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중일 여성을 바라보는 11개의 시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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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중일 여성을 바라보는 11개의 시선
  • 이현건 기자
  • 승인 2023.05.27 16: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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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동아시아 미술, 젠더Gender로 읽다: 한중일 여성을 생각하는 11개의 시선 | 유미나·고연희·지민경·유순영·유재빈 외 6명 지음 | 혜화1117 | 456쪽

 

이 책은 오늘날 가장 핫한 키워드 가운데 하나인 ‘젠더’Gender를 들고 조선 시대로부터 명청으로 거슬러 올라가는가 하면 훌쩍 일본 에도 시대로 건너가더니 다시 근대로 넘어와 역동적으로 보고 읽는 재미를 극대화한다. 이 책이 바라보는 대상도 다종다양하여 그림은 물론이요, 글씨이며, 책의 삽화이기도 하고, 자수이기도 하며 심지어 금강산이고, 소녀라는 개념의 등장이기도 하다. 또한 기존에 알려진 문헌의 이면, 익숙하게 보아오던 그림의 해석은 물론이요, 해외 미술관, 박물관의 수장고에 머물러 있던 문헌과 그림들을 책 안에 펼쳐 보인다.

예술은 지난 시대의 산물인 동시에 현재를 사는 우리가 향유하는 ‘오늘의 매체’이기도 하다. 그런 관점으로 이 책은 시대와 지역, 심지어 매체의 경계로부터 완전한 자유를 장착한 채 마음껏 대상을 골라 때로는 직선으로 때로는 광폭으로 지난 시대의 산물을 현재진행형 논의의 현장으로 소환한다. 그 소환의 도구가 다름아닌 젠더인 것은 의미심장하다. 지난 시대, 남성과 여성의 지위와 역할이라는 것은 지나칠 정도로 단순하고 평면적인 것으로 이해되어 왔다. 한정된 역사적, 사회적 배경 안에서 젠더는 어떻게 예술 안에서 구현되고 반영되었으며 그것은 또 어떻게 포착이 가능한가. 이 책은 지난 시대의 예술을 지난 시대의 시선으로 보는 것에서 탈피하여 온전히 오늘의 예술로, 오늘의 방식으로 다시 바라보자고 우리에게 제안한다.

책의 첫머리를 시작하는 유미나의 「미인도 감상을 둘러싼 조선 문인들의 딜레마」는 9점의 미인도를 대상으로 펼쳐 놓고, 조선 시대 남성 문인들이 미인도를 언제, 어떻게, 왜 보았는지를 질문함으로써 조선 후기 남성들이 미인도를 즐기기 위해 어떤 명분을 만들어 정당성을 확보했는가를 집요하게 들여다본다.

그 다음으로 이어지는 고연희의 「그림 속 책 읽는 여인을 향한 두 개의 시선」은 조선 여인의 독서상 한 점을 대상으로 이를 향유한 남성들의 내면을 살피는 동시에 여성의 독서와 남성의 독서를 차별화하고, 다시 중국 여성과 조선 여성을 다르게 보았던 조선 남성들의 사고방식을 드러내 보인다.

지민경은 「그림 속 박제된 여성들, 다시 보는 명·청대 여성 초상화」에서 남성 관료의 복장을 입은 여성 초상을 통해 당시 남성들이 고인이 된 어머니와 할머니에게 남성의 옷을 입힌 조작적 이미지를 제작, 자신들의 가문을 높이는 장치로 사용하려는 의도를 읽어냈다.

유순영의 「꽃에 빗대 품평받은 명나라 말기, 그림 속 기녀들」은 17세기 명나라 청루문화에서 놀아난 남성 엘리트들의 성적 욕망과 심리 내면을 파헤치는데 국내에서 그동안 거의 볼 수 없었던 문헌의 이미지를 통해 과거 시험에서 낙방한 이들이 기녀를 향유했던 심리 내면, 기녀들 이미지에 노출된 남성의 성적 욕망과 관음적 시선 등을 분석하고 있다.

