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덤 스미스 탄신 300주년을 맞이하여 - 동감의 원리와 시장의 도덕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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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덤 스미스 탄신 300주년을 맞이하여 - 동감의 원리와 시장의 도덕성
  • 민경국 논설고문/강원대 명예교수
  • 승인 2023.05.28 15: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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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경국 칼럼]

상업은 물질적 번영을 위한 긍정적인 힘으로 이해하는 것이 상식이다. 상업이 불러온 번영의 덕택으로 빈곤도 없어지게 되었다고 한다. 그러나 시장에 관한 이 같은 인식은 시장사회를 지나치게 좁게 이해한다고 주장하면서 등장한 인물이 올해 6월에 300주년의 생일을 맞는 애덤 스미스이다. 1759년의 도덕감정론에서 그는 시장은 그런 물질적 번영을 안겨줄 뿐만이 아니라 도덕적 개발도 쉽게 한다고 주장한다. 그런 주장을 보기 전에 우선 우리가 주목할 것은 개인들이 어떻게 도덕적으로 발전되는가를 설명하는 것이 합리적이라고 본다. 
           

동감의 원리와 도덕적 발전 

애덤 스미스는 인간에게 적어도 두 가지 선천적인 성향이 있다고 주장한다. 하나는 인간은 자기 자신을 더 많이 돌보게 마련이라고 한다. 자기애에 대해 편견을 갖는 것은 그래서다. 다른 하나는 인간은 자신의 감정이 다른 사람의 감정과 일치하기를 원한다고 한다. 다시 말해 우리는 우리 자신의 감정과 행동에 대한 타인들의 시인과 동감을 받고 싶어 한다(동감욕구)는 것이다. 

동감적 인간은 전적으로 이기적인 또는 이타적인 것도 아니다. 우리는 타인들과 상호작용을 통해서 배울 필요가 없을 만큼 합리적이지도 않다. 모래알처럼 고립된, 다시 말해 원자화된 인간이 아니다. 인간은 사회 지향적이다. 동감은 사람들을 엮는 실과 같은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우리는 타인들을, 그리고 이들은 우리 자신을 평가한다. 칭찬과 비난이 뒤따르기 마련이다. 인간들이 제멋대로 행동할 수 없는 이유다. 그들은 타인들의 호응 또는 시인을 의미하는 동감을 얻을 수 있는 행동, 즉, ‘적정한’ 행동을 찾으려고 애쓴다.

그런데 자기애와 동감 욕구가 상호작용하여 도덕적 행동이 개발된다. 이를 위해서는 우리는 자신의 행동을 최대한 공정하게 판단하는 방법을 배울 수 있어야 한다. 그런데 우리는 너무 자기중심적이기 때문에 우리 자신을 공정하게 판단할 수 없다. 우리가 잘못된 일을 해도 잘못된 것으로 보이지 않는다. 하지만 인류는 그런 중요한 약점을 어떤 구제책도 없이 그대로 내버려 두지 않았다. 치료법으로 인류가 개발한 것이 우리의 행동에 대한 타인들의 동감을 얻고 싶은 욕망이다. 그런 욕구 때문에 인간은 칭찬과 칭찬을 받을 만한 존재가 되기를 열망하고 반대로 비난뿐만 아니라 비난을 받을 만한 존재가 되는 것을 두려워한다. 우리는 타인들의 호응 또는 시인을 의미하는 동감을 얻을 수 있도록 자신의 행동이나 감정표현을 자제하여 ‘적정하게’ 행동하려고 애쓰는 이유다. 

우리의 행위가 타인들의 시인 여부를, 즉 내 행동의 적정성 여부를 아는 것은 그래서 중요하다. 그 여부를 알 수 있기 위한 유일한 방법은 우리가 우리 자신을 다른 사람들의 눈으로 보려고 하는 것이다. 다른 사람들의 눈을 통해 우리 자신을 바라보기 위해서는 우리가 다른 사람들을 볼 필요가 있다. 그들의 행동을 통해서 배워야 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그런 학습을 통해 우리가 멀리 있는 다른 사람을 거울로 사용하여 우리 자신을 보는 것이다. 도덕을 향한 사회화 과정인 것이다. 그런 사회화 과정을 통해서 우리가 해도 되는 또는 해서는 안 되는 일을 구분할 수 있게 하는 일반규칙이 생성된다. 


상업사회의 특징: 낯선 사람들의 세상  

애덤 스미스는 “거대사회(great society)”라는 말을 사용한다. 이런 사회는 분업이 소규모의 부족이나 종족사회를 넘어서 한 지역으로, 그리고 국경을 넘어 오늘날처럼 글로벌로 확대된 사회다. 거대한 사회에서는 수백만, 수천만 명, 오늘날 수억의 인구가 분업과 협력을 통해 살아간다. 인간관계가 아는 사람들끼리의 관계를 넘어서 모르는 사람들끼리의 관계로 확대된다. 상업이 그 같은 폐쇄된 작은 공동체의 경계선을 파괴했고 우리가 사는 사회는 거대한 익명의 사회다. 사회 자체는 상업사회가 되었고 우리는 모두 상인이다. 

폐쇄된 작은 공동체의 윤리적 기초는 자신의 욕구를 억제하고 타인의 행복을 증진하는 선행이라고 부르는 행동규칙이다. 사랑, 고마움, 우정, 나눔, 배려를 통해 서로를 지원하는 사회다. 그런데 거대한 사회에서 우리는 선한 사람들에 의존해서 사는 것이 아니라 낯선 사람들, 게다가 이기적인 인간들에 의존해서 살아야 한다. 스미스는 이렇게 주장한다. 

