, 문명화의 사명이라는 도덕률의 팽창, 이국 취향과 여행기 장르의 성공 등 4가지 측면에서 살펴본다.

이를 바탕으로 「제2장」에서는 19세기 중반에 활동한 천주교 선교사들을 소개하며, 당시 선교사들이 조선 사회와 조선인들에 대해 어떤 인식 태도를 가졌는지를 분석한다. 특히 지금까지 잘 알려지지 않은 내용들을 포함하고 있는 다블뤼 주교의 자료들에 주목한다. 이를 통해 금단의 땅이었던 19세기 중엽의 조선 사회가 어떠했으며, 서양인 선교사들은 이를 어떻게 인식했는지 알 수 있다. 마지막으로 「제3장」에서는 개신교 선교사들의 자료를 분석한다. 19세기 후반, 개항이 이루어지고 서양인들도 자유롭게 조선으로 입국할 수 있게 된 시기를 다룬다. 미국 개신교 선교사들이 본국에서 출판한 조선 관련 여행기나 안내서를 분석 대상으로 삼았다.

2001년 충격을 주었던 9·11 뉴욕 테러는 당시 미국의 패권주의에 대한 경각심을 불러일으켰다. 앨빈 토플러는 테러를 예견이라도 한 듯, 저서 『탈근대 시대의 전쟁과 반전쟁』에서 “지구촌 분쟁의 본질은 문명 충돌”이라 주장한 바 있다. 앞으로의 세계는 이데올로기 전쟁이 아닌 문화와 문명, 구체적으로는 서구 기독교 문명과 동양의 유교 및 이슬람 문명의 충돌을 일으킬 것이라는 새뮤엘 헌팅턴의 지적도 있었다. 토플러나 헌팅턴의 지적이 아니더라도 지금 우리에게 중요한 건 다름 아닌 ‘문명의 공존’이다. ‘타자와의 차이’를 받아들이지 않을 때, 즉 ‘문명의 차이’를 인정하지 않을 때 9·11 테러와 같은 충돌은 자명하고 빈번한 현실이 될 것이다.

그럼 과연 문명의 차이를 어떻게 인식하고 받아들여야 할까? 현대의 한국사회가 다양성의 지평 위에서 타자의 존재를 승인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우리 자신의 역사적 경험을 제대로 반추할 수 있어야 한다. 이런 점에서 서양인들이 우리를 어떻게 타자로 표상했는지를 살피는 이 책의 시선은 매우 값지다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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