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벽’을 통해 바라본 반목과 분단의 세계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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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벽’을 통해 바라본 반목과 분단의 세계사
  • 함규진 서울교육대학교·정치학
  • 승인 2020.03.22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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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말하다]

■ 책을 말하다_ 『벽이 만든 세계사』 (함규진 지음, 을유문화사, 2020.02)
 

장화(張華)의 『박물지』에는 최초로 성을 쌓은 사람이 우(禹)임금이라고 한다. “이로써 강한 상대를 공격하고 약한 자신을 방어하며 대등한 자는 맞서 싸울 수 있도록 했다”는 것이다. 그런데 장화는 이를 두고 “동리괴(東里塊)라는 처사(處士)가 우임금이 세상을 어지럽게 만들었다며 비판했다”는 말도 덧붙인다.

자연 속에 인위적 경계를 짓는 일이 왜 세상을 어지럽게 만들까, 나름의 질서를 부여하는 것이 아니라? 벽을 쌓으면 벽 밖의 상대를 소외시키겠다는 의미가 있고, 어떻게 보더라도 화해와 협력을 나타내는 태도라고는 볼 수 없기 때문이다. 실제로 중국의 장성을 북방민족(그 장성 때문에 북방민족이라고 불리게 되어 버린)은 혐오하고, 계속해서 공격했다. 돌궐의 명장 톤유쿠크는 “성을 쌓는 자 망하고, 길을 닦는 자 흥하리라”라는 말을 남기기도 했다.

그런데 장성은 그 안쪽에 있는 사람들 사이에서도 곧잘 혼란을 가져온다. 조선 연산군 때 벌어진 ‘장성 논쟁’이 예다. 당시 여진족의 잦은 침입에 맞서 고구려, 고려 때의 천리장성을 재현해 보자는 주장이 있었다.

그러나 “가뜩이나 농사가 안되어 시달리는 백성들에게 못 할 짓이다” “만리장성을 보라. 결국 오랑캐들에게 뚫렸지 않은가. 장성보다는 인화(人和)가 최선의 방위력이다”는 반론이 빗발쳤고, 결국 조선판 천리장성은 포기되었다. 그런데 장성 무용론에는 일리도 있지만 속셈도 있었다. 대규모 토목 공사를 하면 군주에게 막대한 인력과 자금이 모인다. 이를 바탕으로 신권을 억제하고 왕권을 강화하는 계기를 마련할 수도 있다. 조선 말, 대원군의 경복궁 중건도 그런 의미가 없지 않았던 것이다. 따라서 신하들로서는 어떻게든 명분을 내세워서 대규모 공사를 막을 필요가 있었다.

그래도 “약한 자신을 방어한다”는 성벽의 목적이 들어맞을 때도 있었다. 압도적인 다수를 상대로 잘 만든 성벽과 그 벽을 지키려는 시민들의 집념이 성과를 거두기도 했다. 동로마 제국의 멸망을 몇 백 년이나 지연시킨 테오도시우스 장벽이나, 끝내 무너졌지만(방어에 나선 시민들의 뜻이 먼저 분열된 때문도 컸다) 가혹한 정부군의 유혈 진압에 맞선 파리 코뮌 전사들의 바리케이드가 그런 예들이다. 결국 벽은 세계를 분열시키는 동시에, 단결을 촉구한다는 이중적 의미가 있다.

그래서 <벽이 만든 세계사>를 기획하고, 집필했다. 주로 군사적 목적에서 세워진 고대의 장벽들(만리장성, 하드리아누스 장벽, 테오도시우스 장벽 등), 인간이 자연을 지배하고, 엘리트가 기층 민중을 지배하는 과정에서 이루어진 근대의 장벽들(오스트레일리아 토끼장벽, 파리 코뮌의 바리케이드 등), 그리고 비행기가 날고 지하철이 다니는 상황에서도 여전히 사람과 사람을, 국가와 국가를, 우등 시민과 열등 시민을 구분하고 차별 짓고 있는 현대의 장벽들(한국의 DMZ, 나치의 게토 장벽, 베를린 장벽, 팔레스타인 분리장벽 등등).

▲ 사이버 장벽 (ⓒ markusspiske 출처: Unsplash)
▲ 사이버 장벽 (ⓒ markusspiske 출처: Unsplash)
▲ 사이버 장벽 (ⓒ markusspiske 출처: Unsplash)

그 마지막에는 트럼프 장벽을 비롯한 세계 곳곳의 난민 장벽들과, 중국의 사이버 만리장성을 비롯한 사이버 장벽들을 놓았다. 만리장성에서 시작해서 사이버 만리장성으로 끝나는 이 책에서 내가 담고자 한 생각은 막고 구분 짓는 일이 전혀 인간적인 일이지만, 동시에 비인간적인 일이기도 하다는 아이러니였다. 자신의 ‘영역’을 분명히 하고 싶어 하는 인간이지만, 타자와의 소통과 교류가 없으면 파멸하는 존재 역시 인간이기에. 특히 오늘날의 세계는 수십 년 전부터 ‘손에 손잡고, 벽을 넘어서’ 소통과 교류가 선이라고 주장하는 흐름을 겪어왔다(세계화, 정보화, 신자유주의화···). 그러나 바로 지금은 그런 소통과 교류를 막고 ‘우리가 먼저다’라고 외치는 목소리가 유형무형의 벽으로 나타나고 있는 것이다. 이 책을 집필하는 동안에는 없었던 일이지만, 지금은 온 세계의 재앙이 되고 있는 코로나19 사태도 비슷한 아이러니를 던져 준다. 보이지 않는 학살자 앞에서 국경을 봉쇄하고, 지역과 도시도 꽁꽁 틀어막는 게 최선인가? 아니면 차라리 문을 열어두고 검역과 진단, 치료에 온 힘을 쏟는 선택이 최선일 것인가?

인류는 더욱 발전하고, 멀리 우주에서 더 심충적인 가상공간까지 영역을 계속 넓혀갈 것이다. 그러나 인류가 인류인 이상 ‘벽을 세울 것인가? 세운다면 어디에, 어떻게 세울 것인가?’라는 질문에는 계속해서 부딪칠 것이다. 이런 문제를 함께 고민하고픈 지식인과 시민 여러분께, 많이 미흡하지만 감히 일독을 권해 본다.    


함규진 서울교육대학교·정치학

성균관대학교 행정학과를 나와 정치외교학과로 대학원 과정을 마쳤다. 현재 서울교육대학교 윤리교육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한국정치학회 특임이사, 한국평화연구학회 연구이사, 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 상임위원 등을 지냈다. 저서로 『왕의 밥상』, 『조약의 세계사』, 『개와 늑대들의 정치학』 등이 있고, 논문으로는 「한국적 민주주의의 형성과 민본주의의 역할」, 「다산의 국방안보론」, 「정약용 정치사상의 재조명」 등이, 역서로는 『마키아벨리』, 『유동하는 공포』, 『정치질서의 기원』 등 다수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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