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증의 탈을 쓴 역사부정론과 혐오론의 수법과 논리를 폭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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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증의 탈을 쓴 역사부정론과 혐오론의 수법과 논리를 폭로한다
  • 임병태 기자
  • 승인 2020.03.22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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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깊이 읽기]

■ 깊이 읽기_ 『탈진실의 시대, 역사부정을 묻는다: ‘반일 종족주의’ 현상 비판』 (강성현 지음, 푸른역사, 2020.02)

진실에 눈감은 채 입맛 따라 자료 골라 왜곡 해석

바야흐로 탈진실의 시대다. 사실의 진위와 상관없이 신념이나 감정이 여론 형성을 주도하는 시대다. 2020년 대한민국도 예외는 아니다. “모든 사람은 자신만의 의견(opinion)을 가질 권리가 있는 것이지, 자신만의 사실(facts)을 가질 권리가 있는 것은 아니다.” 사회학자이자 미국 민주당 상원의원이었던 고 대니얼 패트릭 모이니핸의 말이다. 특정 정치적 의도를 갖고 역사부정을 시도하는 것을 숨긴 채 자신만이 실증적으로 ‘기본 사실’을 말하고 있다고 선동하는 집단에게 참으로 시사적인 말이 아닐 수 없다.

허구에 불과한 대안적 사실로 진실을 덮으려는 시도는 정치와 미디어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진실과 사실을 다루는 학문 영역에서도 심심찮게 일어나는 현상이다. 역사부정론자는 자신의 주장이 자료와 증거에 기반하고, 신뢰할만한 연구 결과임을 강조한다. 그러나 실상은 밑도 끝도 없는 숫자를 통계 형태로 나열하고, 편향적이고 의도적으로 자료를 왜곡 해석하며, 논거와 상관없는 주장을 암시를 걸 듯 반복한다. 지난해 출간되어 이른바 ‘반일 종족주의 현상’을 불러일으킨 『반일 종족주의』(이영훈 외)가 바로 그런 방법과 논리를 충실히 보여준다.

“종족주의를 부족주의와 동일시하면서 한국인을 이웃 나라를 적대시하는 미개한 집단 심성과 정신문화를 갖고 있는 부족으로 폄하”하는 『반일 종족주의』는 '거짓말로 쌓아 올린 샤머니즘적 세계관'을 한국인의 정신문화로 여기고 위안부 문제의 책임을 '대일본제국과 일본군이 아닌 전적으로 기생의 성을 약취한 양반 나부랭이의 반일 감정'에 돌린다. 그런 맥락에서 보면 반일이란 "벌거벗은 물질주의와 육체주의가 특징인 샤머니즘에 긴박되어 있는 종족이거나 부족의 적대 감정이 이웃 일본으로 향한 것"과 다름없다.

"빈곤계층의 여인들에게 강요된 매춘의 긴 역사 가운데 1937~45년의 일본군 위안부 제도만 도려낸 가운데 일본 국가의 책임을 추궁하지 말라"는 책은 광복 후에도 위안부는 계속됐고 더 열악했으며 그 책임은 한국의 종족주의에 있다고 주장한다. 이런 의도를 갖고 자료를 탈맥락적으로 선별해서 확대해석하거나 왜곡하는 '부정의 실증주의' 방법을 구사했다.

이 책은 일본군 ‘위안부’ 문제를 중심으로 『반일 종족주의』의 반역사성을 정면으로, 조목조목 비판하고 있다. 군 ‘위안부’ 문제에 초점을 맞춘 것은 이것이 『반일 종족주의』의 핵심이자 주전선이기 때문이다. 사실 그간 『반일 종족주의』에 대한 비판은 적지 않았지만 산발적이고 감정적이라는 아쉬움도 없지 않았다. 저자는 탈진실의 시대, 역사를 부정하는 수구지식의 지적 농단에 대해 감정적 분노를 터뜨리거나 손쉽게 단죄하는 쉬운 길을 선택하지 않는다. 부정하는 자들과 똑같은 방식의 부정은 결코 극복이 아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책은 실증주의를 내세워 일본 극우 부정론자가 좋아할 만한 주장을 반복하는 『반일 종족주의』에 대해 군 ‘위안부’ 문제에 천착해온 저자가 실증적 방법과 해석적 방법, 그리고 구조적 분석의 방법을 교차해가며 그 모순적인 논리구조를 치밀하게 혁파한다.

