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학기를 보내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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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학기를 보내며
  • 안정광 충북대· 임상심리학
  • 승인 2019.12.13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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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임교수 단상]

겨울왕국은 제가 굉장히 좋아하는 영화입니다. 이래저래 10번 정도는 본 것 같습니다. 이 영화는 제 삶에 큰 변화가 있을 때마다 개봉했습니다. 겨울왕국 1편은 미국에서는 2013년 11월 말에, 우리나라에서는 2014년 1월에 개봉하였습니다. 제가 박사과정에 입학한 것이 2013년입니다. 그러니 박사 두 학기를 지낸 후 겨울왕국을 본 것이지요. 처음 영화를 보던 날, ‘Let it go’가 흘러나올 때 펑펑 울었습니다. 그 이후 희한하게도 ‘Let it go’ 노래를 들을 때마다 눈물이 났습니다. 이 노래가 얼마나 주변에서 많이 흘러나왔는지 기억하신다면, 제가 얼마나 자주 울었는지 아실 것입니다. 그냥 눈물이 고이는 정도가 아니었습니다. OST를 차에서 혼자 따라 부를 때도 눈물이 주르륵 흘렀지요. 왜 그랬는지는 모르겠습니다. 아마도 저의 무언가를 건드렸을 것이라고 주변 사람들이 얘기해 주더군요. 잘 다니던 직장을 그만두고 박사과정에 들어왔고, 포기해야 할 것들이 늘었고, 포기한 것에 비례한 결과가 나온다고 확신할 수 없던 때였습니다. 박사학위를 통해 내가 무엇을 이루려고 하는지도 아직 정하지 못했던 날들이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이 노래는 힘든 일들이 일어난다고 하더라도 꿋꿋이 해야 할 것을 하라는 메시지를 주는 것 같았습니다. “추위는 날 더 이상 막을 수 없다고. 마음껏 날 힘들게 하라고. 그래도 난 할 것을 하겠다고.” 지금도 ‘Let it go’를 들으면 여전히 울컥합니다. 그리고 최근 겨울왕국 2가 개봉했지요. 1편 때와 마찬가지로, 제 삶에 큰 변화 또한 생겼습니다.

지난 학기 동안 많은 것이 변했습니다. 6월 말까지만 하더라도 다음 학기가 어떻게 될지 전혀 예상하기 어려웠지만, 지금은 예측 가능한 삶이 되었습니다. 불안하거나 우울한 내담자들을 매일 만나던 삶에서, 학생들을 매일 만나는 삶이 되었습니다. 여러 선생님과 같이 쓰던 상담실 옆의 작은 방은, 조금 더 넓은 저만 쓰는 방으로 바뀌었습니다. 안양천이 보이던 거실 창은 청주 시내가 보이게 되었습니다. 운전을 전혀 할 줄 모르던 아내는 시내 주행과 주차를 하게 되었습니다. 아파트 단지 내 어린이집을 다니던 아이는 직장 어린이집에 다니게 되었습니다. 제 기대 이상으로 유능한 학생들을 만났습니다. 저를 너무 잘 챙겨주시는 동료 교수님들도 만났습니다. 갑자기 다양한 삶의 영역 변화가 생겼습니다. 적응에 힘든 면도 있지만, 전반적으로는 아주 만족합니다.

만족스럽지 않은 면도 있습니다. 주로 저와 관련된 부분입니다. 교육과 연구를 준비하며 아직도 많이 모자람을 느낍니다. 석사 지도 학생을 뽑았습니다. 이제 책임져야 할 학생이 생겼지만, 그 준비가 잘 됐는지 잘 모르겠습니다. ‘교수가 되면 이런 식으로 가르쳐 보아야지’ 하고 생각했던 것은 마음먹은 대로 실천하기 쉽지 않고, 늘 하던 대로 하게 되는 저를 봅니다. 학생들과 더욱 더 친해지고 이야기를 많이 나누고 싶었지만, 제 전공 수업을 듣는 학생의 이름도 잘 알지 못합니다. 편하게 다가갈 수 있는 선배 같은 선생이 되고 싶었지만, 챙김 받고 싶은 모습도 남아 있음을 보게 됩니다. 아내와 아이에게 함께 지내는 시간을 늘리겠다 얘기했지만, 여전히 퇴근하면 아이는 자고 있습니다. 그렇게 허우적대고 나니 어느덧 한 학기가 끝났습니다. 선방했다고 볼 수도 있지만 아쉬움도 남는 한 학기입니다.

얼마 전, 겨울왕국 2를 봤습니다. 주인공 엘사가 부른 두 노래, ‘Into the unknown’과 ‘Show yourself’가 마음에 남았습니다. 그렇습니다. 저는 지금 ‘낯선 곳에 뛰어들어, 자기 자신을 보여야 하는 상황’에 있습니다. 그만큼 부담스럽기는 합니다. 그러나 안나가 부른 노래처럼 살기로 했습니다. 그저 ’The next right thing’을 하기로요. 여전히 겨울왕국은 저에게 해 줄 얘기가 많습니다. 그래서 저는 오늘도 이 노래들을 들으며 출근합니다.


 안정광 충북대· 임상심리학

충북대학교 심리학과 조교수. 고려대학교 심리학과에서 임상 및 상담심리학 전공으로 석사, 박사 학위를 취득하였고 서울대학교병원 정신건강의학과에서 임상심리전문가 수련을 받았다. 고려대학교 부설 KU 마음건강연구소 연구교수를 역임했으며, 역서로 『정서도식치료 매뉴얼: 심리치료에서의 정서조절』(공역)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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