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일 간의 이집트 답사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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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일 간의 이집트 답사기
  • 김성순 전남대·종교학(동아시아불교)
  • 승인 2023.05.28 12: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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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답사기]

2023년 3월 10일부터 3월 19일에 걸쳐 머나먼 나라 이집트에 다녀왔다. 2022년부터 11개월에 걸쳐 준비한 답사여행이었다. 600만 원 정도 소요되는 이집트 답사여행을 가능케 한 것은 나의 평생 친구 ‘마통’, 그리고 툭하면 ‘인생 뭐 있냐고!’ 내지르는 삶의 철학 덕분이었다. 이번 이집트 답사여행 구성원은 여행 총괄가이드와 이집트학 전문 가이드 포함 총 33인이었고, 다들 스스로의 컨디션을 잘 조절해준 덕에 무리 없이 마칠 수 있었다. 답사 여정은 첫날 카이로에서 시작하여, 아스완-아부심벨-에드푸-룩소르에서 다시 카이로에 이르는 이집트 종단 여행이었다. 

3월 11일 두바이공항을 경유하여 두 시간 만에 카이로공항에 도착한 우리에게 다가온 도시 풍경은 우리나라 70년대와 2000년대가 겹쳐있는 듯 보였다. 카이로는 아프리카와 중동의 아랍 세계에서 가장 큰 도시이지만, 외곽으로 나가면 뭔가 20~30년 전의 기억 속에서 헤집어나온 듯한 모습들이 산재하고 있었다. 카이로 외곽만 나가도 말, 당나귀, 노새, 낙타 등이 교통기관의 역할을 충실히 이행하고 있었고, 룩소르에서 본 노새 달구지의 목가적인 풍경은 아직도 기억에 선명하다. 세금 때문에 제대로 지붕을 마감하지 않은 채로 사람들이 입주해 사는 건물들이 도처에 있긴 했지만 사람들 표정은 국민소득이 훨씬 높은 우리보다 외려 밝았다.

3월 11일에는 쿠푸왕의 대피라미드와 스텝피라미드, 스핑크스를 답사했다. 원래 이 답사모임 자체가 고고학, 종교학, 민속학, 인류학 등을 전공한 연구자들 중심인 데다가, 안내자 역시 이집트 고고학으로 박사를 마친 분이었기 때문에 피라미드 속까지 들어가는 식으로 답사를 진행했다. 겨우 두 사람 혹은 한 사람 정도만 통과할 수 있는 피라미드 내부통로를 올라가기 위해서는 카메라 정도만 가지고 거의 포복하다시피 기어야 했다. 한 사람 정도만 갈 수 있거나, 혹은 두 사람이 겨우 비껴갈 수 있는 통로를 기어서 피라미드 중간쯤까지 올라가면 갑자기 공간이 넓어지면서 왕의 관이 있었던 현실(玄室)이 등장했다. 관광객에게 개방되는 피라미드는 모두 유물을 수습해서 가져간 상태이기 때문에 내부구조와 벽화만 볼 수 있는 상태였지만 그 거대한 석조구조물에 바람이 통하고, 때로 박쥐같은 생물들까지 깃들어 산다는 것이 놀라웠다.

피라미드는 외계인에 의해 만들어진 것도 아니고, 피라미드 주변에 공동체를 이루고 살았던 전문 장인집단에 의해 조성되었으며, 심지어 이들이 도굴에까지 가담했을 가능성이 추정된다는 얘기가 흥미로웠다. 피라미드 제작 공임을 제대로 주지 않았던 시기에는 피라미드 조성과 동시에 도굴 루트까지 함께 만들었을 가능성도 있다 하니, 역시 정당한 임금을 요구하는 투쟁은 왕의 절대권력으로도 막을 도리가 없다 싶었다.

3월 12일에는 올드 카이로로 이동해서 이집트의 초대 기독교인 콥트교회와 콥트 박물관, 아기 예수의 가족(Holy Family)이 피난했다는 전승이 있는 지하동굴교회, 동굴교회의 위 지상에 세워진 공중(hanging)교회, 그리스 정교회 수도원인 성 조지아교회, 콥트교 묘지 등을 답사했다. 아프리카대륙 북동부에 위치해 있으면서 힉소스, 그리스(마케도니아)와 로마, 페르시아, 이슬람의 지배를 받기도 했고, 히타이트, 리비아, 누비아 등과 정치적으로 충돌과 통합을 해온 이집트이기 때문에 문화와 인종에서도 혼종성이 강하게 드러나는 것을 볼 수 있다. 

