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사는 세상 이해하기 - 세상은 실제로 어떻게 돌아가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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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사는 세상 이해하기 - 세상은 실제로 어떻게 돌아가는가
  • 이상원 서평위원/서울대·통번역학
  • 승인 2023.05.28 13: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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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베르타스]

2022년에 나온 바츨라프 스밀의 책이 신속하게 번역되어 2023년에 한국어판으로 나왔다. 세상이 ‘실제로(really)’ 어떻게 돌아가는지를 에너지. 식량, 물질세계, 세계화, 위험, 환경, 미래라는 일곱 꼭지로 나누어 검토하는 내용이다. 

왜 이런 검토가 필요했을까? 나를 포함해 세상의 많은 사람들이 자신과 인류의 기본적 생존 조건에 대해 무지하고 무심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런 무지한 대중이 종말론 혹은 기술만능주의에 쉽게 휘말리기 때문이다. 환경과학자이자 경제사학자인 저자는 역사와 수치를 바탕으로 차근차근 이야기를 풀어나간다.

직접 1차 자료를 찾고 비교 분석하는 노력을 기울이지 않는 나 같은 사람은 ‘발작적이고’(323) ‘새로운 나쁜 뉴스를 학수고대하는‘(369) 언론 뉴스에 늘 휘둘린다. 그래서 연초부터 터진 ChatGPT와 AI 충격파에 휘말려 마치 그것이 우리 세상에서 가장 중요한 일인 양 생각하고 있었다. 

이 책은 정색을 하고 그렇지 않다고 말해준다. 그러면서 우리 문명을 떠받치는 네 가지 핵심인 암모니아, 강철, 시멘트, 플라스틱을 소개한다. 암모니아에서 나온 질소비료로 생산된 농산물과 그 농산물이 투입된 축산물을 먹고 생존하면서도, 강철과 시멘트로 지은 건물에서 살고 일하면서도, 강철과 플라스틱으로 된 교통수단을 타고 다니면서도, 지금껏 그 고마움을 제대로 느껴보지 못했음을 새삼 깨닫게 된다. 특히 플라스틱에 대해서는 내가 일상적으로 사용하는 거의 모든 물건의 재료가 되어준 존재라기보다는 골칫거리 쓰레기로 여기곤 했다. 

암모니아, 강철, 시멘트, 플라스틱은 근대 이후 급등한 인구가 제대로 먹고 마시며 생활 수준을 지속적으로 높이기까지 하는 데 결정적 역할을 했다. 그리고 그 이면에는 에너지, 특히 화석 연료로 공급되는 에너지가 있다. 저자는 화석연료 사용을 대거 감축해야 한다는 주장, 그리고 큰 폭의 수치 목표를 제시하는 정치인들의 약속을 터무니없는 것으로 바라본다. 우리가 먹고 마시고 살아가는 삶의 기본적 토대가 화석 연료 에너지라는 점을 간과하기 때문이라는 게 이유다.

예를 들어 저자는 ‘샐러드를 좋아하는 채식주의자들이 그 안에 화석연료가 잔뜩 담겼다는 걸 얼마나 알고 있을까?’(112)라는 질문을 던진다. 어째서 그럴지 한번 생각을 해보자. 샐러드 재료가 되는 채소와 과일은 질소 비료를 사용해 재배한다. 질소 비료, 질소 비료를 담은 포장재, 재배에 사용되는 각종 도구는 화석연료를 바탕으로 만들어진 것이다. 농사 지어 수확한 결과물은 매장으로 이동한다. 수확에 사용되는 장비와 도구, 수확물이 담긴 상자나 통, 이를 실은 트럭 역시 화석연료를 재료와 연료로 삼는다. 매장의 포장재, 매장 건물, 매장을 밝힌 조명, 매장을 찾은 채식주의자가 이용한 교통수단도 화석연료의 힘을 빌린 것이다. 샐러드 식사를 준비하는 채식주의자는 재료를 씻어 예쁜 접시에 담고 드레싱을 뿌린다. 집까지 수돗물을 연결하는 관, 정수시설, 접시나 드레싱의 생산과 제조·포장 및 운송·유통에 화석연료가 사용되는 건 두말할 나위도 없다. 

채식주의자는 아마 항변할 것이다. “우리 입에 들어가는 모든 것이 그렇게 비슷한 과정을 거치며 화석연료를 사용하게 된다 해도 고기를 먹는 것보다는 나아요. 육류 생산은 막대한 곡물 소비, 토양 및 대기 오염을 동반하잖아요!” 물론 일리가 있다. 하지만 저자는 이렇게 답할 것 같다. ‘소와 양과 염소를 비롯한 반추동물만이 밀짚과 줄기 같은 셀룰로오스 계 식물 조직을 소화할 수 있으므로 엄격한 채식주의는 소중한 생물량의 낭비이다.’(131) 

복잡하게 얽혀서 돌아가는 세상 속에서 우리 각자는 아주 작은 일부만을 경험하고 살아간다. 그 사실을 기억할 것, 자칫 그 작은 일부가 세상의 전부인 줄 알고 판단을 내리는 상황을 경계할 것. 이 책이 내게 남겨준 교훈이다.


이상원 서평위원/서울대·통번역학

서울대학교 가정관리학과와 노어노문학과를 졸업하고 한국외국어대학교 통번역대학원에서 석사와 박사 학위를 받았다. 현재 서울대학교 기초교육원 강의교수로, 글쓰기 강좌를 운영하며 저서 『번역은 연애와 같아서』, 『서울대 인문학 글쓰기 강의』, 『매우 사적인 글쓰기 수업』, 『엄마와 함께한 세 번의 여행』 등을 출간했으며, 『첫사랑』, 『살아갈 날들을 위한 공부』, 『안톤 체호프 단편선』과 같은 러시아 고전을 비롯하여 『적을 만들지 않는 대화법』, 『홍위병』, 『콘택트』, 『레베카』 등 90여 권의 번역서를 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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