“우리가 매일 식사를 마련할 수 있는 것은 푸줏간 주인과 양조장 주인, 빵집 주인의 자비심 때문이 아니라, 그들 자신의 이익을 위한 그들의 고려 때문이다. 우리는 그들의 자비심이 아니라 그들의 자애심에 호소하며, 그들에게 우리 자신의 필요를 말하지 않고 그들 자신에게 유리함을 말한다.”

애덤 스미스가 말했듯이 상업사회는 정말로 낯선 사람들의 사회임에 틀림이 없다. 푸줏간 주인은 우리 이름도 모를 것이고 빵집 주인은 우리를 알고 싶어 하지도 않는다. 양조장 주인은 우릴 아는 척 할 뿐이다. 우리는 그들의 이기심에 의존하여 살아야만 할까? 


시장은 도덕적 개발에 비옥한 기반  

그런데 동감의 원리에 따라, 친숙성이 높아질수록 동감하기 쉽고 동지감도 높다. 이런 때 사람들은 감정표현을 절제하지 않는다. 눈물과 한숨을 억제하려고 하지 않는다. 사업에 실패하면 주위를 무시하고 울고불고한다. 의연함, 절제, 예의범절도 지킬 필요가 없다. 다른 한 극단으로서 심리적 물리적 거리가 아주 먼 경우에도 감정과 행동을 절제하지 않는다. 이런 사람은 타락의 길로 간다. 알코올·마약 중독 또는 범죄의 길을 걷는다. 양극단과 관련된 예를 들면, 타인에 대한 내 요구의 적정성, 요구 방법의 옳고 그름에 대한 도덕적 판단과 도덕 규칙의 준수에 필요한 자제력을 훈련하고 이를 습관화할 기회가 없기 때문이다. 자제를 위해서는 때로는 절제, 체면, 겸허 등과 같은 미덕이 필요하다. 

그러나 자제의 미덕을 훈련하고 이를 습관화하는 데 적절한 거리를 마련하는 것이 익명의 상업사회다. 푸줏간 주인이나 빵집 또는 양조장 주인과의 협상에서 우리는 물론 그들도 자신의 감정을 통제하고 진정시키려고 한다. 이같이 노력하면 할수록 시장 참여자들은 자신의 행동을 억제하기 쉽고 그들은 도덕적인 힘을 받아, 그 행동을 습관화할 가능성도 커진다. 상업사회는 우리가 늘 낯선 사람들과 접촉해야 하는 상황이 많다. 하루 대략 10시간을 낯선 사람들과 접촉해야 한다. 자제력을 훈련할 기회가 많은 사회가 상업사회인 이유다. 상업사회야말로 도덕적 발전에 가장 적합한 장소라는 점을 주지해야 한다. 자유시장이 끈질기게 존립하는 이유다. 우리는 체면 명성 신용을 잃을 것을 두려워 약속을 지키거나 또는 함부로 해고하려고 하지 않는다.  

상업사회는 순전히 이기적인 인간들로 구성된 사회라는 이유에서 도덕을 개발할 기초가 될 수 없다는 존 롤스의 주장은 틀렸다. 시장사회야말로 도덕적 발전을 위한 “가장 비옥한 기반”이다. 낯선 사람들에 대한 개인들의 노출이 빈번하고 안정적이며 개인들을 서로 너무 가깝지도 멀지도 않은 곳에 배치하는 사회다. 다른 한편 시장은 사회로부터 유리된(disembeddedness), 그래서 도덕으로부터 멀어져가는 사회라는 칼 포라니의 주장도 틀렸다. 사회로부터 이탈한다는 뜻은, 스미스의 말을 빌린다면, 얼굴을 마주하는 사회에서 익명의 사회로의 전환을 의미한다. 이 같은 전환은 절제의 미덕을 배울 기회를 의미한다. 더구나 얼굴을 마주하는 사회의 원리를 익명의 거대 사회에 적용하려는 폴라니의 시도는 터무니없는 일이다. 박원순 전 서울시장이 서울에 농촌을 만들겠다는 시도에서 볼 수 있듯이 말이다.   

사회 분열적인 이기적 원자적 인간과는 달리 동감적 인간은 사회 통합적이다. 이런 의미에서 본다면 스미스의 사상은 자연권의 의미로 권리를 주장하는 록크/노직/로스바드 전통의 자유주의 또는 사회적 후생을 극대화하는 벤덤/프리드먼 전통의 자유주의와 전혀 다르다. 그들에게 우리의 도덕성은 계산적이다. 그래서 사회 분열적으로 작용할 위험성이 매우 크다.


민경국 논설고문/강원대 명예교수·한국자유주의학회 회장

서울대학교 문리대를 졸업하고 독일 프라이부르크대학교 경제학 석사·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강원대학교 경제학과 교수를 거쳐 현재 같은 대학 경제학과 명예교수이다. 하이에크소사이어티 회장과 제도경제학회 회장을 역임했으며, (사)한국자유주의연구회 회장을 맡고 있다. 주요저서로는 『하이에크, 자유의 길』, 『국가란 무엇인가: 자유주의 국가철학』, 『자유주의의 도덕관과 법사상』, 『자유민주주의란 무엇인가』, 『시장경제의 법과 질서』, 『하이에크 자유주의 사상 연구』, 『경제사상사 여행』 등 다수의 저서와 역서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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