3월 13일에는 고대 이집트 최고의 관종 대마왕인 람세스 2세(제19왕조의 제3대 왕; 재위 BC 1279-BC 1213)의 아부심벨 대신전과 그의 왕비 네페르타리의 소신전을 답사했다. 람세스 2세의 자의식 과잉은 이집트 곳곳에 신전을 세워 자신의 모습을 새기고 그려 넣는 형태로도 발현됐는데, 멤피스에서 머나먼 누비아지역에까지도 예외가 아니었던 것이다. 사실 이는 누비아에까지 자신의 존재감과 정치력을 각인시키는 고도의 통치행위였을 것으로 얘기되기도 한다. 심지어 그는 아부심벨 신전의 가장 안쪽에 자리한 최고 신성 공간인 지성소에까지 신들과 나란히 앉은 자신의 모습을 새겨 놓기도 했다. 아마도 이집트 곳곳에서 신들과 나란히 앉거나, 서있는 왕의 석상이 보인다면 십중팔구 람세스 2세가 맞을 것이다.

3월 14일에는 이집트 제2의 규모를 자랑하는 에드푸 신전과 룩소르의 카르낙 신전, 룩소르 박물관 등을 답사했다. 아스완에서 룩소르 가는 길에 들른 에드푸신전은 호루스신을 위해 세워진 신전이다. 

카르낙 신전은 고대에서부터 현대까지 통틀어 가장 규모가 큰 종교 건축물로 인정받고 있다. 카르낙 신전과 룩소르 신전을 잇는 스핑크스 참배로가 있는데, 매년 주기적으로 태양의 배가 그 참배로를 오가는 의례가 행해진다. 지금도 룩소르 신전 바로 앞 참배로 한가운데 태양의 배가 놓여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또한 카르낙 대신전은 아멘신을 모시는 신전이기 때문에 그의 상징인 숫양 모습을 한 스핑크스가 탑문 앞에 도열해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아래 사진은 이집트의 거의 모든 신전에 설치되는 나일로미터, 즉 나일강 수위계이다. 매년 우기에 주기적으로 발생하는 나일강 홍수는 국가의 경제와 밀접하게 연관되는 일이었기 때문에 모든 신전에 저러한 형태로 수위계를 설치하고, 비상시에는 이재민들을 신전에 피난시켜 보호하는 등 준국가기관으로서의 역할도 했던 것을 짐작할 수 있다.

3월 15일에는 이집트에 흔한 사암으로 새긴 멤논 거상, 람세스 2세 장제전, 사막에 암굴을 파고 건설한 귀족들의 무덤, 신왕국 18왕조 합세슈트 대장제전 등을 답사했다. 간단히 설명하자면, 이집트에서는 어느 시기부터 더 이상 피라미드를 건설하지 않고 매장공간인 무덤과 제사공간인 장례신전을 분리했던 문화사적 특징을 볼 수 있다. 이들 두 종류 건축물의 공간적 배경에는 나일강을 기준으로 산 자와 죽은 자의 세계를 나누었던 방위개념이 존재한다. 테베의 중심을 흐르는 나일 강을 기준으로 동편을 동안(東岸), 서편을 서안(西岸)이라고 부른다. 태양이 떠오르는 산 자의 땅인 동안에는 순수하게 신만을 모시는 의례전(儀禮殿: cult temple)이, 태양이 지는 망자의 땅인 서안에는 주신과 사망한 왕을 함께 모시는 장제전(葬祭殿: mortuary temple)이 각각 건립되었다. 

신왕국 시대 제 19 왕조 람세스 2세(Ramesses II, BC 1279~1213)의 장제전인 라메세움(Ramesseum)은 서안에 있다. 람세스 2세가 건립한 장제전은 한때 그리스인들에 의해 "멤노니움"(Memnonium)으로 불리기도 했지만, 1829년 이 장제전을 방문한 장-프랑수아 샹폴리옹(Jean-François Champollion: 1790-1832년)이 이곳을 "라메세움"으로 부르기 시작하면서 현재는 공식 명칭이 되었다. 건축물의 총면적이 약 50,000 평방미터에 달하는 라메세움은 1979년 유네스코 문화유산으로 지정되었다. 탑문의 바깥쪽은 무너져 내렸지만 안쪽 면에는 카데쉬 전투(Battle of Kadesh) 장면 등이 새겨져 있다.

아래의 사진은 람세스 2세 장제전 열주의 벽화인데, 이집트 유적 곳곳에는 이런 벽화들이 상형문자와 함께 음각 혹은 양각 형태로 새겨져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자신들의 신화와 세계관, 역사, 생존 시의 치적들을 이런 식으로 꼼꼼하게 기록했는데, 원래 대부분의 벽화들은 채색이 되어 있지만 세월이 지나면서 색감이 사라진 경우가 많은 것을 볼 수 있다. 혹여 여전히 색감이 남아 있다면 천년이 넘는 시간 동안 모래 속에 파묻혀 있다가 현대에 들어 발굴된 곳일 경우가 많다.