“목소리 큰 쪽이 이겨서야” 방법론 자체가 문제

저자는 1부에서 우선 ‘반일 종족주의’는 무엇이 문제인지를 짚는다. 큰 틀에서 ‘반일 종족주의’의 바탕부터 흔드는 것이다. 우선 “‘위안부=성노예설’을 공개적으로 부정한 국내 최초의 연구자”라는 이영훈의 자화자찬이 일본 극우 역사부정론자 하타 이쿠히코의 20년 전 주장과 맥이 닿아 있음을 지적한다. 또 한일 우파 역사수정주의의 연대와 네트워크에 주목하면서 2002년 불거진 2차 북핵 위기와 일본인 납치사건으로 반북 감정을 공유한 이들이 2004년 ‘친일진상규명법’ 통과를 계기로 이른바 ‘뉴라이트’가 태동하게 되었다는 시대적 배경을 보여준다. 그러면서 편향적인 자료 선별과 의도적인 자료 오독과 생략을 근거로 한 역사수정주의는 나치 독일의 홀로코스트를 부인했던 역사부정과 같은 선상에 있음을 설득력 있게 반박한다.

<반일종족주의>는 통계와 수치, 자료 등을 동원해 나열하고 객관적 실증과학의 모양새를 취한다. 저자는 이들이 입맛 따라 고른 자료, 일부 사례로 전체를 왜곡하는 등 ‘통계의 사실 왜곡’을 하고 있다고 비판한다. 예컨대 한일 범죄통계 중 위증죄와 무고죄에 관한 한일 범죄통계를 비교해 한국인이 거짓말쟁이 민족이라는 주장에 어떤 허점이 있는지, 조선총독부의 통계치는 식민지 지식권력의 목적과 효과를 고려해 어떻게 비판적으로 활용해야 하는지 지적하면서 『반일 종족주의』의 주장은 ‘실증’의 탈을 쓴 역사 부정이자 ‘부정의 실증주의’임을 지적하고 있다. 나아가 그 핵심은 자료 여부가 아니라 프레임 싸움이라는 논리라며 “목소리 큰 쪽이 이긴다”는 일본 극우파의 냉소주의와 닮았다고 지적한다.

“성노예가 아니라 매춘부였다고?” 세부 사항 비판

▲ 중국군이 버마 로드 쑹산 야산 마을에서 포로로 잡은 위안부 (사진 제공=푸른역사)
▲ 중국군이 버마 로드 쑹산 야산 마을에서 포로로 잡은 위안부 (사진 제공=푸른역사)

2부에서는 일본군 ‘위안부’ 문제에 관한 이영훈의 주장을 사실을 들어 하나하나 논파한다. 이영훈의 주장은 “일본군‘ 위안부’는 강제 연행되지 않았고 공창제의 합법적 테두리 안에서 자기 영업과 ‘자유 폐업’을 할 수 있는 돈벌이가 좋은 매춘부였지 성노예가 아니었다”로 정리된다. 이에 대해 지은이는 “유괴도 불법적인 강제 동원이며 위안부를 모집, 영업한 업자 선정부터 조선총독부에서 감독했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또한 합법적인 민간의 공창제가 군사적으로 동원된 것이 일본군 ‘위안부’ 제도라는 이영훈의 주장에 대해 지은이는 공창제가 합법적인 성매매를 뜻하는 것이 아니라 국가의 성 관리로서 그 운용의 실상은 합법과 불법을 넘나들었으며, 따라서 군 ‘위안부’ 제도를 합법적인 것으로 정당화할 수 없다고 비판한다.