이어지는 유재빈의 「조선의 열녀, 폭력과 관음의 이중굴레」는 정조대에 출판된 도덕서 『오륜행실도』에 담긴 남성의 폭력성과 관음적 시선을 고발했다는 점에서 매우 도전적이다. 또한 여성을 폭력의 대상으로 명시하고, 관음의 대상으로 노출시켰으며, 이로써 여성에게 자살을 권장하고 열녀를 양산하려던 이 시대 남성들의 요구를 관철시키고 있다는 점은 자못 충격적이기까지 하다.

논의는 조선과 명·청을 넘어 일본까지 아우른다. 이정은은 「일본 경직도 속 여성의 노동, 드러나는 젠더」에서 일본 우키요에 속 비단을 만들고 직물을 짜는 미인들이 여성의 생산성을 요구한 강력한 사회적 음모였고, 특히 고급 비단 제작을 위한 젊은 여성의 노동을 구하면서 젊은 그들의 노동 장면을 아름답고 화려하게 보여주었던 복합적 이면의 결과였음을 헤아리게 함으로써 그저 아름다운 그림 이면의 맥락으로 우리를 안내한다.

저자들 가운데 유일하게 남성인 조인수의 「조선 여성, 글씨 쓰기」는 조선 시대 한글 편지가 가족 내 남녀를 잇는 소통 매체였고, 상류층 남성 자제에게 집안의 여성 어른이 한글을 교육시켰으며, 여성의 한글 서적을 남성들이 한문으로 번역하였던 실상들을 두루 조망하고, 궁녀들의 왕실체로 알려져 있는 ‘궁체宮體’를 공식적으로 제작한 남성들의 존재를 새롭게 제시한다.

서윤정은 「서화, 불화, 책, 자수에 쓰인 한글 텍스트」를 통해 조선 시대 문화예술의 젠더 지도 구축을 시도한다. 이를 위해 사대부 여성이 그린 산수화, 노비 여성이 그린 산수화, 비구니가 추진한 불교 회화, 여성이 독자로 설정된 유교적 교화서, 나아가 여성이 자수 공양에 한글로 자신의 이름을 수놓은 행위 등 다양한 측면을 해석하면서, 이에 수반된 문자 문화의 관계와 그 의미망의 구조를 폭넓게 조망한다.

시대는 이제 근대를 향한다. 김수진의 「남성에 의한, 남성을 위한, 남성의 자수」는 ‘자수’의 ‘여성성’이라는 젠더 코드가 뒤집힌 시공간 안에서 평안도 안주安州의 전문 수사가 제작한 자수병풍이 철도를 타고 경성의 황실로 운반되던 정황을 통해 정치·사회·경제적 가치가 상승된 물품이 남성의 세계로 편입되었던 드라마틱한 자수 문화를 펼쳐 보이는 동시에 이런 현상이 한국만의 것이 아님을 알려줌으로써, 젠더의 사회적 형성과 전환에 관련한 성찰을 제공한다.

김소연은 「금강산을 향한 근대 이후의 젠더적 시선」을 통해 근대기 장대한 암석의 외금강과 얌전한 계곡의 내금강으로 경관의 차이를 극대화하면서 남성미와 여성미로 구별하는 감상 방식이 금강산을 세속적 관광지로 대상화시키고 그것을 향유한 일본인들에 의해 시작되었음을 밝히고, 한국인에게 내면화된 금강산에 대한 젠더화된 미의식이 오늘날까지 지속되고 있음을 지적한다.

이 책의 마지막은 김지혜의 「근대, 소녀의 탄생」으로, 일본에서 유입된 ‘소녀少女’라는 용어와 개념이 남성의 시선으로 타자화되어 지속되는 현상을 포착했다. 이로써 ‘소녀’가 그것의 평등한 상대어로 보이는 ‘소년少年’에 기대어 기생적으로 출생했다는 것, 소년은 세계를 향한 독립자존의 근대적 추체로 표상되었다면, 소녀는 순결·순응·감상 등을 의미하는 불안정한 기표로 머물렀다는 것에 주목하면서 나아가 소녀의 개념을 스스로 활용하는 현대 한국의 당찬 소녀들에 대한 공감과 성찰을 시도하는 동시에 수줍어하면서 성적 매력을 가진 사랑스러운 소녀의 이미지는 미성숙과 성숙의 경계선에 있는 여성 신체에 대한 남성의 시선과 혹은 제도의 요구 속에서 시각화되는 내용임을 드러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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