또한 도굴과 더불어 건축비용의 문제가 만만치 않았던 피라미드 대신에 눈에 잘 띄지 않는 사막의 지하에 암굴을 파고 왕과 귀족들을 매장하는 암굴묘가 등장하게 된다. 대표적으로 왕들의 무덤이 모여있는 지역이 바로 ‘왕가의 계곡’으로 불리는 곳이다. 이날 답사했던 ‘왕가의 계곡’에서는 이집트 고고학에 관심이 많다는 벨기에 왕비 일행과 마주치기도 했는데, 다른 이들의 불편을 고려하여 의전을 최소한도로 진행하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3월 16일에는 룩소르에서 다시 카이로로 이동하여 다슈르 사막지역에 있는 굴절피라미드와 레드피라미드를 답사했다. 흔히 피라미드라 하면 삼각형의 반듯한 조형만을 상상하지만 의외로 하부가 계단 형식으로 된 스텝피라미드, 혹은 중간에 각도가 굴절된 굴절피라미드도 존재한다. 이는 당시 피라미드 건축을 담당한 장인집단의 기술 수준이나, 지진 등의 외부상황에 기인한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그리고  앞에서도 적었듯이, 피라미드는 노예들이나, 우주인이 아닌 전문 건축장인 집단에 의해 조성되었다는 사실을 해당 지역에 직접 가보면 납득하게 될 것이다. 이들은 남부 아스완의 화강암지대에서 화강암을 채취하여 뗏목을 이용해서 나일강에 띄워 보냈다. 조류의 흐름에 따라 별다른 힘을 가하지 않고도 화강암은 목적지에 도착할 수 있었고, 나일강에서 가까운 사막 지역에 피라미드를 세웠던 것으로 보고 있다. 

3월 17일에는 고대 이집트 왕국의 수도였던 멤피스로 이동하여 멤피스 박물관의 람세스 2세 거상, 다시 사카라지역으로 이동하여 고왕국시대 제3왕조 조세르왕의 분묘인 계단식 피라미드, 우나스 피라미드, 카겜니, 메레루카, 마스터바 무덤 등을 답사했다. 오후에는 고대 이집트 박물관에 들러서 유물들의 사진을 몽땅 찍을 수 있었다. 아래 사진은 이집트 최고 귀족인 카겜니 묘실 벽화인데, 제사 희생물로 사용하기 위해 끌고 가는 암소의 젖을 빨고 있는 어린 송아지의 모습을 묘사하고 있다. 그밖에 군대에 가기 위해 머리를 깎은 후 울고 있는 젊은 병사의 모습도 새겨져 있어서 아주 이색적인 흥미를 주고 있다.

3월 18일에는 아직 정식 개관 전인 GEM(신 국립이집트박물관)에 잠시 들어가는 행운을 누릴수 있었다. 제대로 전시가 되어 있지 않아 입구 쪽의 거상과 전체적인 레이 아웃만 설명 받았는데, 언제 개관할지는 여전히 미지의 영역인 모양이었다. 

이상 10일간에 걸친 이집트 답사의 기록을 짧게 정리해 봤다. 제대로 답사기를 전달하기 위해서는 10일간 찍은 사진을 PPT로 제작해서 3시간 연강으로 들려주어도 모자라겠지만, 제한된 지면이라 이 정도로 마감하려 한다. 이 답사로 인해 나는 또 얼마간 긴축재정을 운영해야 하겠지만, 내 오감과 정보의 창고는 답사 비용에 비교 안 되게 풍성해졌다. 

이제 인류 4대 문명 중 한 곳의 ‘도장 깨기’를 실천했으니, 내년 혹은 내후년에 있을지도 모르는 메소포타미아 문명지역 답사를 위해 나는 또 개미처럼 일하고 모으려 한다. 아, 인생 뭐 있냐고!!!


김성순 전남대·종교학(동아시아불교)

현재 전남대학교 연구교수이며, 주로 동아시아불교와 종교문화의 비교연구, 그리고 불교의례 분야를 주제로 하는 학술논문을 발표하고 있으며, 전라북도 무형문화재위원회 위원, 대한불교 조계종 성보보존위원(무형분과) 등으로도 활동 중이다. 전남대학교 중어중문학과(학사), 서울대학교 종교학과 석사 및 박사를 졸업했다. 주요 저술로는 『불교문헌 속의 지옥과 아귀, 그리고 구제의식』, 『동아시아 염불결사의 연구』, 『테마 한국불교 7·9』(공저), 번역서인 『왕생요집(往生要集)』, 『교양으로 읽는 세계종교사』, 『돈황학대사전』(공역)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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