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예종 설치법' 논란…"특혜·생태계 파괴" vs. "석·박사 과정 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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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예종 설치법' 논란…"특혜·생태계 파괴" vs. "석·박사 과정 필요"
  • 이명아 기자
  • 승인 2023.05.30 21: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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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예종 석·박사 과정 개설 법안에 예술대학들 "특혜" 반발
- 예술대 학생·교수들 규탄대회…국회, 의견 수렴 후 다시 논의키로

 

‘한국예술종합학교(한예종) 설치법안’에 반발하는 전국 예술대학 학생들과 교수들이 30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대규모 규탄 집회를 개최했다. 사진 제공: 청주대

한국예술종합학교(한예종)에 석·박사 과정을 개설할 수 있도록 하는 '한국예술종합학교 설치법'을 놓고 한예종과 사립 예술대학들이 첨예하게 대립하고 있다. 법안 논의가 국회에서 본격화되자 예술대 학생과 교수들이 강하게 반발하고 나섰다. 한예종 측은 전문화된 예술 교육을 위해 석·박사 과정이 필요하다는 입장이지만 사립 예술대들은 지나친 특혜라며 철회를 요구하고 나섰다.

한예종은 예술영재교육과 전문예술인 양성을 위해 1993년 음악원을 시작으로 개교한 문화체육관광부 산하 국립예술학교다. 상당한 교육수준을 갖추고 세계적 예술인들을 배출하고 있지만 한예종은 고등교육법상 ‘대학’이 아니고 '각종학교'다. 학사학위(예술사 과정)만 인정된다. 1991년 설치 근거인 '한국예술종합학교설치령'이 만들어질 때부터 학위 과정을 두지 않았다.

대학원 설립과 석·박사 학위 수여도 불가능하다. 석사 과정에 해당하는 '예술전문사' 과정을 운영하고 있지만 수료해도 석사학위를 받을 수 없고, 상급 학교의 박사 과정에 진학할 때만 석사 학위에 준하는 학력으로 인정된다. 이 때문에 다수의 졸업생들이 석·박사 학위 취득을 위해 해외유학을 선택하고 있다.

우수 예술인재 확보를 위해 석·박사 학위 과정을 개설하는 것은 한예종의 숙원사업이다. 한예종의 법적 지위를 강화해 예술 전문교육을 강화하는 동시에 다른 대학과의 교류·협력 등을 통해 예술전문 교육기관으로서 역할을 확고하게 하겠다는 것이다. 이에 한예종은 한예종 설치법을 숙원사업으로 삼고 해당 법안 통과를 추진해 왔다. 1999년, 2005년에 이어 이번이 세 번째 시도다. 

한예종을 졸업한 뒤에도 해외로 석·박사 학위를 취득하러 떠나는 학생들이 대다수이고, 반대로 석·박사 학위가 인정되지 않아 유학생을 유치하는 데도 걸림돌이 된다는 것이 한예종의 입장이다. 김대진 한예종 총장이 지난해 개교 30주년 기자간담회에서 "해외 유학생을 유치하기 위해서는 대학원 설립과 석·박사 학위 수여를 가능하게 하는 설치법 제정이 필요하다"고 강조한 것도 이같은 배경이 작용했다.

현재 국회에는 한예종이 정규대학처럼 석사 및 박사 학위 과정의 대학원을 둘 수 있도록 하는 내용의 한국예술종합학교 설치법안 3건(김윤덕·박정·이채익 의원 대표발의)이 계류돼 있다.

국회 문화체육관광위원회 문화예술법안심사소위원회는 지난 24일 이들 의안을 심사했으며, 이견을 좁히지 못해 30일 오전 11시부터 추가 논의에 돌입할 예정이었다. 하지만 이를 반대하는 예술대학 등 관련자들의 의견을 수렴한 후 다시 회의를 열기로 했다. 회의 일정은 아직 정해지진 않았다.

 

전국예술대학총학생 연합회가 30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 본청앞  계단에서 '한예종설치법'을 규탄하고 있다. 

전국 예술대 “예술 교육 독점” “특혜” 반발

사립예술대학들은 한예종 설립법에 ‘특혜'라며 강하게 반발하고 나섰다. 전국예술대학교수연합과 한국예술교육학회가 29일 한예종 설치법과 관련해 성명을 내고 "예술교육의 자율적 생태계를 파괴하는 행위"라고 반발한 데 이어 30일에는 수도권 예술관련학과 대학생 등 1000여 명이 여의도 국회 본관 앞에서 반대 시위에 돌입했다.

전국예술대학총학생연합(예총련)과 전국예술대학교수연합(예교련)은 이날 '한예종 특별법 폐지를 위한 규탄대회'를 갖고 설치법안의 철회를 강력히 촉구했다. 전국 73개 대학, 219개 학과의 대표들이 참여, "예술상생 피해가는 한예종은 각성하라"는 구호를 외쳤다.

