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대중국 ‘관여 정책’은 실패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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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의 대중국 ‘관여 정책’은 실패했는가?
  • 이현건 기자
  • 승인 2023.05.27 16: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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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버드대학 미중 특강: 54인의 석학, 46개의 질문으로 알아보는 미중관계 그리고 한국과 세계의 미래 | 마리아 에이들 캐러이·제니퍼 루돌프·마이클 스조니 엮음 | 함규진 옮김 | 미래의창 | 520쪽

 

오늘날 모든 부문에서 충돌하고 있는 미중관계에서 자유로운 나라는 없으며, 특히 두 나라와 경제 및 안보 면에서 깊숙이 관여하고 있는 한국은 더욱 그러하다. 이 책에 실린 46편의 글에는 안보, 경제, 군사 개발, 기후변화, 공중 보건, 과학기술, 교육의 주제는 물론, 홍콩과 대만, 신장, 남중국해 등의 우려스러운 발화점에 이르는 다양한 질문들이 담겨 있다. 이를 통해 앞으로 미중관계가 어떻게 변해갈 것인지 고찰해볼 수 있으며, 분야별 전문가들의 권위 있는 견해를 통해 그 과정에서 주목해야 할 갈등과 잠재적인 협력의 주요 지점을 확인할 수 있다. 

1972년 닉슨 대통령의 역사적인 베이징 방문이 이뤄지고 미국이 중국의 문을 세계에 열어젖힌 이래로 미국의 대중국 정책은 “건설적 관여(constructive engagement)”가 그 근간이었다. 이 정책의 기본 입장은 중국이 점차 세계 경제에 통합되고 국제 규범과 규칙을 수용하고, 미국을 위협으로 바라보지 않고 적대시하지 않는 것이 양국의 이익에 도움이 된다는 것이다. 이를 통해 미국은 중국과 아시아 지역의 안정과 번영을 도모하고 차차 중국을 자유주의 국제 질서에 통합시킴으로써 미국의 우선적 이익과 지도적 위치를 더욱 굳건히 하고자 했다. 이 정책에 따라 중국은 ‘개혁 개방’ 노선을 천명하고, 세계 경제와 적극적으로 교류하고, 외국인 투자를 대거 유입하며, 거대 인구를 보유한 시장을 개방했다. 이로써 중국이 이룬 눈부신 경제성장은 역사에 기록될 만한 대단한 업적이 되었으며 중국의 ‘굴기’는 세상을 놀라게 했다.

하지만 경제적 풍요를 이룬 중국이 과연 자유주의 규칙 기반 질서(Liberal Rules-Based Order)까지 포용했는가는 문제로 남았다. 중국 지도자들은 미국의 관여 정책이 양날의 검이라는 것을 간파했으며, 공산당 일당 체제의 권위주의 중국이 자유민주주의의 수호자인 미국과 충돌할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일찍이 알고 있었다. 미국의 일부 논객들이 “관여 정책은 실패했다”고 단언하는 이유도 여기 있다.

오늘날 미국이 중국을 공격하는 기본 프레임은 ‘자유민주주의와 전체주의’의 대결이다. 대만과 홍콩 문제도 결국 겉으로 드러나는 것은 민주주의의 가치를 지켜야 한다는 것이다. 이렇게 해서 미국은 중국과의 국교 정상화 때 가장 중요한 아젠다 중 하나였던 ‘하나의 중국’을 지지한다는 약속에서 벗어날 수 있다. 미국에게 대만은 민주주의의 프런티어나 마찬가지가 됐기 때문이다.

자유세계의 수호자라는 미국의 이미지는 너무나 힘이 세서, 미국의 적은 자유세계의 적이라는 공식이 성립된다. 그렇게 해서 중국은 자유주의 규칙 기반 질서를 신봉하는 나라들의 적이 되었다. 〈중국은 왜 미국의 최애 위협인가?〉라는 글에서 판첸칭 교수는 미국과 중국의 대결 구도를 미국의 정체성에서 찾는다. 즉, 미국이란 무엇이며 미국이 지향하는 것은 무엇인지에 대한 정의, 미국의 민주주의, 자유, 인권, 법치주의의 가치를 확인하는 일은 동시에 미국의 타자 또는 비미국적인 것을 정의하는 것이기도 하다. 

중국의 부상은 자유주의 세계 질서에 위해를 가한 것이 사실이며, 이 때문에 미국을 중심으로 한 규칙 기반 질서의 중심국들은 다른 나라들에 통제, 지도, 조언을 주는 위치가 흔들리고 있다. 아시아, 아프리카, 중남미를 통틀어 진행되고 있는 중국의 경제, 정치, 무력 확산은 미국의 안보 체제에 위협을 가하는 것이기도 하다. 이로써 중국은 미국의 군산복합체에 힘을 실어줄 수 있는 가장 강력한 ‘강대국의 위협’으로 자리 잡았다. 이렇게 해서, 중국의 위협, 혹은 미국이 느끼는 위협감은 “미국을 하나로 묶는” 최대의 희망이며 미국인들이 서로를 물어뜯는 것을 막아주는 최후의 보루라는 말이 나오게 되었다.

친서구적인 미디어가 지배하는 오늘날의 한국 언론에서 친중국은커녕 중립적인 기사나 오피니언을 찾아보기는 쉽지 않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미국 중심의 세계 질서가 흔들리고 있다는 것이다. 미국은 지정학적으로 정치·군사적인 도전에 직면해 있고 최근 들어서는 금융계의 불안으로 달러 패권까지 도전받고 있는 형국이다. 미국의 빈자리는 중국이 부지런히 채우고 있다. 중국의 거대한 세계화 프로그램인 ‘일대일로’는 아시아와 아프리카에서 꾸준히 확산되고 있으며 수혜국과의 관계도 차츰 개선되고 있다. 사우디와 이란의 역사적인 화해 테이블에서도 양국의 손을 잡은 것은 미국이 아니라 중국이었다. 우크라이나 전쟁으로 서방의 각종 제재를 받고 있는 러시아와도 중국은 척을 지지 않으며, 독일 총리와 프랑스 대통령도 보란 듯이 중국을 방문해 시진핑과 손을 잡았다.

중국이 꿈꾸는 다극 체제의 신호가 여기저기 나오긴 하지만 그것이 미국의 일극 체제를 대체하는 데는 오랜 시간이 걸릴 것이며 변수 또한 매우 많다. 미국은 자타공인 현존하는 최고의 강대국이며 그 지위를 도전받는다 하더라도 민주주의와 자유주의 질서에 대한 세계 시민의 믿음은 아직까지 미국에 힘을 실어주고 있다. 결국 위안화가 세계 기축통화가 될 수 없는 결정적 이유가 정부의 통제와 개입이라는 것은, 시장에서의 자유주의 질서가 얼마나 중요한지 말해준다. 

기존 강대국과 새로 부상하는 강대국의 싸움은 역사에도 선례가 있다. 투키디데스의 책, 『펠로폰네소스 전쟁사』에 나온 두 강대국 아테네와 스파르타 그리고 그 사이에서 희생된 멜로스의 이야기가 바로 그것이다. 미국과 중국의 대결이 일어나는 모든 분야에 국가의 이익이 첨예하게 걸려 있는 한국에게도 이는 시사하는 바가 크다. 가장 중요한 것은 어느 한쪽에 대한 근거 없는 편견과 오해를 버리고 사실에 입각한 맥락을 이해하는 데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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