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역사학 및 복식사 학자들의 한중 문화갈등 공동 해법 모색

동북아역사재단과 한국공예디자인문화진흥원은 7월 21일(금) 오후 더 플라자 호텔 4층 메이플 홀에서 ‘한국복식문화사: 한국의 옷과 멋’을 주제로 공동 학술회의를 개최했다.
최근 ‘한복, 갓 등 한국의 복식문화가 중국에서 기원했다’는 주장이 중국 온라인을 통해 확산되면서, 중국의 소위 ‘한국문화 기원 주장’은 한·중 네티즌들 사이 갈등 요인 중 하나가 되었다. ‘문화는 어느 한쪽의 일방통행에 의해 형성되는 것이 아니라 상호작용을 하면서 지역 특유의 정체성을 가진 새로운 버전으로 창조된다는 사실’을 견지하면 이러한 갈등은 해소될 가능성이 있다.
이에 재단은 한‧중 간 정서적으로 갈라진 틈을 채우고 미래지향적 소통을 위해 복식을 주제로 학술대회를 마련했다.
제1발표자인 김문자 명예교수(수원대학교)는 우리 고대 복식이 북방 유라시아 전역에 퍼져 있던 스키타이계 문화권에 포함돼 있었다고 본 ‘한국 복식의 원류와 삼국시대 복식’이라는 주제의 발표를 통해 한복(韓服)의 원류와 삼국시대 복식을 검토했다. 제2발표자 김윤정 전임연구원(서울역사편찬원)은 복잡다단한 대외관계에 따라 다양한 복식문화를 교류하며 문화정체성을 구축한 고려인의 복식과 원나라에서 유행했던 ‘고려양(高麗樣)’에 대해 ‘고려시대 복식과 고려양(高麗樣)’이라는 주제로 발표했다.
제3발표자 구도영 연구위원(동북아역사재단)은 '명나라의 조선 드레스 열풍과 조선 전기 여성 한복'을 연구한 발표에서 명나라 시기 기생은 물론 중국의 부유한 상인, 고위급 남성 관료들까지 입었던 조선의 마미군(馬尾裙) 패션 유행 사례를 소개하여, 문화와 유행은 중국에서 한국으로 일방향으로 ‘수혜’되는 것이 아니라 쌍방 간 소통하는 것이라는 점을 조명했다. 제4발표자 이은주 교수(안동대학교)는 ‘동아시아 문화의 공유와 변용, 조선의 단령’이란 주제를 통해 글로벌 스탠다드에 따라 복식문화가 끊임없이 변화한다는 점을 지적하고, 동아시아 문화를 공유하면서도 자신의 문화로 변용, 발전시켜 나간 조선의 단령을 살펴봤다.
제5발표자 이민주 연구원(한국학중앙연구원)은 ‘조선 후기 여성 패션과 아름다움’이란 발제를 통해 조선 여성 한복의 착장법 등을 검토하여 중국 및 일본 여성 복식과의 차별성을 확인하고, 개항기 서구인들이 조선 한복의 아름다움을 칭송한 사례도 소개했다. 마지막으로, ‘갓과 모자의 나라, 조선’을 발표한 이주영 교수(동명대학교)는 ‘갓과 모자의 나라’로서 조선을 조명했다. 개항기 중국과 일본을 두루 방문했던 서구인들이 조선을 모자의 왕국이라고 평가했던 이유를 확인할 수 있었다.

□ 특히, 구도영 동북아역사재단 연구위원은 고려와 조선 시대에 입던 옷이 과거 중국에서도 큰 인기를 끌며 유행을 주도했다는 흥미로운 연구 결과를 내놓았다.
일부 중국 누리꾼을 중심으로 한복이나 갓 등 한국의 전통문화가 중국에서 비롯됐다는 주장이 잇따르는 가운데 나온 내용이라 더욱 주목된다.
구 연구위원은 '명나라의 조선 드레스 열풍과 조선 전기 여성 한복'을 연구한 글에서 조선의 마미군(馬尾裙) 사례를 언급하며 "15세기 조선의 옷이 명나라의 부유층 패션을 휩쓸었다"고 분석했다.
마미군은 말총으로 만든 여성의 속옷, 즉 페티코트(petticoat)를 일컫는다. 치마 안에 받쳐 있는 속치마로, 바깥에 입는 치마를 풍성하게 부풀려주는 역할을 했다. 겉치마를 우산처럼 펼쳐지게 만드는 조선의 속치마 마미군이 당대 명나라에서 대유행했음은 여러 사료를 통해 잘 알려져 있다.
구 연구위원은 명나라 관료 육용(1436∼1497)의 문집 '숙원잡기'(菽園雜記) 등을 토대로 "조선의 마미군은 해상 교역을 통해 명나라 최고의 패션도시인 쑤저우(蘇州)에 전해졌다"고 설명했다.
이어 "이후 상하이(上海) 등 '강남' 지역사회에 마미군 열풍이 일면서 강남 여성은 물론, 고위급 남성 관료들까지 입어 명나라 정부에서 우려를 나타낼 정도였다"고 짚었다.
구 연구위원은 말총이 주로 제주에서 나는 점을 들어 이 마미군이 "그동안 전통적 한·중 관계의 외변에 놓였던 제주와 중국 강남 지역의 직접적 문화교류를 보여주는 귀한 사례라는 점에서 매우 주목된다"고 분석했다.