한예종이 대학원까지 두게 될 경우 지금도 국내 예술계에서 큰 영향력을 미치는 한예종의 독식이 심화할 수 있다는 지적과 함께 한예종 설치법을 반대하는 측은 예술실기 교육 위주로 설립된 한예종이 석·박사 학위를 수여하는 대학원으로서 기능을 수행하는 것은 원래 개교 목적에 맞지 않는다고 주장한다.

차영수(중앙대) 예총련 대표는 "전국의 예술대학은 학과 통폐합 등 고통을 겪고 있는데 한예종만을 위한 특별법이 제정되는 것이 상식적으로 이해가 되지 않는다"며 "지역 예술대학은 죽어가고 있는데 왜 한예종만 특별대우하는가"라고 지적했다.

그는 "한예종은 한예종의 역할이, 예술대학은 예술대학의 역할이 있고 한예종의 특혜는 이미 충분하다"며 "각종 특혜는 누리고 교육부의 규제는 받지 않겠다는 한예종의 위선과 욕심의 끝은 어디냐"라고 지적했다.

예교련도 "한예종은 법률상 대학(교)의 명칭을 사용할 수 없으며 대학원도 설치할 수 없는데 한예종 설치법안을 통해 석박사 학위과정까지 두는 것은 구조조정에 돌입한 일반 사립대학들과의 형평성에도 맞지 않는다"고 비판했다.

예교련은 29일 성명에서 한예종에 대한 950억 원 규모 예산지원 등을 언급하며 "문화부 소속기관인 한예종에 교육부 인정 석박사 학위 과정을 신설하는 것은 유아 대상 영재교육원부터 박사과정까지 한예종 안에서 수직계열화해 독점하려는 것"이라며 "해외 선진국에서도 국립 교육기관이 해당 국가 전체의 예술교육을 독점하는 사례는 없다"고 지적했다.

또한 “교육부가 아닌 문체부 소속인 한예종은 관련 정보 및 물적 지원은 물론, 교수 요원도 예술대학과 비교할 수 없을 만큼 많다”며 “만약 한예종이 석·박사 과정의 대학원 체제를 운영한다면 문체부가 아니라 교육부 소속으로 변경해 다른 예술대학과 같이 대학평가와 재정지원 등에서 형평성을 감안한 조치가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앞서 한국사립대학총장협의회 역시 한예종 설치법의 폐기를 촉구하는 반대공문을 교육부 등에 보냈다.

 

                                                                    사진: 한예종

한예종 "줄리어드 등도 박사과정 있어…독식 없다“

한예종은 "30년 전과 달리 현재는 전문적·창의적 예술가 양성을 위해 인문학적 접근과 다양한 분야의 융합예술 교육이 필수적"이라며 "한예종처럼 실기 중심의 교육을 하는 줄리어드, 파리국립콘서바토리, 영국 왕립 미술 아카데미, 맨해턴 음악학교 등 세계적 예술학교에도 박사과정이 있다"고 강조했다.

이어 "학위는 교육의 당연한 결과"라며 "실력이 아닌 학교의 법적 지위를 이유로 학생에게 석사 학위를 주지 못하는 상황을 개선해야 한다"고 했다.

또 "한예종은 약 4700개 학교를 대상으로 하는 QS 세계대학평가 공연예술부문에서 올해 42위로, 국내에서 50위 내는 한예종이 유일하다"며 "그럼에도 박사 학위를 줄 수 없어 유학생 유치에 곤란을 겪고 있다"고 강조했다.

한예종은 한예종 설치법이 국내 예술교육 생태계를 파괴시킬 것이라는 사립대학들의 주장에 대해서는 "기존 예술전문사 입학정원(378명) 내에서 운영하며 박사는 10%(37명) 수준에 불과해 미치는 영향이 미미하다"고 했다. 또 "오히려 해외로 유학가는 한예종 학생들의 진학률을 높이고 해외 유학생들을 유치해 국내 예술교육 수요를 확대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예교련이 전날 '한예종은 등록금이 일반 예술대학의 절반 수준으로, 올해 국비 950억원을 집행한다'고 지적한 것에 대해서는 "종합대학 내 예술학과만의 지원금을 산출할 수 없어 재정특혜는 사실확인이 어려우며, 한예종은 특별법에 의해 설립된 타 국립대학과 비슷한 지원을 받고 있다"고 했다.

한예종은 석·박사과정 개설이 설립 취지에 반한다는 지적에 대해 "실기 중심 교육을 기능교육으로 잘못 이해한 것"이라며 "철학·인문학적 접근과 타예술과의 융합적 사고를 바탕으로 전인교육을 강화하는 것이 한예종 설립 취지에 더 가깝다"고 했다.

이어 "문화·콘텐츠 산업 발달로 예술현장에서 전문교육을 받았음이 증명된 예술인력 수요가 증가하고 있고, 이에 따라 국내 대부분 예술대학들도 예술실기 분야 석박사 학위를 수여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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