‘위안부’ 업은 개인영업으로 ‘자유 폐업’의 권리와 자유를 가졌다는 이영훈의 주장에 대해서도 일본 본토 공창제에서도 ‘자유 폐업’은 유명무실한 규정이었고 식민지 조선의 공창제에서는 아예 없던 규정이었으며, 최전선의 일본군 ‘위안부’ 제도 운영에서 ‘자유 폐업’은 말할 것도 없이 완전한 허구였음을 입증한다. “수요가 확보된 고수익 시장으로 많은 금액을 저축, 송금했다”는 주장에 대해서도 현지 물가와 일본의 물가 변화 추이를 제시하며 점령지에서의 전시 초인플레에 따라 전혀 가치 없는 군표를 모은 셈이었음을 보여준다.

문서 자료와 역사적 증거가 없다는 이유로 군 ‘위안부’ 피해자들의 증언을 무시하는 일본 극우파와 이영훈의 주장에 대한 지은이의 비판은 통렬하다. 역사적 증거를 인멸한 자들이 엄격한 실증주의자를 자처하고 있는 아이러니한 상황을 개탄한다. 저자는 지난해 한 라디오와의 인터뷰 사전 문답을 페이스북에 올렸는데 이런 내용이 있다. “예를 들면, 똥을 밟았고, 그게 분명한 사실인데, 증거를 대라 합니다. 그래서 똥 밟은 신발을 찍은 사진을 보여주었는데, 그 똥은 사람 거냐 짐승 거냐 묻습니다. 이에 대해 답하면, 그 성분은 무엇이냐 뭐 이렇게 끝없이 증거를 대라 말하는 상황인거죠. 따라서 100퍼센트 증명하지 못했으니 확신을 가지고 자기주장만 되풀이하면서 목소리를 높입니다.”

“피해자 증언을 어떻게 들어야 할까”

3부에서는 실례를 들어가며 자료를 어떻게 읽어야 하는지 조근조근 설명한다. 저자는 버마 미치나에 포로로 잡힌 ‘위안부’들에 대한 미군의 심문 자료와 사진, 중국 윈난성 쑹산과 텅충에서 미군 병사들이 찍은 스틸사진과 짧은 동영상을 하나하나 들어가며 심층적으로 분석한다.

그렇게 해서 미국 측 심문 자료에서 위안부를 ‘prostitute’라 옮긴 것 등을 근거로 ‘위안부’를 ‘매춘부’로 이해한 일본 극우파의 주장을 이렇게 논박한다. 미군이 통번역에서 쓴 ‘prostitute’는 포로 심문을 담당했던 일본인 2세 병사들이 활용한 군정보대 언어학교에서 편찬한 사전의 용례에 따라 그렇게 한 것일 뿐, prostitute라는 용어는 매춘부를 뜻하는 것이 아니라 위안부를 뜻하는 것이라 설명한다. 나아가 1944년부터는 미군도 일본군 ‘위안부’ 제도를 점차 이해하게 되어 ‘prostitute’보다 ‘comfort girl’로 번역하기 시작했음을 지적한다.

문서 자료와 역사적 증거가 없다는 이유로 군 ‘위안부’ 피해자들의 증언을 무시하는 일본 극우파와 이영훈의 주장에 대한 지은이의 비판은 통렬하다. 영국 측 심문 자료와 교차분석하고, 스틸사진과 동영상을 꼼꼼히 분석해 맥락을 찾아내는 과정은 작은 실마리 하나로 범인을 찾아가는 수사기법과 흡사하다. 저자가 미국과 영국 등을 방문하는 등 5년이 넘도록 “온몸을 갈아 넣어” 자료와 증언을 모았기에 그의 『반일 종족주의』 비판은 독자에게 와 닿는다.

역사부정론자들은 학문·사상·표현의 자유를 내세운다. 하지만 역사부정은 또 다른 갈등과 부조리를 가져오는 바이러스다. 저자는 반인도범죄 등 매우 중대한 인권침해에 대해 진실을 부인하고 왜곡하는 것은 역사부정죄를 입법해 형사처벌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역사의 진실을 밝히고 이를 후세에 계승하는 일은 현재와 미래의 삶의 기둥을 올바로 세우는 일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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