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용 없는 시대, 대학을 위한 변론
상태바
고용 없는 시대, 대학을 위한 변론
  • 이태하 세종대학교·철학
  • 승인 2023.05.28 18:35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아카데미쿠스]

학령인구 감소로 비수도권 대학들이 폐교의 위기에 몰리고 있다는 보도가 연이어 나오고 있다. 학령인구 감소는 비수도권 대학들이 직면한 문제이지만 모든 대학이 직면하고 있는 이보다 더 심각한 문제가 있다. 청년실업 문제이다. 2010년 이명박 정부가 대학구조개혁을 위해 시작한 대학평가에서 취업률을 핵심평가지표로 삼자 취업이 갑자기 대학교육의 궁극적 목적이 되어 버렸다. 일자리는 대학이 만드는 것이 아니라 정부와 기업이 만들어야 한다는 점에서 엉뚱한 곳으로 불똥이 튄 모양새이다. 취업이 대학교육의 궁극적 목적인가에 대해서는 이론이 있을 수 있지만 적어도 대학교육이 질 높은 일자리를 얻기 위한 필요조건이라는 생각에 대해서는 사회적 공감대가 형성되어 있음을 부인할 수 없다. 그런데 얼마 전 ChatGPT가 등장하면서 향후 5년 안에 2,600만 개의 일자리가 사라질 것이라는 예측이 나오면서 사회 일각에서 대학교육 무용론이 제기되고 있다.  

“OECD 교육지표 2022”에 따르면 우리나라의 25~34세 청년층 대졸자 비율은 69.3%로 OECD 회원 38개국 중 1위였다. 이는 OECD 평균인 46.9%보다 무려 22.4%나 높은 수치이다. 그런데도 대졸 청년 고용률은 76%로 38개 국가 중 35위에 불과하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그러지 않아도 어려운 상황에 놓인 대학들에 대해 강도 높은 구조조정이 필요하다는 주장이 나오고 있다. 

그러나 대학구조조정을 논하기에 앞서 대학교육이 지닌 순기능을 돌아볼 필요가 있다. 대학은 취업을 위한 교육만 하는 곳이 아니다. 대학에는 정치, 사회, 경제, 문화 전반에 대한 소양 교육, 자기 삶의 의미와 가치를 돌아보게 하는 세계관과 가치관 교육, 민주시민으로서 갖추어야 할 공동체 의식 함양을 위한 인성 교육, 타인과 연대하고 협력하는 사회화 교육이 있다. 우리나라가 단기간에 세계 10대 경제대국이 되고 모범적인 민주사회를 건설할 수 있었던 것은 국민 대다수가 이런 교육을 받을 수 있었기에 가능한 것이었다. 고등교육을 받은 시민들은 세계에서 가장 안전하고 질서 있는 사회를 만들었고, 음악, 드라마, 영화, 음식, 패션, 등 문화 전반에 걸쳐 안목 있는 소비자가 되어 세계를 휩쓸고 있는 한류를 만들어냈다. 게다가 높은 교육열로 인한 극심한 입시경쟁과 이어지는 취업경쟁은 2022년, US News가 발표한 세계국력순위(The world’s most powerful countries) 6위의 강대국을 만드는 토대가 되었다. 그뿐만 아니라 계층이동의 사다리로 인식되는 대학교육이 보편교육 수준으로 확대됨으로써 사회-문화적 양극화를 완화할 수 있었고, 선진국 수준의 민주주의를 실현할 수 있게 되었다. 

취업이 안 된다고 해서, 또는 챗GPT, MOOC, YouTube를 통해 세상에서 알아야 할 모든 것을 배울 수 있다고 해서 대학을 외면한다면 어떤 현상이 일어날까? 우리의 삶이 점차 현실 세계에서 사이버공간으로 옮겨가면서 우리는 뜻밖의 복병을 만나게 된다. 사실의 진위를 떠나 자기의 생각이나 신념에 부합하는 정보만 보려고 하는 확증편향(confirmation bias) 또는 자기중심적 왜곡(myside bias)이다. 대학교육이 소수 엘리트를 위한 교육으로 축소되고 온라인 교육으로 대체될 경우 확증편향은 더욱 심해질 것이며, 이것은 자유민주주의를 비롯해 우리가 이룩한 많은 것들을 위협할 것이다. 디트리히 슈바니츠는 『사람이 알아야 할 모든 것: 교양』이란 책에서 교양을 ‘소통의 능력’으로 정의하고 있다. 대학에서 이루어지고 있는 교양교육의 핵심을 이보다 정확히 파악한 사람은 없는 듯하다. 취업과 무관하게 가능한 많은 시민이 대학교육을 받아야 하는 이유가 바로 소통의 능력 때문이다. 

그뿐만이 아니다. 대학교육은 일자리가 사라진 시대를 위해서라도 지금처럼 보편교육으로 존재해야 한다. 페이스북 창업자인 마크 저커버그는 하버드대 졸업식에서 이런 말을 했다. “모든 사람이 목적을 갖는 세상을 만드는 것이 우리 세대의 도전과제입니다. 목적이란 우리가 우리 자신보다 위대한 무언가의 일부분이며, 필요한 존재이고, 더 나은 일을 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겁니다. 목적은 진정한 행복을 가져다줍니다.” 인생의 참된 행복이란 우리가 일상에서 누리는 즐거움이나 쾌락이 아닌 자신의 존재 의미와 가치를 인정받는 데서 오는 자신의 삶에 대한 만족감이다. 자신의 존재 의미와 가치를 인정받을 수 있는 일자리가 사라진 사회, 즉 노동 없는 미래 사회에서 우리는 어디서 자기의 존재 의미와 가치를 찾을 것인가? 지금은 많은 사람이 취업을 위해서, 그리고 더 좋은 일자리를 위해서 대학을 다니고 있으나 앞으로는 인생의 목적을 찾기 위해, 그리고 더불어 사는 인간다운 사회를 만들기 위해 대학을 다녀야 할지도 모른다. 인간은 짐승으로 태어나 교육을 통해 비로소 인간이 되는 존재이며, 인간을 만드는 교육은 오직 인간만이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태하 세종대학교·철학

서강대학교 철학과를 졸업하고 동 대학에서 석사를, 미국 세인트루이스 대학에서 철학박사를 받았다. 전공은 서양근대철학과 종교철학이며, 현재 세종대학교 대양휴머니티칼리지 교수로 재직 중이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주요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