마미군은 15세기 말 명나라 황제 홍치제가 금지령을 내릴 정도로 유행했다. 구 연구위원이 분석한 결과 육용을 비롯해 마미군을 언급한 문집 등 사료의 필자들은 거의 소주(蘇州) 및 그와 인접한 강남 지역 출신이었다. 마미군이 궁중에서까지 유행했음을 보여주는 15세기 회화 ‘명헌종원소행락도(明憲宗元宵行樂圖)’ 역시 소주에서 발견됐고, 강남 지역과의 관련성이 확인됐다. 이에 비해 북경을 수없이 오간 조선 사행단에 중국인이 마미군을 언급한 기록은 확인되지 않는다. 이를 바탕으로 구 연구위원은 마미군이 유행했던 ‘경사’는 북경이 아니라 명나라 초기 수도이자 ‘패션의 도시’였던 남경(현 장쑤성 난징시)이었다고 봤다.
조선인이 합법적으로 갈 수도 없던 소주에서 마미군이 유행했던 까닭은 무엇일까. 1488년 경차관으로 제주에서 배를 탔다가 표류해 중국 강남 지역에 도착한 최부에게 한 중국인은 “종의(鬃衣·말총으로 만든 옷)가 있느냐”고 물었다. 그보다 앞서 1482년 같은 지역에 표류해 왔던 제주의 수령 이섬은 마미군을 팔았다는 것이었다. 구 연구위원은 “15세기 제주와 명나라 사이 해상 교류가 지속적으로 이뤄졌을 가능성이 높다”고 분석했다.
마미군은 조선 치마의 고유한 특징을 보여주는 의복이다. 중국 치마가 볼륨감이 없는 ‘H라인’ 중심이었던 데 비해 조선은 풍성한 ‘A라인’ 치마가 유행했다. 내륙에선 겹겹의 속치마를 껴입었지만 말총이 흔했던 제주에선 마미군을 만들어 받쳐 입는 게 훨씬 경제적이었다.
구 연구위원은 명나라에서 유행한 마미군이 문화교류의 역사를 상징한다고 봤다. 그는 “19세기 유럽에서도 치마를 풍성하게 연출하기 위해 말총을 활용해 페티코트(속치마)를 만들었는데, 동아시아의 말총 페티코트는 조선에서 탄생했던 것”이라며 "최근 중국 온라인과 학계 동향을 보면 중국이 주변국에 문화를 전파하기만 한 것처럼 설명하는 경우가 많지만, 마미군 사례를 보면 문화 상호 교류의 측면을 재확인할 수 있다"고 밝혔다.

□ 김윤정 서울역사편찬원 전임연구원은 고려시대 복식과 고려양을 연구·분석한 글에서 "14세기 원 제국에서 유행한 '고려양'은 전근대 한중 관계에서 전례 없는 문화적 현상이었다"고 설명했다.
원나라 말기 관인이 쓴 시 '궁중사'(宮中詞)에는 '궁중에 의복이 고려 양식을 새롭게 숭상하니, 방령(方領)에 허리까지 오는 반비(半臂)라네'라는 구절이 나온다.
이에 대해 김 연구원은 "원 궁정에서 유행했다고 하는 '방령에 허리까지 오는 반비'는 모난 맞깃이 달리고 허리까지 오는 짧은 소매의 덧옷을 뜻하며, 고려에서 유래한 것"이라고 밝혔다.
김 연구원은 복식 문화는 시대 변화에 따라 변화하는 산물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고려 복식문화의 흐름은 새로운 문화를 추구하면서도 그 속에 함몰되지 않는 자신들의 문화를 관철해 나갔으며, 시대의 변화에 조응해 끊임없이 재구성해 가는 과정이었다"고 언급했다.
□ 재단은 "한국 복식의 특징과 역사성을 확인하고 동아시아 문화 교류에 대한 이해를 제고해 한·중 시민사회의 갈등을 해소하기 위한 단서를 마련하길 바란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